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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금술사 Jul 02. 2016

녹여줄게

뜨겁게 해 주는 삶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에어컨 바람이 간절한 요즈음에

연탄이 생각난 건 왜일까.


먹구름이 물러간 자리에

따가운 볕이 내리쬐는 어느 오후.


조용한 동네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플라스틱 잔을 가득 채운 각얼음이 녹으니

쓴 커피가 연해졌다. 


시간이 지나며 맛이 달라지는 커피.


동동 떠 있는 얼음이 제 몸을 녹여 

구수한 커피를 우려냈다.


시간제 알바가 아니라

물의 형제, 얼음이 바리스타였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뭐 좀 마셨다고 신호가 온다.

남자 화장실 소변기에 가득 차 있는 얼음들.


그러고 보니 

스마트폰을 청바지 뒷주머니에 꽂은 카페 알바생은 

수시로 드나들며 얼음을 부었다.


나도 모르게 한 얼음에 집중했다.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하고 견고해 보이기만 했던

육각형 얼음이 


성인이 되고 어느 날 보게 된

아버지의 위축된 뒷모습처럼

속절없이 작아져갔다.


나의 체온이 

얼음을 녹이고 있었다.

 

동심이 사라진 이후,

차가운 얼음이나 흰 눈을 손에 꼭 쥐어

녹이는 놀이를 한지도 오래.


무언가를 순수한 내 체온으로 녹이는 건

입 속에 들어간 아이스크림뿐이었다.

그마저도 여간해선 볼 수 없는 

어둡고 뻘건 입안에서 일어날 일.


나만의 뜨거움이 차가운 무언가를 

녹여내 없애는 모습을 실감 나게 지켜보니 

묘했다.


저절로 녹는 무언가는 많다.

결국 다 녹아 없어지기 마련.


우리의 아픔도

슬픔도 미련과 후회도

그냥 두면 녹는다. 

시간이 걸릴 뿐.


고작 얼음 하나 말고도

난 누구에게 무엇에게 

따뜻했었던가.


누구의 차갑고 단단한 마음

내 고유한 온도로 

녹여주었나.


나 자신의 얼어붙은 마음에

다가가 따뜻한 포옹을 해 준 적 있는가

냉혹한 평가와 자기혐오로  

스스로를 얼려두진 않았나.


저절로 녹도록 방치하지 않고

꼭 껴안아 적극적으로 

녹여낸 일이 있던가.


알아서 녹게, 

알아서 사라질 거라며 

내버려두진 않았나.


내 힘으로 

내 진심으로 녹일 수 있는 것

저 얼음뿐이라면

난 연탄만도 못하다.


그러나,

아직 내 뜨거움이 살아있음을 

확인했다.


꿈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든

사람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배려

나에게 주어진 것에 대한 욕심을 줄인 감사

 

계속 뜨거울 것이다.

뜨거워야 한다.

뜨거워야 변화가 일어난다.


사람마다 뜨거움의 표현이 다를 거다.


나만의 뜨거움으로

풀 수 없는 과거의 실타래를 녹이고

새로운 하루를 살아갈 심장에 을 붙이는


그런 걸 끓여내고 싶다.


이 날씨엔 더 뜨거워도 된다.

이제, 이열치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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