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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나이든! 그랜드바자르

모든 길은 그랜드 바자르로

by 조영환

아야 소피아를 둘러본 그와 민수, 그리고 원철은 혼잡한 출구를 빠져나온다. 출구는 많은 사람들이 아야 소피아를 관람하고 나와 기념사진을 찍느라 혼잡하기 이를 데 없는 광경이었다. 그들도 아야 소피아에서의 특별한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 한 장을 남기기로 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나름 최적의 장소를 찾아 나선다. 혼잡한 출구에서 사진을 찍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웃음소리와 대화가 가득한 출구에서 가까스로 최적의 순간을 찾아 한 장의 사진을 남겼다. 이 사진에 담긴 이 순간은 그들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한 장의 사진을 남긴 후, 그들은 술탄 아흐메트 광장으로 향했다. 아야 소피아의 군밤장수의 손길은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여전히 분주한 모습이었다. 거리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곳을 찾은 사람들로 인하여 색다른 활기와 문화적인 다양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거리에 올망졸망 들어선 크고 작은 가게들은 손님들로 가득 차 모처럼 상인들의 주름살이 펴지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코로나 때 이곳의 상인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팬데믹 상황을 버티며, 매출 감소와 고정비용 부담은 물론, 재고를 떠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손실까지 견디어 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경제적 고통으로 매우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광장에는 ‘Bosphorus Tour’라는 문구가 새겨진 빨간색 2층 버스가 멈춰 있었다. 이 버스는 이스탄불의 주요 관광지를 도는 시티투어 버스로, 광장 정류장에서 관광객들을 내려놓고 다시 새로운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술탄 아흐메트 광장에서 둘러본 블루 모스크와 아야 소피아는 그들에게 이스탄불의 아름다움과 튀르키예의 역사와 문화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다양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술탄 아흐메트 광장엔 서로 다른 언어와 서로 다른 체취와 표정들이 뒤섞이며 역동성으로 가득하였다. 이곳에서 관람한 모스크와 아야소피아 등 많은 역사 유적은 미적 아름다움과 다양성과 통합의 상징으로 그들의 여행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버스에서 내린다. 광장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로 여전히 북적거린다. 푸른 이스탄불의 하늘은 여행객들에겐 또 하나의 선물이다. 술탄 카페 앞 노천에 마련된 테이블엔 사람들이 커피와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빵으로 요기를 하며 오후 햇살을 즐기고 있다. 이어지는 상가엔 옷 가지며 스카프, 기념품, 생과일주스를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붙잡고 판매하느라 모처럼 분주한 모습이다. 광장을 가로질러 걸어 오전에 보았던 오벨리스크를 지나고 식당과 카페 거리로 접어든다. 콘스탄틴 오벨리스크와 마르마라 대학교 사이의 골목길을 따라 액세서리와 카펫, 선물가게, 호텔 등이 밀집되어 있는 쉬히트 메흐메트파샤 (Şht. Mehmetpaşa Ykş) 거리이다.


쇠고기 케밥으로 유명한, 술탄 아흐메트 광장에서 걸어서 5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식당(Dragon Restaurant)을 찾아 들어간다.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 가며 아야 소피아까지 구경을 하였으니 시장이 반찬이다. 출출한 차에 우리네 떡갈비와 비슷한 점심 식사는 당연 맛있을 수밖에 없지 싶다. 600리라를 지불하고 맥주와 커피를 곁들여 맛있는 점심 식사를 마치고 다시 길을 따라나선다. 보스포루스 해협 남쪽 끝에 위치한 식당 골목 끝으로 마르마라 해가 설핏하게 들어온다. 점심 식사를 마친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시장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를 향하여 걷는다. '바자르'는 중동이나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시장의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사용되고 있는 ‘바자회’라는 말은 바로 중동 아랍지역의 장터를 의미하는 ‘바자르’에서 비롯된 말이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이 시장을 카파르 차르슈(Kapalı Çarşı)라 부른다.


튀르키예어 Kapalı çarşı는 '지붕이 덮여 있는 시장’을 의미한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오스만 제국은 경제적 번영을 추구하기 위하여 그랜드 바자르를 건설한다. 1460년에 완공하였다 하니 실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시장이라 할 수 있다. 고만고만한 상가들과 호텔, 카페, 약국, 귀금속을 판매하는 Gümüş Kolye, 길모퉁이에 자리 잡은 케밥(Kebap) 식당 오르타클라르 테라스 (Ortaklar Terrace) 등 많은 상점들이 들어선 거리를 따라 걷는다. 모스크 앞 광장 한편에 세워놓은 수없이 많은 오토바이로 가득한 거리엔 인파가 차고 넘친다.


