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뿌리를 따라 가보자.
미국에서 자란 아이들이 제일 많은 틀리는 한국어 표현이 바로 내 엄마다.
우리 엄마가 아니라.
어쩌다 우리가 되었을까?
1992년 LA 폭동 사건 당시 교포 남성 한분이 옥상에서 총을 들고 있는 사진은 미국에서 퓰리처상을 받을 만큼 화제가 됐다.
나는 강형원 작가가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우리'라는 한국의 정서가 고스란히 묻어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미국인들에게도 그립고도 부러운 정서가 아니었을까.
폭도들이 한인들의 생활 터전인 도시를 부수며 난사를 하고 다닐 때도 미국 경찰들은 제대로 된 진압을 하지 않았다. 미국 주류가 아닌 한인들 동네에서 일어난 일에 안일한 대처였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등장한다. 우리는 우리가 지킨다. 우리를 위해 나를 희생했다기보다 우리가 되기 위해 나도 내 몫을 해야 할 뿐이다. 나는 우리의 일부가 아니라 우리가 곧 나고 내가 곧 우리다. 물론 한국의 예비군 경력이 도움이 됐다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예전 같으면 행주치마에 돌덩이라도 끌고 왔을 게 분명하다.
그 사건을 보도한 뉴스 장면에서 한 미국인 앵커는 한국인들의 우리 대처에 놀란 듯했다. 그들의 반응을 통해 우리에 들어오고 싶어 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우리가 있다면 얼마나 든든하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 죽고 산다.
얼마 전 아들이 만나는 여자친구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투덜대던 친구가 함께 여행을 간다고 했다.
우리 아들 힘들게 한다며 눈에 가시처럼 보더니만 여행을 다니며 정이 들었는지 '걔'에서 '우리 00'이 됐다.
결혼한 사이도 아닌데 남자친구 부모님한테도 싹싹하더란다. 우리가 되는 관문인 관계를 수월하게 통과한 모양이다.
전통적으로 농경문화였던 한국이 관계에 의존하고 관계로 맺어진 우리에 의존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더 이상 농경 사회가 아닌 지금도 우리는 '우리'에 민감하다.
예전에 조지아테크 대학교에 총기 사건이 있을 때도 우리 한국인들, 교포들은 많이 걱정했다.
그렇지만 내가 만난 미국인 친구들 어느 누구도 그때 그 사건을 한국과 연결 짓진 않았다.
되려 우리만 전전긍긍했을 뿐이다.
우리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우리와 나를 지나치게 동일시하게 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김치를 싫어한다고 하면 마치 한국인인 나를 욕한 거처럼 씩씩거리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우리에게 피해를 주지는 말아야겠다는 어렴풋한 생각이 들기도 하니 우리에 민감한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아닌 너희가 생겼을 때다.
우리 동네 아니고 너희 동네
우리 학교 아니고 너희 학교
우리나라 아니고 너희 나라
문제는 항상 너희에 있다.
요즘 들어 우리와 너희 사이 담벼락이 자꾸만 더 높아지는 것이 걱정이지만 원래 우리 담벼락은 낮았다.
가진 것이 없을수록 담벼락이 낮겠지만 그렇다고 없진 않았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지역갈등도 있고, 정치갈등도 있었으니.
그래도 경상도 출신 엄마와 전라도 출신 아빠가 만나서 결혼한 내 친구네 부모님처럼 우리의 담벼락을 낮출 방법이 없진 않다. 너희도 우리처럼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도구가 있다.
바로 정이다.
사람, 사람들,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우린 정말 아끼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