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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o습o관 Dec 01. 2023

생각 따라 둥둥: 개구리가 브런치를 만나면 생기는 일

책.습.관.

내가 브런치를 처음 알게 된 건 집에서 된장 만드는 법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시집와서 20년 가까이 친정엄마 된장을 얻어먹고 살다 문득 절대 안 왔으면 싶은 나중 일이 걱정되어 한번은 된장을 만들어봐야지 싶었다. 엄마한테 물으니 엄마는 메주를 사서 하는 거란다. LA도 아닌데 미국에서 메주 사기는 쉽지 않다. 근처 한인 마트에 물어봤지만 왜 그러는 거냐는 말없는 대답을 표정으로 들었다. 그래서 포기하면 사고뭉치가 아니다. 이래 봬도 내가 생명공학 전공 아닌가. 그렇게 된장 담그는 법을 찾아 유랑하다 브런치에 올려진 글을 찾았다. 내가 주소창에 브런치로 들어오려고 칠 때마다 자동완성씨가 잊을세라 된장 글로 나를 반겨준다.


이렇게 연이 깊은 브런치를 새로이 보게 된 건 책을 내겠다고 또 다른 사고를 치기 시작하면 서다. 책을 시작할 때  즈음에 여기다 한편씩 글을 써 보면서 반응도 보면 좋지 않을까 싶어 '불현듯'을 한 달 전쯤에 끄적였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연재하는 방식으로 책을 쓸 수가 없었다. 동시다발로 이 생각 저 생각이 떠오르고 이거 썼다가 저거 썼다가 하니 도통 정리도 되지 않았다. 내 생각의 흐름대로 독자를 끌고 다니면 단체로 뱃난간에 매달려 갈매기 밥을 줘야 할 테다.

나는 원래 큰 도화지에 휘적이고 채워나가는 스타일이라 결국 난 책만 썼다.  


책은 썼는데 사람들이 내가 쓴 책에 대해 흥미가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브런치에 같은 주제로 글을 써보기로 또 사고를 쳤다. 그랬더니 이게 웬걸? 여기는 신세계다. 대한민국이 문해력이 어쩌고 하더니만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맨날 받침 빠진 콩글리시 한국어만 보다가 한자까지 섞인 글도 보인다. 그뿐인가 매거진은 뭐고 연재는 뭐며 브런치북은 또 무엇인지.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은 참 대단하다 그랬더니 웬걸. 나보다 인생선배들 글도 수두룩하다. 아! 나는 또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우물에서 보는 하늘도 내 프로필 사진처럼 저렇게 파랗고 예뻐서 만족하며 살고 있었는데 그 밖 세상엔 이렇게 재미난 일들이 많았다.


누가 브런치를 만들었는지 여하튼 세상에 천재들이 너무 많다. 브런치가 요물인 것이 나를 자꾸 시험한다. 댓글을 할 거냐 말 거냐 물어보고. 글을 꾸밀지 말지. 사진을 넣을지 말지 자꾸 생각하게 한다. 내가 이런 걸로 고민할 줄 어떻게 알고 잊지 않고 물어본다.

내가 미국에 사는 이유는 어쩌면 미제연필 때문인지도 모른다. 난 아메리칸 드림 이런 건 꿈꿔 보지도 않았다. 사랑이라는 사고를 쳐서 덩달아 오게 된 경우라 별로 기대하는 것도 없었는데 딱 하나 기대한 것이 미제연필이다. 이상하게도 난 노란색 미제 연필이 그렇게 마음에 든다. 예전에 한국에서 방영했던 천사들의 합창( 배경은 미국이 아니다)에 자주 등장하던 노란 연필이 난 기억에 생생하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큰 꿀이, 작꿀이는 알록달록하고 귀여운 그림이 잔뜩 있는 한국 연필을 선물로 받으면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데 난 그런 연필은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난 아무것도 없는 게 좋다. 그냥 노란 색깔 하나. 노랑인 것도 마음에 든다. 심지어 지우개도 있다. 어렸을 적 미술학원 선생님이 색깔에 집착하는 나와 스케치에 집착하는 동생을 보며 너희 둘을 합치면 참 좋겠다고 하셨었는데 나는 여전히 색깔에 집착한다. 그래서 내 브런치에는 사진은 없다. 다른 글들을 둘러보니 사진이 없는 글은 거의 없다. 성의 문제인가 싶기도 하다가 결국 에라 모르겠다 일단 후퇴다.


내가 글을 올리면 옆에서 내가 글 쓰는 걸 보고 있었나 싶게 하트를 날려주시는 독자도 신기하다. 글 올리고 1초도 되지 않아 수정하러 들어갔다 나오면 하트가 벌써 도착이다. 나보다 더 성격이 급한 속독가이신가, 나를 믿고 선하트를 날려주시는 건가. 촌스러운 개구리는 눈이 휘둥그레질 일들이 브런치에서는 참 많이 일어난다. 이 와중에 구독자가 3분으로 늘어난 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일면식도 없는데 이렇게 반가울 수도 있는 건가?

'이것도 연인데 ~`라는 말이 왜 있나 했더니만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모양이다. 이래서 관계가 중요하다. 인생에 예측불허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 중에 관계만 한 것이 없다.


된장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메주도 띄우고 된장이 되긴 됐다. 좀 색이 허옇고 거칠어서 그렇지. 그래도 4년 동안 귓등으로 들은 풍월에 무슨 균인지 균은 자란 모양이다. 한번 끓였다가 이건 음식 냄새는 아닌 것 같아 몰래 처분했다. 우리 집 세 꿀꿀이들은 된장찌개를 먹을 때마다 물어본다. " 이거 누구 된장이야? "

된장 먹고 죽고 싶지 않다나 뭐라나. 관계 교육이 덜 됐다. 분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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