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물공포증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START 스타트 #7

by 더앨리스

오늘도 어김없이 오전 10시 행복한 마법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강사님의 지시대로 움직이고 있노라면 잡생각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물론 수업을 하고 나면 온몸이 너덜거릴 정도로 힘이 들긴 했지만 우리 반은 출석률이 매우 좋았다.


오전시간이라 전체적으로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았는데,

은퇴를 하시고 부부가 같이 오신 분도 계셨고 손주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오시는 분도 계셨고 자영업을 하시는 분도 계셨다.


그리고 나 같은 전업주부도 있었다.


대부분이 어르신들과 주부들이었지만 우리의 열정은 출석률로 확인할 수 있었다.


레일에 인원이 많아서 순서가 돌아오는데 시간이 한참 걸렸고 우린 그 점을 무척 아쉬워했다.

50분을 꽉 채워 수업을 해도 아쉬움이 남아서 조금이라도 더 물속에 있으려 하기도 했다.


이런 우리들의 모습을 보며 윗반의 수선배들이 의아해했다.


일반적인 초급반의 모습이라 하면 쉽게 지쳐서 서로 먼저 가라고 양보를 하고 최대한 쉬엄쉬엄하려는 행동들이 보이는데 우리 반은 여태껏 봐왔던 초급반과 느낌이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수업에 임하는 자세뿐 만 아니라 수업의 내용도 일반적이지 않다고 했다. 수영강습이 처음인 나도 좀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보통의 수영강습은 수영의 동작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습득시키고 동작을 통합시키고 그 동작들이 자연스럽게 되도록 여러 번 반복을 시키는데 우리 반은 조금 달랐다.


강사님은 첫날부터 “잘하고 멋있게 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물에 떠서 가기만 하면 됩니다.”라고 강조하셨다.


난 사실 어리둥절했다.

일반적이지 않다’라는 것에서 느끼는 불안함이라고 해야 하나?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재미있게 하고 있긴 한데 불쑥불쑥 드는 의심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매일매일 수업에 뭘 할지 도무지 예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제 다리 사이에 킥판을 끼우고 팔 돌리기를 배웠다면 오늘은 팔 돌리기를 더 하든지 다리와 동시에 하는 동작을 해 보겠지?라고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강사님은 뜬금없이 잠수를 해보라고 했다.


처음에는 숨을 최대한 참아 보라고 해서 기를 쓰고 참아봤다.

그러더니 이번엔 잠수를 해서 최대한 바닥에 엉덩이를 붙어보라고 한다.


우리 모두는 누가 시합을 시킨 것도 아닌데 마치 치열한 경쟁을 하듯이 결연한 모습으로 물속으로 들어갔다.


숨만 참으면 가라앉을 줄 알았던 몸이 도무지 가라 않지 않고 동동 떠다닌다.


나름 균형 잡기를 해가며 힘으로 버티려는 이들과 팔을 파닥파닥 휘저으며 바닥을 향해 발버둥 치는 이들이 한꺼번에 어우러져 엉키어 가고 있었다.


우리는 전원 실패하고 깜찍하게 물 위로 동동 띄워졌다.


회심의 미소를 짓던 강사님은 물속에서 숨을 조금씩 뱉어 보라고 했고 강사님 지시대로 했더니 몸이 바닥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폐 속에 있던 공기까지 뱉어내니 비로소 엉덩이가 바닥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나는 그 순간 물에 빠질 뻔했던 과거의 기억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과거의 물속 경험 속에선 마치 무언가가 내 몸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만 같아서 안간힘을 썼었고 숨이 금방이라도 멈춰 버릴 것 같은 공포에 온몸을 버둥거리며 얼른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려했던 것 같다.


내가 그때 그토록 허우적거리지 않았더 라면 물속에 잠시 가라앉다가 다시 살짝 떠오를 수도 있었겠구나.


예전에 뉴스에서 바다에서 놀다가 멀리 떠내려 가게 된 중학생이 학교 생존수영시간에 배운 잎새뜨기로 한참을 버티다 구조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수영을 전혀 못했던 사람으로서 “저게 가능하다고? 어떻게 가능하지?” 의문부호만 머릿속에 찍었던 경험이 있다.


바다와 수영장의 수질이 다르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오늘의 경험을 통해 그 중학생이 어떻게 오랜 시간 동안 바다에 떠 있을 수 있었는지 그 원리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오늘 나는 내 몸으로 직접 느낀 ‘부력의 힘’을 알게 되었고 그걸 이용해 수영을 생존도구로 이용해 왔던 인간의 지혜에 감탄을 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감탄이 있었다.


난 내가 물공포증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모두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몰랐기 때문에 겁이 났고 낯설기 때문에 두려워했을 뿐이다.

이 낯선 느낌을 회피하려고 물공포증이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시켜 왔었던 것 같다.


그러나 강사님을 만나면서 말도 머리도 아닌 내 몸으로 물과 노는 법을 알게 되었고 그 덕에 나는 물공포증이라 굳게 믿어 왔던 생각이 가짜 믿음 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TMI>> 잎새뜨기란?


누워 뜨기(잎새 뜨기)는 몸의 힘을 빼고 물 위로 누워 턱을 최대한 들고 양팔을 자연스럽게 펼친 후 발을 자전거 타듯 살짝 굴려주면 물에 떠오르게 되어 체력 소모를 낮게 유지할 수 있는 기술을 말하며 초등학교 의무 생존수업 과정에 포함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