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뿐 아니라 외국에 살면 중국 인구의 거대함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얼마 전 큰 아이 학교 파티 사진에 서 있던 15명의 사진 중 5명은 중국인이고 한국인은 1명이었다.
별로 놀랍지도 않게 한국 아이들은 중국 아이들과 금세 가까워진다.
중국, 한국이 뭔지 모르는 유치원 아이들도 그냥 풀어놓으면 생김새가 비슷한 아이들끼리 척 달라붙는다.
그래서 나도 중국 출신 엄마들과 어울릴 일이 많다.
누구는 흔히 같은 문화권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바슷한 듯해도 참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언젠가 유난히도 친해진 엄마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와는 서로 언어를 가르쳐 주며 더 친하게 되었다.
하루는 중국의 공자 이야기가 나왔는데 영어가 서툰 그 친구는 공자를 알아듣는데만 한 이십 분은 걸렸다.
그런데 알아들은 그 친구가 여전히 공자, 맹자, 순자 등의 유명한 문장은 학교에서 쓰이는 유명한 받아쓰기 문장처럼 회자된다고 했다.
친구는 내가 공자를 물어본 것이 신기하다고 했다.
그리고 먼발치 하늘을 잠시 응시했다.
80년대 생으로 알고 있는 젊은 엄마가 분서갱유당한 공자를 그리워하는 것일까?
영어로 공자를 모르던 그녀는 연신 노자를 이야기했다.
개인적인 선호인가 몰라도 공자보다는 노자를 더 치는 것 같기도 했다.
문장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유교 사상에 대한 의미가 있는 문장이라기보다 예시 문장으로 쓰인다는 설명으로 이해했다.
한국학교에서 아이들과 하는 토론 중에 늘 재밌는 토론이 바로 라면 토론이다.
라면은 어느 나라 것이냐는 것이다.
실제로 라면이 일본에서 시작된 걸 모르고 한국 거라고 철떡 같이 믿는 아이들도 부지기수다.
알려줘도 맛도 다르고 인기도 훨씬 많으니 한국이 원조라고 하는 아이들도 있다.
한국학교 선생인 내가 라면은 일본이 처음에 만들었으니 일본 음식이라고 해야 하지 않냐고 하면 아이들은 나를 매국노 보듯 본다.
그런데 한 해는 한 녀석이 그런 말을 한다.
"시작은 일본이었는지 몰라도 요즘 유행하고 세계인들이 좋아하는 라면은 god 라면이죠. 누가 시작했는지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지금 사람들이 좋아하는 라면은 한국이 만든 라면이라는 거죠. "
라고 한다. 매국노가 된 보람이 있다.
원조라고 억지를 부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어차피 명성을 지키지 못하는 원조는 허울만 남게 마련이다. 그래서 불닭라면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니겠나. 그래도 무엇 때문에 우리는 매운 스푸를 넣게 됐는지, 매운 스푸 맛은 또 얼마나 절묘한지 보는 눈은 키워야 하지 않겠나 싶어 생각해 본다.
공자가 인간의 본성을 다스리지 않고는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불가능하는 생각에서 시작된 학문이 유학이라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을 공자가 개발한 것은 아니니 용도 특허 정도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다.
13년간 떠돌며 중국에서 70명의 왕에게 선택받지 못한 공자의 사상인데 옆나라인 조선에서는 유학까지 불사하며 배워가고 그 후 성리학으로 발전시키며 조선의 건국과 이념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조선은 왜 그렇게 유학에서 시작되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연구에 집착하는 성리학에 열광했을까?
지금도 그렇듯 예전에도 새로운 학문, 대국문화, 선진국 이런 것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은 있었겠으나 그뿐이랴. 어찌 보면 인간에 대한 사랑이 깊고 예를 중요시 여긴 우리 민족에게 성리학은 어쩌면 이미 예정된 운명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중국에서 넘어온 유학에 만족할 수가 없었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의 목적은 다스리기 위함이요 다른 목적은 돌보기 위함이니 말이다. 우리는 가족 같은 사이 아니던가. 가족은 돌본다고 하지 다스린다고 하지 않는다.
