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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과학 습관 04화

003 동의하시겠습니까?

과학 습관

by 책o습o관

죽음을 포함해서 뛰다가 생기는 모든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겠습니까?

에이, 그런 일은 생기지 않겠지.

번지 점프를 뛰기 전 동의서를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동의했다.

내 몸뚱이 하나라고 생각하니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수술을 하러 가면 비슷한 종류의 동의서를 받는다.

죽을 위험이 있지만 감수하고 수술을 감행하시겠습니까?

아이들을 위한 수술 동의서에 서명하는 순간만큼 떨리고 걱정스러운 순간이 없다.

내 몸이면 차라리 쉬우련만 내 아이를 놓고 삶과 죽음에 선 가능성을 선택하라니.

지구인 전체를 위한 과학 사용 동의서가 있다면 어떨까?



이기적인 게 뭐가 문제야?

이기적인 나는 리차트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제목이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로웠다. 내가 이기적인 게 유전자 탓이었던 거야? 하지만 마더 테레사 같은 사람들 입장에선 거슬렸는지 그의 책 제목은 추앙만큼 비난을 많이 받았다. 마데테레사 같은 사람, 모성애 이런 걸 몰라서 인간이 이기적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이기적이게 행동할 때도 있고 타의적이게 행동할 때도 있다. 안타깝게도 책에는 나의 이기적인 마음을 유전자 탓으로 돌릴 수 있다고 쓰여있진 않았다. 다만 인간의 유전자가 살아남는 방법, 유전자의 목적이 이기적일 정도로 유전자 자체가 살아남기 위한 철저한 생존 법칙에 따른다는 것이다. 왜? 마더테레사도 엄마 아빠 유전자 사이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이기적인 유전자로 태어나서 이타적인 삶을 살 수 있었다.



리처드 도킨스는 대표적인 무신론자 과학자다. 다른 과학자들은 특정신을 믿지 않더라고 신 같은 대상에 대한 인정, 그리움, 경의를 앞세워 적당히 포장하는데 도킨스는 무신론자라고 공공연히 내세워 미움을 산다. 심지어 부러 그러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제목이 아니었다면 나 같은 사람은 안 읽었을 테니까.

그가 쓴 이기적 유전자는 생물학계에서는 세이스피어급이다. 출간 당시에도 화제가 된 책이고 현재까지 널리 읽히는 고전 중에 고전이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유전자에 대한 비유이다.

도킨스 따라 인간의 유전 정보들을 책으로 비유해 보자. 머리 색깔, 눈 색깔, 눈 크기, 손가락 개수, 피부색, 등 수많은 인간의 생물학적인 정보가 적혀 있는 책이 있다. 책은 한국어가 아니라 방탄소년단이 그리도 외친 DNA, A, G, C, T라는 4개의 염기서열(DNA)이라는 글자로 쓰여있다. 글자들은 특별한 구조로 만들어진 종이에 복사 시 혹시 모를 분실, 파손, 훼손을 막기 위해 쌍으로 존재한다. 이 쌍이 대략 33억 개 정도고 21000개의 유전자가 있다. 33억 개라는 수가 감이 안 온다. 팔만대장경 판수가 8만 개다. 그 안에 글자수는 5천 개 정도라고 한다. 그러니 33억개의 글자가 들어간 책은 무지막지한 정보다. 책이 너무 두꺼우니 23권과 복사본 23권 합해서 46권으로 나누어 세포의 가장 가운데에 위치하는 핵이라는 도서관에 잘 보관한다. 나중에 다른 세포를 만들 때 똑같이 복사해서 만들 수 있다. 복사하는 과정에서 동의어 정도까지는 인정하기도 하고, 오타 정도만 인정하기도 하고, 꼭 같은 글자 그대로 일치해야 인정하기도 한다. 그러니 복사본이지만 글자가 완벽히 일치하지 않는 다양성에 기여할 묵인된 오차가 있다. 많은 글자가 쓰여있는 한글도 ㅇ, ㄴ, ㅠ, ㅈ, ㅓ, ㅈ, ㅏ 는 아무 의미가 없고 '유전자'(GENE)이라고 쓰일 때만 의미가 있듯 의미가 있는 염기들의 조합 덩어리를 GENE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한 때 뉴스에 빠지지 않고 나오던 게노믹스 (GENOMICS), 유전자 복제 (GENE CLONING)가 바로 이 GENE이다. 내가 대학 갈 때만 해도 유전공학이라고 하면 알아주는 신학문이었다. 유전공학은 지금도 있지만 관심이 옮아간 탓에 흡사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다. 과학도 패션처럼 유행이 있다.



