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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Feb 16. 2023

목표로 가는 길

논리모형접근(Logical Framework)(상) 배경과 역사

2021년 9월부터 매달 한 번씩 게스트로 출연하고 있는 국제개발협력에서 제일 재밌는 팟캐스트 <방구석개발협력>의 2023년 2월 1일 방송분(128화), <월간바리: 활동가의 도구들1>에서 흔히 로그프레임(Logframe) 혹은 PDM(Project Design Matrix)로 많이 알려져 있고 활용되는 논리모형접근(Logical Framework) 이야기를 나눴다. 


로그프레임의 기본 구조와 논리 순서. 출처: Tools4Dev


<방구석 개발협력을 만날 수 있는 곳>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bangguseok.dc/

팟빵: https://podbbang.page.link/gXGLxw3aqsi5yjQt8

애플팟캐스트: https://podcasts.apple.com/us/podcast/%EB%B0%A9%EA%B5%AC%EC%84%9D-%EA%B0%9C%EB%B0%9C%ED%98%91%EB%A0%A5/id1528150644

네이버 오디오클립: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5421

(아래 본문 내용은 방구석개발협력 128화 <월간바리: 활동가의 도구들1>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국제개발협력 사업 관리 전반에 널리 활용되는 Logical Framework는 '논리모형'으로 주로 번역하고, 가끔은 산출물인 PDM(Project Design Matrix)으로 더 자주 불리는 것 같기도 하다. 


<방구석개발협력>에서는 활동가의 '도구들' 시리즈의 첫 번째 '도구'로 로그프레임(논리모형접근)을 소개하긴 했지만, 논리모형은 목표를 중심으로 사업을 기획하고 운영한다거나 활동과 결과들의 논리적 연관성을 가정한다는 측면에서는 접근법에 가깝고, 이 접근법을 요약된 양식으로 만든 Logical Framework Matrix 혹은 PDM은 개발협력 사업의 목적과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활동을 논리적으로 구성하는 기획의 도구, 사업을 둘러싼 여러 이해당사자들이 함께 보며 논의할 수 있는 소통의 도구, 그리고 사업이 계획한 대로 흘러가는지 혹은 처음 가정했던 활동에서 결과로 이어지는 논리적 구성이 사업의 진척도와 새로운 정보를 반영한 뒤에도 여전히 유효한지를 비교하며 검토할 수 있는 도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로그프레임은 한국 국제개발은 물론이고 여러 국제기구에서도 여전히 활용하고 있는 접근법으로, 이미 참고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많다. 아래에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해보았다. 


Tools4Dev, "Logical framework (logframe) template": https://tools4dev.org/resources/logical-framework-logframe-template/

지구촌나눔운동, "국제개발협력 CSO 실무자를 위한 평가 안내서": https://www.gcs.or.kr/file/16/f359f677623ed0b0885ac2f91aab4e72de1ae0b128d0eac9eba23149fcae0e7b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한국국제협력단 PDM 가이드라인": https://lib.koica.go.kr/search/detail/CATTOT000000041634

Guardian, "How to write a logframe: a beginner’s guide": https://www.theguardian.com/global-development-professionals-network/2015/aug/17/how-to-write-a-logframe-a-beginners-guide

The World Bank, "The logframe handbook : a logical framework approach to project cycle management": https://documents.worldbank.org/en/publication/documents-reports/documentdetail/783001468134383368/the-logframe-handbook-a-logical-framework-approach-to-project-cycle-management


로그프레임의 구성이나 작성법, 활용법에 대한 자료는 위에 소개된 자료들처럼 이미 정리가 잘 되어있고, 만약 국제개발협력 현업에 있다면 교육 기회도 잦고, 유튜브에 "국제개발협력 PDM"을 검색하면 나오는 것들도 있어서 활용에 대한 부분보다는 로그프레임이 무엇이고,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고, 어떤 배경에서 도입되고 확산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로그프레임과의 만남


해외사업 기획과 운영, 평가를 주로 하는 해외사업소와 본부 해외사업팀에서 활동했던 내 업무의 상당 부분은 논리모형접근과 관련되어 있었다. 가끔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지금도 다양한 파트너와 PDM을 작성하거나, PDM을 기준으로 사업에 대해 논의하고 모니터링한다. 국제개발협력에 논리모형접근법이 유일한 접근법은 아니지만, 주류라고 할 만큼 널리 쓰고 있다. 


