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영국 총리 유력 주자 보리스 존슨과 아프리카
얼마 전 테레사 메이(Theresa May) 영국 총리 겸 보수당 대표가 6월 7일 당 대표직을, 즉 총리직을 사퇴(의원 내각제인 영국에서 다수당 대표가 사임한다는 것은 총리 사퇴를 의미한다)하겠다고 발표했다. 메이 총리는 국민투표로 결정되었던 브렉시트의 방법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정말 '답 없는' 상황에 봉착한 채 오랜 시간 시달렸고, 여야 모두에서 사퇴 압박을 받아왔다.
이에 보수당은 오는 6월 10일부터 당대표 경선을 시작할 예정인데, 현재 가장 큰 지지를 받는 사람은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이다. 존슨 전 외무장관은 영국과 유럽연합이 어떠한 합의도 없이 결별할 수도 있다는 '하드 브렉시트(Hard Brexit)' 주장자이다.
보리스 존슨과 브렉시트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여기서는 보리스 존슨의 인종차별이고 식민주의적 시각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보리스 존슨은 저널리스트, 칼럼니스트, 하원의원, 런던시장을 지냈고, 브렉시트 운동을 주도하며 스타 정치인으로 떠오른 인물이다.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찬성으로 끝난 이후, 존슨은 브렉시트 국민투표의 여파로 사임한 캐머런 총리의 후임, 테리사 메이 총리에 의해 외무장관에 임명되었는데, 그는 외교와 관련된 경력이 전무할 뿐 아니라 국제적 사안에 대해 막말을 많이 했던 사람이라 많은 사람들은 '장난하냐?'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의 유럽연합에 대한 입장도 유명하지만, 유럽연합에 대한 태도만큼 문제가 있는 것이 바로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이다.
국내 언론에 소개된 가장 유명한 그의 아프리카 관련 막말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관련된 내용일 것이다. 올해 4월 오바마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하며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입장을 내보이자 영국 일간지 The Sun에 오바마를 비판하는 글을 기고한다.
이 글에서 존슨은 브렉시트가 EU의 독재에 대항하여 민주주의를 지키는 수단이라며, 미국은 국제기구의 각종 규제에 자국의 주권을 강조하며 UN 여성차별 철폐 협약도 비준하지 않고, 심지어 UN 아동권리협약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비준하지 않은 국가인데, 오바마 대통령이 브렉시트를 반대할 자격이 있겠냐는 식으로 쏘아붙였다.
그러면서 윈스턴 처칠이 시민이 자신의 정부를 택할 권리에 대해 중시했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오바마가 2009년 집권하면서 그의 집무실에 뭔가 '미스터리 한'일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부시 행정부 시절, 대통령 집무실에 처칠 흉상이 있었는데, '부분적으로 케냐인인' 오바마가 집권하자마자 그 흉상을 치워버렸다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보리스 존슨은 이렇게 언급한다.
그 흉상은 대단한 조각가인 제이콥 엡스타인 (Jacob Epstein)의 작품으로 아주 훌륭한 작품이며 그 집무실에 근 10년 동안이나 있었다. 하지만 오바마가 집권하자마자 흉상은 어떤 기념식도 없이 워싱턴의 영국 대사관으로 반납되었다. 대통령이 이 결정에 연관되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혹자는 이것이 영국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하고, 혹자는 부분적으로 케냐인인 대통령의 영국 제국에 대한 오랜 증오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처칠은 영국 제국의 열렬한 옹호자였다.
It was a fine goggle-eyed object, done by the brilliant sculptor Jacob Epstein, and it had sat there for almost ten years. But on day one of the Obama administration it was returned, without ceremony, to the British embassy in Washington. No one was sure whether the President had himself been involved in the decision. Some said it was a snub to Britain. Some said it was a symbol of the part-Kenyan President’s ancestral dislike of the British empire – of which Churchill had been such a fervent defender.
