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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다캣 May 31. 2024

섬의 여자들

에세이『귀를 기울여 나를 듣는다』


상아는 자기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래서 더는 요가원에 나올 수 없다고 했다. 록미가 말한 것처럼 오빠에게 부탁하지 않고 직접 여행경비를 벌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해서라도 반드시 부다페스트로 갈 것이며 오빠는 별로 좋아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자신을 말릴 순 없을 거라고 했다. 그녀는 할 수 있다고 스스로 다짐하듯 몇 번이나 되풀이 말했다. 겪어 보니까 편의점 일도 생각보다 꽤 괜찮다고 했다. 집에서 자전거로 십오 분밖에 걸리지 않는 편의점은 손님도 별로 없어서 그저 노닥거리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했다. 편의점 사장이 자신에게 호감과 총애를 숨기지 않는다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나는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섬에는 남편을 따라 들어온 도시 여자들이 적지 않았다. 돈을 번 섬사람들은 자녀를 육지로 보냈다. 그중 몇몇은 안정적인 직업을 얻어 도시에 정착하지만, 대개 학업과 사회생활을 마치고 연어처럼 섬으로 되돌아왔다. 도시의 삶은 팍팍했고 그들의 고향은 관광 개발로 돈을 벌고 있었다. 


섬에서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열심히 일했다. 시부모를 모시면서 살림과 육아를 도맡아야 하는 건 당연했고 돈도 벌어야 했다. 재산이 많든 적든 여자가 집안 살림만 하면 ‘놀고 있다’고 여겼다. 시간을 쪼개 남의 농사일을 해서 품삯을 받거나 아예 남는 땅에 직접 농사를 지었다. 이런저런 지역 행사에서 시간제 일당을 받기도 했다. 


섬에는 소일거리가 없었다. 상아처럼 이웃이 없는 산골에 독채를 짓고 사는 여자들은 얘기를 나눌 사람조차 없었다. 도시에서 온 여자들은 섬에서의 삶을 견디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했다. 상아 역시 다르지 않았다. 다소 정제되지 않은 방식이었지만, 그녀 나름대로 섬에 정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엘라와 록미를 비롯해 섬의 여자들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토요일 오전 7시, 서울로 출발하는 고속버스 안은 텅 비다시피 했다. 시외버스터미널 좁은 부스에서 표를 끊어주는 불친절한 중년 남자가 출근하기 전이었다. 미리 받아놓은 휴대전화 QR코드로 검표하고 버스에 오르면 아무 좌석이나 골라 앉아도 상관없었다. 버스는 연륙교를 건너 산줄기와 들판과 촌락이 비슷한 풍경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달렸다. 섬에서 서울까지는 세 시간이 소요되었다. 


주말 특강은 두 시간 동안 계속되는 하타 수업이나 아쉬탕가 프라이머리 수업이었다. 요가실 바닥에 촘촘하게 요가 매트가 깔렸고 수강생들은 서로의 숨을 부대끼며 우르드바다누라사나, 드롭백앤컴업, 시르샤사나를 반복했다. 동작마다 열 호흡이상 유지하는 수리야 나마스카라가 좌우 다섯 사이클이었다. 진도를 따라가기 어려웠던 나는 요가실 구석에 앉아 중력을 간단하게 무시하는 젊은 요가 강사들을 지켜보곤 했다.


다시 섬으로 돌아갈 때면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시간이 지칠 정도로 남아 커피숍에서 특강 시퀀스를 정리하거나 분철해서 가지고 다니는 책을 꺼내 읽었다. 『요가 아나토미』, 『꾼달리니 딴뜨라』, 『아쉬탕가 요가의 정석』 그리고 아헹가의 『요가 디피카』 같은 책이었다.


아헹가와 파타비 조이스는 현대 요가에 있어서 중요한 요가 스승이다.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현대 요가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크리슈나 마차리야 밑에서 요가를 배웠다. 아헹가는 크리슈나 마차리야의 독려로 서구에 요가를 전파하기 시작했고 아헹가 요가의 창시자가 되었다. 파타비 조이스는 아쉬탕가 빈야사 요가를 창시했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요가 수련이 육체가 아닌 마음에 있음을 강조했다. 


아헹가는 여러 저서를 통해 요가를 하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그는 환생하지 않는 향유자와 분노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순수한 삶을 영위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요가를 하는 사람은 지나간 시간을 잊고 내일의 걱정에 얽매이지 않고 오롯한 지금에 머문다. 나는 『요가디피카』 서문을 외우고 되뇌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지금뿐이다. 과거는 이미 존재하지 않으며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아헹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와 닿지 않았다. 이 순간이란 언제를 말하는 것이고 진짜 나의 삶이란 또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과거와 현재는 공존할 수 없다. 광화문에서 보냈던 시간, 창밖 너머 바라보던 거리 풍경, 인왕산의 낮은 봉우리와 서울경찰청 건물 앞을 지나다니던 사람들, 채워지지 않는 빈곤함을 위로했던 꿈과 계획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나의 지금은 과거의 덧없는 희망과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 사이에 놓인 어리석은 철창이었다.




오늘은 책에 나오는 하지 말아야 할 것들과 해야 할 것들, 야마와 니야마에 대해서 글을 올릴까 하다가 그냥 본문을 올렸습니다. 딱딱한 내용은 일요일로 미루고 오늘은 책을 읽으면서 보내려고 합니다. 좋은 주말 저녁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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