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파자르는 당근으로 만 유명할까?
이스탄불은 역사적 자부심과 문화적 다양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도시였다. 그 중심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시장 그랜드 바자르가 있었다. 화려함과 다채로움으로 여행객들을 매료시키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시장을 구경한 것인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여든 사람들을 구경한 것인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던 그랜드 바자르 여행으로 오랫동안 이스탄불이 그들의 기억 속에 남을 것 같았다. 마치 시간의 터널을 통과하며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그곳은 이스탄불이 품고 있는 도시의 이야기 그 자체로 느껴졌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하였다.
그들을 태운 버스는 마르마라 해와 함께 이스탄불을 끼고 흐르는 금각만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넌다. 금각만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낚시에 열중하는 시민들 모습으로 이채로운 아타튀르크 다리이다. 터키공화국을 세운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이름을 따서 지은 다리 이름이다. 다리 위에 낚시꾼들이 많을수록 이스탄불의 경제가 어려운 상황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냥 언뜻 보기에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다리 위를 점령하고 낚시를 하는 평화스러운 풍경은 여행자의 눈에도 그저 평화롭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금각만에는 양안을 연결하는 네 개의 다리가 있다. 아래로부터 술탄 아흐메트 광장과 탁심 광장을 연결하는 갈라타 다리 Galata Köprüsü 와 지하철이 통과하는 할리치 역이 있는 금각만 다리 Haliç Metro Köprüsü, 그리고 조금 전에 건넌 아타튀르크 다리 Atatürk Köprüsü와 이스탄불 순환도로 O-1, İstanbul Çevre Yolu가 연결되는, 피에르 로티에서 가장 가까이 보이는 금각만 다리 HaliçKöprüsü이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금각만 일대의 풍경은 집들이 빼곡히 밀집되어 있는 여느 대도시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금각만을 사이에 두고 양안 언덕에 밀집된 집들 가운데 드문드문 솟아오른 모스크의 첨탑들이다. 이슬람의 도시 이스탄불을 여행하며 볼 수 있는, 낯선 여행자들에겐 조금은 특별한 풍경이지 싶다. 크고 작은 조선소가 자리 잡은 부둣가 항만에선 선박 크레인이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며 하역작업을 하고 있고, 도로 위로 많은 차량들이 질주하는 튀르키예 최대도시 이스탄불의 역동적인 풍경이 빠르게 차창 밖으로 지나간다.
유난히 파란 하늘이다. 어찌 이리 구름도 한 점 없을까? 하늘을 그저 쳐다보게 되는, 보면 볼수록 빠져들게 되는 매혹적이기까지 한 너무나도 파란 하늘이다. 너무 선명한 파란 하늘이다 보니 하늘에 뜬 비행기 모습이 가까이에서 보는 것처럼 뚜렷하게 식별된다. 눈이 시리도록 선명한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그는 잠시 상념에 잠긴다.
그가 튀르키예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된 것은 그저 답답하고 불편했던 지난 1년여의 시간 때문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겨울이 지나기 전에 어디든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라는 글을 쓴 후였다. 한 장 남았던 달력을 뜯어낸 게 엊그젠데, 아무것도 한 거 없이 한 해가 간 기분에 주저리주저리 써 내려간 글을 쓰고 나서 실행에 옮긴 튀르키예 여행이었다.