내가 PDM을 처음 본건 단기 봉사 이후 국제개발협력 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2012년인데, 모 한국 NGO 탄자니아 지부의 도시 빈곤 여성 직업교육 사업의 인턴으로 일할 때다. 당시 사업을 총괄하던 매니저는 D라는 탄자니아 분이셨는데, 내 아버지와 동갑이셨던 D매니저님은 오래전부터 북미나 유럽, 그리고 국제기구가 지원하는 각종 개발사업에 참여했던 분이라 제안서나 보고서, 공문 같은 사업 관련 문서 작성을 정말 노련하게 잘했다. 그때 그분이 자신이 예전에 다른 지역에서 했던 사업 문서라며 농촌 관개시설 개발 사업의 PDM을 보여줬는데, 보고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활동하던 사업은 로그프레임을 활용하지 않던 사업이라 그 이후론 딱히 로그프레임을 해볼 일이 없다가, 2016년 말, 다른 NGO의 르완다 농촌개발 사업의 현지 담당자로 파견 가면서 본격적으로 로그프레임을 내 손으로 다루게 되었다. 처음 로그프레임을 활용해 PDM을 작성했을 때, 뿌듯한 기분이, 내가 마침내 직업 국제개발협력 활동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도 여러 사업의 기획에 참여하며 PDM을 작성하곤 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다른 공익분야나 시민사회에서도 로그프레임을 쓰는 줄 알고 있다가,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제안할 사업 제안서를 쓰면서 '아 다른 분야에서는 로그프레임을 쓰지 않는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의열매가 제시하는 사업 제안서는 국제개발협력에서 제안서나 로그프레임하면 흔히 떠올리는 활동-산출물-목적-목표와 큰 틀에서 구조는 비슷하지만 표현이 산출 목표와 성과목표, 그리고 기대효과라는 식으로 되어있었다. 


사회복지재단인 사랑의 열매에서 PDM을 활용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논리모형이 처음부터 해외 개발협력 사업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개발되어 도입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1960년대 말, 미국 국제개발처(U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USAID))가 해외 사업의 사업 평가와 조사 체계에 대한 점검을 외부 컨설팅 업체에 의뢰했고, 그 점검 결과를 바탕으로 역시 외부 컨설팅 업체인 Practical Concepts Inc가 로그프레임을 개발해 납품했다. 이후 다른 많은 공여국 원조 기구와 세계은행(1997년 도입) 같은 국제기구, 그리고 NGO들이 이 접근법을 채택하고, 일부는 변형해서 활용하면서 로그프레임이 국제개발협력 사업 기획과 관리에서의 공용어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로그프레임의 목적


현재 한국의 정부 무상 원조 담당 기구인 코이카(KOICA)에서, 그리고 대부분 기관에서 활용하는 PDM은 가로 4칸, 세로 4칸, 총 16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아래 그림 참조), 이 형태는 1971년 로그프레임이 처음 USAID에 적용될 때부터 이어진 아주 전통적인 형태다. 

코이카 ODA교육원 <국제개발협력사업 기획조사>에 제시된 PDM 양식과 내용
1972년 Practical Concepts Inc가 만든 로그프레임 교안에 나오는 PDM 예시


이렇게 16칸으로 구성된 로그프레임은 원래 사업의 모든 내용과 목표를 A4 한 페이지, 많으면 최대 두 페이지까지, 16칸의 표에 다 담을 수 있도록 사업 내용을 체계적으로 단순화해서 정리하려고 만들어진 도구이다. 이렇게 요약된 형식의 사업 기술 도구는 크게 세 가지 필요가 있어서 개발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사업 기획과 평가를 체계적으로 연결하려는 목적이다. PDM에 사업의 주요 내용이 명시되어 있고 이것을 기준으로 사업을 수행하기 때문에, 사업이 승인될 당시의 목적이 사업 기간이 지날수록 어떻게 수행되고 어떤 변화를 만드는지 볼 수 있다. 