이 책들은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마다 모두 저장되어 있다.

인간의 세포 중에서 이 책을 다음 세대로 전달할 임무를 가진 막중한 세포가 여성의 난자와 남성의 정자인 생식세포다. 인간의 생식세포를 민들레처럼 흩뿌릴 수 있다면 어떻게 됐을까? 다른 건 몰라도 가족은 생기지 않았을테고 사회가 발전했을까 싶다. 고르고 고른 인간의 생식세포들은 전집 23권 두 종류 중 하나의 전집만을 가지고 집필에 참여한다. 정자와 난자 두 세포가 만나서 어느 한 사람의 책을 그대로 쓰지 않고 새로 생겼지만 두 개의 원전에 근거해서 나름의 규칙(맨델의 법칙)으로 새로운 책을 쓴다.

다음 세대에서 책을 만들 때는 책 하나를 그대로 베껴서 똑같은 책을 써내지 않고 다른 책이랑 잘 섞어서 다양한 책을 만들어 낸다. 가능한 모든 변화에 대비해서 한 놈이라도 살아남아 남기 위해서다. 어느 책이 잘 팔릴지 모르니 다양하게 만들어 다음 세대로 전달한다. 이 중에 생존에 유리한 책은 살아남고 불리한 것은 소멸한다. 책 시장이 변하듯 자연환경도 변하고 최적 조건이라는 것도 변하니 다양성이 답이다. 책의 내용을 정하는 규칙을 우성, 열성으로 배우는 우리는 살아남는 것이 뭔가 우위에 있다는 착각을 한다. 검은 소가 흰 소보다 우위에 있다고? 그러면 얼룩소는 어떡할까? 책의 내용 꼭 같은 만들어진 인쇄물 책 한 권보다야 책 100권에 인용구가 들어가 있는 것이 영향력이 있다. 그래서 형제간에도 각각의 다른 가능성을 가지고 대대손손 더 많은 후손들에게 내 이야기가 유전자라는 책으로 전달되도록 한다.

책을 쓰다 잘 못 쓰면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생물 내에는 존재하지만 그래도 아주 가끔 오류가 생겨서 돌연변이라는 것이 생긴다. 이 돌연변이를 가지고 태어난 생물의 오타가 생사에 도움이 되면 살아남고 도움이 되지 않으면 번식을 하지 못하고 점차적으로 사라진다는 것이 다윈이 말한 진화론이다.



내 주변에도 인공 수정으로 아이를 가진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본다. 나도 난임이었기 때문에 그 고통을 조금은 이해한다. 현재 난자와 정자를 수정란으로 만드는 과정, 인공 수정란이 인간이 되는 것은 가능하다. 최근 결혼이 늦어지면서 미혼 남녀가 난자와 정자를 얼리는 경우가 많다. 책을 타임캡슐에 넣는 것과 같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 어느 난임 클리닉 산부인과 의사가 자신의 정자를 사용해 인공수정을 한 사건이 39살이 된 인공 수정으로 태어난 당사자의 피검사 의뢰로 인해 밝혀졌다.

여기까지야 단 한 명의 비도덕적인 의사가 잘못이라는 건 대번에 알 수 있다. 아이가 미처 태어나지 않은 수정란 단계에서 비리가 밝혀졌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24주가 돼야 친자 검사를 할 수 있다면? 이미 수정이 돼서 태어난 아이들은?



그럼 남의 마음대로 하는 것 당연히 안 되지만 내가 좋아서 의사, 변호사, 운동선수, 성별을 고려하여 선택적으로 정자 또는 난자를 골라서 임신하고 싶은 건 어떤가? 법적으로는 안 된다고 정해졌어도 영업을 위해 슬쩍슬쩍 골라주는 것은 어떤가? 위에서 말한 의사의 아이들이 동네에만도 여럿이었듯 대량생산도 가능하다. 인간의 기술도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낸 하나의 변이고 가능성이니 괜찮다면 인간의 의지에 의해 없어진 다양성은 어떻게 해결할까? 유전자를 골랐는데도 의사, 변호사, 운동선수가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까? 만약 모두가 높은 지능이나 탁월한 신체능력을 가진 종으로 진화했다면 그건 좋은 것일까?