그렇다고 전보다 더 아픈 어깨를 부여잡고, 잠 못 이루는 밤으로 울고 싶을 지경에 이른 그에게 소소한 일상이 없었던 건 아니다. 소소한 행복을 쌓아가는 고만고만한 일상을 보내던 중, 가을 국화꽃처럼 화사하시던 어머니께서 세상 소풍을 끝내시고 오셨던 곳으로 돌아가셨다. 잎은 지고 꽃만 남으신, 가을걷이를 끝낸 빈 들녘처럼 바싹 마른 어머니를 보내 드리고, 이젠 정말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내까지도 없는, 그야말로 세상에 혼자가 된 느낌으로 버석버석한 콩대 같은 가을을 보낸 셈이었다. 그리고 겨울이 왔다. 해마다 맞는 겨울이지만 점점 익숙해지지 않는 그 겨울, 그저 그렇게 바람에 쓸리는 낙엽처럼 살고 싶어 진다 느끼며, 시작도 하지 않은 겨울 문턱에서 따듯한 봄을 기다리며 “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것이다. 달빛과 가로등이 소곤소곤 서로의 이야기를 하느라 분주한 하얀 새벽에.
오후 2시 10분, 그들의 여행은 이제 이스탄불을 출발하여 또 다른 튀르키예 땅으로 향한다. 이스탄불에서 앙카라까지는 시속 90㎞로 달리는 버스로 약 4시간 30분가량 소요되는 거리이다. 약 1시간 50분을 달리고 고속도로 휴게소 Total Energies İstasyon에서 15분을 쉬어 간다. 주유소와 소규모 마트, 그리고 카페가 영업을 하는 휴게소이다. 화장실도 깨끗하고 휴게소 환경이 쾌적한 편이다. 휴게소 주변을 걸으며 가볍게 몸을 풀어준다.
튀르키예 관광버스의 운행속도는 90㎞/h로 엄격히 제한되고 2시간을 운행하면 15분을 정확하게 쉬어야 한다. 도로마다 폴리스 컨트롤이 있어 운행기록 장치를 확인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엄청난 벌금을 물린다고 한다. 여행객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관광법에 따라 엄격히 과속과 무리한 운행을 법으로 금지시킨 것이다. 이 점은 유럽 다른 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제도이다.
에스프레소 한 잔으로 달콤한 휴식을 마치고 오후 4시 05분 다시 출발한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내다보며 달리는 버스에 몸을 맡긴 그들의 여정은 그렇게 이틀째 오후를 맞는다.
그들은 앙카라로 가기 전 베이파자르에 들를 예정이다. 사판카 호수 Sapanca Gölü를 초원지대인 사카리아 Sakarya 주의 아다파자르 Adapazarı 를 지난다. 아다파자르는 기원전 378년 고대 정착민들이 거주하였던 초원지대로, 서기 533년 비잔틴 황제 유스티니아누스가 건설한 상가리우스 다리 등 당시 동로마제국의 군사도로가 이스탄불에서부터 이어지는 도시다.
아다파자르를 지나자 버스는 140번 국도로 접어든다. 오후 5시경 도로를 따라 상가가 형성된 작은 마을 Kuzuluk를 통과한다. 크고 작은 상점들이 이어지는 길 가에 보이는 아주 작고 아담한 모스크 Ihals Cami는 지금까지 이스탄불을 여행하며 보았던 모스크보다는 아주 작고 소박한 규모의 모스크였다. 규모만 작을 뿐이지 하얀색 벽체와 첨탑, 푸른색 돔 지붕은 이스탄불에서 보았던 모스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몇 개의 작은 마을을 지난 140번 국도는 볼루 주 경계로 들어서며 구불구불 산을 휘감으며 이어지고, 버스는 이미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 산중 보즈야카 휴게소에서 다시 쉬어 가기로 한다. 사방을 둘러봐도 붉은 햇무리가 산 능선 뒤에 가까스로 걸려있는 산중에 주유소를 겸한 휴게소였다. 주유소는 셀프로 운영되는 것 같았고 휴게소 또한 이미 영업을 끝내고 문을 닫은 상태이다. 이곳에 당도한 시간은 오후 6시 20분이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출발한 지 꼭 2시간이 된 셈으로 2시간 운행을 하고 정확하게 15분 휴식을 취하는 셈이다.
