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책). 습. 관. 23 타임머신

책.습.관. 라디오

by 책o습o관

안녕하세요. 우리들의 책.습.관. 강주현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1년을 째려보던 김익한 교수님의 '거인의 노트'를 드디어 읽었습니다.

책이 온 다음날 새벽 앉은자리에서 다 읽을 만큼 술술 읽히는 책이었어요.

기간 별로 다양한 기록의 방법을 자세하게 배울 수도 있고, 작가의 실제 노트를 볼 수도 있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영상에서 보는 작가님은 빈틈이 없고 철두철미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작가가 그린 노트 속 그림을 보니 아기자기하고 재미난 분이시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합니다.

물론 유튜브 채널도 가지고 계신 저자 김익한 교수님 영상을 통해 배운 CSF(critical successful factor)가 왜 필요한지 같은 이야기들도 있었습니다.

제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를 다시 확인합니다.

영상이 올라오는 시간에 맞춰 이야기보따리를 살금살금 풀어내는 방식보다

옛다~ 여기 있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하고 주머니 째 내주는 후한 인심이 책처럼 느껴지거든요.


기록의 시작은 까먹지 않기 위해서였어요. 그래서 일일이 그날 해야 할 일을 나열합니다. 하고 나서 하는 죽 긋는 재미도 있습니다. 열심히 산 거 같은 느낌에 취하기 위해 일일이 사소한 일도 적을 수 있습니다.

같은 곳에 매일 할 일을 쓰다 보면 비슷한 일이 보이고 패턴이 보입니다. 그러면 슬슬 어떻게 하면 좀 덜 해볼까 싶은 게으름이 발동합니다. 꼭 매일 해야 하나 싶은 거죠. 어떻게 야무지게 모아서 할까 싶으면 주간 계획이 필요하게 되고 주간 계획을 쓰다 보면 월간 계획이 필요하게 되고 월간 계획을 쓰다 보면 연간 계획이 필요하게 됩니다. 조금이라도 게으르게 살기 위해 미래에 게으를 계획까지 하게 됩니다. 그래서 내일 일도 궁금하고, 일주일 뒤도 궁금하고, 한 달 뒤도 궁금하고, 1년 뒤도 궁금합니다.

이렇게 미래에 대해 계획을 세우면 계획을 가지고 요리하는 것처럼 효율적일 수도, 계획된 게으름을 부릴 수도 있다는 걸 체험한 저는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운이 좋아 자투리 시간이 났을 때 사용해야 우선순위가 정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기록하다 보면 언젠간 진정한 의미의 프리랜서, 시간을 만들어 내는 창조자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제가 죽고 못 사는 게 하나 있는데 그게 뭔지 아세요?

청바지입니다.

저도 왜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상우의 그녀를 만나기 백 미터 전 노래 때문인지, 대중매체의 청바지 이미지에 세뇌되어서인지 몰라도 전 청바지가 좋습니다.

청바지를 생각할 때마다 이 멋진 걸 누가 만들었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제 기준으로 멋지다는 말이 딱 맞아요.

실용적이면서 화려하고.

질기면서도 섬세하고.

단순한 거 같으면서도 복잡 다양하고.

오래된 거 같으면서도 늘 젊은 느낌.

이런 청바지라는 걸 누군가 만들었다는 게 짜릿합니다.

나였으면 참 좋았을 텐데 질투도 납니다.

청바지를 처음 만든 건 리바이스지만 지금의 제가 환장하는 청바지를 만든 건 리바이스 혼자는 아닙니다.

금 덩어리 찾겠다고 황량한 모래 바람을 마다하지 않던 서부 개척자들도 있고, 반항아 이미지를 심은 제임스 딘도 있고, 청순한 이미지를 심은 가수 이상우도 있고, 중성적인 매력의 케이트 모스도 있고, 무심함을 가장한 개성 강한 스티브 잡스도 있고, 그들을 찍은 수많은 사진작가, 끊임없이 재해석한 청바지를 만든 사람들, 청바지를 찬양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 역사, 이야기가 있어 제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청바지가 완성됩니다.

그뿐인가요. 저의 개인적인 기억들도 더해집니다. 중2 때 엄마를 조르고 졸라 샀던 물 빠진 메이커 청바지, 발에 질질 끌리는 미팅 교복이던 통이 큰 청바지, 문어와 겨울 바다 보러 갈 때 입었던 멜빵청바지, 애 낳고 다리 하나도 안 들어가서 나를 눈물짓게 했던 청바지.


비록 기억되는 것은 영웅 한 사람일 수 있지만 사람들이 없으면 영웅이 바꿀 세상이, 역사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역사,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남겨 놓는 기록이란 것을 평생 연구한 학자의 저서가 진솔하게 다가옵니다. 난중일기가 생각납니다. 하멜표류기도 생각납니다.

어쩌다 한국을 떠나 살게 되어 이제는 이방인의 눈으로 한국을 보게 되고

미국에서 살아도 여전히 이방인의 시선을 벗어날 수 없는 저는 이제 하멜이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제가 사는 미국과 전혀 상관없는 미국 어딘가에 총기 사고 기사가 한국에 보도되면 친정에서 미국인들은 모두 총 맞아 죽는 거 아닌가 걱정하는 전화가 옵니다. 수많은 미국 관련 기사 소식 중 총기 사고를 골라 보도하는 기자의 편집 능력과 미국 사는 딸 걱정인 부모님의 정보 편향이 나은 결과입니다. 정보 수집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선택과 편집의 위력을 꼬집은 김정운 교수의 에디톨로지의 날카로움은 역사에서도 통합니다.

이제는 많이 찾은 기사, 관심 있는 기사로 신문을 보게 되니 매일의 기록인 종이 신문 헤드라인이 보여주는 선택과 편집의 부재도 크게 느껴집니다.


'기록이 없는 나라'라는 기사를 계기로 정부의 기록 혁신 작업에 참여했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습니다. 나라의 부름을 받아 기록의 임무를 수행하는 저자를 생각하니 조선왕조실록이 생각납니다. 사관의 소명과 권력의 의도 사이를 상상해 봅니다. 전대 왕의 기록에서 후대에 배움을 전하고자 했던 조선왕조실록처럼 개인의 삶도 기록으로부터 깨치면 더 나은 미래를 이룰 수 있다고 믿어 대중교육을 시작한 작가의 책이 바로 에디톨로지를 실천한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누가 역사를 지나간 것의 기록이라만 할 수 있을까요.


저자의 책 덕분에 필사적으로 읽기를 거부하고 태정태세나 목 터지게 외우던 제가 중고생 필독서인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을 보물이 없나 기웃거립니다. 책이 책의 꼬리를 무니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습니다. 500년 조선왕조실록이 소개하는 책 꼬리는 얼마나 길는지. 눈 감는 날까지 할 일 하나는 제대로 찾은 거 같습니다.



여러분의 책.습.관. 은 어땠어요?

습관 삼아 돌아올게요.

우리들의 책.습.관. 이었습니다.



https://podcasters.spotify.com/pod/show/juhyun0528/episodes/23-e2fnmvb



https://youtu.be/j93oquDEw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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