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첫날 물속에서

START 스타트 #3

by 더앨리스

물속을 들여다보면 그 깊이를 잘 알 수가 없다.


보통 강가나 바닷가에 가면 가늠할 수 없는 깊이와 예고 없이 들이치는 물살에 긴장감이 몰려온다.


물속에 들어가 내 두 발이 바닥에 닿지 않으면 마치 바닥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고 있는 듯한 공포심이 생긴다.


또한 물속에 들어가는 순간 커다란 돌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숨쉬기가 힘들어지는데 얼굴까지 물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더더욱 숨을 쉴 수가 없다.

물에 들어갈 때마다 내가 느낀 두려움은 단순한 불안함이 아닌 죽음의 공포, 바로 그것 이였다.


나의 물에 대한 이미지는 수영장 풀에서도 예외가 없었다.

분명히 이곳은 파도도 없고 수심이 깊지 않다는 것을 아는데 나는 왜 두려워하는 것일까?


내가 물을 두려워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최근부터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까지 샅샅이 소환해 보자.


그때가 아마도 중학교1학년 때였을 것이다.

계곡에서 발이 미끄러져 물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발이 닿지 않는 곳에서 허우적대던 그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그 이후 성인이 되어서도 그와 비슷한 경험을 몇 차례 겪은 적이 있다.


비슷한 상황을 만나면 생기는 그 두려움이 문제인 듯한데, 두려움 이란 놈이 “제발 없어져! 사라져!”라고 윽박지른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내가 두려운 마음을 가진 겁보이긴 하지만 그 원인이 내가 뭘 잘 못 했다 거나 의지가 나약해서도 아니다.

사실 두려움이라는 것은 마음속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머릿속 정확히 말해 뇌 속에 있다.

내 신체의 감각을 느껴보면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다.


두렵다는 느낌은 뭐지?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하면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산소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니 숨이 불규칙적으로 쉬어지고 갑자기 열도 나는 것 같고 몸이 파르르 떨리기도 하고 소화가 안 되는 느낌이 드는 것 같고 그러니 기분도 나빠지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모든 감각의 경험은 어이없게도 교감신경 활성화의 반응일 뿐이다.


쉽게 말해 나의 뇌가 나를 지키기 위해 모든 감각을 각성시켜 준비태세를 하는 것이다.


위기상황에서 정신을 차려야 도망가든지 맞서든지 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 의지의 문제로만 몰아가지 말자.)


이 교감신경의 짝꿍은 부교감신경인데 부교감신경은 교감신경과 정반대의 능력을 가진 호르몬을 공급해 준다.

그래서 인체 내부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다.


허~ 인체의 신비란 대단하지 않은가!!


아무튼 인간의 두려움은 살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종의 생존본능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동물이나 천재지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고도로 발달된 뇌의 기능을 지금 나는 바로 이 수영장에서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왜? 하필 그 체험을 여기에서?

난 즐겁게 물놀이를 하고 싶을 뿐인데?


난 뇌과학자도 의사도 아니기에 전문적으로 설명할 순 없다.


그러나 내가 이해한 바로는 요즘처럼 세상 복잡하고 정신없는 사회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스트레스와 자극에 빈번히 노출되다 보니 어느 한쪽이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버리는 상황이 생긴다고 한다.


안타깝지만 필요할 때 자연스럽게 발현되어야 하는 두 가지 역할이 꼬이면서 균형을 잃게 되고 이것은 당연히 각종 신체적 질병을 비롯해 수면장애나 공황장애 같은 질병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감각열기의 시작


나는 가끔 실체를 볼 수 없는 개념들은 사물에 빗대거나 의인화해서 이해하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나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을 마치 사람인 것처럼 상상해 보았다.


수영장에 몸을 담그며 내 상상 무대 위에 교감씨와 부교감씨를 초대했다.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잔뜩 긴장한 채 정신없이 벌크업을 하는 교감씨가 있다.

"준비해야 해! 지켜야 해! 싸워야 해!"

그런 그에게 부교감씨가 다가온다.

"진정해, 아직은 아니야. 지금은 네가 쉴 시간이야!"

부교감씨는 교감씨를 부드럽게 감싸 안아 차분하게 진정시켜 준다.


머릿속에 이런 이미지를 떠올리며 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천천히 부드럽게 내 몸에 산소를 공급해 주면서 동시에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해 보았다.

가장 크게 느껴지는 건 내 가슴을 압박하는 묵직한 물의 존재감이다.


압박감을 뒤로하고 내 손을 스치는 물줄기의 촉감과 발을 동동 뜨게 만드는 힘에 집중을 하니 점차 가슴의 답답함은 줄어들었다.


조금씩 안정감이 생긴다.

이번엔 내 몸을 동그랗게 말아 보았다.

그랬더니 물이 마치 나를 어부바해주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그 순간 차가운 수영장의 물이 이상하게 따뜻하고 포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마음의 긴장이 서서히 풀리던 때에 중요한 사실 하나를 인지했다.


혹여 내가 지금 이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더라도 이곳엔 여러 명의 강사들과 중급, 상급, 연수반 선배들까지 나를 구해줄 사람이 차고도 넘친다는 것.


갑자기 마음이 든든해지면서 위안이 된다.


그러니 괜찮다. 진짜 괜찮다.
이게 뭐라고~!
좋아! 그냥 해보는 거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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