다시 베이파자르를 향하여 출발한 버스는 앙카라 날리한Nallihan이란 작은 마을을 지난다. 그리고 곧이어 카이르한Çayırhan 이란 작은 마을도 지난다. 이곳에 이르기 전 170번 국도상에서 울루한Uluhan이란 작은 마을도 보았는데, 날리한은 Nallı 강 옆에 있는 고대 실크로드에서 동양으로 향하는 캬라반 세라이 Karavan Saray, han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고대 실크로드를 따라 이어지는 D-140번 국도를 타고 샤리야르 댐 근처까지 온 셈이다.
그런데, 갑자기 짙은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근처에 있는 댐의 영향인 듯했다. 주변 풍경은 실루엣처럼 흐릿하게 보이며, 분위기는 신비롭고 조용했다. 왕복 2차선으로 이어지는 도로변에 불쑥불쑥 솟은 낮은 산들은 그 흔한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보이지 않고, 지층이 그대로 드러난 붉은색, 또는 푸르스름한 회색빛깔의 민둥산이거나 바위산이었다. 민가는 어쩌다 하나씩 보일 뿐이었다.
짙은 안개에 휩싸인 댐 근처 산간도로를 거북이걸음으로 달리는 그들을 태운 버스다. 과거 터키공화국을 수립한 아타튀르크 대통령은 이스탄불이 수도로 적절치 못하다는 판단을 하고 수도를 앙카라로 옮긴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산악지형이 많아 접근이 어려운 앙카라의 지형적 장점을 꼽았다고 한다. 이스탄불처럼 바다에 노출되어 이미 정복당한 전례가 있는 것보다는 앙카라가 수도로 적절하다는 판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베이파자르로 이어지는 140번 국도변은 황량한 느낌마저 드는 그런 길이었다. 도로는 좁고 시야는 불과 2~3미터도 확보되지 않는 안개로 휩싸인 그런 길이었다. 비상시 접근이 용이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럼에도 안개로 만들어진 독특한 분위기는 그들의 여행에서 또 다른 경험이었다.
그나마 베이파자르가 가까워지자 길가에 푸릇푸릇한 풀포기와 나무들도 보이고 민가도 조금씩 나타난다. 산악지대임에도 그리 높은 산은 보이지 않고 크고 작은 산들이 멀리 보여 마치 평원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서서히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내리는 시간, 이스탄불 보다는 해가 일찍 떨어지는 느낌을 받으며, 그들은 그렇게 오후 7시 30분, 예정보다 한참 늦은 시간에 안개로 가득한 베이파자르에 도착한다.
이 지역은 앙카라와 에스키셰히르 경계를 가르며 사카라이Sakarya강이 흐른다. 이스탄불에서 남동쪽으로 330km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에스키셰히르는 인구 약 63만 명의 도시다. 베이파자르는 앙카라와 에스키셰히르 중간쯤에 위치한 인구 3만 5천 명의 작은 마을이다. 사카라이강은 유프라테스강(2,800km, 튀르키예 국경 내 길이는 1,263km)과 키질이르마크 Kızılırmak(1,355km) 강 다음으로 아나톨리아 북서부에서 가장 큰 강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강의 신 상가리우스(Sangarius)에서 이름을 따온 유역의 길이가 824km에 이르는 수도 앙카라의 젖줄이다.
