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관광법과 폴리스 컨트롤, 발렌시아 València 발렌시아 거리 Calle Valencia
스페인 관광법과 폴리스 컨트롤
메스키타-코르도바 대성당(Mezquita-Catedral de Córdoba)에서 약 30분을 걸어 빅토리아 거리(Paseo de la Victoria)에 위치한 중국식당에서 점심을 마친 우리는 코르도바를 떠날 준비를 했다. 출발 시간은 오후 12시 10분. 뜻밖의 만남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좀처럼 얼굴을 보기 어려웠던 선배를 이 식당에서 만난 것이다. 우리 일행은 마드리드에서 여정을 시작했고, 선배는 바르셀로나에서 출발한 일정 중이었다고 한다. 스페인 땅이 좁다고는 할 수 없는데, 이곳 코르도바의 작은 식당에서 마주치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래서 "죄짓고는 못 산다"는 말이 나오는 걸까?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몇 년을 얼굴 못 보던 선배를, 이 낯선 코르도바의 식당에서 우연히 마주치다니. 마치 어떤 보이지 않는 인연이 우리를 이 자리로 끌어온 듯했다.
아무튼 버스는 출발하고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난다. 과달키비르강을 따라 이어지는 A-4 고속도로로 들어선다. 흙은 여전히 붉다. 도로변 언덕에 가끔 불쑥불쑥 나타나는 황소 입간판, 무엇 때문에 저리 많은 황소 입간판을 세워두었나 했더니 스페인 주류회사 오스본 Osborne 사의 'Veterno'라는 브랜디 Brandy를 광고하기 위한 입간판이란다.
오스본 사는 1772년에 설립된 스페인의 전통적인 주류 제조업체로, 이 회사의 검은 황소 심벌(El Toro de Osborne)은 스페인의 문화와 풍경 속에서 매우 잘 알려져 있으며, Veterano Brandy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대중적이고 상징적인 브랜디 중 하나로, 품질과 역사를 겸비한 제품으로 알려져 있다.
두 시간쯤 달렸을까. 버스는 가던 길을 멈추고 Restaurante Chorrilla라는 휴게소로 들어섰다. 여기서 30분간 쉬어간다. 이는 스페인의 관광법 때문이라고 한다. 버스에는 태코미터가 설치되어 있어, 4시간 운행 후 반드시 휴식을 취해야 한다. 휴게 시간은 두 번으로 나눠 30분과 15분을 쉬거나, 한 번에 45분을 쉬는 방식으로 규정되어 있다.
점검은 도로에서 무작위로 이루어진다. 이를 ‘폴리스 컨트롤(Police Control)’이라 부르는데, 경찰이 버스에 올라 태코미터 기록을 확인하고 규정을 어겼을 경우 무거운 벌금을 부과한다. 스페인의 관광법은 이렇게 엄격하다. 예컨대, 식당에서 준비해 온 자국의 술을 마시다 사복 경찰에게 적발되면 몇 천 유로의 벌금을 내야 한다고 한다.
우리 버스도 여행 마지막 일정인 바르셀로나로 향하던 중 폴리스 컨트롤을 경험했다. 경찰관이 올라와 불시 점검을 했는데, 승객들인 우리에게 한마디 인사 없이 내려가는 모습이 조금은 불쾌하고 상식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스페인 관광법 덕분(?)에, 그리고 "45분은 화끈하게 쉬어 가자"는 버스 기사 엔리케의 결단 덕에, 우리는 휴게소에서 멀지 않은 포도밭 옆에 내려섰다. 붉은 흙과 돌로 이루어진 이 땅을 직접 만져보니 독특한 질감이 손끝에 남았다. 점토질의 붉은 흙과 잘게 부서진 돌은 물만 부어 반죽하면 곧바로 벽체를 쌓을 수 있을 만큼 점성이 뛰어났다. 이곳의 흙은 그 자체로 훌륭한 건축 재료였다.
스페인의 이 땅에는 집을 지을 자재가 곳곳에 널려 있었다. 그 흙과 돌로 지어진 건축물들은 단순한 실용성을 넘어 경이로움마저 느끼게 했다. 알람브라 궁전, 메스키타 사원, 그리고 이름 모를 농부의 소박한 집들까지, 모두 이 붉은 흙에서 시작된 것들이었다.
발렌시아 València
지중해에서 불어온 바람이 대지 위를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들판 여기저기에 서 있는 풍력발전기의 날개는 느긋하게 회전하다가 이내 멈추기를 반복한다. 지평선 끝에는 구름들이 낮게 드리워져 있고, 그 아래로는 초원이 메마른 숨을 내쉬고 있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한 줄기 비를 쏟아낼 듯 묵직하다.