둘째는 그전까지는 지원의 전달, 로그프레임 용어로 말하자면 산출물(output) 중심의 성과관리를 했다면, 산출물이 어떤 변화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는 로그프레임을 통해 성과관리의 범위를 진짜 변화와 영향까지 확장한다는 의미가 있다. 


마지막으로 사업 평가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평가의 목적을 ‘누구를 탓할 것인가'에서 ‘미래를 위한 사업을 하는데, 현재 우리가 가진 증거를 봤을 때 가장 현실적인 계획은 무엇인가'로 바꾸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평가는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 피드백을 위한 중요한 자료가 된다. 


지금 시점에서 보았을 때, 로그프레임의 도입을 통해 이런 목표들이 얼마나 달성되었을까? 여러 생각이 드는 질문이다.


레온 J. 로젠버그와 로렌스 D. 포스너, 로그프레임의 아버지


국제개발협력 맥락에서 로그프레임은 만든 사람이 명확하다는 점이 흥미롭다. 로그프레임은 Fry consultants inc.라는 회사의 레온 로젠버그(Leon J. Rosenberg)라는 사람이 이끌던 컨설팅 팀의 사업 평가와 사업조사보고체계(Project Evaluation and the Project Appraisal Reporting System, 1970)라는 용역 보고서에서 개념이 제시되었고, 나중에 그가 세운 Practical Concept Inc.라는 컨설팅 회사에서 로렌스 포스너(Lawrence D. Posner)라는 또 다른 컨설턴트와 함께 실무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레온 로젠버그가 로그프레임을 완전히 발명한 것을 아닐 것이다. SIDA에서 발간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로그프레임은 원래 미군의 계획 수립 방법론에 그 기원이 있고, 이후에는 NASA에서 차용했고, 그러고 난 뒤에 USAID에 도입되었다고 한다. 


의외로 레온 로젠버그란 사람에 대해서는 온라인에서 기록을 많이 찾을 수 없었다. Practical Concept Inc라는 회사가 1970년에 설립되었다는 점을 봐서는 아마 이 로그프레임 연구 용역을 위해 설립된 것처럼 보이는데, Rosenberg가 회사 설립 전후로 무엇을 했는지 찾아볼 수 없었다. 


로렌스 포스너는 2012년에 부고 기사가 있었는데, 1961년에 MBA를 마친 뒤 라틴아메리카와 유럽, 아프리카, 남아시아에서 다양한 경제개발사업 프로젝트 컨설팅을 했고, 1970년에 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에도 컨설턴트로 주로 모니터링과 평가를 하는 일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포스너를 '로그프레임의 핵심 개발자'로 소개한 부고 기사에는 포스너가 하버드 대학교 동문지에 남긴 짧은 문답이 있었는데, 경영대학원 박사 과정 동료들처럼 부을 극대화하는 진로 대신 개발도상국에 실무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경력에 집중했고, 이에 후회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 사람이 1959년의 포스너다. Photo: The Gavel of Delta Sigma Rho 43(2) 1961


목표가 이끄는 사업


로그프레임은 어떤 생각과 이론의 흐름 속에 탄생했을까? 여기서 갑자기 현대 경영의 구루(guru) 피터 드러커가 등장한다. 그가 제시한 개념 중, 1954년 저작인 “경영의 실제"에 등장하는 목표에 의한 관리(management by objective)라는 개념이 로그프레임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목표에 의한 관리는 개별 담당자에게 자신의 업무목표를 설정하고 보고하도록 한 뒤, 그 진행상황과 실행을 각자가 주체적으로 관리하도록 하는 경영 방법론이라고 한다. 물론 여기서의 목표는 조직 전체의 중장기적 계획이나 가치, 목표와도 연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경영실무에서는 이 목표에 의한 관리가 전체 조직의 목표에 따라 각 부서에서 이것에 기여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하고, 구성원들이 더 세부적인 계획과 지표 개발에 참여해서 목표 수립을 완료한 뒤, 그 목표와 실행결과를 성과평가 기준을 활용, 비교해서 피드백하는 일련의 과정을 뜻한다.