수정하는데 쓰이지 않은 생식 세포들은 어떻게 할까?

어딘가에 나도 모르는 내 자식이 있으면 안 된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양육의 책임은 지지 않고도 내 자손의 번성을 위해 자발적으로 기부하고 싶은 사람들은? 그런데 마침 생식 세포를 주면 돈을 많이 준다고 하면?

인공 수정에 선택받은 수정란 말고 남은 다른 수정란은 어떻게 할까? 얘네들도 찰나의 선택을 받았다면 인간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이미 송아지 수정란은 팔고 사는 게 빈번하고 할리우드 배우들 중에는 대리모를 통해서 아이를 낳는다는 기사는 드물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의학적으로 어쩔 수 없는 경우라면 몰라도 선택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건 어떨까? 대리모 출산은 비용이 어마어마하고 송아지와 다르게 교감, 정서, 친권 이런 부분이 변수가 된다. 이렇게 해서 낳은 아이들과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연구한 논문에 따른 관계 분석 결과는 우려스럽다. 그럼에도 숫자는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화장품, 연골 치료가 들어가 광고는 식상할 정도다. 줄기세포에 쓰이는 미분화된 세포란 한 개의 수정란이 여러 개의 세포가 되는 과정에서 아직 폐, 심장, 뇌 같은 조직으로 가기 전 단계의 세포를 말한다. 이미 세포 분화를 하도 많이 해서 유전자 정보를 가진 책 이 너덜너덜해진 늙은 세포들은 더 이상 복사해 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상태이다. 게다가 역할을 부여받아 가능성의 문도 닫아 놓았다. 하지만 줄기세포는 아직 책도 새것 같고, 이미 많은 것이 정해진 늙은 세포들과 달리 많은 것들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가능성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 현재 많이 하는 줄기세포 치료는 닳아 없어진 연골을 재생하는 방법으로 아직 분화되지 않은 자신의 척수, 지방세포를 이용하여 연골을 새로 만들어 내어 삽입하는 치료방법이다. 그렇다면 더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인간의 어느 부분도 될 수 있는 단계의 선택받지 못한 수정란을 이용해서 장기를 배양하는 건 어떨까? 어차피 필요 없어 버리려던 수정란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환자들도 치료할 수 있으니 좋지 않을까? 돼지나 다른 동물의 난자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하면 윤리 문제를 피할 수 있는데 인간 줄기세포에 손을 데고 싶은 이유 중 하나는 면역성 때문이다. 이왕이면 같은 전산 시스템, 회계 시스템을 이용하는 회사를 합병하는 게 문제가 적으니까. 생물에는 회계시스템, 법 대문 면역 체계라는 것이 있어서 아무 데서 길러서 갖다 붙인다고 쓸 수가 없다.



인간이 유전자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윤리적인 토론이 붙지 않는 것은 없다. 윤리 과제를 주제로 삼는 과학 논문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중 뜨거운 감자는 유전자 가위라고 불리는 CRISPR- CAS9이다. 긴 줄로 연결된 유전자를 기가막히게 잘라내는 효소와 입력하고 싶은 유전정보를 정확하게 전달이 가능한 기술이다.

이 만능 유전자 가위가 다른 방법보다 놀라운 점은 아까 말한 33억 개의 염기들, 21000개의 유전자 중에 목표물을 정확히 짚어내는 능력, 목표물에 고치고 싶은 부분을 의도대로 정확하게 고치는 능력이 있다.

유전병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 수정란 단계에서 원하는 부분의 유전자 서열을 제거, 삽입, 수정해서 아이를 가지면 아이들은 유전병 없이 살 수 있다는 희망이 된다. 윤리적 규제가 무서워서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이라고만 하기엔 유전병을 가진 아이와 가족들에겐 너무 잔인한 처사다. 그렇다면 이미 유전병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은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이 유전자 가위를 바이러스에 넣어서 인간에게 삽입하고 특정한 암세포나 돌연변이 같은 목표 유전자를 고치거나 문제의 세포를 떼내어 몸 밖에서 유전자를 고친 세포를 다시 집어넣는 치료법을 연구 중이다. 팬더믹이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바이러스를 사용한 치료 방법에 대한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바이러스에도 오류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바이러스도 생물인데 바이러스에 생기는 변이 가능성은? 정확하다지만 만일의 하나로 생기는 오류로 다른 세포, 다른 인간을 공격한다면 해결책이 있을까?



