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습관
내가 가르치던 반의 한 녀석이 종교를 이유로 진화론 수업을 거부했다.
학부모는 종교를 이유로 들며 녀석의 모든 수업 활동으로부터 면제될 수 있도록 요청했고, 그 녀석은 수업 시간 내내 게임을 했다. 내가 가르치던 150명의 학생 중 종교적 이유를 들어 수업을 거부한 아이는 딱 한 명이었다. 미국에서도 흔하진 않단 이야기다. 이 녀석은 나한테 신선한 충격이 됐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미국 고등학교 과학 단원 중 가장 최근에 합류한 단원은 다름 아닌 바로 진화론이다.
이유는?
다름 아닌 창세기 때문이다.
미국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지만 70퍼센트에 가까운 사람들이 기독교라고 한다. 종교 이전에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실제로 부활절이 있던 지난 주말 동네 놀이터에 갔더니 텅텅 비어있었다. 주변에 주말에 실제로 교회를 가는 친구들의 수는 많지 않아 보이지만 대통령 연설, 이메일 끝인사, 국기에 대한 경계문, 부활절 브런치나, 성탄절 행사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기독교 정신이 뿌리 깊은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기독교에는 개신교, 청교도, 가톨릭과 같은 세부 종교를 포함하여 그 외 종파까지 모두 포함한다.
미국에 있는 가톨릭계 사립학교들의 과학 수업 비중은 공교육과 비교해서 전체 교과 과정에서 매우 작은 부분을 차지한다. 요즘 들어 많이 변하고 있지만 그래서 사립학교를 다니던 아이들이 고등학교 과정이 되면 공립학교로 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돈 좀 있어야 보낼 수 있는 사립학교인데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부모들이 과학보다 철학, 종교를 우선시 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과학과 종교의 대립.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 그 녀석은 진화론 말고 다른 수업은 모두 듣는다. 심지에 과학에 흥미도 있어 보이고 공부도 곧잘 한다. 생명의 탄생에 있어서의 과학적 설명은 인정하지 않지만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인정한다는 이야기일까?
고등학교 생물 선생님은 인간의 인체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신이 아니고서야 저렇게 절묘하게 설계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고 하셨다. 의사들 중에도 독실한 종교인이 많다.
십삼억 년 전 엄청난 에너지가 우주 폭발을 이루던 순간- 골디락스 컨디션 (Goldilocks condition):우연이 빚은 최적의 환경 - 뜨겁고 습한 지구에 바다가 생기고 작은 조각이 생기더니 점차 복잡한 생물이 되고, 뭍으로 나오고, 바나나도 되고, 원숭이도 되고, 인간도 되었다는 자연 발생설과 존엄한 신이라는 존재가 모든 것을 계획해서 다 만들었다는 이야기 중 어느 것이 더 가능해 보이냐고?
중간중간 증거가 비어 있는 사실의 나열보다 하느님이 암흑에서 순서대로 만물을 창조한 재미난 이야기의 창세기가 되려 더 믿음이 간다.
느낌상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 이야기를 현재 과학계는 정설로 인정한다.
아이들이 묻는다. 그럼 바나나가 억만년이 지나면 원숭이가 될 수 있어요?
바나나가 진화해서 원숭이가 된 것이 아니다. 아주 작은 조각이 우연이 빚은 최적의 환경을 만날 때마다 가지치기를 하는 것이다. 작은 조각이 최적 환경에서 초록을 띄는 가지와 운동성을 가지는 아이로 갈라지듯이.
일부 원시 생물은 우연한 기회 (변이)에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생물이 탄생한다. 그리고 이 생물은 태양을 많이 이용할 수 있는 환경에 다수로 존재하게 되고 그 안에서 우연한 변이에 의해 생긴 다양한 종류가 환경에 대한 적응력에 따라 다수가 되는 방식으로 진화한다. 이와 다른 가지에서 운동성을 가지는 생물들은 또 나름대로 환경에 적응하고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생물로 우연한 조합에 의해 탄생된 생물로 진화한다. 그리고 그 가지들은 이후 일어나는 우연의 법칙에 따라 물에서 살고, 어떤 동물은 육지에 살 수 있는 능력이 장착되고 진화한다. 믿음은 안 가도 현상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고, 보이는 증거로 추론이 가능하고 이해가 된다. 잘 맞아떨어지는 퍼즐조각이란 이야기다. 최근 흥미롭게 본 진화에 관한 영상처럼 과학자들은 지구 전체를 빅뱅으로 돌릴 수 없기 때문에 실제는 그대로 재현할 수 없는 과학적 가설을 대장균을 이용하여 단순화한 실험을 한다. 그래서 나온 결과를 가지고 다른 상황에도 적용하여 추론하는 방식이다. 많은 과학 시험들은 궁금한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상황을 극도로 제약하는 조건에서의 실험을 한다. 그래야 원인과 결과를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으니까. 에이, 대장균에서 진화가 됐다고, 단세포에서 공룡과 인간의 진화됐다는 게 말이 되냐? 그래서 약을 개발하면 쥐에 실험해 보고 점점 고등동물에게 실험해 본다. 마지막 임상실험단계에는 인간 중 자원자를 받는 방식이다.
