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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o습o관 Jun 07. 2024

인간 나미래 01

이야기 쪽방에서 만들어 본 소설입니다.

'어라? 뭐야 웨딩드레스 어딨지?

어? 이상하다. 여기 있어야 하는데. 아이 진짜'

잡동사니 상자가 가득 쌓인 창고 안.

간신히 서 있을 수 있는 틈 사이로 비집고 상자 사이로 파고 들어가 본다.

쿰쿰한 먼지 냄새와 오래된 종이 냄새에 코가 얼얼하다.

'찾았다!

상자가 왜 저렇게 다 찢어 진거야. 몰라 진짜 우이씨. 누구야 누가 여기다 치운 거야?'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


'뭐지? 이상하네. 드레스가 왜 바뀌었지? 모야 이 장미무늬는.'

검은 덩굴에 얼기설기 엮인 피색의 빨간 장미가 박힌 치마. 

한복치마라고 하기엔 너무 두껍다. 커튼으로 만든 주름치마라면 모를까.

'몰라 그냥 입어.'

날이 화창하다

연초록의 어린 잔디가 갓 기른 머리를 뽐내는 언덕 내리막길 끝에

둘셋 그룹을 지어 서있는 하객들이 보인다. 

'빨리 가야 하는데...... 

지금 가요. 여기요 여기. 신부 여기 있어요.

미치겠네. 발이 왜 이렇게 안 떨어져.'


벌떡.

눈이 떠졌다.

'간헐적 단식 때문인가.'

탄수화물을 너무 적게 먹은 탓인지 새벽마다 꿈을 꾸는 일이 잦아졌다.

얼마나 손을 꽉 쥐고 달렸는지 아직도 주먹이 얼얼하다.


'어렸을 땐 꿈을 자주 꿨었는데...... 나이 들면 애가 된다더니."



바닥에 던져 놓은 전화기를 찾아 더듬거린다.

3시 49분.

'아싸. 일찍 일어났군.'

삐걱. 끽.

'아유, 이놈의 침대 왜 이렇게 시끄러워.'

둘째는 아직도 세상모르게 자고 있다. 언제 벗어젖혔는지 잠옷은 다 벗어던지고 손바닥만 한 분홍팬티를 입고 잔다. 벽에 딱 붙어서는 두더지 마냥 땅굴 파듯 코를 파묻고는.



새벽 탈출엔 성공 노하우가 있다.

살금살금 나가면 실패다. 

소리는 살금살금이더라도 숨소리가 살금살금이면 잡힌다. 

원래 인간은 간절한 것에 예민한 법이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간절하지 않은 척 저벅저벅 둘째 방을 나선다.

심장은 불수의근이 아니다. 수의근이다. 심장을 움켜잡고 탈출에 성공한다.  



거실에 나오니 밤새도록 훤하게 불이 켜져 있다.

식탁 옆 무화과나무를 보니 안 됐단 생각이 든다.

'넌 왜 거기에 자리를 잡아서 밤에 잠도 못 자니. 지질히 운도 없는 녀석.'



창고에 숨겨 놓은 책 더미와 공책을 짊어지고 식탁 옆 고정석에 앉는다.

한시도 지체 없이 다이소에 산 공책을 편다. 

다이소에서 발견한 몰레스킨과 꼭 닮은 가짜 가죽 표지의 저널에 쓴다. 

기술보다 연장에 공을 들이던 미래는 한 때 피카소가 썼다던 몰레스킨 다이어리에 열광했다. 

'진짜 가죽이라고 하더라도 노트 치고는 너무 비싼 거 아냐?'

'그래도 쓸 때는 즐겁잖아.'

'아무리 종이가 좋아도 종이 아니야? '

'아 그래도 피카소가 썼다는데. 기운을 받아야지. 좋은 덴 이유가 있는 거지. 전통과 유산을 유지하는데 이 정도면 싼 거 아냐? ' 

그렇게 정신분열을 일으킨 몰레스킨 일기장은 쓰레기통 속으로 간지 오래다. 

뭐가 됐든 모으지 않겠다고 이사를 하며 다짐했다.

일기를 모으지 않는 미래에게 가죽 다이어리가 웬 말인가. 




삐뚤삐뚤한 글씨로 갈겨쓴다.

오늘의 확언.

내가 원하는 것은 딱 하나 자유다.



'복잡한 세상을 이기는 단순함의 힘'에서 배운 대로 아침 확언을 실천 중이다.

벌써 13년째다.

'자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아니지. 아니지. 의심하면 안 이루어진다고 했어.

하루 더 쓴다고 달라지나.  

어차피 다른 거 할 것도 없잖아.'

누가 그랬다. 명상은 나를 알아차리는 거라고. 

'미래야, 너 아직도 확신이 없구나.' 



할 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할 게 왜 이렇게 많아?

어제 쓰다만 소설도 써야 하고, 

마케팅 전략 책도 읽어야 하고, 

아차차 오픈강의도 들어야 하는데.

소아과 예약도 해야 하고. 



백 미터 달리기 같은 루틴을 지나 쓰러질 듯 쌓아 놓은 책더미들 속에 반납일이 얼마 남지 않은 책들을 간신히 집어든다. 

숨 한번 들이쉬고, 엉덩이를 들썩여서 의자에 잘 고정한 후 책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어제 끼워 놓은 종이를 잡아 열려는데 


"엄마?!" 

종이가 빠졌다. 