터키의 즐거움이란 의미로 ‘목구멍의 편안함’이란 뜻의 Turkish Delight를 ‘NEVI’란 상호와 병기한 디저트 가게 앞엔 금발머리 여성들과 히잡을 쓴 이슬람 여성이 뒤섞여 흥정에 여념이 없다,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터키쉬 딜라이트를 파는 가게 앞에 몰려들어 문전성시를 이룬다. 크로커스 샤티부스(Crocus sativus)의 꽃에서 추출한 향신료 샤프란(Saffron), 마른 견과류와 꿀, 간식과 디저트들을 파는 상점, 테이블을 길가에 내어놓고 영업하는 노천카페도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기는 매일 반이었고 늘 일상적인 일인 듯 보였다. 그들은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거리의 광경이 조금은 부럽다는 이야기를 하며 걷는다.


시내 한복판의 공원묘지(Ahmet Tevfik Paşa Tomb)와 오스만 제국의 말기 술탄 아흐메트 II 세의 무덤(Tomb of Mahmut II. 30th Sultan), 330년 로마의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하며 세운 이스탄불 구시가지에 있는 콘스탄티누스 기둥 (Çemberlitaş Sütunu), 15세기 오스만 모스크 (Gazi Atik Ali Pasha Mosque), 18세기, 1755년 완성된 누루오스마니예 모스크(Nuruosmaniye Camii) 등 유적과 터키식 아이스크림 가게와 물 담배를 파는 바(Anadolu Nargile Çorlulu Ali Paşa Medresesi), 대형 공중목욕탕(Sultan Süleyman Hamam Traditional Turkish Bath - Great Fortune) 등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어 보이는 이스탄불다운 역사적 유적과 더불어 이스탄불의 현재가 한데 어우러진 거리는 활기가 넘칠 뿐 만 아니라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다채로운 풍경이다.


그랜드 바자르가 가까워질수록 거리는 더욱 복잡해지며 차량과 사람들이 뒤섞인다. 그렇게 상가가 밀집한 거리는 우리네보다는 소규모 상점들이 활성화되어 있어서인지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거리로 이어지고, 그러한 거리들은 모두 그랜드 바자르 한 곳을 향하여 이어진다.

https://youtu.be/vRG8IuSzoOQ?si=fHb8fMzPEFS6N_Zb

아잔이 울려 퍼지는 누로오스마니예 모스크(Nuruosmaniye Camii)

모스크에서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이 그랜드 바자르로 향하는 거리에 울려 퍼진다. 이슬람 세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아잔이 울려 퍼지는 거리를 걸으며 여행객들은 색다른 경험을 한다. 그렇게 골목은 그랜드 바자르로 이어지고 아잔은 골목을 따라 이스탄불 전역으로 흩어진다.


그들은 시장의 1번 출입구 누로스마니예 문을 찾아 본격적인 그랜드 바자르 투어에 나선다. 성문처럼 생긴 출입구에 들어서면 경비원이 지키는 검색대를 지나야 한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그랜드 바자르로 입장하기 위해선 역시 테러 위험 때문인지 누구나 검색대를 통과해야 시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검색대 앞에 근무를 서는 경찰은 시장으로 입장하는 사람들을 매의 눈으로 지켜본다.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시장 통로를 가득 메우고 북적거린다.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어디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을까? 무엇 때문에 이리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은 것일까? 마스크를 쓰고 걷고 있는 원철의 눈가에도 놀라운 표정이 역력히 그려진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눈앞에 벌어진 이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인파 속으로 스며든다. 초승달과 별이 그려진 튀르키예 국기가 천정을 비롯해 사방에 걸려있다. 이네들의 애국심과 국기 사랑은 유별난 듯하다. 관공서나 대학은 물론이고 식당이고 카페고 심지어는 버스에도, 가는 곳마다 붉은 국기가 걸려있다. 튀르키예 하면 초승달이 그려진 국기부터 떠오를 지경이다.


그랜드 바자르는 튀르키예 이스탄불 구시가지에 있는 대표적인 시장으로, 튀르키예의 역사적인 유산과 다양한 문화적 영향을 가진 중요한 무역 시장 중 하나이다. 1461년, 15세기 오스만 제국 시대 때 개장한 시장으로 현존하는 가장 크고 오래된 지붕이 덮인 전통시장이다. 오스만 제국 시대의 장인들이 만든 수공예품, 보석, 의상 등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곳으로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문화적 역사적 영향을 받아오며 튀르키예의 다양한 측면을 대표하는 장소로 자리 잡았다.