베이파자르 서쪽과 남부지역 사카라이강에 건설된 예니스 수력발전댐(Yenice Hidroelektrik Santrali, Hasan Polatkan Hidroelektrik Santrali, Gürsöğüt 1-2 Barajı) 등 네 개의 댐으로 이루어진 샤리야르 Sarıyar Dam 댐은 1956년에 완공된 콘크리트 중력댐으로 터키공화국 출범 초기 심각한 경제난과 수자원 확보, 경제성장을 위한 산업전기 확보를 위해 지어진 튀르키예 최초의 대형 HEPP(수력 발전소) 댐이다. 40MW의 교류발전기를 네 곳의 댐에 설치하여 시설용량 160MW, 연간 약 378~400 GWH 전력을 생산 공급하고 급수를 위하여 건설된 대규모 댐이다. 시설용량 20만 kW(200MW), 연간 전력 생산량 353 gwh의 사력砂礫 댐인 춘천 소양강댐과 비교하면 크기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대규모의 내수면이 있는 고장은 안개일수가 많은 편이다. 그들이 살고 있는 춘천 또한 소양강댐, 의암댐 등으로 안개가 도시를 덮는 일이 자주 발생하는 편이다. 대규모의 물을 가두어 놓은 댐을 옆에 두고 이어진 짙은 안개가 자욱한 산간 도로였기에, 버스도 상당히 서행을 하며 이곳에 도착하였다. 그러다 보니 예정 시간을 훨씬 지나 도착한 셈이다.
첫날 비행기에서 내려 오후 일정으로 잡혀 있던 그랜드 바자르 투어를 늦게 합류한 일행으로 인해, 1시간 30분가량을 공항에 버리고 지체되는 바람에 건너뛰고 오늘 아야 소피아 관람을 마치고 둘러보았으니, 오스만 시대의 주택 원형, 붉은 지붕에 흰색으로 칠해진 벽이 두껍고 창문이 작은 특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오스만 전통 가옥을 보는 것은 물 건너 간 셈이다. 스페인 안달루시아를 여행하며 보았던 미하스 같은 예쁜 마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오르며 아쉬움이 커져만 갔다. 200년도 더 된 전통 재래시장도 꽤나 볼만한 베이파자르에 7시가 넘고도 30분이 지난 시간에 도착하였다. 그야말로 주마간산이 되어버린 베이파자르 일정이라 해야 하지 싶다.
아무튼, 버스는 베이파자르 마을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국도를 따라 마을 동쪽으로 더 들어가 아타튀르크 공원에서 정차한다. 버스에서 내린 그들은 오랜 시간 버스를 타고 이동한 지라 공원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어준다. 안개는 끼었지만 거리엔 아직 인기척이 있고 마을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불을 밝히고 영업 중인 상점들도 꽤 되어 보였다. 공원 옆 상가를 따라 잠깐 걸으니 베이파자르 마을임을 알리는 문자 조형물이 안갯속에서도 제 구실을 하려 무던히 애쓰고 있었다. 빨간색 하트 문양과 파란색 BEYPAZARI 글자들이 안개에 휩싸인 채 낯선 여행객들을 맞는 마을 입구이다.
공원을 끼고 시장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특이하게 인도와 도로 구분이 쉽지 않은, 동일한 블록을 사용하여 포장하였다. 차도엔 붉은색을 띤 블록을 사용하였고, 도로 중앙엔 둥그런 모양의 화분과 직사경형 모양의 화분이 교차적으로 놓여있다. 노란색과 흰색으로 차선을 그려 놓은 일반적인 도로개념과 전혀 다른 도로였다. 그리고 차도와 보도 사이에도 화분을 배치하여 보차도를 구분하였다. 아스팔트 포장이 아니고 울퉁불퉁한 블록이 깔려 있어 차량들이 마을 안 도로에서 과속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지 싶다.
그렇게 마을 입구 아타튀르크 공원에서부터 안개가 짙게 깔린 베이파자르 도심을 걸어 끝에 이른다. 광장이라 하기에 규모가 작은 원형 교차로 같은 곳이다. 안갯속에서 희끄무레하게 모습을 드러낸 당근 조형물이 광장 한가운데 세워져 있다. 이미 어둠이 내리고 안개가 자욱한 곳에 세워진 당근 조형물은 보기에 따라 조금은 기괴한 모습이기도 했다. 이곳이 당근으로 유명한 마을임을 단번에 알 수 있는 조형물이었다. 마을의 재래시장 골목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베이파자르는 북쪽의 흑해와 남쪽 지중해 사이 아나톨리아 반도의 중앙 내륙에 위치한 해발 675m, 우리나라로 치면 평창 정도 되는 해피 700m의 고도 위에 위치한 마을이다. 베이파자르에서 앙카라는 동쪽으로 약 100㎞ 거리이다. 튀르키예의 주요 관광지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오스만 제국 시대의 주택들이 잘 보존되어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역사적으로도 유명한 내륙도시다.