'에잇' 

삐그덕 작은 방이 문이 열리고 손바닥 만한 분홍 팬티를 입고 산발 머리에 가려져 얼굴이 보이지 않는 둘째가 문 지방에 서 있다. 한 손엔 꼬랑내 나는 무지개 멍멍이 인형을 들고, 다른 한 손 엄지는 입속에 넣고 움찍거리 작은 도깨비. 엄마 귀신. 


"나 소파에서 잘래."


'자유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6: 30분

둘째가 거실 소파에 자리를 잡고 누운 사이 미래 남편 과거가 일어났다.

회사사람들은 모두 재택근무를 하는데 굳이 사무실에 나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린 탓에 사무실을 혼자 지킨다.

예전에 동료들과 같이 점심 먹으면 됐지만 혼자 지키는 사무실에 시켜 먹기도 귀찮고, 사 먹으러 나가기도 귀찮다며 도시락을 싸달라고 했다. 

'그냥 나라에서 주는 돈 받아먹으며 살자니까 굳이 일을 하겠다더니만 이젠 또 도시락까지 싸라니 나 원 참.

이게 2035년에 말이 되는 이야기냐.

또 입은 왜 이렇게 고급이야. GMO 안 쓴 거, 항생제 안 먹인 달걀, 소고기로 만든 장조림을 싸라굽쇼?

그게 돈이 얼만데. 

그냥 세일 빵빵하게 하는 GMO 시금치는 이파리도 크고, 달걀하고 소고기는 5분의 1 가격인데 꼭 그걸 먹어야 하는 거니?

진즉에 내가 사라는 종목에 투자했으면 얼마나 좋아. 장조림이 아니라 내가 소를 잡아다 주지.'





6: 35분

첫째가 일어나서 머리를 빗는다. 북북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린다. 팍 빗을 집어 던지듯 서랍에 넣고 퍽 화장실 문을 콱 쳐닫는다.

쿵쿵 쿵쿵 폭탄이 내려온다.

아침마다 첫째는 시위 중이다.

반이 넘는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을 선택해서 학교에 오지 않으니 선생님 수도 줄은 탓에 미래도 10년째 구직 중이다.

큰 녀석은 학교에 간다고 해도 전부 각자 컴퓨터에서 일하고, 영상 보며 배우는 것이니 굳이 가야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친구들 중 일부는 직접 체험하겠다고 세계 여행을 하며 수업을 듣거나 아니면 좋아하는 카페에 모여 수업을 듣는다고 했다.

돈도 없고 엄마 아빠가 자택근무를 못하는 가 난 한  애들만 학교에 온다고 했다.

언제가부터 길거리에 있던 학교 버스 운전기사 구직공고는 찾을 수 없게 됐다.

학교 버스가 자율주행버스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인력난도 해결이 됐고, 길을 못 찾아 해매는 신입 기사들 때문에 지각하는 일도 없어졌다.

하지만 자가 운행을 하는 학교 버스는 1분만 늦어도 가차 없다.

미래가 학교 갈 때는 운전수 아저씨가 멀리서 뛰어오는 미래를 보고 기다려 주기도 하고, 마지막에 남은 학생이면 바로 집 앞에 내려주기도 했었다.

어제도 늦게 일어난 첫째가 신호에 걸린 버스를 쫓아가서 문을 두드렸지만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일이었다.

소용없는 줄 알면서도 큰 녀석은 미래한테 욕먹기 싫어서 기계한테 구걸을 한 모양이다.

사람한테 구걸하는 것보다 더 기분 나쁘다고 했다. 



결국 집으로 돌아온 첫째를 미래가 데려다줬다. 그러게 일찍 준비하지 그랬냐는 잔소리와 함께.

"엄마 제발 집에서 하게 해 줘."

"......"

"나하고 친한 친구들은 아무도 없어."

"......"

"걔네들은 다 요즘 새로 생긴 카페에서 같이 한대. 엄마 말처럼 인간관계가 중요하면 나도 거기로 갈게."

"......"

'싸우지 말자. 말리면 진다.'

어차피 논리적으로  안 가는 게 맞을 수도 있다.

성공한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살라고 개발한 기술 아닌가.



집에서 공부한다고 미래를 얼마나 부려먹으려고 하는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그래도 교육학을 전공한 미래 아닌가.

교육은 많이 배우는 게 다는 아니다.

미래는 포기할 수가 없다.

미래가 어린 시절 학교는 공부를 배우기만 하기 위한 곳은 아니었다.

친구들과 밥도 같이 먹고 수다도 떨 수도 있었다.

만우절엔 선생님을 골탕 먹이려고 교실 책상을 돌려 앉기도 했다.

친한 친구, 안 친한 친구, 좋은 친구, 안 좋은 친구도 만나야 하는 곳이었다.

교생 선생님이 오면 첫사랑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다양한 교습법을 구사하는 선생님들에게 배울 수도 있었다. 

그때는 귓등으로도 안 들었지만 살면서 때로 떠오르는 잔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큰 녀석은 학교는 더 이상 그런 낭만이 있는 곳이 아니라고 했다.  

마약과 우울에 찌든 애들이 모인 감옥일 뿐이라고 했다. 




그나마도 학교에 오는 아이들 숫자가 점점 줄어드는 바람에 지역 교육청에서는 여러 학교의 크기를 줄이거나 합치는 방안을 매년 논의 중이지만 여전히 반대파도 간신히 반을 유지하고 있어 유지 중이다.

그러면 통학시간이 두배로 늘어나게 될 테고 그럼 아이들은 더 학교에 오지 않을 테다.

학교와 함께 학창 시절이 잠들어 가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미래는 투쟁 중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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