그랜드 바자르, 그곳에는 다른 곳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희귀한 물건들로 가득하다. 어디에서 만들어져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지, 엄청나게 많고 다양한 물건들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는, 마치 마법의 장소 같은 곳이다. 이곳은 물건만큼이나 다양한 상인들이 모여 수 세기 동안 상가를 형성하고 있다. 여행자들에게 또 하나의 튀르키예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수많은 인파에 떠밀려 내려가며 작은 골목들로 이어지는 상가를 둘러보며 걷는다. 상인들을 제외하고 튀르키예 사람보다 외국인 관광객이 더 많지 싶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들리는 곳 이어서인지 간단한 한국말로 상인들이 인사를 하고 흥정을 걸어오기도 한다. 없는 물건이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물건이 시장 골목골목에 빼곡히 들어선 상점에 진열되어 있다. 중앙 통로를 중심으로 작은 골목들이 끝없이 미로처럼 사방팔방으로 얽힌 시장은 딱 봐도 자칫 잘못하면 길을 잃기에 쉬운 구조이다. 이 정도면 차라리 길을 잃는 것이 그랜드 바자르 투어에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그랜드 바자르엔 미로처럼 복잡하게 교차하는 골목을 따라 늘어선 점포의 수가 약 4천500개에 달하고 성문처럼 생긴 입구가 21군데나 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골목 때문에 방향을 잃기 쉬운데, 동쪽으로 나 있는 1번 출입구 누로스마니예 문이나 서쪽으로 나 있는 7번 출입구 베야지드 문을 이용하면 한결 수월하다. 넓은 통로를 중심으로 작은 골목들이 퍼져 있고 출입구로 이어지는 구조다. 1번 출입구를 들어간 그들은 베야지드 문으로 나올 예정이다.


안녕하세요! 상인 중 한 사람이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다. 그들을 보고 용케 한국사람이란 것을 알아본 것인지, 아니면 한국사람들이 이곳을 그만큼 많이 찾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들도 상인에게 튀르키예 인사말 ‘규나이든!’과 우리말 '안녕하세요!'를 번갈아 섞어가며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찾는 곳인 만큼 상인들도 웬만한 인사말 정도는 하고 있는 모양이다.


한국말로 인사한 상인 앞으로 다가가서 이름을 물어보니, 상인은 외마디로 '아흐메드'라고 대답한다. 간단한 한국어 회화가 된다는 얘기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수 대에 걸쳐 장사를 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 한국말이 제법 유창하다 싶어 더욱 궁금해진 그가 '한국말을 잘한다'며 칭찬을 하자, '한국 드라마를 보고 배웠다'며 묻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랜드 바자르에서 장사하는 상인들 대부분이 자신처럼 집안의 가업을 잇고 있다 한다.


아흐메드의 어깨너머로 딱 봐도 고색창연한 튀르키예 전통가구, 도자기, 주얼리, 그림 등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골동품을 판매하는 가게로 보인다. 바디랭귀지를 동원해 '골동품 가게가 얼마나 많아?' 물으니, 그랜드 바자르에는 튀르키예의 역사와 맥락을 같이한 자신의 가게와 같은 골동품을 취급하는 가게가 상당수 있다고 한다.


아흐메드는 세계 여러 나라 말로 환영의 인사를 건네며, 다양한 손님들과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으며, 때론 자신이 취급하는 골동품과 튀르키예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방식으로 영업을 하는 그랜드 바자르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상인이었다. 그에게 비친 아흐메드는 이스탄불의 오래된 거리와 색다른 문화가 어우러진 그랜드 바자르에서 세대를 거슬러 내려온 장사꾼이기도 하지만, 이곳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아흐메드의 삶 자체가 튀르키예의 골동품 같았다.


‘안녕하세요!’로 시작한 아주 짧은 대화였지만, 수 대에 걸쳐 집안 대대로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아흐메드의 상당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아흐메드와 '바이 바이'라고 인사를 하며 헤어지려는데, 자신의 친구이자 옆 가게 상인인 이브라힘(İbrahim)의 터키쉬 커피(Turkish Coffee) 기구를 파는 상점을 소개하는 것도 잊지 않는 아흐메드다. 커피를 좋아하는 그에게 꽤 구미가 당기는 소개였지만, 시간이 그리 충분하지 않았기에 잠깐 이브라힘의 가게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렇게 아흐메드와 인사를 나누고 친구들과 함께 다시 그랜드 바자르 투어를 이어간다.


