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본 최재천 교수님 영상에서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을 비교한 영상을 보고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온갖 나라 인종들이 타는 통근 버스에서 교수님의 관찰 결과를 공유하면
중국인은 버스에 오르자마다 큰 소리로 저 뒤에 앉은 중국친구 이름을 부른다고 한다. 멀찌감치 앉아서도 버스를 가로지르며 대화를 주고 받는다고 한다.
일본인은 소리도 없이 조심조심 일본인 친구 옆에 다가가 앉아서는 또 무슨 얘기를 하나 들리지 않게 조그맣게 소곤소곤 속삭인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인은 버스를 쓱 둘러보고는 한국인을 발견하면 한국인이 아닌 척하며 멀찌감치 떨어져 앉는다고 한다.
관찰이 너무 정확해서 웃음이 났다.
그런데 얼마 전 비슷한 내용의 영상이 소피반이라는 영어를 가르치는 미국 교표의 채널에 올라왔다.
중학생이 딸아이와 나이아가라로 가족 여행을 갔는데 한국인들이 지나가면 갑자기 말하던 걸 멈추거나 한국인이 아닌 척하며 지나가더라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길에 만나면 모르는 사람과 눈인사를 하는데 왜 한국인들은 외국에서 만나면 반가워하지 않는다고 하며 이유를 댓글에 달아 달라고 했다.
두 영상을 보며 내가 그토록 웃음이 나는 이유는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서다.
우리 동네 도서관에 가면 대부분의 중국인과 소수의 한국인을 볼 수 있다.
예전엔 옷이나 외모로 구분되었지만 요즘은 어지간해서 구분하기 어렵다.
구분하는 방법은 여지없이 교수님과 여학생이 말했듯 눈을 피하는지 아닌지, 나한테 다가오는지 다가오지 않는지이다. 자꾸만 나하고 눈을 맞추려고 하고 다가오려고 하면 중국인이다.
언젠가 하루는 도서관에 아이 스토리 타임이 있어서 갔다.
언뜻 봐도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여자아이 둘을 데리고 온 엄마가 보였다.
나도 봤지만 먼저 눈인사를 하거나 다가가 인사하지 않았고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총싸움 전 적당한 거리를 두며 빙글빙글 보는 카우보이처럼 우리는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도서관을 빙글빙글 돌았다.
굳이 다가가지 않는 이유는 인사치레부터 시작해서 신상조사까지가 귀찮은 마음도 있다.
섣불리 가까워졌다가 서로 맞지 않으면 난처할까 염려스러운 마음도 있다.
덥석 반가워하면 반가워한 데로 드릴 게 없어 부담스러운 마음도 있다.
더 희한한 건 외면당하면 외면당한 대로 서운한 마음도 있다.
그러니 눈을 안 마주치려고 한다. 봤지만 보지 않았고 들었지만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사건이 터졌다.
스토리 타임 말미에 간단한 만들기 시간이 있었는데 우리 아이한테만 재료가 하나 모자랐다.
책 상 사이를 돌아다니는 사서를 붙잡아 얘기하려 했지만 눈길을 주지 않아 포기하려는 바로 그때
그분이 사서를 불러 세웠다.
"저분 뭐가 필요한 거 같은데요."
그때 우리는 아주 짧게 눈빛을 교환했다.
나는 살며시 목례를 했고 야구모자 아래로 언뜻 보이는 그녀는 무표정했다.
그 뒤로도 여전히 먼저 덥석 가서 말을 붙이고 다가가는 배포 큰 주제는 못 되었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반가워 할 수 없는 사정이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 사정이 성격일지 조심성일지, 귀찮음일지 모를 일이다.
댓글에 누가 달아 놓았듯 익명성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이가라에서 만약 내가 넘어지며 '아이고'라고 소리 지른다면
통근 버스에 자리가 없거나 다른 나라 사람들이 나에게 옆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나를 위해 손을 내민 사람은 한국인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차갑고 싶지만 식지 않는 마음
모른 체하고 싶지만 모른 척이 안 되는 마음
투표는 어디 가서 하는지 모를지언정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고 하니
집에 있는 금붙이를 들고나가게 되는 마음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우리는 언제부터 그런 마음이 평균인 문화를 가지게 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