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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 동서양의 문화적 교차점 코르도바

by 조영환

그라나다의 밤, 그리고 코르도바를 향하는 길


아름다운 알람브라 궁전을 관람하고 나온 필자의 마음은 아직도 그곳에 남아있는 듯했다. 그날 오후, 궁전에서 느꼈던 그 경이로운 감정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아마도 내일이면 또 다른 풍경 속에서 새로운 감동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알람브라에서의 그 찰나의 아름다움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필자의 마음은 알람브라의 여운을 품은 채, 오후 6시 30분경 알람브라에서 그리 멀지 않은 A-92 고속도로 근처에 자리 잡은 호텔 레예스 시리에스 Hotel Reyes Ziríes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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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으로 고단해진 몸을 이끌고 호텔 뷔페에서 간단히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내일 코르도바로 떠날 준비를 하며 바에서 와인 한 잔을 기울였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잔잔한 여유 속에서 내일의 장거리 이동을 떠올렸다. 그라나다에서 코르도바까지는 약 세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세비야, 말라가, 그라나다, 그리고 코르도바로 이어지는 안달루시아의 여정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며 풍경과 이야기를 쌓아가는 길이다.


다리에 쥐가 나 제네랄 리페를 구경하지 못한 아내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잠자리에 든다. 그날 밤은 유독 길게 느껴졌다. 간밤에 서너 번은 잠에서 깬다. 몸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은 탓인지 뒤척이며 깊은 잠을 들지 못하고 깬다. 어둠 속에서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짙게 깔려 있는 그라나다의 밤은 쉬 날이 밝지 않았다. 저 멀리 가물가물 반짝거리는 불빛은 여전히 꾸벅꾸벅 졸고 그라나다의 밤을 밝히고 있다. 그렇게 자는 둥 마는 둥 밤을 보내고 다시 떠날 준비를 하며, 밤의 끝자락에서 다가오는 아침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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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45분, 과거 코르도바 칼리프국, 즉 서칼리프라 불렸던 후 우마이야 왕국의 수도 코르도바를 향해 출발한다. 이른 아침, 대형 트럭들이 어슴푸레한 어둠 속을 바르르 떨며 어디론가 질주한다. 도로 위에는 미세한 안개가 끼어 있어 트럭들의 차체가 흐릿하게 보이지만, 그들이 내뿜는 엔진 소리는 서서히 일어나는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듯하다. 트럭들은 일상의 한 장면, 대지와 함께 꿈틀대며 움직인다.


멀리 지평선에 살포시 구름이 내려앉고, 그 아래에는 끝없이 펼쳐진 올리브나무 숲이 눈에 들어온다. 올리브나무들이 차분한 일출을 맞이하며, 은은한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농부 부자의 손은 쉴 새 없이 나무를 돌보고 있다. 수확 철은 아니지만, 내년 수확을 위한 나무 관리에 바쁜 농부의 손길이다. 가벼운 손길로 가지를 다듬고, 고요한 아침 공기에 맞춰 그들의 손이 열심히 움직인다. 그 손길 속에 세월이 담겨 있다.


농부의 젊은 아들은 농기계를 흔들어 깨우고, 기계는 낮은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의 손끝은 예리하게 작동하는 기계의 흐름을 따라가며, 고요한 풍경 속에서 그의 모습은 여유롭다. 그가 일어서는 순간, 아침의 온기와 함께 농장의 삶이 다시 시작된다. 이 땅의 숨결이 느껴지는 순간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차창 밖을 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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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사람과 땅이 어우러져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시간. 코르도바로 향하는 길 위에서 나는 그들의 일상과 함께 숨을 쉬고 있었다. 이곳에서 자라는 올리브나무처럼, 나무를 가꾸는 익숙한 농부의 손길처럼 필자의 여행도 천천히 자리를 잡아가며 익숙해지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심은 어린 올리브 묘목은, 먼 훗날 농부의 손자가 수확할 것이다. 세대를 이어가는 올리브나무의 길고도 느린 시간 속에서, 그들은 세상의 변화를 알게 모르게 함께 겪어 가고 있다. 나무는 자라며, 그들에게는 일상의 일부가 되고, 그 일상이 다시 미래의 한 장면이 된다. 묘목을 심을 때의 할아버지 손끝을 손자는 선명하게 기억할 것이다. 그때의 따스한 햇살과 땅의 냄새, 그리고 그 작은 나무들이 어떻게 자라나고 있는지 기억하며 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를 기억할 것이다.


