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 again #7
꿈속에서 나는 넓고 깊은 바닷속에서 잠수를 하고 있었다.
나는 끊임없이 심해 속으로 들어갔다.
누군가에 의해서 빨려 들어간 게 아니라 내 의지로 더 깊은 곳을 향해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숨이 편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숨 쉴 필요성을 못 느꼈다.
심지어 물 밖에서 숨을 쉬는 것보다 편했다.
마치 내가 물인 듯, 물이 나인 듯 물과 내가 하나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꿈이 주는 메시지를 소홀히 여기지 않는다.
꿈은 무의식이 내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내면 깊은 곳에는 훌륭한 영화감독이 살고 있다.
감독은 매일 영화 한 편을 멋지게 기획하고 연출한다.
배역에 가장 알맞은 배우를 섭외하고 다양한 무대를 만들어 촬영을 한다.
어느 날엔 멜로영화를 또 어느 날엔 스릴러를 또 다른 날엔 막장드라마를 찍기도 한다.
영화 속에는 나의 내면이 전하고자 하는 다양한 메시지를 담는다.
드디어 나만의 극장에서 나만을 위해 영화를 상영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잘 때마다 꾸는 꿈이다.
집단무의식을 통해 주는 상징적 메시지도 있지만 나에게만 맞추어진 나에게만 적용되는 메시지도 있다.
꿈을 통해 나는 위로를 받기도 하고 나의 현재를 점검하기도 한다.
때로는 예지몽을 꾸어 앞으로 겪게 될 상황을 준비하기도 한다.
(칼융의 꿈분석 : 심리학자이자 정신과의사인 칼융의 분석심리학 중 꿈 분석 참고)
그래서 나는 늘 내가 꾼 꿈을 기록한다.
그날도 잠결에 기록해 둔 꿈을 잠이 깬 후 들여다봤다.
꿈을 꿨을 때의 느낌과 상황을 곱씹으며 꿈자아의 메시지에 주목했다.
꿈에서 주는 메시지는 너무도 분명했다.
나는 의식의 성장을 원하고 있고 그 성장을 위해 기꺼이 뛰어들었음을
내 무의식의 자아는 수영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해시켜주고 있었다.
나의 무의식 탐험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건 바로 나다움을 찾는 과정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나의 무의식 속을 유영하며 나의 억압된 모습과 숨겨진 기억을 마주하기도 하면서 나에 대해 끊임없는 재발견을 하게 된다.
수영을 잘하는 것은 단지 영법을 똑같이 익히고 훈련을 해서 완성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영법을 하더라도 다를 수밖에 없다. 신체가 다르고 힘이 다르기 때문이다.
수영도 나만의 수영, 나만의 호흡, 나만의 감각을 찾아가며 진짜 나다움을 향해 간다.
마음챙김도 나다움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 있다.
똑같아 보여도 그저 그렇게 보일 뿐 내가 너와 다르고 네가 나와 다르다.
누군가가 명상을 잘한 다고 해서 꼭 그렇게 따라 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가 마음공부를 하며 끊임없이 깨달음을 얻는다고 해도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나는 내 속도에 맞춰 천천히 나아가면 된다.
하루를 나답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
때로는 바보 같아 보이는 그 행위들을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새 진짜 나를 만나게 된다.
깊은 곳에서 자신을 찾아 주길 기다리고 있던 진짜 나를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