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탐방 가이드북

[책 리뷰] 도서관 여행하는 법 (2019)

by 우바리

연두색 산뜻한 표지에, 160페이지가량 되는 도서관 이야기가 담긴 「도서관 여행하는 법: 앎의 세계에 진입하는 모두를 위한 응원과 환대의 시스템」(임윤희 저)은 어딜 가서든 도서관 기웃거리길 20년인 '도서관 덕후'가 쓴 도서관 여행 책이다. 참고로 저자의 본업은 책 만드는 일로, '나무연필'이라는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D4ZVkZ7U0AIp5Rp.jpg 도서관 여행하는 법: 앎의 세계에 진입하는 모두를 위한 응원과 환대의 시스템. 임윤희. 2019.


나는 최근 동아프리카 모 국가에 도서관을 지원하는 사업의 제안서를 쓸 일이 있어서 이리저리 도서관 관련 책을 찾다가,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목차만 봤을 땐, 독서교육 계획 같은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야 하는 제안서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나도 어딜 가든 도서관이나 서점을 꼭 들리는 책 덕후까진 아니고, 책 좋아하는 사람 정도 되다 보니 그냥 읽고 싶어서 샀다. (아래는 내 책 여행의 기록 두 개)


https://brunch.co.kr/@theafricanist/64

https://brunch.co.kr/@theafricanist/54


지난주에 제안서를 냈는데, 이 책의 내용 중 제안서에 직접 반영된 것은 없었다. 하지만, 왜 도서관 사업이 그토록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재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제안서를 쓴 그 나라, 그 지역에 도서관 시설이 개선되고 (그곳에서 우리 단체는 이미 작은 마을 도서관 사업을 하고 있다), 사람들의, 특히 아동과 청소년의 세계관을 넓혀줄 수 있는 독서와 연계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될 수 있다면 앎의 세계로 더 많은 이들을 따뜻하게 초대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는 20년 전, 드물게 번듯한 도서관이 있고 사서 선생님도 있는 고등학교를 다니며 도서관을 이용한 것부터 시작해서 대학도서관을 누비고, 잠시 직장인 시절 책을 직접 사서 보던 일종의 방황기를 거쳐 '충격적인' 외국의 도서관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도서관 덕후'로 살고 있다.


저자가 북미에서 만난 '충격적인' 공공 도서관들에서는 활동가들이 공동체의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고, 대화가 오가고, 개가제라서 자유롭게 책을 뽑아보고 살펴볼 수 있었다. 요즘이야 한국에서도 개가제 아닌 도서관을 찾기 힘들고, 도서관들이 지역공동체와 연결되려는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충격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있지만, 대다수 도서관이 폐가제였던 20여 년 전에는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개가제와 폐가제가 다소 생소한 표현일 수 있는데, 개가제와 폐가제는 서로 반대말로, 과거 한국의 많은 도서관들은 사서에게 원하는 책을 요청하고, 사서가 그 책을 서가에서 찾아주는 폐가제로 운영되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폐가제 도서관을 르완다의 한 대학도서관에서 처음 접해봤는데, 폐가제 도서관의 문제는, 이용자가 이리저리 자유롭게 책을 뽑아 보다가,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아주 짧은 기간 폐가제 도서관을 이용했는데도 아주 답답했다. 폐가제 도서관만 이용하던 저자가 개가제 도서관의 자유로움을 만났을 때 느꼈을 감동은 엄청났을 것 같다.


암튼 개가제도 개가제이지만, 저자가 설명하는 도서관의 '덕질'포인트는 이렇다. "한 시민이 어떤 앎의 세계에 진입하려고 할 때 그를 응원하고 격려하며 도움을 주는 시스템이 있다면 사회 전체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랄까. 또한 부유하든 가난하든 잘났든 못났든 늙었든 젊었던 장애가 있든 없든 간에 그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간을 만들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어렵지만 흥미진진한 실험이랄까. 도서관의 세계에는 그런 멋진 꿈이 있었다." 그는 이렇게 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온 사람들의 꿈을 살피기 위해 외국에 가서도 도서관을 둘러보고 있다.