앙카라 외곽의 베이파자르는 과거 히타이트, 프리기아, 갈라티아, 로마, 비잔틴, 투르크 셀주크, 오스만 왕조의 지배를 받으며 고대부터 사람들이 정착했던 도시였다. 특히 투르크 족이 아나톨리아를 지배하던 셀주크 시대에는 이스탄불과 바그다드를 연결하는 실크로드 무역의 중심지였으며, 오스만 제국 시대에는 정부군이 주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지금은 튀르키예 당근의 60%가량을 생산하는 도시로 은세공과 천연 미네랄워터로 유명하다. 베이파자르 광천수 Beypazarı Maden Suyu는 이 마을에서 생산되어 세계로 수출하는 미네랄워터로 마그네슘, 나트륨, 중탄산염 및 기타 미네랄이 풍부하게 함유된 광천수로 유명하다. 유리 제조에 쓰이는 천연 소다인 트로나(Trona)가 이 마을에서 생산된다.
지리적으로 베이파자르와 앙카라는 아나톨리아반도의 중앙 고원지대에 오래전부터 발달한 정착도시다. 베이파자르의 정착기원은 기원전 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에는 라가니아(Lagania)로 불렸으며, 기원전 3세기 갈리아인들의 점령으로 갈라티아에 속했던 마을이다. 튀르키예의 동부 지역에 해당되며, 흑해 연안 폰투스 산맥, 지중해 연안과 아나톨리아 고원을 구분하는 토르스산맥(Toros Dağları)으로 둘러싸여 있는 내륙지역이다. 동쪽으로 갈수록 높아진 산악지형은 튀르키예와 중동 지역에서 가장 높은, 성경에 그려진 대홍수 때 노아의 방주가 닿았다는 해발 5,185m 아라랏산(Ağrı Dağı)에 이른다. 인류 문명을 잉태한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발원하여 아나톨리아 남부의 평야를 적시고 시리아와 이라크를 가로지르며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궈낸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 상류, 아디야만주와 샨리우르파주에 걸쳐 있는 엄청난 호수에 튀르키예 정부는 아타튀르크 댐Atatürk Dam과 비레시크 댐bireck Dam을 건설하여 수자원 확보에 나섰고, 강 하류의 시리아와 이라크는 이에 반발하며 물 분쟁과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지역이다.
아무튼, 그런 베이파자르 재래시장 골목으로 들어간 그들은 상점에서 시식용으로 잘라 놓은 당근을 한 개 먹어본다. 달착지근하니 단맛이 매우 강한 당근이다. 까무잡잡한 수염에 예수님처럼 머리를 길게 기른 로컬가이드 마미가 건네주는 주스도 마셔보니 우리네 당근으로 만든 주스보다 단맛이 훨씬 강하다.
당근은 땅 속에서 자라는 작목이다. 땅 위에 이파리만 봐서는 작황을 알 수 없는, 고구마나 감자 같은 뿌리식물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토양이 매우 중요한데, 베이파자르가 당근으로 유명한 까닭은 바로 광천수가 풍부한 이 지역의 물과 비옥한 토양, 해피 700m의 선선한 기후와 관련 있는 듯했다. 당근주스 한잔에 5~6리라 정도이니 우리 돈으로 3~4백 원 정도이다. 싸도 너무 엄청나게 싼 셈이었다. 상점 주인은 분주하게 손을 놀리며 부지런히 당근주스를 만들어 여행객들에게 제공한다. 당근 주스를 마시며 어둠과 안갯속에 잠긴 시장 골목을 이리저리 기웃거려 보지만, 시장 상인들은 이미 모두 철시한 후인지라 텅 빈 시장 골목엔 여행자의 아쉬움이 보태어진 썰렁한 바람만이 그들을 맞은 셈이었다. 주변의 가게가 모두 문을 닫은 것을 보니, 안갯속 산악도로를 넘느라 예정보다 지체된 그들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도를 열어 확인해 보니 베이파자르의 재래시장은 셀 수 없이 많은 골목이 이어지며 상당히 넓은 지역에 걸쳐 형성된 시장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당근주스를 마시고 있는 지점은 그저 시장 입구의 한 골목에 불과하다.
