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반 수린이들은 강사님의 성덕이 되었다.

START 스타트 #8 #9

by 더앨리스

#8

강사님이 어느 날 자유형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2비트 발차기 4비트 발차기를 알려주신다.


또 어느 날은 갑자기 돌고래가 되자고 하시더니 두 명씩 짝을 지어 주고서

둘이 번갈아 가며 돌핀킥으로 물속 짝궁의 다리 밑을 통과하라는 미션을 던지셨다.


우리들은 수영의 ‘수’ 자에 이제 막 눈을 뜬 상태였는데도 이처럼 처음 듣고 처음 보는 많은 동작들을 체험했다.


그런데 이런 도전들이 묘하게 재미있었다.


모든 일에 FM, 정석, 표준이라는 단어를 붙여야 직성이 풀리는 세상에서 우리는 FM도 정석도 아닌 스페셜한 야메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정석이 아닌, 틀에 살짝 벗어난 듯한 이 수업이 점점 좋아졌다.


약속이 생겨서 결석을 해야 하는 날이 오면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른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반 회원들 대부분이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


하루는 어떤 회원님께서 끝나고 커피 한잔 하자고 하셔서 티타임을 갖게 되었다.


그 자리엔 나보다 몇 달 먼저 수영을 시작하신 어머님 두 분과 수영을 하면서 친해진 동갑내기 수린이 한 명 그리고 나와 같은 시기에 수영을 시작하신 또 한 분의 회원님이 계셨다.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눈이 크고 예쁘신 어머님께서 자리에 앉자마자 강사님 칭찬을 쏟아 내신다.


본인은 30년 전에 수영을 했었고 오랬동안 하지 않았다가 몇 달 전 다시 수영을 시작했는데 우리 강사님은 보기 드문 실력자셔서 너무 재미있게 수영을 배우고 있다고 하셨다.


또 다른 어머님은 공황장애가 있다고 하셨다. 물공포증 또한 심해서 몇 번이나 수영을 포기하려 했으나 이 강사님을 만나면서 극복했다는 말씀을 하셨다.


'강사님의 팬이 나만은 아니었구나.'


눈이 예쁜 어머님은 마치 팬클럽 회장 같은 느낌이었고 티타임은 팬클럽 회원들의 정모 같았다.


우리들은 우리 만의 아이돌 덕에 즐겁게 수영을 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우리는 강사님의 열정적인 제자가 되어 수영을 즐길 줄 알게 된 수린이들이 되었으니 이런 게 바로 성덕(성공한 덕후) 아니겠어?




#9

즐길 수 있다는 것


물론 두 분 어머님들처럼 긍정적 에너지를 발산하는 사람이 있었던 반면 부정적 에너지를 발산하는 사람도 존재했다.


우리 수업이 정규수업같이 느껴지지 않았던 어떤 분은 실력이 늘지 않는다며 때때로 불평불만을 쏟아 내셨다.


힘들다고 투덜대기도 하고 개개인 자세를 자주 안 봐준다고 불평하시기도 했다.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다니시는 동안 출석은 꼬박꼬박 잘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초급반 인원이 너무 많아 개개인의 동작을 수정해 주기엔 쉽지 않다는 걸 그분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분이 불평을 늘어놓았던 건 그저 그분 삶의 습관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과 그 열정이 시시때때로 불평의 모습으로 튀어나왔으리라. 그분의 말을 듣고 있는데 왠지 모르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곳은 치열하게 경쟁하며 누구를 이기지 않아도 되는 곳인데 그분은 오래된 습관에 젖어 혼자만의 경쟁을 하고 계신 것 같았다.


사실 나도 가끔 동작이 잘 안 되고 다른 사람보다 많이 뒤처진다는 생각이 올라올 때가 있다.


어떻게 하면 숨이 편히 쉬어지지? 어떻게 하면 힘들지 않게 갈 수 있지?


어떻게 해야 동작이 자연스러우면서 빨리 갈 수 있지? 나는 왜 해도 해도 안되지? 등등 나도 습관처럼 고민하고 나 자신에게 불평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기분이 올라올 때마다 의도적으로 반짝이는 수영장의 물을 바라봤다.


그리고 내가 지금 즐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잘하지 않으면 어떤가?


그저 하루를 보내며 하루 중 단 한 시간 내가 물이 되어보고 물이 내가 되는 환상적인 느낌을 얻어간다면 그것 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삶을 즐긴다는 것에 대해 늘 무지 했었다.

돈 걱정 없는 사람들이 여행 다니면서 먹고 싶은 것 먹고, 사고 싶은 것 사면서 여유를 즐기는 것만이 삶을 즐기는 것인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안타까운 생각이다.

그런 왜곡된 관점 때문에 많은 시간을 심각하고 재미없고 지겹게 보냈으니 말이다.


회사생활 19년 동안 휴일과 휴가를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참아냈는데 막상 휴일이 되면 피곤에 지쳐 침대에 늘어져 있기 일쑤였고 날을 잡고 가족과 휴가를 가더라도 가슴에 늘 무겁게 뭉쳐져 있던 회사걱정, 일 걱정, 집안일 걱정 때문에 제대로 놀지도 못했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게 참 많았는데 이런 일상의 보물을 흔하다는 이유만으로 평가절하하고 제대로 보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회원님을 보며 불과 몇 년 전 아니 몇 달 전의 나를 보았고 그 분의 불평이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강렬한 메시지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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