줄지어 심어진 올리브나무들만이 빼곡한 들판에 낮게 자리한 농가의 희미한 그림자와 함께 지나간다. 그 그림자는 하루가 지나며 천천히 변하고, 땅은 여전히 그들이 손으로 새긴 흔적을 간직한다. 농가의 지붕은 그들의 땅처럼 붉은색이었다. 아침 햇살이 붉은 땅으로 쏟아진다. 햇살은 붉은 지붕을 따뜻하게 비추고, 그 아래의 땅은 마치 속살을 드러내듯 붉은 흙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초원 저 건너 언덕에서 말을 탄 농부가 바삐 길을 재촉한다. 차창 밖 얕은 언덕들이 오르내리며 여행객의 설레는 마음과 함께 달린다. 끝없이 펼쳐지는 자연 속에서 마음은 조금 더 가벼워지고, 떠나온 일상은 점차 멀어져 간다. 바람은 창문을 스치며 지나가고, 나를 따라오는 풍경은 점점 더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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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표지판에 코르도바라는 이름이 자주 보이기 시작한다. 그 표지판들은 나를 안내하며, 이제 내가 도착할 곳이 가까워졌음을 알린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고, 도로 위에서의 흔들림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어느덧 집들이 빼곡히 밀집한 코르도바 도심으로 들어선다. 도시의 고요함과 혼잡함이 교차하는 곳에서, 나는 또 다른 세계로 발을 들여놓았다. 차창 밖으로 줄 맞추어 심어진 올리브 나무들은 끝도 없이 이어져 대평원으로 내닫는다. 코르도바의 활기찬 거리로 이어지는 이 길은 또 다른 여행의 시작을 의미하고 있었다.



로마 다리 Puente Romano와 코르도바 거리


코르도바는 과달키비르 강을 끼고 고대 로마시대 때부터 형성된 도시다. 한때 로마의 정착지였던 이곳은 서고트족에 의해 점령되었고, 8세기엔 이슬람 세력이 정복하여 우마이야 칼리프의 수도가 되었다. 지금도 로마 신전과 다리가 유적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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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lino de la Albolafia_Cordoba_코르도바에서 건축학적으로 중요한 수력 제분소


우리는 로마다리 Puente Romano 남쪽에 버스를 정차하고 다리를 건너 모스크로 향한다. 다리 남단 끝에 로마교회를 지키던 까라오라 탑 Torre de la Calahorra이 시야에 들어온다. 지금은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로마 다리를 건너며 보이는 메스키타 코르도바가 여행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코르도바의 오래된 구도심에는 붉은색을 띤 건축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나 코르도바는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하던 때에 수도였으므로 이슬람문화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다. 중세의 문화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한 1984년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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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8_100740.jpg 코르도바 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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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도바 베르나베 고메즈 델 리오 Bernabé Gómez del Río의 로마다리 Puente Romano 1651년 대천사 라파엘의 승리


선선한 날씨, 기온은 섭씨 2도의 월요일 아침. 코르도바의 거리에서 첫 발을 내디딘 나는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걷기 시작했다. 원형 교차로 중앙에 있는 분수대는 아직 약한 물줄기를 뿜으며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물방울은 햇살을 받아 반짝이며, 고요한 아침을 깨우고 있었다.