오바마의 아버지가 케냐 사람임을 들며 과거 영국 식민지였던 케냐 출신 아버지를 둔 오바마도 영국을 싫어할 것이라는 논리로 그를 비꼰 것이다. 이 주장에 대한 사실관계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오마바는 처칠 동상을 치우라고 지시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의 처칠 흉상에 대한 루머는 꽤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 같다. 이미 2012년 백악관의 블로그에 Fact Check: The Bust of Winston Churchill 란 글이 이 루머에 대해 해명을 내놓고 있다. 이 글에 따르면, 백악관엔 1960년대부터 처칠 흉상이 있었는데, 부시 집권기에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가 같은 흉상을 하나 더 빌려주었고, 이후 한동안 집무실에 있다가 관저로 옮겨졌고, 부시 집권 종료와 함께 영국 대사관으로 반환되었으며, 원래 있던 흉상은 계속 관저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아래부터는 전에 썼던 글: "전 세계의 아프리카 비하 발언 퍼레이드"에서 대부분 다뤘던 이야기입니다)
그다음으로 한국 언론에 많이 소개된 그의 막말은 그가 2002년 The Telegraph에 쓴 한 칼럼에서 아프리카의 흑인 어린이들을 ‘수박 미소’(watermelon smiles)를 짓는 ‘피카니니들’(piccaninnies)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그가 칼럼에서 수박 미소와 피카니니들을 언급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언론에서 정확히 인용한 것은 아니다. 우선 수박 미소는 수박에 관련한 아프리카계 아메리카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표현이다. 시사 월간지 The Atlantic에 수박이 어떻게 인종차별 비유가 되었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는 글이 있는데, 이 글에 따르자면 이 비유의 기원은 미국의 노예 해방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에 아직 노예제도가 있던 시절, 농장 소유주들은 종종 수박을 그들의 '자비심'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생각했다. 노예들에게 스스로 수박을 기르고 내다 팔 수 있게 하는가 하면, 여름엔 아예 수박을 먹으며 쉴 수 있는 휴일을 주기도 했다. 노예들은 이렇게 '하사 받은' 수박을 백인들이 원하는 대로 게걸스럽게, 그리고 감사하게 먹어야만 했다.
하지만 노예 해방으로 이런 관계는 청산되었고, 흑인들을 스스로를 위해 수박을 기르고, 팔고, 먹었다. 이에 남부 백인들은 수박을 더럽고(수박은 깔끔하기 먹기 어렵기 때문에), 게으르고(기르기 쉽기 때문에), 그리고 어린애 같은 (달고, 색깔이 화려하며, 영양가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나 먹는 과일로 격하하며 '수박에 미친 흑인들'이라는 편견을 만들어 냈다.
이런 배경을 가진 용어이기 때문에 흑인에게 수박과 관련된 비유를 하는 것은 인종차별주의로 해석된다. 존슨은 콩고 민주공화국의 '부족 전사들(tribal warriors)'이 백인 대 추장(블레어를 뜻함)을 만나기 위해 '수박 미소'를 짓는다고 칼럼에 썼다. '부족 전사들'부터 '백인 대 추장' '수박 미소'까지 극렬한 인종차별주의적인 단어 선택이다. 이 칼럼의 주요 요지는 블레어가 국내 정치는 안중에도 없고 해외 순방만 다닌다는 이야기인데, 쓸데없이 인종차별주의적 발언을 쏟아낸다. '수박 미소', '부족 전사들' 외에도 같은 칼럼에서 존슨은 코몬웰스(Commonwealth)가 주기적으로 깃발을 흔드는 피카니니(piccaninnies) 무리를 여왕에게 보여주기 때문에 여왕이 코몬웰스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식으로도 이야기했는데, 피카니니는 흑인 어린이를 낮춰 부르는 표현(우리말로 하면 깜둥이 꼬마 정도)이다.
가장 심각한 글은 2002년 The Spectator에 실린 CANCEL THE GUILT TRIP이란 제목의 글이다. 이 글도 기본적으로는 '밖으로 나도는' 블레어와 우간다에서 목격한 무분별한 원조사업에 관련된 이야기이지만, 식민지배를 옹호하는 내용과 아프리카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표현들이 다수 담겨있다. 이 '주옥같은' 칼럼의 문제 되는 대목들을 나열해 보았다.
(아프리카의) 문제는 우리가 한때 그곳을 지배했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더 이상 지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The problem is not that we were once in charge, but that we are not in charge any more.
(우간다에서) 당신은 희귀하고 이상한, 젝 푸르트 같은 과일이 당신 머리보다도 크게 열려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향수를 뿌려도 이건 여전히 역겹고, 웨이트로스(영국의 마트 중 하나, 검색해보니 약간 고급 마트인 것으로 보인다)조차도 이걸 가져다 놓을 정도로 허세 있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 영국인들이 커피와 면화와 담배를 심었고, 그것은 대체로 옳았다. 최근 커피 가격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베트남인들 때문이다. 100년 전, 그 농장주도 아니었던 베트남인들이 뻔뻔하게도 저가에 커피를 팔고 있다.