성리학은 이황과 이이 같은 조선 시대 학자들에 의해 다듬어지며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에 목마른 학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스리기 위한 목적의 유교는 순자에 이르러 법치주의의 꽃을 피우지만 돌보기 위한 조선의 성리학은 정약용을 거치며 실학으로 이어진다. 퇴계 선생이 말한 인간의 선한 마음으로 이뤄진 사단이 중요한 줄 알지만 율곡 선생이 말한 이기도 인간의 일부인데 어찌 인간으로 하여금 이기를 다스리며 사단에 정진하여 이상적인 인간이 되도록 한단 말인가.
공부는 무조건 해야 하는 거라며 벌점주고 체벌해서 학교에 보낼 것인지 공부에 정진하면 생기는 즐거움을 깨우치도록 하고 실리적인 이익의 즐거움도 맛보게 하는 방법으로 할지 중에 순자는 전자를 조선은 후자를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오천 원 권 지폐에서 보는 퇴계 이황 선생은 완전하게 이상적인 도덕에 대한 언행일치를 이루고자 정진한 선비다. 젖이 모자라 죽게 생긴 친손주를 위해 아기를 나은 여노비를 노비의 아기로부터 뺏지 못해 결국 핏줄을 잃어야 했던 이황 선생은 유학의 가치를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것으로 한 단계 정진시켰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미 인간의 고매한 본성에 대한 연구, 이상향이 무엇인지 앎에도 현실에서는 왜 이렇게 어려운지에 대한 연구를 한 학자가 율곡 이이다. 인간의 화내고, 기쁘고, 슬프고, 두렵고, 미워하고, 사랑하고, 욕심 많은 모습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인간의 고매하게 선한 마음 ( 부끄러워 하는 마음,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변화하고 성장하게 된다는 이이의 이기론은 매운맛 스푸가 더해진 색다른 라면처럼 획기적인 학문의 정진이다. 퇴계 선생이 스스로를 반문하고 율곡과의 교류를 청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만의 성리학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금 뇌과학계의 흐름처럼 인간의 가치 결정이나 의식이 행동과 감정의 산물이며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연구들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퇴계가 없었다면 율곡이 없었을 것이고 율곡이 없었다면 실학이 없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사랑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인간을 사상이라는 작은 틀에 욱여넣기 시작하자 계급, 허례허식, 가부장제 같은 부작용을 낳았다.
그 때문인가 언젠가 학교에서 선비에 대해서 조사해 오라고 했더니 어디서 보고 베꼈는지 부정부패에 게으른 이상주의자라는 식으로 해온 조사를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예전 선비 중엔 청렴한 선비, 강직한 선비도 있었는데. 우리가 유학에 대해 갖고 있는 반감이 이 정도인가 싶어 말이다.
글을 쓰며 찾아본 자료 중 가장 인상적인 글은 신동아 블로그에 실린 김광억 서울대 명예교수의 글이다.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 옳다구나 했지만 유학에 대한 기대감은 의문스럽기도 했다.
요즘 들어 유학의 가치를 다시 찾고 그리워하는 것은 인간성 상실 때문임은 맞지 싶다.
고려시대에는 가부장제 아닌 남녀가 평등한 시대였다고 한다. 조선시대를 거치며 유학에 근간을 둔 성리학이 중요한 사상이 된 후 가부장제, 족보를 비롯해 많은 것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퇴계를 비롯한 선비들이 구현하고자 했던 인간애가 아닐까 싶다.
최근 들어 사회학자들이 과학 기술의 발전과 윤리의식 저하로 서구 사회가 급속히 붕괴 중인데 한국 같은 유교문화권 국가들은 높은 수준의 국가 발전에도 비교적 더 천천히 붕괴 현상이 나는 것을 유교문화의 뿌리로 설명한다. 유교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는 생각에는 정면으로 반대되는 분석이다. 유교의 무엇이 나라를 붙들고, 무엇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일까. 최근 올림픽이나 과학계의 여러 가지 사건들을 보면 같은 유교 국가인데도 중국은 한국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정치체계가 달라서인 것은 확실한데 그게 다 일까.
조선시대를 풍미했던 성리학의 시작은 중국의 공자였는지 모르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며 인간이 가지는 깨우침과 자율성이라는 가치를 귀하게 여겼다는 점에서 다르다.
한국을 품기에 그 시절 유학은 너무 작다.
[참고글]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6670838&memberNo=39094895&vType=VERTIC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