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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한 Dec 25. 2019

타인의 일상

조용하면서 조용하지만은 않은 곳의 이야기들

평일 아침 집 앞 카페는 원래는 아주 조용했다. 시간이 흐르며 그 조용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조용한 곳에서만 할 만한 이야기들이 조금씩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야기 1 - 한 무리의 남자들이 아침부터 무거운 분위기를 몰고 와서는, 얼마 전 술자리가 파하고 사고로 숨진 40대 동료 이야기를 한다. 죽은 자는 산 자들에게 무거운 숙제를 남긴 듯하다. 대화가 길어지면서 점점 죽은 자보다 산 자가 피해자인 것 같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까, 얼마쯤 책임을 미루어도 괜찮다는 생각일까. 그걸 의식한 누군가가 빠르게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이야기 2 -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30대 정도의 남자가 50대 정도의 남자 두 명과 마주 앉아 있다. 30대 남자는 동료가 저지른 부정을 에둘러 좋은 표현으로 말하면서, 자신은 잘못이 없다는 뉘앙스를 은근히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50대 남자들이 공감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30대 남자의 태도도 조금 편안해지고 말투에 힘이 들어간다. 하지만 50대 남자들이 손에 쥔 칼이 어느 쪽을 내려칠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야기 3 - 60대 남자가 일찍 들어와 태블릿에 빠져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들어온 60대 여자가 그를 보고 움찔하더니, 한숨을 쉬곤 다가간다. 여자가 인기척을 내자 깜짝 놀란 남자는 곧 나갈 거라고 변명을 하고, 여자는 짧게 그를 나무란 뒤 다른 자리를 찾아 앉았는데, 남자가 나갈 때까지 찌푸린 표정을 펴지 않았다. 남자가 나간 뒤, 여자는 곧 휴대폰에 빠져든다. 그녀가 나무랐던 남자처럼. 남자는 뭘 잘못한 것일까.


이야기 4 - 한 쪽 구석에서 20대 중후반 정도의 그룹이 공부를 한다. 이들은 앞의 세 이야기를 듣지 못했겠지만, 이들 중 몇은 비슷한 이야기를 쓰겠지. 그땐 이러려고 공부했나 싶겠지만, 그래도 공부를 하지 않는 것보다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겠지. 신의 가호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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