유전 공학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서 병이 생길 것 같은 유전자도 제거하고, 코가 높아지는 유전자로 바꾸고 머리가 좋아지는 유전자로 바꿔서 아이를 태어났다 치자. 유행은 어쩔 텐가? 지금은 코가 높고 얼굴이 작은 것이 유행이라지만 나중에 유행이 지나가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실행 과정에서 생길지 모르는 다양한 변이들은 어떻게 할까? 미국의 유명한 리얼리티 쇼 중에 유전자 검사로 친자를 확인하는 쇼가 있다. 병원 대기실에 가면 이 쇼를 꼭 틀어 놓는다. 수십 년 지난 옛 연인들이 불려 나오기도 하고 자기 아들이 맞나 확인해 보고 싶다며 아버지가 나오기도 한다. 자기 아이가 친 아들이 아니라고 하면 아이 엄마는 냅다 도망을 간다. 욕도 난무한다. 유전자 성형을 한 아이 유전자 검사를 한다면 과연 친자라고 뜰까?

유전자가 같아야만 자식인 것도 아니라면 그 비싼 과정을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처음부터 입양하는 건 어떨까?

낳았는데 내가 설계한 모습의 아이가 아니라면 어떡할 건가?



유전자 변형 농식물 (GMO)의 안정성에 대한 논란도 현재까지 끝이 없다. 현재는 가격 경쟁, 품종개량, 식량 문제 해결이라는 목적으로 농산물에 대한 유전자 변형이 가능하고 사업적으로 성공한 사례도 많다. 동물 사료를 비롯해서 쌀, 수박, 토마토 우리가 모르는 많은 작물에서 자연계에는 없던 종을 만들어진 유전자 작물이 있다. 미국 식약청에서는 식용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 상태다. 하지만 유전자 가위와 마찬가지로 DNA 조작에 쓰인 법이 인간에 언제까지 안전할지, 다른 생물 종으로의 전이 가능성,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다른 부작용 처럼 인간과 자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끊임없는 걱정의 소리가 있어서 소비자들에게 알 권리를 주고 선택하게 하라는 주장이 대세다.



연구소나 제약회사들이 암이나 치매와 관련해서 신약을 개발했다거나 임상실험에 들어갈 계획이라는 기사를 내면 그날은 실험하기는 그른 날이다. 임상실험도 채 끝나지 않은 약이라 안정성 보장이 없는데도 먹겠다고 하는 사람들 전화가 빗발친다.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 불임, 난임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절실함을 겪어보지 않고 말할 수 없다. 그런 이들에게는 과학 기술이 발전이 한 시가 급하다.



원하는 DNA 서열을 만들어 내고 세포 내에 들어가서 안착하기까지 수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수많은 과정에 필요한 세부적인 기술, 약물, 최적 조건을 맞추는데만도 많은 인력, 시간, 노력, 돈이 든다. 답도 없으면서 밥줄을 위협하는 윤리적인 문제제기를 밤늦게까지 실험실에 있는 과학자들은 반기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당장 유전자 성형이 가능한 것도 아닌데, 아직도 갈길이 구만리인데 뭘 벌써부터 윤리 이런 걸 걸고 넘어져서 괜히 이기적인, 비인간적인 업계 이미지만 만들고, 엄한 규제만 생기고, 그나마도 없는 연구비 끊기는 것이 아닌가 싶을 수도 있다.

맞다. 갈 길이 멀다. 그리고 과학기술로 불가능했던 유전자 치료를 이루어 인류에 큰 공헌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논문 읽느라 바쁘고, 실험하느라 지치고, 데이터 하나에 목숨 거느라 우리가 깜빡한 사이 어느 문전에 도달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결과가 있어도 윤리적인 문제로 많이 사용하지 못할지도 모르고 사회적 반감이나 규제가 많이 생겨서 떼 돈 버는 사업이 되지 않는데도 계속 연구를 해야 할까 싶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과학계가 기근인데 과학 씨가 말라죽는 거 아니야?



