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올림
깜깜한 백지 앞에 앉은 건 오래만 입니다.
무심히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는 커서를 세워두고 한참을 있었습니다.
이십 대 마지막 생일이서도 아니고
브런치 데뷔 3주년이어서도 아니고
나의 첫 업무 공간을 얻은 날이어서도 아닙니다.
그저 인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모두들 잘 있었는지.
평온했는지.
아픈덴 없었는지.
저는 잘 못 있었습니다.
불안했습니다.
아팠습니다.
내 탓과 남 탓, 운명 탓을 번갈아 하며
괴로워했습니다.
근데
누구 탓도 아니더군요.
저마다 개성 있는 사람들 간의 관계,
그 속에서 펼쳐지는 첨예한 상황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시냇가에 물이 졸졸 흐르듯.
까치가 나뭇가지에 앉아 머리를 털듯.
처마 끝 물줄기가 얼어붙듯.
나는 원래 이렇고
너는 원래 그러며
우리는 원래 이렇게 되는 겁니다.
저와 당신은 앞으로도
괴로운 일, 슬픈 일
즐거운 일, 웃긴 일을
순서 없이 겪을 것입니다.
얄궂은 의도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새해 복을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주고받는 요즘입니다.
행복한 일만 가득하라고도 합니다.
선량한 덕담에 꼬인 감정으로
찬물을 끼얹으려는 건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은
일 년 열 두 달 복만 받고 살 수도
365일 내내 행복할 수 만도 없습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는 더 깨닫고 맙니다.
그건 환상뿐이라는 걸.
전반적인 만족감은
기쁘고 설레는 일을 매일 발견하고
좌절과 분노를 빠르게 지나 보내야
얻을 수 있습니다.
행운과 행복만 가득하라는
듣기 좋고 무책임한 말보다,
일상의 사소한 감사함을 찾을 줄 알고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감을 높일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싶습니다.
오랜만에
솔직한 인사 다시 드립니다.
"새해에는 작은 일에 크게 자주 기뻐하고
큰 일에 길지 않고 작게 힘들어하시길 바랍니다."
한평생이 행복하기만 한 사람 없고
한평생이 불행하기만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인생의 행복 점수는
100점과 0점 사이
매일의 기분들,
순간의 기분들의 평균값이기 때문입니다.
그 평균값이
작년보다 높은 한 해가 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연금술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