그도 튀르키예 여행을 앞두고 ‘오스만 제국의 꿈’, 술레이만과 휴렘 술탄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위대한 세기(Muhteşem Yüzyıl: Kösem)" 등 꽤 여러 편의 튀르키예 드라마를 찾아본 적 있는데, 이곳 사람들의 이름 중 가장 흔한 남자의 이름이 메흐메트(Mehmet), 아흐메드(Ahmet), 알리(Ali), 이브라힘(İbrahim)이었는데, 그 아흐메드와 이브라힘을 그랜드 바자르에서 만나게 될 줄은 전혀 생각도 못한 뜻밖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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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통로에 가장 많이 눈에 뜨는 가게는 보석상점이었다. 금은보석을 진열한 상점가가 끝없이 이어지는, 정말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는 금시장의 규모가 상당했다. '반짝반짝하다고 모든 것이 금이 아니다'라는 말이 생겨난 시장이라 한다. 진열장에 진열한 금팔찌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보다 몇 배 더 두꺼웠다. 팔찌에 어울리는 표현인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우아한 크기의 팔찌였다. 튀르키예 국민의 98% 이상이 이슬람교도이고, 과거 이슬람 여성들이 히잡을 쓰고 신체 노출을 최소화하였기에 금으로 만든 장신구를 애용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는데, 그랜드 바자르의 보석상점을 보니 그 말이 허언이 아닌 듯했다. 실제로 시장에서 가장 많은 점포는 약 1100여 개나 되는 보석 상점이고, 두 번째로 많은 품목은 카펫 상점이라고 한다. 질 좋기로 유명한 튀르키예 카펫은 대부분 수공으로 제작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랜드 바자르에서 가장 화려한 가게는 조명 상점이었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조명 가게들의 모습은 대단히 튀르키예스럽다는 느낌이었다. 올망졸망 다양한 조명기구를 매달아 놓은 가게는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장식처럼 느껴졌다. 화려한 주전자와 찻잔도 함께 진열되어 있는데, 모두 튀르키예의 전통적인 찻잔과 주전자였다.


다채로운 색감으로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는 도자기 제품들도 눈에 띄는 상품이었다. 모자이크 무늬로 장식된 큰 접시나 도자기는 마치 미술관에서 찾을 수 있는 도예 작품과 견줄 만한 수준이었다. 가게 안팎에 진열된 몇 개의 큰 접시만으로도 멋진 장식품이 될 것 같다. 유럽인으로 보이는 세 모녀가 화려한 도자기를 앞에 두고 직원과 한참 흥정을 하고 있는 모습은 꽤나 볼만한 모습이었다. 상인은 모녀 앞 뒤를 오가며 열심히 도자기를 설명하는 모습이었는데, 그가 보기엔 모녀는 결국 도자기를 사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시장을 구경하며 눈에 띄는 특이한 모습 중 하나는 가게 문 앞에서 차를 마시며 쉬고 있는 상인들의 모습이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상인들이 차를 마시며 서성이는 이 모습은 이색적인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시장이 문을 여는 아침 시간도 아닌데, 튀르키예식 홍차, 차이를 마시며 가게 앞에서 옆 매장 주인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특별한 장면이었다. 시장 안에는 그들이 지금껏 보아 왔던 일반적인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음식점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대부분 시장엔 음식점이나 간식을 파는 상인들이 있게 마련인데, 이곳엔 음식점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작은 찻집들이 일정 한 거리를 두고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들은 주로 차나 커피를 배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튀르키예는 커피와 홍차 문화가 공존했던 곳으로, 차 문화가 발달하여 왔고, 현재는 커피보다 홍차를 선호하며, 1인당 연간 차 소비량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시장 골목에서 튤립 모양의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차를 여러 잔 얹은 손잡이 달린 쟁반을 들고 시장 통로를 분주히 오가는 차 배달 모습은 그랜드 바자르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었다.


또 하나, 그들이 느낀 특이한 점은 그랜드 바자르 상인 대부분이 까만 턱수염이 가득한 남자들이었다. 양복이나 단정한 점퍼 차림의 상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여성 상인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전통적인 이들의 관습적인 문화에서 기인된 현상으로 짐작케 되는 점이었는데, 종교적인 영향과 전통적인 성 역할에 따른 이슬람 사회의 특징이 아닐까 짐작하며 시장 구경을 이어간다.