철로는 초원을 가로지르며 땅을 관통하듯 이어지고, 우리와 나란히 달린다. 기차가 스페인의 동부 지역, 발렌시아로 접어드는 순간, 이 고요한 풍경에 다시금 바람과 열차의 리듬이 스며든다.
푸른 바다와 오렌지나무 그늘이 어우러진 지중해 발레아레스 해에 접한 도시, 발렌시아(València). 이곳은 패션뿐만 아니라 독특한 분위기로도 유명하다. 발렌시아 CF(Valencia Club de Fútbol)의 고향이자 지중해의 황금빛 해안을 품은 이 도시에서, 우리는 바로크 양식의 건축미를 만난다.
1919년에 창단된 전통 깊은 클럽으로, 라리가 6회 우승 등 스페인 축구 역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클럽이다. 과거 다비드 비야(David Villa), 가이스카 멘디에타(Gaizka Mendieta), 파블로 아이마르(Pablo Aimar)와 같은 스타 선수들이 활약했던 곳으로도 유명한 발렌시아 CF는 축구뿐만 아니라 도시의 정체성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발렌시아를 대표하는 자부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발렌시아(València)는 스페인에서 패션 산업의 중심지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으며, 특히 텍스타일(직물) 산업과 관련된 강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발렌시아의 패션 산업은 오랜 역사와 혁신적 디자인을 기반으로 발전해 왔다.
발렌시아 지역은 중세 시대부터 중요한 직물 생산지로 알려졌다. 발렌시아의 직물은 주로 고급 섬유와 정교한 디자인으로 유명했으며, 이 지역의 직물은 왕실과 귀족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다. 이러한 전통이 오늘날 패션 산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발렌시아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패션 디자이너들이 많은 도시로,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는 브랜드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다. 발렌시아는 발렌시아가(Valenciaga)와 같은 유명한 브랜드의 출발지로, 이 브랜드는 세계적으로 패션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발렌시아가는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Cristóbal Balenciaga)가 설립한 브랜드로, 그의 고유한 스타일은 미니멀리즘과 우아함을 동시에 추구하는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발렌시아가는 1937년부터 고급 패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아 현재까지도 글로벌 패션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오늘날 발렌시아는 패션뿐만 아니라 디자인, 예술, 문화가 융합된 도시로 알려져 있다. 발렌시아 국제패션 디자인대학(EIDE)과 같은 교육 기관은 젊은 디자이너들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발렌시아의 패션 산업을 더욱 발전시키고 있다. 이 도시의 디자이너들은 국제적인 패션쇼에서 자주 등장하며,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브랜드들도 발렌시아에 기반을 두고 있다.
최근 발렌시아에서는 지속 가능한 패션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패션 산업의 환경적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지역 내 많은 디자이너와 브랜드들이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소재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재활용 가능한 소재를 사용하거나, 윤리적 생산 방식에 집중하는 브랜드들이 발렌시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발렌시아는 또한 패션 관련 행사와 축제로도 유명하다. 매년 열리는 Valencia Fashion Week와 같은 행사에서는 지역 및 국제적인 디자이너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선보이며, 이는 발렌시아의 패션 산업을 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기회로 여겨진다. 이러한 축제는 발렌시아가 패션 산업의 중요한 허브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버스 창밖으로 스쳐가는 도심은 석양빛을 받아 황홀한 장관을 연출한다.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은 낮과 밤의 경계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며 도시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시간이 흐르며 거리는 차츰 어둠에 물들고, 사람들은 하나둘씩 거리로 나와 저녁 산책을 즐긴다. 길가 카페는 여전히 활기로 가득하고, 평화로운 저녁의 분위기가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다.
이곳 사람들의 오후는 유독 여유롭다. 우리가 퇴근 후 저녁 식사를 준비할 시간, 발렌시아의 사람들은 개를 데리고 산책길에 나선다. 광장으로 이어지는 넓은 공원길에는 조깅을 즐기는 사람들과 공원을 씽씽 달리는 아이들이 가득하다. 마을 곳곳의 소규모 축구장에서는 축구를 즐기는 이들의 환호성이 들려온다.
발렌시아의 저녁은 그야말로 일상의 여유와 활력이 공존하는, 잔잔하지만 생기 넘치는 순간들로 채워져 있다.
이곳 사람들은 길가의 카페에서 가벼운 스위트류와 함께 커피, 우유, 혹은 주스를 곁들여 간단히 오후 간식을 즐긴다. 해가 늦게 지는 덕분에 저녁식사는 보통 8시 30분 이후에 시작된다. 저녁 메뉴는 대개 삶은 야채와 함께 치즈나 햄, 혹은 간단한 소면 요리로 이루어지지만, 특별한 날이면 왕새우, 양고기 다리 같은 특별한 요리가 식탁을 채운다.