좁은 골목들로 이루어진 도심 주택가에는 각종 상점들이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상품들을 진열하며, 멀리서 온 이방인들을 맞고 있었다. 그저 간단한 기념품 정도를 파는 가게들이 늘어선 골목길이라 생각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문득, 코르도바의 거리에서 벗어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흔히 생각했던 평범한 거리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좁디좁은 골목을 지나며,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별 3개 등급의 호텔도 있고, 금은과 보석을 취급하는 보석 가게도 있다. 고요한 골목 안에서 사치스러움이 엿보인다. 한 걸음 더 나아가자, 역사 깊은 대항해 시대의 유물처럼 보이는 집들이 나타난다. 그 집들은 고풍스러움과 함께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동판으로 제작된 표지판을 부착한 낡은 집들이 몇 백 년은 족히 되어 보인다. 그 집들이 가진 고유한 아름다움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듯,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처음에는 단순한 오래된 건물로 보였지만, 곧 그들이 단순히 시간이 흘러간 흔적이 아니라, 보존을 위한 유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코르도바의 거리는 이렇게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과 가치를 내포한 장소였다. 그곳을 걷는 동안 나는 이곳의 시간 속에 잠시 묻혀, 역사와 현재가 함께 숨 쉬는 거리를 경험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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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키타가 보이는 코르도바의 거리를 걸어본다. 낡은 토벽이 드러난 이 거리는 과거와 현재가 손에 손을 맞잡고 있는 듯했다. 중세의 옛 건물들이 고요하게 서 있는 그곳에서, 현대의 상점들이 활기를 띠며 사람들을 맞이한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지금도 그 자리에 굳건히 서 있는 건물엔 오늘을 살아내는 코르도바 사람들의 삶이 함께 있었다.


길을 따라 걸으며 나는 그 공간들이 얽혀 있는 이야기들을 상상해 본다. 과거와 현재가 맞닿은 그곳에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토벽을 마주 보며 새로 지어진 상점들이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니 덕에 우리가 먹고 산다"일까? 아니면, "우리 덕에…" 상점들은 과거의 벽에 기대어, 오늘의 생존을 이야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 사이에는 명확한 경계가 없다. 오래된 벽과 새롭게 들어선 건물들은, 서로의 존재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뿐만 아니라 조화롭기까지 한 이 느낌은 어째서일까?


코르도바의 거리는 그런 공간이다. 시간이 얽히고, 그 얽힘 속에서 사람들의 삶과 꿈이 잉태된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그 자리에 굳건히 서 있는 토벽은, 모든 변화의 중심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가 되어준다. 그 뿌리가 없었다면, 새로 지어진 상점들은 자리를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상점들이 없었다면, 이 거리는 그저 지나쳐 갈 만한 길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의 무게가 담겨 있는 코르도바 거리. 그곳에서 나는 오랫동안 지나쳐온 시간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이 이 도시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었다.


길가의 카페에서는 노천으로 의자와 테이블을 내어 놓으며, 사람들의 일상에 작은 여유를 선사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사람들은 느긋하게 앉아 대화를 나누거나, 뜨거운 커피 한 잔에 손을 올리며 잠시나마 이곳의 고요함을 즐기고 있었다. 가게 앞 테이블에는 햇살이 드리워지고, 그 빛 속에서 커피잔의 김이 하얗게 피어오른다. 바쁜 준비 속에서도, 여유로운 순간들이 한가득 쌓여가는 코르도바의 거리다.



메스키타 코르도바 Mezquita de Cordoba


지금은 성당(Catedral de Cordoba)으로 사용되고 있는 메스키타 코르도바 Mezquita de Cordoba는 이슬람 제국이 건재할 때 이슬람 사원, 모스크였다. 이베리아반도를 재탈환한 가톨릭 세력은 사원의 한가운데 일부분을 허물고 그들의 종교인 가톨릭 성당을 지었다. 모스크는 훼손되었고, 희귀하게 이슬람식 사원과 가톨릭 성당이 공존하는 기이한 유적이 되었다. 이곳을 보고 까를로스 1세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것을 부수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을 지었다"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결국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사원을 세상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훼손한 셈이지 싶다. 기존 이슬람 양식의 모스크와 새로 지은 가톨릭 양식의 성당의 접합부위가 벌어지고 있는 결함을 안고 있는 건축물이다. 건축학 기술을 총동원하여 해결하려 하나 쉽지만은 않은 듯하다. 마치 서로 다른 종교와 건축양식의 차이, 이에 따른 건축기술의 차이에서 오는 결코 서로 합치될 수 없는 이질감을 보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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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의 낡은 토벽에 기대어 세상의 마을을 내다본다. 상점 앞에서 담배를 물고 목청을 높이며 무언가 대화에 열중하는 여인들, 여행객들의 소란한 이야기들이 붉은색 스카프를 두른 여인의 또각또각 발자국 소리에 묻혀 좁은 골목길로 사라진다. 광장 노천카페에 삼삼오오 모여 에스프레소를 홀짝거리는 체구가 크고 눈썹이 부리부리한 전형적인 안달루시안 남자들의 웃음소리는 붉은 토벽으로 빨려 들어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사원의 예스러운 길모퉁이에서 라벤더 잎을 들고 오가는 집시들의 눈동자는 관광객들을 살피며 번들거린다. 느닷없이 관광객에게 접근하여 뜬금없는 점을 봐주고 얼토당토않은 돈을 얻어낼 목적으로 골목을 배회하는 집시들이다. 코르도바의 거리는 그럼에도 여전히 평화롭고 지중해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코르도바 유대인 지구와 유대인 골목