중앙통로를 가득 메운 사람들을 틈에 가끔 히잡을 쓰고 나온 이슬람 여성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스마트폰을 들고 여행의 순간을 간직하려는 관광객들, 손에 엄마의 손을 꼭 잡고 구경 나온 어린이들, 다양한 물건을 고르며 즐거운 쇼핑을 즐기는 사람들, 케밥을 먹으며 시장 통로를 자유롭게 오가는 젊은이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란 표정으로 시장을 둘러보는 만국의 사람들, 각양각색의 다양한 얼굴들과 활기 넘치는 표정으로 통로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랜드 바자르를 가득 메우고 있다. 그럼에도 붉은 초승달이 그려진 튀르키예 국기는 늘 그랬다는 듯이 아랑곳하지 않고 그랜드 바자르 중앙 통로 좌우에 게양된 채 사람들을 맞는, 그들에겐 꽤나 이색적이고 낯선 풍경이다. 그들은 수많은 인파가 마치 물결처럼 움직이는 이곳에서 사진 한 장을 남긴다.


이곳뿐만 아니라, 카파도키아 등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는 곳마다 기념품 가게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악마를 도망가게 해 재앙을 막아 준다는 튀르키예 부적인 '나자르 본주'(Nazar Boncugu)였다. 나자르는 튀르키예어로 "눈"을 의미하는데, 나자르 본주는 나쁜 눈초리나 부정적인 에너지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고 행운을 가져다주는 우리네 부적 같은 것이었다. 모든 것을 알라께 맡기는 인샬라의 나라 튀르키예에도 이런 부적이 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꽤나 놀라운 사실로 다가왔다. 밝고 투명스럽게 느껴지는 파란색 바탕으로 된 유리나 세라믹에 눈 모양이 그려진 나자르 본주는 크기가 작은 것부터 커다란 것까지 실로 그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였다. 조금 전 지나 온 광장에서 보았던 터키쉬 딜라이트 가게의 기둥에도 걸려있었고, 매듭공예품으로도 만들어져 상점에서 판매하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나자르 본주를 가정과 일터에서, 어른부터 아기까지 심지어는 자동차에도, 매우 폭넓고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인샬라의 나라 튀르키예에서 말이다. 그들이 튀르키예를 여행하며 타고 다닌 버스에도 물론 나자르 본주가 매달려 있었다.


그렇게 그랜드 바자르 중앙 통로를 걸으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보니 시장 구경에 절로 빠져들게 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닌 것이죠. 어쩌면 그만큼 매력적인 시장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관광객인 그들이 물건을 사기에는 쉽지 않았다. 정가제가 아니고 흥정을 해야 하는, 언어의 장벽이 흥정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호객꾼들 또한 상인만큼이나 많았기에 더욱 혼란스러운 공간이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소매치기 또한 조심해야 했다.


아무튼, 그들은 귀금속과 모피, 양가죽, 카펫, 찻잔과 그릇, 의류, 향수, 화장품, 터키쉬 딜라이트 등 다양한 생활용품과 기념품, 선물용품을 팔고 있는 그랜드 바자르 베야지드 7번 게이트를 빠져나온다. 하루 25만 명에서 40만 명의 관광객과 주민들이 방문해 항상 발 디딜 틈 없이 시끌벅적한 시장 치고, 상당히 깨끗하다는 인상이 남는 그랜드 바자르의 공기는 쾌적한 편이었다.


그들은 7번 게이트 모퉁이에 있는 환전소에서 환전을 하기로 하고 환율을 확인한다. 이곳 환전소의 환율은 다른 곳보다 훨씬 좋은 편이어서 300유로를 리라로 환전하니 5,955리라를 내어준다. 베야지드 모스크(Beyazit Mosque) 근처의 거리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곳에도 엄청난 사람들이 머물고 있다. 손수레로 여행객들의 짐을 운반하며 돈을 버는 이스탄불의 가장들이 여행객들을 기다리는 곳이고, 함께 온 일행들을 기다리는 여행자들로 가득한 곳이기도 하다. 거리에는 여행객들을 상대로 간단한 간식과 갓 착즙 한 신선한 오렌지 주스를 판매하는 손수레, 그리고 커피와 다양한 음료를 제공하는 손수레들이 성업 중이었다. 시장을 구경하고 나온 사람들에게 딱 맞지 싶은 간식과 음료를 파는 거리 상인들이다. 따스한 햇볕 아래 여행객들은 여행의 피로를 풀기 위해 한 모금의 상큼한 주스를 즐기며, 거리는 코끝을 자극하는 커피 향기로 가득했다.


