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사하게도 선택의 기회가 많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산다.
그리고 나는 별로 감사하지 않게도 비교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부모의 자동차 브랜드만큼이나 자존심이 달린 게 아이들 자전거다.
아이들 자전거도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나처럼 브랜드도 신경 안 쓰고 중고로 사면 한국돈으로 이만 원이면 살 수 있고, 인간관계가 좋으면 공짜로 얻어 탈 수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만약 아이들 자전거로 자존심을 부릴 성치면 돈 백만 원은 일도 아니다.
자전거 이름값에, 자전거에 장식이라도 하나 달면 반년치 차 보험료는 순삭이다.
거기다 유행하는 캐릭터가 들어간 귀염뽀짝한 헬멧, 깔맞춤 무릎 보호대까지 모두 구매하면 가격은 점점 더 주머니 사정과 멀어진다.
더 안전하다는데?
자동차도 아니고 자전거인데 부모가 아이를 위해 그것도 못해줘?
내가 사는 이유가, 돈 버는 이유가 다 너 최고로 키우려고 아니겠니?
내 소중한 새끼 그깟 자전거 때문에 어디 가서 기죽어서 되겠니?
이런 뜨거운 애정으로 카드를 긁는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기가 번 돈을 쓰겠다는데 뭐라고 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런데 정작 문제는 백만 원 쓴 부모 속에서 발생한다.
첫 번째 문제는 백만 원을 질렀는데 애가 별 관심이 없다. 엄청 좋은 거라고 타 보라고, 이게 얼마짜리인 줄 아냐고 타보라고 얘기해 봐도 소용이 없다. 자전거에 원래 별 호기심도 없는데 비싸다고 해도 별로 와닿지도 않는다. 그저 비싼 게 좋은 건가, 백만 원이면 소중한 건가 보다 하는 생각만 들뿐. 그렇게 못 타고 중고시장에 나온 걸 나 같은 사람이 산다.
두 번째 문제는 백만원을 썼으니 이건 더 이상 애 자전거가 아니다. 혹여나 흠집이라도 난 다거나 옆 집 아이와 와서 빌려달라고 하면 좌불안석이다. 아이들이 집 앞에서 타고 놀다 아무 데나 던져 놓고 놀이터 가서 놀고 흙 파고 놀기라도 하다가 자전거를 잊어버리기도 하는 날엔 어떻게 될까.
아이들도 부담감을 느낀다. 그래서 안 타고 싶어 진다.
이렇게 집에는 끝내주는 자전거가 있는데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를 보니 속이 터진다.
2만 원 중고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리는 옆 집 녀석을 보니 복창이 터진다.
네가 너한테 못 해준 게 뭐니?
100만 원짜리는 성에 안 차는 거니?
200만 원짜리면 되겠니?
도대체 얼마면 되겠니?
돈에 묻히면 안 되는 게 자전거 타기다.
어디 자전거뿐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