「도서관 여행하는 법」은 미국, 캐나다, 일본의 도서관 방문기를 담은 "먼 곳으로 떠난 여행-외국 도서관을 둘러보다"와 한국의 도서관과 도서관 문화를 살피며 느낀 것들을 담은 "가까운 곳으로 떠난 여행-우리 도서관을 살피다", 이렇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외국 도서관, 그중에서도 미국의 도서관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참고봉사 데스크 "Reference Desk"이야기였다. 저자는 이 데스크가 "세상의 모든 질문에 길을 찾아 주려고 대기 중인 사서 선생님들이 앉아"있는 곳이라고 했다. 이 곳에선 호기심쟁이들이 환대받으며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길(답이 아니다!)을 안내받는다니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utm-refdesk3-libguide.jpg 토론토 대학교의 참고봉사 데스크. Photo: University of Toronto 웹사이트


하지만 나는 사실 이 책을 읽는 내내 참고봉사 데스크에 앉아있다는 사서라는 존재가 낯설었다. 심지어 저자는 사서를 도서관의 책, 이용자와 더불어 도서관의 3요소로 꼽기까지 했는데, 아쉽게도 나는 사서라는 사람의 도움을 받은 기억이 없었다. 우리 동네 도서관이나 내가 다녔던 대학교의 도서관에 사서가 있긴 했던 건지도 잘 모르겠고, 왠지 도서관의 안내 데스크는 어떤 기술적인 문제에 봉착했을 때만 가는 곳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영국에서 대학원을 다닐땐 분명 전공별 사서가 있었고, 도서관 이용 교육도 그분들한테 받았지만, 같이 뭔가를 해볼 기회가 없었다. 내 성향이 옷 가게를 가도 점원분들이 말을 걸어주지 않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혼자 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사서분들과 협업하는 방법에 대해서 한 번도 정확히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저자는 여행가서 그 나라말이 서툴러 무언가를 더듬더듬 물었을 때 사서야말로 가장 친절하게 답해 줄 사람일 것이라고 했다.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언젠가는 나도 도서관이라는 숲을 가이드해주는 사서분들께 질문을 해보고, 도서관을 재발견해보고 싶다는 작은 꿈을 가지게 되었다.


외국 도서관 이야기가 끝나면, 한국 도서관 이야기가 이어진다. 저자는 한국의 도서관에는 두 가지 기묘한 이미지가 겹쳐있다고 했다. 독서실과 관공서. 우리 집 근처에도 구립 도서관이 하나 있는데, 책상 위로 칸막이가 있는 자율학습실은 엄두도 안 나고, 책들이 있는 자료실조차도 너무 고요하다 보니, 좀 불편해서 잘 이용하지 않고 있다. 나같이 그냥 책을 읽거나 편안히 시간 보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꼭 각 잡고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조금만 더 자유로운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젠 우연히 코엑스에 있는 별마당 도서관에 가게 되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너무 북적거리고, 너무 더워서 그냥 쓱 둘러보고 지나가게 되었는데, 과연 이곳도 도서관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책도 있고, 책을 읽는 사람도 있지만, 커다란 책 탑에는 '전시용 책'들이 꽂혀있고, 복잡한 내부의 사고를 막기 위한 보안요원들이 배치되어 있고, 막상 책을 읽을 공간도 넓지 않은 이 곳도 도서관일 수 있을까? 과연 정말 책과 책을 읽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일까? 여러 의문이 떠올랐다. 저자는 파주 출판단지의 '지혜의 숲'을 방문하고 비슷한 고민을 했다. '지혜의 숲'은 쾌적하고 일반 도서관의 숙연한 분위기에 비해 조금 더 자유로웠지만, 사서의 부재가 계속 고민거리로 남았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의 경험이 도서관에 대한 수요를 확장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고, 그 공간에서 혁신적인 실험이 진행되길 기대했다. 별마당 도서관도 그런 맥락에선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IMG_1197.JPG 코엑스의 별마당 도서관. Photo: 우승훈


「도서관 여행하는 법」이 책은 실제 도서관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가득한 여행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외국의 도서관에선 이런저런 서비스를 하는데, 우리도 이런 서비스를 해야 한다는 것도 아님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그냥 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만들어 온 꿈을 들여다본 여행서로 이 책이 읽히기를 바란다고 한다. 이렇게 저자는 도서관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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