물론 앙카라로 가면서 들러가는 일정이었지만, 당근주스 한 컵으로 베이파자르 일정을 마치고 안갯속에 싸인 베이파자르를 떠나는 것은 너무나도 아쉬운 일이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예기치 못한 일이 왕왕 있게 마련이기에 십분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스탄불 공항에서 일행의 합류 지연으로 일정이 꼬인 데다, 안개라는 불청객까지 만나 베이파자르의 전통 주택가와 재래시장을 제대로 못 보고 가는 셈이라 아쉬움이 더 컸던 그들이다. 하지만 어쩌랴, It's no use crying over spilt milk.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아쉬워한다고 담아질 리 없는 노릇이었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 때론 예측 가능한 것보다 예측 불가능한 것이 많은 일이 여행이다. 늘 반복되는 일상처럼 예외적 상황이 없다면 여행도 아닌 셈이다. 그들은 엎질러진 물에 아쉬움까지 넣어 만든 당근주스를 한 컵씩 마신다. 외국 여행을 나오면 입맛에 잘 맞지 않는 음식 때문에 다소 고생을 하는 민수도 당근주스는 먹을 만하다며 시식용으로 잘라 놓은 당근을 몇 개 더 집어먹는다. 그렇게, 아쉬움은 당근주스 가게에다 남겨두고 썰렁한 시장 골목을 빠져나온다.
그나마 당근 조형물이 세워진 광장 주변 거리에서 볼 수 있었던 오스만 주택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상가로 사용하고 있는 1층의 면적이 테라스를 만들어 넓게 사용하고 있는 2, 3층의 주택보다 적다. 오스만 시대 주택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튀어나온 테라스를 떠 받친 ‘ㄱ’ 자 형태의 기둥 구조물이 확연히 드러난다. 당시 오스만 제국은 1층 바닥 면적으로 세금을 부과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1층 면적을 적게 하여 세금을 덜 내고 2, 3층은 테라스를 들여 넓게 사용할 수 있는 주택을 지었다고 한다. 요즘 우리네 사정에 비추어보면, 이들은 이미 오스만 시대 때 발코니 확장을 한 셈이다. 그들이 보고 있는 창문이 많은 상가도 딱 그렇게 지어진 주택이다. 상가를 따라 내려오면서 본 건축물도 대개 3층으로 지어졌으며 전통적인 오스만 주택형태를 띠고 있었다. 어떤 건축물은 3층에 테라스를 들여 2층보다 튀어나온 건축물도 보였다. 광장 주변의 상가 건축물은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형태는 오스만 전통 가옥 형태를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그들처럼 친구들과 함께 온 여행자, 그리고 모녀, 부부 등 다양한 여행자들 역시 아쉬움 때문인지, 짙은 안갯속에서도 당근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남기느라 분주하다. 조형물 주변에 모여든 여행자들을 피해 곡예하듯 달려가는 오토바이 소리가 순식간에 안갯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희붐한 안갯속에서 길을 밝히는 노란 불빛이 거리로 쏟아져 내린다. ‘Hanlarӧnü Meydanı’란 글자가 새겨진 조형물 기단석만이, 안갯속에서도 이곳이 베이파자르 한라뢰뉘 광장이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조형물을 중심으로 광장을 사방팔방으로 가로지르며 걸려있는 붉은색 초승달이 그려진 튀르키예 국기 또한, 이곳이 튀르키예의 땅이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거리는 한산하고 오가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은, 안개로 가득한 베이파자르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한 장 남긴 그들은 아타튀르크 공원으로 되돌아온다. ‘Atatürk Parkı 2011’ 이란 글자가 새겨진 아타튀르크 공원 조형물, 공원 모퉁이에 대기하고 서있는 택시, 희끄무레한 안갯속으로 멀어져 가는 차량들의 빨간색 미등, 드문드문 열어 놓은 상점가를 걷는 사람들 모습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온 베이파자르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자욱한 안개에 싸인 마을은 그곳에서 일상을 사는 주민들에게도 늘 겪는 일이지만 그저 익숙한 일만은 아닌 듯했다. 마을엔 더 짙은 안개가 내려앉고 그들은 그렇게 짙은 안갯속을 걸으며 베이파자르를 떠난다.