스페인의 거리 곳곳에는 유난히 카페와 바, 레스토랑이 많아 눈길을 끈다. 지금은 마침 오후 간식 시간이라, 어느 카페를 지나도 사람들로 붐빈다. 발렌시아 지방의 요리는 그 다양함으로도 유명하지만, 국제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요리는 단연 빠에야(Paella)다. 쌀을 기본으로 한 이 요리는 발렌시아를 대표하는 음식이자, 이 지역 사람들의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다.
1440px-Red_paella_with_mussels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Red_paella_with_mussels.jpg
발렌시아에서는 쌀의 중요성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쌀의 종류도 다양하며, 요리에 따라 사용하는 쌀이 달라진다. 우리가 지나온 휴게소에서도 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작은 천 주머니에 담긴 소량의 쌀자루와 함께 빠에야를 만들 수 있는 키트가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다. 발렌시아 사람들에게 빠에야는 단순한 음식 그 이상, 이 고장의 자부심이 담긴 전통이다.
발렌시아 거리 Calle Valencia
우리는 오후 6시가 훨씬 넘은 시간에 스페인 동부 발렌시아주에 있는 주도인 발렌시아에 도착한다. 도심으로 들어간 버스는 약 6시 30분경, 우리가 묵을 호텔인 홀리데이 인 익스프레스 발렌시아 - 보네르(Holiday Inn Express Valencia - Bonaire)에 도착한다. 이 호텔은 발렌시아 공항 근처에 위치하며, 새로 조성된 쇼핑 단지와 함께 여러 음식점, 의류 매장, 스포츠 센터 호텔들이 밀집한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인근에는 체조 경기장과 플라스틱 제품 제조업체인 Sp-Berner Plastic Group의 본사도 위치해 있어 상업적, 산업적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Santiago de Compostela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50766&docId=629671&categoryId=50794
영화 El Camino 바로 보기
El Camino 스페인어 버전 바로보기
https://youtu.be/L95ELhC5NMI?si=p8GEIpyDbcHSjWMZ
우리는 점심을 먹고 출발한 후, 오후 내내 차를 타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소재로 만든 영화 El Camino (The Way)를 보며 코르도바에서 여섯 시간을 달려 지중해변에 위치한 발렌시아의 Calle Valencia 거리에서 밤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보고자 밤거리로 나선다. 호텔 뒤로는 새로 조성된 대형 쇼핑 단지가 있는 거리로 향한다. 이 쇼핑 단지는 저녁 시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전형적인 발렌시아 여인들의 얼굴형인 타원형의 갸름한 얼굴에 오뚝한 코를 가진 젊은 여자아이들 서너 명이 또각또각 경쾌한 발걸음을 옮기며 상점들이 밀집된 거리로 멀어져 간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온 가족들이 각양각색의 다양한 상품으로 가득한 상가를 지나며 유쾌하게 웃고 떠든다. 풍요로워 보이는 거리 때문일까, 거리를 메운 사람들의 표정은 환하게 밝다. 그들의 유쾌한 소리는 상가에서 비추는 밝은 조명 빛에 이내 가려지고, 거리는 각종 상품들로 넘쳐난다.
한편 거리 한쪽에 자리한 카페에서는 커피를 홀짝이며 연신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남녀들이 유난히 많은 발렌시아의 밤거리 풍경이 펼쳐진다.
이곳 발렌시아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끽연을 즐기는 것 같다. 거리 곳곳은 물론, 노천카페와 호텔 로비의 소파에도 재떨이가 비치되어 있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흔히 보인다. 요즘 우리의 사회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식당가에는 늦은 저녁을 즐기는 연인과 가족들이 그들만의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열중하고 있다. 우리는 이곳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발렌시아 사람들처럼 늦은 저녁식사를 즐기기로 한다.
기본적인 스페인어로 의사소통을 시도하지만, 종업원과는 여전히 잘 통하지 않는다. 물론 바디랭귀지가 필수다. 우리는 아메리칸식 스테이크와 치킨 핑거, 밀가루 반죽을 얇게 펴고 그 위에 채소와 소스를 뿌려 만든 이름 모를 생소한 음식을 주문하고, 생맥주 두 잔과 물 한 병도 함께 주문한다. 맥주를 먼저 마시며 조금 기다리니, 곧 음식이 테이블에 차려진다.
이때, 우리가 무엇인가를 나누어 먹고 싶은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키가 훤칠하게 큰 종업원이 타원형의 빈 접시를 가져다준다. 참으로 잘생기고 기특한 녀석이다. 아메리칸 스타일의 음식이지만, 이곳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조리되어 우리의 입맛에는 조금 짜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우리는 접시를 모두 비우고 여전히 맛있는 여행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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