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영! 넌 도대체 뭐니?

RUN 런 #5

by 더앨리스

학창 시절 중간과 기말고사를 비롯해 회사에 들어가서도 각종 자격증 시험을 준비할 때마다 기출변형문제라는 게 떡 하니 나와서 내 뇌의 사고체계를 뒤흔들곤 했었다.


평형은 나에게 바로 그 기출변형문제 같은 존재이다.


앞으로 전진하지만 자유형은 아니고 그렇다고 화려하게 날아서 멋지게 내리꽂는 접영도 아닌 것이 보기에도 어려워 보이고 하면 더 어려운 너!


평영은 자유형과 배영에 맞춰져 수평운동만 하던 내 몸을 사정없이 비틀어대며 수평운동에 더해 수직운동까지 시키는 오묘하고 피곤한 영법인 듯 느껴졌다.


손끝에서 발목의 힘까지 써야 하는 이 영법은 연습하면 할수록 더 알 수 없었다.


개구리처럼 다리를 접었다가 펴는 동작의 반복은 내 내전근 대퇴근을 비롯한 가랑이 주변의 모든 근육들의 자유의지를 박탈하게 만들어 주었고,

걸을 때도 잘 때도 그 근육들은 서로 자기들이 더 아프다며 아우성을 쳐댔다.


나를 비롯한 모든 회원들이 평영 연습을 시작할 때마다 한숨을 쉬었다.

서로의 자세를 보며 비교를 하고는 뭔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동작의 원인을 찾으려고 열심을 내보기도 했다.


평영에서 쭉쭉 앞으로 잘 나가는 사람들의 특징은 역시나 W모양으로 다리를 접는 개구리동작을 잘하는 사람들 이였다.


평소에 유연성이 좋은 사람들이 이 자세에 유리하다는 건 당연했다.


남성분들이 유독 힘들어했는데 평영을 익히는 초반에는 중년남성 회원들의 포기선언이 이어지기도 했을 정도였다.


나는 비교적 다리가 개구리처럼 잘 접힌다.

그래서 강사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으며 어머님 회원분들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왠 걸?


좋은 신체 조건을 가진 나였지만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제자리에서 깔짝거리다가 지쳐서 그냥 걸어갔다.


사실 이 시기에 나는 우리 반에서 엘리트 중의 엘리트 1번 선수가 되어 있었다.


우리 반 회원분들의 평균나이가 60세 정도였으니 나처럼 흐물거리는 40대가 조금만 잘해도 다들 박수를 쳐주셨고 젊음이 좋다며 부러워하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애증의 평영으로 인해 1번 선수에서 하루아침에 꼴찌 선수로 전략했고 줄 맨 끝 80대 회원님 뒤에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내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이처럼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당연히 기분이 가라앉는다. 부정적인 감정이 슬슬 올라오기 시작한다.


수업시간이 얼마나 남았나 시계를 한 번 쳐다보고 나니 갑자기 평영이 하기 싫다는 마음이 든다.


나는 속으로 웅얼거린다. ‘차라리 배영을 합시다. 나는 평영이 증말 싫어욧!’


이대로는 안 되겠다.

'나의 소중한 수영시간을 부정이에게 빼앗길 수 없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바로 마음챙김 타임


마음챙김은 언제 어디서나 다양하게 적용해 볼 수 있어서 더 매력적이다.


특히 수영할 때는 물의 부드러운 감촉, 호흡의 리듬, 몸의 움직임을 통해 모든 감각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나에게 수영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고 수영장은 그저 수영을 하는 공간만은 아니다.


수영을 하고 있는 이 순간 자체가 마음챙김의 실천이며, 수영장은 마음챙김을 맘 껏 해볼 수 있는 놀이터이자 마음챙김의 보물창고인 것이다.


내가 직접 수영을 하지 않더라도 마음챙김은 가능하다.


타인을 관찰하면서 내가 그들이 되어 감각을 느껴 볼 수도 있다. 그렇게 느껴진 느낌과 생각들을 내 방식대로 표현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금 이 시간에 온전히 존재하는 모든 것을 느껴 보는 것이 바로 내가 입이 닳도록 외치고 있는 마음챙김이기 때문이다.




[현실은 무의식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즉, 나의 무의식이 내가 존재하는 세상에 펼쳐지면서 내가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이 말에 100% 공감한다.


그래서인지 이따금 나를 둘러싼 세상을 관찰할 때,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런 생각은 세상과 나와의 긴밀한 연결을 느끼게 해준다.


요즘엔 수영수업의 틈새시간에 유독 그런 느낌을 많이 받는다.


모두들 분주하게 무언가를 하고 있는 이 시간, 내게 주어진 이 찰나에 귀로 들리는 모든 것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그리고 내게 닿는 모든 감촉을 생생하게 느끼다 보면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반짝이는 물의 흐름이 이리저리 바뀌는 모습을 보면 그냥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누군가의 물장구로 동글동글 물의 파동이 생겼다가 또 누군가의 몸짓으로 부채모양의 파동으로 바뀌기도 한다.


첨벙거리는 물소리는 새의 노랫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때로는 악기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순서를 기다리는 그 짧은 찰나에 시간이 잠시 멈춰진 듯, 물과 사람들이 같이 만들어내는 물의 공연이 펼쳐지고 나는 그 순간 나만을 위한 공연에 심취한다.


평형 그것 좀 못하면 어떤가?

내가 1등 선수면 어떻고 꼴찌 선수면 어떤가?


난 지금 그저 행복한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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