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책).습.관.08
문제의 평론가

책.습.관. 라디오

by 책o습o관

안녕하세요. 우리들의 책.습.관 강주현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제가 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였어요. 고1 영어 수업에 들어갔더니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고 있네요. 한 문제아 아이가 책상에 책을 옆으로 툭 던지며 선생님께 그래요.

" 도대체 우리가 왜 얼뜨기 같은 사춘기 애들의 유치한 사랑 이야기를 왜 읽어야 해요? 누가 저렇게 연애해요!"

문제아가 맞아요. 문제를 제기하는 아이니까요. 성적에 목매거나 점수만 잘 받고 싶은 아이들은 이런 삐딱한 시선으로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볼 수가 없죠.

그러더니 문제의 평론가 양반이 한 술 더 떠서

"심지어 자살을 했다고요. 교육적이지도 않잖아요."

교실에서 가장 가벼운 책가방을 든 녀석이 그런 소리를 해요.

대 셰익스피어의 영어가 도통 재미가 없어 역시 외국인이 넘을 수 없는 영어실력인가 해서 애꿎은 눈만 부릅뜨며 이해한 척하고 능청 떨며 앉아 있는데 이 녀석이

"이게 영어가 맞아요? 뭔 소린지 재미도 없고! "

그때의 안도감이란


공부하기 싫어 부리는 수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기특한 녀석 덕분에 문학이 뭘까 생각했어요.

녀석은 분명 연애를 하고 있을 거예요.

드라마를 줄곧 끼고 살고, 책 방의 온갖 로맨스 소설을 독파하던 제가 남들 사랑 이야기를 딱 끊은 건 제가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였죠. 세상에 지가 하는 연애가 제일 재미있는데 남들 연애 얘기가 뭐가 그리 궁금하겠어요.


제가 아는 소설이라고는 고등학교 때 수업시간에 배운 대로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라는 정도입니다. 그럼 거짓부렁인가 생각해 봐요. 거짓말이라고 하기엔 소설가들이 그려내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인간사가 저의 단호한 평가를 주저하게 합니다.

상상력이 없는 제가 주변을 탈탈 털며 글을 쓰다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허구의 인물 뒤에 숨어볼까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소설의 탄생이 아니었을까 수준 낮은 상상도 해봅니다.

세대를 관통하는 대서사들, 때로 답답한 현실이 못마땅해서 등장인물을 앞 세워 비꼬아 그려내는 이야기들, 인간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어 몰 수 있는 가장 모퉁이까지 몰아붙이는 이야기들, 가보지 못한 시대, 장소 속으로 마음껏 날아가는 이야기도 소설에서만 가능합니다. 가끔은 우리 모두가 그리워하는 그런 모습을 영원히 박제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있고요.


그런데 현실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지 않나요? 때로 소설 속 유토피아가 주는 허무함 때문에, 굳이 소설까지 읽어 더하고 싶지 않은 인생의 고단함에 저는 소설을 가뭄에 콩 나듯 읽습니다.

아마도 제가 아닌 남들 사는 이야기가 별로 안 궁금한가 봐요.

제 할 말만 하고 듣는데 인색한 제 성격이 책을 고를 때도 고스란히 드러나지요.


영어 좀 잘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니 큰꿀이가 그래요.

"엄마가 맨날 읽는 그런 재미없는 비소설 말고 영어로 된 소설을 읽어. "

왜냐고 물으니 이 녀석이 제법 그럴싸한 대답을 합니다.

"소설을 읽어야 삶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표현이 나오지.

실제론 아무도 그렇게 말 안 해. 그런 단어도 안 쓰고."

그러네요. 삶이 묻어나는 자연스럽고 생생한 표현. 그건 소설뿐이겠네요.


그래서 해리포터라도 읽어볼까 뒤적이다가 에라이 포기합니다.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이야기도 간신히 읽는데 마법사 얘기라뇨.


셰익스피어가 쓴 인물들과 인간의 대서사가 세대를 거듭해 수없이 재창조되고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상상력이 글의 힘으로 시간과 세상을 관통했다는 점에 새삼 놀랍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대문호 셰익스피어도 세월 앞에는 무색하네요.

문제아 말만 따라 글이 구식이라쟎아요.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구식이 되는 마당에 영원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작가들에겐 끝없는 일거리라는 희망이겠죠. 말이 전해지면서 와전이 되는 것처럼 이야기도 다른 작가들에 의해 재색, 삼색 입혀집니다. 처음 생각해 낸 바로 그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작가의 펜 끝을 통해 직접 듣고 싶어져 굳이 구닥다리 영어로 쓰인 고전을 찾아가며 읽게 되나 봅니다. 벌어지는 세월 탓에 술술 익히지도 않는데 꾸역꾸역 참아가며 읽어 삼켰으니 고전 좀 읽었다고 뻐기고 싶어 질만도 합니다. 일면식은 없어도 글면식은 있다고 줄도 대보고 싶어 집니다.


그 녀석은 무엇이 되었을까요? 사랑 하나는 끝내주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의 책.습.관은 어땠나요?

습관 삼아 돌아올게요.

우리들의 책.습.관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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