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하며 마음챙김 중 입니다만

RUN 런 #4

by 더앨리스

관조하고 관찰하는 것 혹은 차분히 명상하는 것을 시도했을 때 계속해서 실패하거나

전혀 그 길을 찾지 못해 헤맨다면 내 감정을 먼저 관찰해야 한다.


나의 복잡한 감정의 파동은 색안경이 되어 모든 상황과 문제를 왜곡된 시각으로 보게 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관조하는 것, 관조를 하기 위해 감정을 살피는 것, 명상을 하는 것,

그리고 이순간에 깨어있음을 느끼며 현재에 집중하는 마음챙김도 모두 마음공부에 속한다.


나의 내면을 이해하고 다스리기 위한 다양한 실천과 성찰과정이 바로 마음공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공부 중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것은 내 마음상태를 점검하는 것이다.


나의 삶을 주도하는 메인 감정을 구분해 내고 내 마음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살피다 보면 내가 살아오면서 수많은 상처를 받아 왔음을 알게 된다.

또한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는 왜곡된 시각과 관점이 내 안에 존재했음을 알게 된다.


이런 자각을 알아차림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 알아차림 이후 마음의 상처는 치유하고 왜곡된 시각은 서서히 변화시키면 되는 것이다.




내가 마음공부라는 것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매우 단순했다.


불평불만으로 가득 채워진 매일의 시간들이 지긋지긋해진 어느 날이었다.

'혹시 나의 노력으로 이 지겨운 삶을 변화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모든 일을 운에 맡기면 마치 나를 포기하는 것만 같았고 그렇다고 무언가를 열정을 갖고 하기엔 기력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매우 치사한 생각이지만 노력은 조금만 하고 많은 것을 얻기 원했다.


그런 것이 과연 있을까 싶었는데 신기하게도 있었다.

게다가 의외로 쉬운 방법이었다.


그건 바로 감사일기이다.


감사일기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었던 마음공부의 좋은 도구이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감사일기를 통해 정서적 치유를 경험해 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좋다면 나도 해 봐야지!

밑져야 본전 노트에 몇 줄 끄적거리는 게 뭐가 그리 어렵겠어!'


매일 하루에 세 가지의 감사를 적기로 결심하고 노트를 폈다.


'하~! 적을 만한 게 없네...

난 외모도 그저 그렇고 잘 살지도 않고 되는 일도 없고...

얼마 전 투자한 주식은 반토막이 났고..몸은 건강하지도 않고...'


'뭘 감사하라는 거지?

오늘은 일단 후퇴~'


처음 감사일기를 쓸 때는 '너무 가식적인 거 아닌가? 이런 것도 감사라고 할 수 있나?’ 같은 생각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좋다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들도 처음엔 이 어색함과 민망함을 겪었을 테지..라고 생각하니 가식이든 억지든 상관없으니 가짜 감사라도 적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귀찮음과 불편함에 젖어 있던 나를 다독이며 다시 시도해 보았다.


처음은 이렇게 짧은 문장을 적었다.

“창밖에서 예쁜 새소리가 들리니 기분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쥐어짜 낸 단순하고 미약한 첫 줄이었다.


그러나 감사일기 노트의 한 줄 한 줄이 채워지고 한 장이 채워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감사일기의 문장들은 서서히 생기를 얻어가기 시작했고,

나는 매일 마다 내가 적은 한 줄의 감사를 충분히 느끼게 되면서 그 감사함 자체에 푹 빠지기 시작했다.


“가족과 저녁밥을 먹는데 김치찌개가 너무 맛이 있었습니다. 혀로 느껴지는 매콤한 맛과 식감 든든한 뱃속 움직임.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무것도 아닌 일상의 모든 것들이 감사일기의 소재가 되면서 불평불만으로 가득했던 나는 점차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또 다른 변화들을 가져다주었다.

부정적으로 인식해 왔던 일상의 반복되는 일들 속에서도 감사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감사함에 집중하니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내 감정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고 사뭇 맑아진 마음은 이전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마주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감사일기는 흙탕물이 되어 버린 내 마음속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감사라는 강력한 감정이 내 마음의 정화수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더럽혀진 물에 매일 깨끗한 물을 부어준다면 그 물은 서서히 섞여 어느 때가 되면 1 급수의 맑은 물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나의 마음공부는 감사일기로 시작해서 내면아이 명상, 꿈 분석, 감정 돌보기, 독서치유를 비롯해 그 종류를 확장해 가기 시작했다.


사실 독서의 경우도 그냥 책 읽기가 될 수도 있었지만 책 읽기를 통해 마음공부를 한다고 생각하니 느껴지는 내용이 달라졌고 읽고 싶은 책의 종류가 바뀌었다.


이렇듯 나는 다양한 마음공부를 통해 참 많이 변화되었고 서서히 나다운 모습을 찾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늘 그렇듯 모든 일에는 크건 작건 권태기가 찾아온다.

그 권태기가 내 무료한 일상을 하나 둘 점령하던 시기에 나는 수영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연히 시작하게 된 수영이 나의 마음공부에 최적화된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상 모든 운동이 몸만 훈련하는 게 아니고 마음도 수련한다고 생각하면 동작 하나하나가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자신이 흥미 있는 혹은 잘하는 운동을 마음공부에 적용해 본다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 확신한다.







그렇다면 수많은 운동 중에 나는 왜 수영이었을까?


나는 그 이유를 차분히 그리고 천천히 생각해 봤다.


여러 가지 이유가 떠올랐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엄마 뱃속에서의 기억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포로 시작해 인간의 형태를 갖추고 몸에 영혼이 담기는 열 달 동안 나는 그리고 우리 모두는 엄마 배 안에서 양수 속을 유영했었다.


따뜻한 품에서 나와 세상을 경험하며 원래의 나, 온전한 내 모습을 점차 잃어 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살아가며 우리는 필연적으로 다양한 가면을 쓰며 살아가야만 한다.

어느 순간 점차 다양한 가면의 무게에 눌려 처음의 내 얼굴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렇고 그런 시간들이 차오르던 어느 때가 되니,

어쩌면 나는 본능적으로 양수 속에서 벌거벗고 자유롭게 유영하는 본래의 나를 기억하고 싶었었는지 모른다.


지금은 멀리 잊혀진 그때의 시간이 내 무의식 속에 잠잠히 숨어 있다가 수영을 통해 뾰족이 새어 나왔으리라.


그 시절에는 굳이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충분히 즐겁게 수영을 했었겠지.


"그렇다면 지금도 못 할 이유는 없다."


나는 수영을 배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잠시 잊혀졌던 그때의 감각과 느낌을 되살리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나는 아주 작은 존재였을 때부터 차고 넘치게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무섭기만 했던 물의 일렁임이 실상 내 생명의 모든 순간의 기억을 담고 있는 양수였고 나는 더 넓고 깊은 양수 속에서 다시 호흡을 해보고 다시 걸어보며, 바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나의 삶과 나의 몸과 나의 꿈을 맘껏 누릴 수 있으니 내게 수영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내 삶 자체가 된 것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수영을 하며 즐거운 마음챙김을 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