그렇게 주마간산이 된 베이파자르를 떠나 8시 10분경 앙카라 외곽 히타이트 아야 공원(Hitit Ayas Park) 근처의 호텔(Medi Thermal Park Otel)에 도착하여 식당으로 이동하고 늦은 저녁식사를 한다. 호텔 식당에 갖가지 음식들이 뷔페로 준비되어 있었다. 식당 벽엔 역시 두 장의 붉은색 국기가 붙어있다. 가는 곳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초승달이 그려진, 여정 이틀째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익숙해진 튀르키예 국기다.
튀르키예는 유구한 역사와 동서양의 다양한 문명이 교차되었던 만큼이나 먹을거리가 풍부한 나라이다. 땅도 넓고 비옥하여 1년씩 땅을 놀리며 휴경을 하는 나라이다. 이들의 삶 속에 ‘인샬라’라는 의식이 싹트고 자란 데에는 종교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날씨가 따듯하고 먹을거리가 많은, 그래서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먹고사는데 크게 걱정이 없는 풍부한 먹을거리도 한몫했을 것 같다.
문명은 결국 생존의 문제이다. 서 아시아 아나톨리아 반도와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의 인류문명의 발상은 우연이 아니다. 지금처럼 난방이 용이하지 않았던 고대 사회에선 따듯한 기온과 풍부한 먹을거리가 필수적인 생존 요소였다. 그렇게 인류가 생존하기에 용이했던 땅이 바로 지중해 연안이었고 지중해를 중심으로 번영한 그리스 문명이었다. 그리고 서남아시아의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 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었으며, 기원전 3200년경 나일강 유역에 정착한 햄족이 탄생시킨 이집트 문명이다.
그들은 식당을 한 바퀴 돌며 우선 눈으로 차려진 음식을 먹는다. 너무나 많은 종류의 음식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포만감이 생길 정도였다. 누가 말했는지 정확한 말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고 시장이 반찬이다. 이스탄불을 출발하여 이곳 앙카라까지 오면서 잠시지만 베이파자르에 들러 당근주스를 마신 것이 전부이니 배가 고플 때가 지나도 한참 지난 것이다. 역시 진리는 단순하다. 우선 식사 때마다 나오는 튀르키예 사람들이 즐겨 먹는 수프 에조겔린 초르바로 목을 축이고 콩과 야채를 곁들인 샐러드 피아즈, 야채요리 삭슈카, 야프락 돌마, 이스켄데르 케밥, 우리네 떡갈비와 비슷한 쾨프테 등 이름도 모르는 요리로 맛있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다.
그들의 튀르키예 여정 이틀째 밤이 앙카라 외곽의 한 호텔에서 깊어 간다. 가끔 창문 너머에서 소리 없이 속삭이는 바람소리는 그들의 귓가에 맴돌고, 침대에 누워 두런두런 얘기하는 그들의 이야기 소리는 앙카라의 평화로운 밤과 함께 그렇게 깊어 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