이곳 이스탄불 그랜드 바자르에서 본 튀르키예 사람들은 비교적 편안하고 따듯해 보인다. 이스탄불의 오후 햇살은 그들만큼이나 따듯하게 여행객들을 맞는다. 부모를 따라 여행에 나선 아이들이 그들 만의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베야지드 모스크 근처의 거리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객들로 북적거린다. 주차선이 그어져 있는 것을 보니 주차장인 모양인데, 차량은 관광객들에게 자리를 고스란히 내어주고 단 한 대도 보이지 않는다. Beyazit란 간판을 건 부스엔 음료와 함께 Sosisli(소시지를 넣은 토스트), 바게트(Baget), 촉촉한 햄버거(Islak Hamburger, 소스와 양상추를 넣은 촉촉한(islak))를 20에서 25리라에 판매하고 있다. 잠깐을 서서 봤는데 장사가 곧잘 돼 보인다. 시장을 돌아본 관광객들이 하나 둘 사 먹는 간식이긴 한데, 우리 돈으로 대략 1300원 정도이니 가격도 착한 편이다. 카페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가득하다. 여행 기념품을 파는 상점엔 엄청나게 많은 물건들이 빼곡히 걸려있는데, 그냥 구경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빠져드는 매력적인 시장, 그랜드 바자르다.


휴식을 마치고 베야지드 모스크 담을 따라 이어지는 길을 따라 베야지드 광장으로 이동한다. 1시 56분, 모스크 담벼락에 의지한 채 노점상을 하고 있는 이스탄불의 상인은 이제 막 도시락으로 점심을 마친 듯 입가를 닦고 있다. 담벼락을 따라 늘어선 스마트폰 노점상들이 그저 많아야 10개 내외의 중고 스마트폰을 길바닥에 펼쳐 놓고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베야지드 모스크, 베야지드 광장 근처 이스탄불 대학교에 게양된 한 개도 아닌 두 개의 빨간색 초승달 국기가 유난히 파란 하늘 위에 펄럭였다. 어떤 의미에서인지는 모르나 이네들은 국기를 게양할 때 하나만 게양하는 법이 없었다. 이스탄불을 여행하며 우연히 관찰하게 된 것이지만 반드시 두 개의 국기를 게양했다. 그랜드 바자르의 거의 모든 상점들도 그렇고, 시장 출입구와 식당이나 호텔은 물론이고, 광장과 거리에도 가는 곳마다 빨간 초승달 국기를 반드시 두 개를 게양했다. 이스탄불 대학교 앞 베야지드 광장 골목을 따라 걸었다. 이곳에도 두 개의 국기가 게양되어 있었다. 버스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는 이곳은 이스탄불 대학교 인근의 셰자데바시(Şehzadebaşı Cd.) 거리다. 튀르키예어 거리를 뜻하는 말은 카데시(Caddesi)인데, 줄여서 거리명에 Cd로 표기한다.


베야지드 광장 Beyazıt Meydanı은 초기 오스만 제국의 베야지드 2세 모스크의 이름을 딴 광장이다. 프랑스 건축가 마리 오귀스트 앙투안 부르주아가 디자인한 이스탄불 대학의 정문 우측으로 로마시대 후기 Forum Tauri (나중에 테오도시우스 Theodosius의 포럼)인 베야지드 타워를 볼 수 있는데, 85 미터 높이의 화재 감시와 방송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탑이다.


이제 그들은 버스를 타고 이스탄불을 떠나 튀르키예의 수도인 앙카라로 향한다.

그가 본 그랜드 바자르는 튀르키예의 다채로운 색감을 엿볼 수 있는 곳이었다. 아흐메드의 골동품 가게와 이브라힘의 터키쉬 커피 기구를 파는 가게들은 전형적인 튀르키예의 색채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비록 짧은 시간 동안 그랜드 바자르를 돌아보고 느낀 인상은 매우 강렬했다. 아흐메드의 가게와 이브라힘의 커피기구 가게는 튀르키예의 전통과 현재가 공존하는 특별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그랜드 바자르에 또 하나의 작은 색채를 더해주는 가게였다. 마음 같아선 이곳에서 하루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생기는, 뭔가 강하게 끌어당기는 그런 매력이 있는 시장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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