지금 미국에서 일고 있는 낙태법을 둘러싼 토론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벌써 산부인과 의사들은 찬반논란에 휘둘리다 지치고 부담스러운 선택을 피하기 위해 24주 전 진료를 거부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인간이 장기 기관이 생기는 시점을 기준으로 낙태법은 24주를 기준으로 한다. 낙태를 반대하는 측의 입장은 24주 전에도 인간으로 권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강간에 의한 임신, 병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상황처럼 낙태 찬성 측 입장도 팽팽하다.

이런 첨예한 토론 과정을 보는 시선이 엇갈린다. 한 친구는 말만 많이 하고 진척이 없다는 것이다. 그냥 정하고 따르면 훨씬 효율적인데 왜 자꾸 토론을 하냐고 한다. 그런데 다른 친구는 시간이 걸려도 토론을 해야 한다고 한다. 토론을 통해서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모른다고 했다.

토론에 굴레에 걸려서 주춤해진 집단과 토론도 할 필요 없이 경쟁에서의 우위라는 확실한 목표 하나를 목적으로 한 집단이 있다고 하자. 한 집단은 토론하는 사이 인기도 시들해지고 그 분야 연구도 기반 사업도 흐지부지 됐다고 하자. 반면 확실한 목표 설정으로 움직인 집단은 빠른 결과물을 낳고 발전을 이룰 것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에게 기술이 필요한 순간 할 수 없이 손 벌리기 싫은 집단으로부터 사야 한다면? 그래서 비인간적이라는 굴레라고 비난만 하거나 규제만이 답이 아니다. 이러니 토론을 미룰 수가 없다.

인간은 고통이 따르고 시간이 걸리는 바른 결정보다 확실한 이익을 주거나 이익을 보장하는 편이 더 호도되고 설득되었다는 예는 히틀러와 추종자, 암묵적 동의자들을 비롯해서 인간의 역사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인간은 깨닫고 배울 기회가 있었기에 유대인도 남아있고, 아직까지 인간의 역사가 지속되고 있지만 자연은 우리에게 어디까지 실패하고 배울 기회를 줄까? 버튼을 눌러야 할지도 모르는 마지막 순간에 끝도 없는 토론을 하고 있으면 안 되지 않을까? 우리에겐 얼마의 시간이 남아있을까? 남은 시간이라도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건 대학 들어갈 때 입시 시험에나 쓰는 거 아니냐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질문을 왜 자꾸 하는 거냐고?

미래의 법관, 미래의 신약개발부서, 미래의 과학기자, 미래의 철학자, 미래의 난임 클리닉 원장, 사업가, 예비 부모도 모두 같이 생각하고 토론하고 준비하면서 안전하게 연구하고, 장기적인 투자 계획도 만들고, 안전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필요하면 법도 만들고 하면 좋지 않을까?

남은 정자와 난자를 버리는 것도 돈을 받고 파는 것도 꺼림칙하다. 유전자를 조작해서 아이를 선택하는 것도 꺼림칙하고, 수정란으로 대량 생산하고, 인간이 됐을지도 모르는 세포를 이용해서 장기를 배양하는 것도 꺼림칙하다. 수정란부터 인간으로 친다면 낙태법은 논의 대상조차 될 수없다. 모두 인간이 될지도,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나는 문제가 될만한 그럴 일은 안 할 거니 논의의 가치가 없다는 태도도 문제가 된다. 그렇다고 불임, 난임으로 고통받고, 몸이 아픈 환자들을 모른 척 하는 것도 비인간적이다. 내가 언제 어떻게 그 위치에 처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기적이기도 하고 이타적일 수도 있는 인간

인간적인의 범주가 무엇인지, 뭐가 꺼림칙한지, 어디까지 허용할 건지 생각해 봐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배우고 논의를 거쳐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지 않을까?

사회적 논의가 어렵다면 나만의 최선의 기준이라도 세워야 하지 않을까?

선택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선택의 순간은 가까워지고 있다.



동의하시겠습니까?




<참고자료>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자기 정자로 난임환자 임신시킨 환자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022108527


CRISPR/Cas9 therapeutics: progress and prospects

https://www.nature.com/articles/s41392-023-01309-7

Applications of genome editing technology in the targeted therapy of human diseases: mechanisms, advances and prospects

https://www.nature.com/articles/s41392-019-0089-y?fromPaywallRec=fa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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