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망은 이루라고 있는거예요.

RUN 런 #6

by 더앨리스

수영을 할 줄 몰랐던 과거에도 나는 예쁜 바다와 멋진 수영장이 많이 있는 동남아 여행을 좋아했다.


예쁜 리조트에 탁 트인 야외수영장 그리고 한낮의 해를 머금은 바다의 일렁거림을 보고 있으면 뻑뻑함이 가득하던 내 마음에 느린 평온이 스며들곤 한다.


그곳에서 자유로이 햇빛을 느끼고 물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이 아름다운 풍경의 일부라는 사실에 흐뭇해진다.


그러나 이처럼 예술영화 같은 풍경 안에서 튜브를 꼭 껴안고 쉴 새 없이 버둥거리며 코믹영화의 한 장면을 찍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남편과 큰아이는 나름 수영을 좀 배운 터라 물속에서 장난도 치고 수영도 했으나 나와 둘째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혹시라도 우리에게 물장난을 칠 까봐 몸을 사리며 이리저리 피해 다니곤 했었다.


하루는 물속에서 한참을 첨벙거리다가 혹여 실수로 깊은 물속에 빨려 들어갈까 두려운 마음이 급습했다.


황급히 물 밖으로 나와 한숨을 돌리며 주변을 보고 있었는데, 그 순간 내 눈을 사로잡은 광경이 펼쳐졌다.


그건 바로 두 아이와 여행을 온 서양인 가족의 모습이었다.


물속에서 마치 돌고래가 된 것처럼 자유로이 유영을 하고 잠수를 하고 다이빙을 하며 즐겁게 웃는 그 가족을 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 풍경 안에선 두려움도 무서움도 어떠한 걱정도 존재하지 않았고 그저 깔깔낄낄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끊임없이 아이들에게 장난을 치며 즐거워하는 부모의 모습만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수영을 배워보려는 의지가 전혀 없었다.


튜브나 구명조끼 없이 물속에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워하던 나였기 때문이다.


'설마 내가 수영을 할 수 있겠어?

나도 하고는 싶지, 그런데 안될 것 같아.

난 이미 틀렸어. 다음 생에 물개로 태어난다면 모를까...'


내 안의 말도 안 되는 두려움 때문에 원하는 것을 시작도 해보지 않고 포기해 버리기 일쑤였다.


내가 이런 식으로 포기한 게 수영만은 아닐 것이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다가도 쉽게 포기해버리곤 했다.

이 포기의 결말은 자기 합리화로 연결된다.


[원하고 - 포기하고 - 합리화하고]

이것은 어느 순간 패턴이 되어버렸고, 나중에는 심지어 무언가를 바라고 꿈꾸는 것 자체도 싫어져서

'꿈꾸는 것' 까지도 포기해 버리는 습관성 포기자가 되어버렸다.


의욕도 없고 의미도 없는 꿈 꾸지 않는 매일의 일상 때문에 번아웃이 생긴 건지, 번아웃이 생겨서 꿈을 꾸지 않게 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의 감정과 미래에 대한 생각은 점점 색깔을 잃어가며 흑백의 건조함만 남게 되었다.




몇 년간 꿈의 휴식기를 거쳐 다시금 꿈을 꾸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때가 떠올랐다.

예쁜 리조트, 수영장, 서양인 가족...



'나는 꿈꿨었지, 물을 그토록 무서워하면서도 우리도 저 가족처럼 되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었어.'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이룰 수 있을까?'


그로부터 몇 년 후, 나는 우연히 수영을 시작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생각보다 재미있게...


내가 수영장을 다니는 동안 우리 둘째도 어린이 수영장을 보냈다.


우리 두 수린이들이 자유형과 배영을 익히고 평영을 한참 배우고 있을 때, 가족과 대만여행을 가게 되었다.


패키지여행으로 여기저기 관광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묵은 호텔에는 작은 수영장이 있었는데, 우리는 단 하루의 자유일정을 그 수영장에서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날은 한여름의 강한 햇빛이 풀장을 향해 비추고 있었다.

우리는 거침없이 물 안으로 첨벙 뛰어들어갔다.


이젠 튜브가 없어도 된다.

아이들과 장난을 칠 수도 있다.

아이들과 내기를 걸고 시합도 했다.


수영장에 하하호호 깔깔낄낄 웃음소리가 퍼져 나갔다.


우리 가족은 과거 언젠가 부러움 가득히 그저 바라만 보았던 그 서양가족의 모습이 되어있었다.



그렇다. 이로써 나의 로망은 행복한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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