늘 그렇지만 조금의 아쉬움을 남기고 메스키타를 벗어난다. 코르도바 성당 북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몇 백 년은 족히 되었을 법한 허물어진 토성 벽체에 연이어 새로운 벽체를 쌓아 벽과 벽 사이에 이격을 두지 않고 맞벽으로 지은 집들이 이어지는 거리를 지난다. 크기와 모양은 각기 달라도 1층은 어김없이 상점을 꾸리고 2층 3층은 좁은 베란다에 화분을 매달아 키우며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주택이다. 유난히 좁은 골목길에 화분이 빼곡히 매달린 골목을 걷는데, 마치 꽃 길을 걷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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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인 1월임에도 불구하고 날씨가 따듯한 이곳은 라벤더 향이 코끝을 찌른다. 코르도바 유대인 지구의 유대인 길이다. 유대인의 길이라 봐야 흰색으로 벽을 칠한 집들 벽체와 창문에 예쁜 화분들이 소박하게 걸려있는 골목길 전부이다. 길 가운데에 조약돌을 박아 넣고 양쪽의 길가는 타일을 깔아 놓은 정갈한 골목길이다. 그 골목길은 점점 좁아지기도 하고 조금 넓어지기도 하며 마을을 이룬다. 우리의 눈엔 불편해 보이는 골목길이지만 한 여름 뙤약볕에는 아주 유용한 골목길이다. 바람을 만들어주고 그늘을 만들어 주어 시원한 여름을 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다.


당시 이슬람 제국은 정복한 지역에 이교도를 머물게 했다 한다. 세금만 조금 더 내도록 하고 살게 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제국의 속성이지 싶은데,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골목길 대부분 외벽을 하얀색으로 칠한 집들은 유대인이 거주했던 집인 모양이다. 타일로 만든 문패나 간판을 볼 수 있는데, 유대인들 특유의 장식인 모양이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아기자기한 2층 또는 3층 주택들이 도란도란 모여 있는 코르도바의 풍경이다.



코르도바 대성당 Catedral de Cordoba


미나렛, 첨탑 Campanario, Torre de Alminar 위에서 이슬람교도들의 예배시간을 알리는 아잔 소리가 울려 퍼질 것만 같은데, 종을 매달은 종탑으로 바뀐 첨탑 위에서 성당의 예배를 알리는 종소리가 마을로 퍼져 나간다. 이슬람 사원이었던 이곳이 현재는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스크의 미나렛이 종탑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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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 Mosque는 스페인어로 메스키타 Mezquita라 한다. 이슬람 사원, 모스크는 무어인들의 건축물이다. 그러나 가톨릭 세력이 다시 이곳을 점령한 후에는 이슬람의 흔적을 지우고 가톨릭 성당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현지인들은 성당 Cathedral이라 한다. 원어로 그대로 적어보면, Mezquita de Cordoba; Mezquita-Catedral de Cordoba 또는 Mosque-Cathedral of Cordoba라고 부른다.


모스크는 1236년 코르도바가 레콩키스타 기간 동안 카스티야의 기독교 군대에 의해 점령되었을 때 대성당으로 개조되었다. 구조 자체는 16 세기의 주요 건물 프로젝트가 새로운 르네상스 대성당 본당과 transept를 건물 중앙에 삽입할 때까지 약간의 수정만 거쳤다. 종탑으로 개조된 이전의 미나렛도 이 시기에 대대적으로 리모델링되었다. 19세기부터 시작된 현대식 복원은 건물의 이슬람 시대 요소 중 일부를 복원하고 연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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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키타로 들어서면 오렌지 안뜰 Patio de los Naranjos, 사원 정원에 가득한 오렌지 나무에서 잘 익은 오렌지가 떨어져 뒹군다. 스페인 어디를 가나 풍부한 오렌지다. 가로수도 오렌지 나무고 정원에도 오렌지 나무다. 우리 일행 몇몇이 떨어진 오렌지를 주워 먹어본다. 신맛이 강하단다. 필자도 한쪽 먹어봤다. 신맛이 강했으나 먹을 만했다. 조금 숙성시키면 그대로 먹을 수 있지 싶다. 낡은 토벽 사이로 고양이들이 드나들며 사람들 사이를 배회한다.