Practical Concept Inc의 로그프레임 교안, 그리고 이보다 앞선 1970년 Fry consultants 용역 보고서에는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한 문장이 인용되어 있다


“만약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면, 어느 길로 가도 거기에 도착할 것이다"

루이스 캐럴이 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체셔(Cheshire)라는  특별한 고양이가 나오는데, 갈림길에서 길을 고민하던 앨리스가 체셔 고양이에게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묻는다. 그러자 체셔는 앨리스에게 되묻는다. “어디로 가고 싶은데?”, 앨리스는 모르겠다고 답한다. 그 대답을 들은 체셔는 “그럼, 상관없어"라고 말한다. 목적지가 없다면 어느 길을 택해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고양이 체셔에게 길을 묻는 앨리스.

Practical Concept Inc. 의 로그프레임 교안에는 위 인용구 뒤에 피터 드러커를 언급하며, 경영은 목표를 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사업에서 목표가 없다면 어떤 행동이나 선택도 선택하지 않은 대안적인 행동이나 선택과 그 가치를 비교할 수 없다며 목표 설정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목표가 없다면 모든 활동과 길이 같아지는 거고, 돈과 자원을 투입해서 생기는 변화가 도대체 어느 길로 우리를 이끄는지 알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로 들리지만, 당시 USAID는 자신들의 활동이 사람들을 어디로 이끌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지 Fry consultants Inc. 에 사업 평가 체계 분석 용역을 맡기며 “어디로 가는지를 조사"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요청에  따라 USAID의 여러 사업을 조사한 컨설턴트들은 아래와 같은 문제점들을 발견한다.


첫째, 계획이 너무 모호하다. 목표가 정확히 명시되어 있지 않고, 프로젝트가 성공했을 때 어떤 모습일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없다. 그래서 평가자가 사업의 결과가 계획에 따른 것인지를 판단할 수 없다.


둘째. 관리 책임이 불명확하다. 프로젝트 매니저와 프로젝트 영향(Impact)에 대한 책임의 관계가 모호하다. 영향의 내용이 모호하게 기술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영향과 관련된 수많은 요소들이 통제 밖에 있다. 그래서 사업 결과와 관련해서 어떤 것에 책임을 져야 하는지가 모호해지고, 그 결과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셋째, 평가 과정이 적대적이다. 명확한 목적이 없고, 프로젝트가 무엇인지에 대해 팀원 사이에서, 도너와 수행 기관 사이에 이견이 잦다 보니 평가자는 “좋은 것"과 “나쁜 것" 이렇게 이분법적인 잣대로 사업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로젠버그와 포스너는 로그프레임을 제시했고, USAID뿐 아니라 CIDA 같은 다른 국제 원조 기관들도 채택하게 되며 오늘날까지 그 명맥이 이어져오고 있다. 



로그프레임의 초기 역사를 보며 느낀 점은 로그프레임이 "목표로 가는 길을 그린 지도"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란 점이다.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길을 논리적이고 참여적으로 그리며, 사업 수행 과정에서 때때로 우리가 그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이 지도의 길이 제대로 그려져 있는지를 점검한다는 그 초기의 취지가 지금도 잘 이어지고 있을까? 어쩌면 수많은 사업이 목표로 가는 길이 아니라 PDM에 끌려가고 있는 건 아닐까? 


로그프레임의 활용과 장점, 한계에 대해선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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