You will find fruits rare and strange, like the jackfruit, hanging bigger than your head and covered with green tetrahedral nodules. Though delicately perfumed, it is, alas, more or less disgusting, and not even Waitrose is pretentious enough to stock it. So the British planted coffee and cotton and tobacco, and they were broadly right. It is true that coffee prices are currently low; but that is the fault of the Vietnamese, who are shamelessly undercutting the market, and not of the planters of 100 years ago.
오늘날까지도 (이 글은 2002년의 글이다) 우간다 사람들은 스스로 자전거(Bike라고 적혀 있는데, 오토바이를 말하는 건지 자전거를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도 못 만든다.
Even now, the Ugandans can't make their own bikes.
90퍼센트의 우간다인들은 석기시대의 상태로 살고 있다. 진흙으로 둥근 움막을 짓고 바닥을 파서 불을 지피고, 라피아(식물의 이름)로 장판을 만들어 침대로 사용한다. 기대수명은 42세이다.
90 per cent of Ugandans live in Stone Age conditions — round mud huts with a fireplace dug in the floor and raffia mats for beds and a life-expectancy of 42.
어느 영국 공무원이 말하길, '나는 여기 아프리카에 오랫동안 있었는데, 여전히 이해 못하겠는 게 있다. 왜 그들은 서로에게 그렇게 잔혹한가? 우리는 그들을 아이처럼 대하곤 하는데, 그건 우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파리대왕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굴기 때문이다.'
As one British official said, 'I've been in Africa for ages and there's one thing I just don't get. Why are they so brutal to each other? We may treat them like children, but it's not because of us that they behave like the children in Lord of the Flies.'
서양에서 온 구호단체가 괜찮은 콘크리트 구조물로 화장실을 만들면, 이게 움막보다 더 좋기 때문에 이내 집으로 사용된다.
They build latrines, fine concrete structures which will soon be used for habitation, since they are sounder than the huts.
이 나라(우간다)엔 여전히 쪼그려 앉아서 그들 얼굴에 앉은 파리들을 쫓아내기 위해 천천히 손을 흔들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This is still a country where too many people squat on their haunches, slowly waving their hands to move the flies from their faces.
블레어가 생각이 있다면, 아프리카에서 안타까워할 게 없다. 우리에게 휴가를 즐기러 여기 오라고 해야 할 것이다. 머치슨 폭포(우간다 머치슨 국립공원의 폭포) 보다 좋은 게 뭐가 있겠는가! 빅토리아 호수의 작은 섬을 사라고 할 것이고, 호텔과 TV와 휴대폰 회사에 투자하라고 할 것이다. 아프리카의 운명에 가장 좋은 것은 옛날 식민종주국이, 혹은 그 나라들의 시민들이 다시 한번 아프리카를 향한 쟁탈전을 벌이는 것이다. 단, 이번엔 죄책감을 느끼도록 요구받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말이다.
If Blair has any sense, he won't wring his hands over Africa. He'll urge us all to come here for our holidays — and what could be better than the Murchison Falls. He'll talk us into snapping up that little island in Lake Victoria, investing in hotels, TVs, mobile-phone companies. The best fate for Africa would be if the old colonial powers, or their citizens, scrambled once again in her direction; on the understanding that this time they will not be asked to feel guilty.
그가 어떤 일로 우간다를 방문하고서 쓴 글인 것 같은데, 마치 19세기 후반 아프리카 대륙을 '탐험'한 사람이 쓴 글처럼 아프리카를 비하하고, '비 문명화된'사회로 묘사하고, 식민주의를 옹호할 뿐 아니라 '다시 한번 아프리카를 향한 쟁탈전을 벌여야 한다'며 신 식민주의(Neo-Colonialism)를 주장하기까지 한다.
이런 막말을 했던 그는 어쨌든 외무장관이 되었고, 막말은 확실히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프리카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는 지속된 것 같다. 외무장관이 된 지 3개월이 지났을 때, 그는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아프리카를 한 나라로 인식하는 듯한 말을 했다.
아프리카의 기대수명은 그 나라가 세계경제체제에 진입하면서 놀라울 정도로 증가했습니다.
Life expectancy in Africa has risen astonishingly as that country has entered the global economic system.
2017년에는 그가 그렇게도 욕했던 우간다를 다시 방문해 요웨리 무세베니(Yoweri Museveni) 대통령도 만났고, "이 나라는 잘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요. 강력한 경제성장이 진정한 기회들을 보여주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무세베니 대통령은 그가 2002년 우간다에 대해 뭐라고 했는지 알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는 판에, 보리스 존슨이라고 이런 이유로 총리가 안되지는 않을 것 같아 화가 난다.
제목 그림: 보수당 전당대회의 보리스 존슨. Photo: Flickr / BackBoris2012 Campaign T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