Catedral Choir, 성당 안은 매우 어두웠다. 이슬람 사원, 모스크였던 이곳을 가톨릭 성당으로 다시 개조하면서 대부분의 아치형으로 된 개방된 창을 막아놓아서 그렇다고 한다. 이슬람교 사원의 신자들의 예배 방향을 가리키는 벽면의 오목한 미흐랍 Mihrab만이 정교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1961년에 만들어진 미흐랍 위의 돔 역시 매우 정교했다. 이슬람에서는 우주의 중심에 알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 8 각형 아치 모양의 조개 문양 양식은 우주를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코르도바에서 가장 정교하고 멋진 장식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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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8_105223.jpg 장인의 서명이 새겨진 기둥


성 스테판의 문 Puerta de San Estebant은 많은 부분이 훼손된 채로 남아 있다. 이 문은 코르도바의 메스키타 사원이 지어질 당시, 이슬람인들이 터파기 공사를 진행하면서 발견된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유물을 재활용하여 건축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사원을 지탱하는 기둥들은 각각 다른 높이와 재질을 가지고 있다. 그 차이를 맞추기 위해, 각기 다른 크기의 돌조각들을 납으로 접합하여 천장을 지탱하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이와 같은 구조적 약점을 보완하고, 더 높은 정밀도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각 기둥에는 장인의 서명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그만큼 이 사원은 구조적으로 매우 정교하고, 높은 수준의 기술이 필요했던 건축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납을 녹이고 색깔이 다른 초벌 구운 벽돌과 두 번 구운 벽돌을 번갈아 쌓은 아치형 구조는, 지진에 대비한 장인들의 고안된 내진기술이었다. 두 겹의 아치는 로마 건축 양식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낮은 천장을 높게 보이도록 하는 시각적 효과를 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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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개인적으로 조금 우스운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아침 호텔에서 먹었던 베이컨을 말아 놓은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 모양이 사원의 기둥과 아치형 구조와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사원의 붉은 토벽 외벽은 세월을 견디며 무수히 많은 흔적을 남겼다. 시간이 만든 자연스러운 흔적들은, 그 자체로도 이곳의 역사와 문화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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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자루 추기경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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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카


오렌지 정원을 빠져나온 우리는 다시 코르도바의 거리를 걸어 나갔다. 어느 골목길로 접어들자, 문이 열려 있는 집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안으로 들어가 보니, 가운데 정원이 있는 전형적인 중정 형식의 집이었다. 집의 크기는 대체로 크지 않았지만, 이슬람 문화의 특징을 여전히 간직한 듯한 구조였다. 이러한 집들은 코르도바 거리 곳곳에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그 작은 공간 속엔 과거의 기운이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졌다.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니, 작은 레스토랑의 입구에 이 지역 특유의 음식 메뉴들이 사진으로 걸려 있었다. 상점들은 크고 작은 것들이 골목마다 어우러져 있었고, 그 모습은 한국의 골목 문화와 비교해 보면 부러울 정도로 풍성하고 다채로웠다. 좁고 예쁜 골목길을 이리저리 빠져나가며, 각양각색의 가게들이 펼쳐진 모습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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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국 큰 도로변, Paseo de la Victoria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눈에 띄는 간판 하나가 우리를 반겼다. "Restaurante China Town", 중국식 레스토랑이었다. 이곳에서 여행의 시장기를 풀고, 중국 음식을 맛보며 새로운 맛의 즐거움을 채웠다. 다른 문화 속에서 또 다른 문화의 음식을 여유롭게 즐기며, 코르도바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기분은 참으로 특별한 경험이었다.

@thebcstory

#코르도바 #메스키타 #모스크 #코르도바대성당 #이슬람 #카톨릭 #로마 #무어인 #우마이야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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