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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금술사 Jul 10. 2016

흰나비, 우리 엄마

우리는 모두 흰나비였다


바다와 나비

                          

                           김 기 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알려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우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젖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 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전업주부로만 사셨던 우리 엄마는

아직도 바깥세상이 낯설고 두렵다.


외부 사람들의 툭 던지는 거친 말,

상식과 배려의 여과과정을 지나지 않고

나오는 무식한 표현들.


엄마라면

시켜도 못했을 몰상식한 행동들,

후회할거면서 하고마는 크고 작은 부조리들.


그런 깊고 어두운 바다의 너울거림에

엄마는 속수무책이다.


위장된 평화 속에 살았던 가족 4명에서

엄마와 나, 사실상 2명의 식구로 줄면서

엄마는 생업전선에 나가셨다.


50대 중반의 나이에서야

처음 나가본 세상.

공포와 고독을 무릅쓰고

등 떠밀듯 바닷가로 나간 그녀에게

청무우밭은 없었다.


요즘 젊은이들이라면

알바를 하며 이미 겪었을

손님과 사장의 갑질,

육체적 노곤함, 정신적 피폐를

이제 막 느껴본

제 방패 하나 못갖춘 엄마.


마이너스 통장이

능력이 부족한 못난 아들이

인연이 맞지 않았던 전(前) 가족들이

절벽 끝으로 내 몬

우리 엄마.


그 깊고 추운 바다 위를

갸냘픈 두 날개로 삐걱거리며 나는

우리 엄마.



엄마는 요즘

그런 바다위를 넘나들다

흠뻑 젖은 채로

날짜가 바뀔 시간에서야

집에 오신다.

저리는 가슴을 애써 누르고

젖은 물기를 닦아드리려 가보면


(다짜고짜) "야! 너!"
(찬 리필이 늦어지자) "빨리도 갖다주네"

"이것도 할 줄 몰라!"


엄마 주위 흥건한 물에

피덩이처럼 떡져

선명하게 들려오는 안하무인갑질들.


제대로 받아쳐내지도 못하고

그대로 아니, 몇 배로

자책하며 흡수해버린

엄마의 젖은 몸둥이 앞에서

난 무릎을 꿇고 말았다.


미안해, 엄마...


내가 늘 곁에 있어주지 못할 때를 위해서,

혼자 남겨질 수 있는 하루하루를 살아갈

자립심을 키워드리고 싶은 마음에


준비 안 된 엄마를

험한 바깥세상으로

인정 없는 바닷가로

이끈 나 자신이 증오스럽다.


엄마는 그냥

흰나비인 채로

바다에 젖을 일 없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나비로 남게 해드렸어야 했다.


뒤늦은 바다 구경에

서글픈 엄마의 허리도

내 마음도 시렸다.



사람노동

상실공포

지쳐 쓰러진 엄마는


곧 떠날 나의 제주 일정을

챙기려 한다.


다시는 펴지 못할 것처럼

흠뻑 젖은 날개를 하고선

제 몸하나 겨누지 못하면서

고작 내 걱정이던가.

감당하지 못하겠다.


분노와 슬픔의 감정을

어찌 다스릴지 몰라

가장 나스러운 방법으로 여길 택했다.

따뜻한 햇살에 비쳐

투명하고 우아한

엄마의 날개를 다시 보고 싶다.


엄마의 흰 날갯짓을 보려면

내가 시퍼런 바다로 나가야 한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이제

선명히 구분된다.

새파랗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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