영상에서 이대헌 과학자는 진화론의 키워드는 필연과 우연이라면서 우리가 만약 빅뱅이 일어나던 시기로 필름을 거꾸로 돌린다면 지금 지구상에 일어난 모든 생물들이 다시 다 그대로 태어날까? 인간이 탄생할까? 아마 그럴 가능성이 적다는 답과 함께 진화는 우연과 필연의 합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우연 앞에서 어느 과학자는 4%의 차이로 침팬지가 되지 않고 되지 않고 인간으로 태어난 기회를 준 대상을 신이라고 명확하게 지칭하여 독실한 종교인이 되기도 하고, 스티븐 호킹처럼 막연한 존재에 감사하기도 한다. 또 어떤 과학자는 운 좋게 인간으로 태어난 일은 감사하기는 해도 확률에 의한 우연일 뿐이라며 무신론자도 된다.
인간의 문화는 비약적으로 발전해서 진화를 선택하고 필연으로 만드는게 가능한 종이다. 우리가 만든 진화가 몇대를 걸쳐 살아남을지는 나중에야 알겠지만. 우리가 위대하고 믿는 기술, 과학으로 인간이란 종은 결국 우주의 역사 속에 필연을 만들어내고 살아남는 종이 될까? 아니면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과학기술의 결과물로 자멸해버린 잠시 존재했던 종이 될까?
과학은 믿음이 아니다.
과학은 현상을 관찰하고, 이유를 찾아내고, 증명하고, 때로 재현하고, 다른 상황에도 적용하여 다른 현상의 이해를 돕도록 하는 사고의 과정이다.
부모라면 누구나 봤을 조그만 점과 같던 한 개이던 수정란이 분할을 거쳐 여러 개의 다세포가 되고, 다세포가 주변 세포의 영향, 엄마 배속 주변 환경과 유전자의 영향으로 각기 다른 기능을 갖게 돼 가는 과정을 초음파 사진을 찍을 때마다 경험한다.
우리가 직접 관찰한 이 생명의 진화 과정이란 개념에서 찰스 다윈을 빼놓을 수 없다.
가르파고스로 여행을 떠났던 다윈은 종의 기원을 통해 수능이고, SAT시험이고 단골로 나오는 핀치새 이야기를 통해 자연 선택설 (natural selection )이라는 진화론을 뒷받침할 혁명적인 퍼즐조각을 세상에 내보였다.
환경에 최적화된 변종들로 인해 생물내 다양한 종 변화가 가능했을거라는 퍼즐.
다윈을 통해 자연계 내의 다양성이 갖는 경쟁력을 알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과거보다 미래를 보고 싶어 한다. 그런데 역사도 모자라서 썩어서 뼈만 남은 이야기를 알아야 할까?
진화론은 과학계뿐 아니라 많은 영역에 영향을 미쳤고 인간의 배아에서 왜 꼬리뼈가 점점 사라지는 데한 설명도 가능하기 시작했다. 스티븐 핑커의 언어 본능이란 책에는 진화론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진화론이 많이 언급되는 분야 중 하나는 언어학이다. 신기하지 않은가? 생물이 아닌 언어에서도 생물학 이론이 통한다고? 언어가 진화하고 소멸한다고? 동굴에서 살던 유인원이 '악'이라고 외쳤을 외마디가 지금의 바벨탑이 된 것처럼 말이다. 진화론이 옛날 공룡 화석이나 찾아다니는 재미없는 학문이라는 선입견을 깬 사람은 우리 몸 이야기( The story of the human body)를 쓴 하버드에서 진화학을 가르치는 데이브 리버먼이다.
서두에 있는 인간의 몸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구절 하나로 나는 책을 끝까지 읽기로 결심했다.
왜 당뇨병 환자가 늘어날까? 왜 소아비만이 늘어날까? 에 대한 시대의 고민을 진화론으로 인간의 몸의 역사를 이해해서 접근하려는 시도가 신선하고 통쾌하다. 책을 읽고 더 걷고 싶어졌다. 책을 읽고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에 가고 싶어졌다. 내가 동물이라는 것, 내 몸의 역사를 아는 것이 지금의 나를 아는데 도움이 된다.
나는 창세기에 나오는 신이 세상을 설계한 순서가 실제 진화론과 묘하게 맞물려 들어가는 것이 더 놀랍다. 5일 차에 새와 물고기를 먼저 만들고 6일 차에 뭍에 사는 동물과 인간을 만들었다는 순서는 조류와 어류가 진화론에서 먼저 발생하고 나중에 육지 동물과 영장류가 나중에 발생했다는 현재 과학계 정설과 일치한다. 빅뱅은 신이 주관했는지 몰라도 종교는 인간이 만들었다. 인간은 글을 쓰는 순간부터 과학 사고를 한 것이 아닐까
예수님 손에 난 못자국을 눈으로 보고, 못자국에 손을 넣어보고 옆구리를 직접 만져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던 토마스에게 보지 않고 믿는 것이 참믿음이라고 하셨다. 보지 않고도 믿어야 하는데 보고도 의심을 해야 한다니. 종교는 의심하면 죄악이지만 과학은 의심하지 않으면 죄악이다.
그래서일까?
설계자의 역할을 우연에 빼앗겼다고 생각해서인지, 믿음 자체에 도전장을 내서인지 다윈의 진화론만큼 토론이 치열하고 미운털이 박힌 과학도 없다. 변하는 자연을 연구하는 과학. 자연계의 어느 것도 영원하지 않다. 믿음을 주지 못하는 과학 때문에 인간은 종교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굳이 믿음의 잣대로 과학을 보고 이해의 잣대로 종교를 볼 필요가 있을까?
우연과 함께 생긴 수많은 별들 중 지구
지구 위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물 중 알려진 가장 고등생물 인간
손바닥 위 일기예보 덕분에 내일 번개 맞아 죽을지 모른다는 걱정에 머리를 조아리지 않아도 되는 지금
나는 오지게 운이 좋다. 감사하다.
과학을 믿어도 되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