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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다캣 Jun 02. 2024

책 속 한 문장 - 3

에세이『귀를 기울여 나를 듣는다』


『귀를 기울여 나를 듣는다』는 누군가에게 조곤조곤 대화하는 것 같은 그런 에세이는 아닙니다. 그저 누군가의 ‘이야기’죠. 이야기는 명상 수업을 따라가지만 명상 수업은 이야기를 하기 위한 눈속임 같은 것으로 딱히 명상 수업이 아니어도 상관없었어요.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더하기는 궁색해서 대신 요가에서 정의한 고통에 대해 덧붙여 봅니다. 


고통이란 갈망과 혐오를 오가는 것이라고 한다. 무언가 간절하게 원했다가 가질 수 없어서 좌절하고 그로 인해 혐오를 느끼고 다시 또 가지려고 발버둥 치다가 눈앞에서 놓쳐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고통이었다.


연재 6화에서 언급했듯 책에 쓴 고통에 대한 정의는 명상 수업 시간에 접한 것입니다. 이전에도 고통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몰랐던 건 아니었지만, 이렇듯 명료한 문장이 좀더 크게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쇠사슬로 묶인 원숭이 옆에 바나나가 놓여 있습니다. 원숭이는 바나나 냄새를 맡습니다. 원숭이의 마음이 즉시 반응합니다. 원숭이의 기억 속에서 바나나는 맛있는 음식이었습니다. 원숭이는 자신이 바나나를 몹시 좋아한다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이내 바나나를 먹겠다고 결심하죠. 그렇지만 바나나를 잡기에는 쇠사슬 줄이 충분히 길지 않습니다. 원숭이는 있는 힘을 다해 쇠사슬을 힘껏 당겨보지만 바나나는 아슬아슬하게 손에 닿지 않죠. 원숭이는 계속 몸부림칩니다. 쇠사슬에 묶인 팔다리에서 피가 흐르지만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조금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조금만 더! 하면서 애를 쓰지만 애초에 바나나는 원숭이의 손에 닿지 않는 거리에 있죠. 닿지 않는 바나나를 잡기 위해 원숭이는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고통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요가에서는 수행과 절제를 통해 고통에서 벗어나라고 말하지만, 책에서는 다른 결론으로 고통을 말합니다. 일단 글을 쓴 제가 수행과 절제를 통해 고통에서 벗어난 상태라고 말하긴 어려우니까요. 물론 언젠가 그럴 수 있길 바라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습니다.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따르면 우리의 욕망은 유전자에 의한 본능입니다. 그렇기에 굳이 욕망을 다스려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먹고 성장하고 짝을 찾고 번성하고 죽는 것이 유전자가 지시한 우리의 의무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마지막 한 가지, 죽음만은 예외입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본능적인 욕망을 느끼지 않아요. 유전자에 의해 죽음이 미리 설계된 존재인데도 말이죠. 이 지점에서 유전자에 의한 ‘본능적인 욕망’을 신뢰하고 따라가기 어려워지는 것 같네요. 요가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냥 바나나를 포기하는 것도 길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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