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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엘공원 Parc Güell

아디오스 스페인!

by 조영환

여행의 계절, 다시 걷는 스페인-구엘공원 Parc Güell



바르셀로나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카멜 언덕(Carmel Hill) 중턱에는 가우디의 명작, 구엘 공원(Parc Güell)이 자리하고 있다. 성가족 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 Sagrada Família)을 둘러본 뒤, 우리는 구엘 공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구엘 공원은 처음부터 공원으로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고 한다. 에우세비 구엘(Eusebi Güell)이 영국에서 본 멋진 전원주택 단지를 바르셀로나에 재현하고 싶어 가우디에게 설계를 의뢰한 것이 시작이었다. 약 60여 가구로 계획된 전원주택 단지는 부유층을 대상으로 분양되었지만, 당시 경기 침체로 인해 단 세 명만 분양을 받았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가우디, 구엘, 그리고 구엘의 변호사였다. 요즘 말로 하자면 '폭망'한 사업이었던 셈이다.


결국 이 실패 덕분에 오늘날 구엘 공원은 바르셀로나의 대표 관광지가 되었고, 그 덕에 어김없이 우리가 가는 곳마다 따라 나오는 로컬 가이드의 일자리가 생긴 셈이지 싶긴 한데, 아무튼 치밀한 스페인 관광법이다.


당초 전원주택 단지로 계획되었던 이곳은 이후 개방형 공원으로 탈바꿈하며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에우세비 구엘 개인에게는 큰 손해였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다수에게 이익을 주는 공익적 공간이 탄생한 셈이다.


구엘 공원은 1900년부터 1914년까지 약 14년의 시간을 들여 완성되었고, 이후 1922년 바르셀로나 시의회가 이곳을 매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그리고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며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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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으로 들어서자마자 동화 속 한 장면처럼, 조각난 타일로 외벽을 장식한 작고 사랑스러운 집이 눈길을 끈다. 마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금방이라도 뛰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그 맞은편에는 가우디가 디자인한 가구와 생전에 사용했던 침대들이 보존된 그의 집이 있다. 현재는 가우디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곳이 바로 가우디가 살았던 집이다.


정문에서 마주한 두 건물은 모두 참 독특하고 흥미롭다. 우리는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건물들을 찬찬히 살펴본다. 이 건물들은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저 안은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필자의 눈에는 마치 초콜릿이나 비스킷으로 구워 만든 듯한 집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우디는 정말 흥미로운 사람이다. 그의 발상은 천재적일 뿐 아니라 독창적이다. 정문 앞의 두 건물은 곡선을 따라 흐르는 독특한 형태로, 가우디 특유의 건축 스타일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는 구엘 공원을 구상하며 그가 지향했던 설계 방향을 미리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또한, 다양한 재료에 대한 그의 깊은 이해와 뛰어난 조형적, 색채적 감각을 잘 드러낸다.


특히 주목할 점은 타일을 깨서 외벽을 장식하는 파격적인 아이디어다. 이슬람 문화권 건축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타일 장식은 크고 작은 타일을 정교하게 배열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가우디는 이를 과감히 변형해 깨진 타일을 활용해 독창적인 미감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모양과 색채의 타일 조각들을 조화롭게 배치하는 기법을 '트랜카디스(Trencadís)'라고 한다. 그의 이 대담한 시도는 당시로서는 충격적이었지만, 지금은 구엘 공원을 대표하는 상징적 요소로 평가받는다. 깨진 타일들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색채와 독특한 조화는 그야말로 예술적 혁신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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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구엘 공원의 상징과도 같은 도마뱀 모양의 분수를 만나게 된다. 이 분수는 트랜카디스(Trencadís) 기법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트랜카디스는 '깨진 타일 조각으로 만든 모자이크'를 뜻하는 카탈란어로, 이 기법은 구엘 공원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가우디의 독창성을 대표한다.


분수 앞에는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항상 붐빈다. 한 장의 사진을 건지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지만, 도마뱀의 화려한 색채와 독특한 디자인을 가까이서 감상하며 기다리는 시간도 나름의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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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상층 전망대의 벤치를 떠받치고 있는 살라이포스틸라(Sala Hipòstila), 즉 하이포스타일 홀에 들어서면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수십 개의 기둥이 나란히 서 있는 이 공간은 전형적인 건축 개념을 뒤엎는다. 보통 수직으로 곧게 세운 기둥이 가장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가우디는 과감히 깨트렸다.


하나하나의 기둥을 자세히 살펴볼수록 이런 구조를 떠올리고 실현해 낸 그의 천재성이 새삼 감탄스럽다. 특히 84개의 기둥 사이로 이어진 천장 장식은 가히 압도적이다. 트랜카디스 기법으로 정교하게 꾸며진 천장은 그 자체로 예술의 극치라 할 만하다. 입이 절로 벌어지는 순간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이로움이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계단을 따라 왼편으로 더 올라가면 특별한 산책길이 나타난다. 이 길은 주변 지형을 그대로 활용하고, 현장에서 채취한 가공되지 않은 자연석으로 만들어져 독특한 매력을 뽐낸다. 마치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처럼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산책길은 공원 외곽으로 이어진다.


비스듬한 벽면을 따라 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파도처럼 흐르는 곡선이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형태를 만들어낸다. 산책길 전면은 바르셀로나의 전망을 즐길 수 있도록 개방된 아치형 석주로 설계되어 있다. 이 길은 자연 그대로의 요소를 존중해, 구부러진 나무조차 베어내지 않고 산책길과 하나로 어우러지도록 조성되었다.


그 결과, 자연친화적이면서도 예술 작품 같은 구조물이 완성되었다. 가우디의 상상력이 구체적으로 실현된 이 공간은 감탄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최고의 예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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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엘 공원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 친화적인 설계에 있다. 카멜 언덕의 지형적 특성은 가우디에게 쉽지 않은 과제를 안겼다. ‘Montaña Pelada(벌거벗은 산)’라고 불리던 이곳은 가파르고 굴곡이 심해 주택 공사를 진행하기에 부적합한 지형이었다. 게다가 수원이 부족하다는 문제도 있었다.


하지만 가우디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도 이러한 한계를 극복했다. 굴곡진 지형을 깎아내지 않고 그대로 살리면서 높이에 따라 구역을 나누었고, 빗물을 모아 활용할 수 있도록 저수조를 설계했다. 그의 세심함은 이전 작품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까사 비센스(Casa Vicens) 프로젝트에서 대지에 자생하던 노란 꽃을 타일 디자인에 담아냈던 가우디는, 구엘 공원에서도 주변 돌을 그대로 활용하고, 구부정한 자세로 건축물을 침범하는 나무조차 베지 않고 자연 친화적인 건축을 구현했다.


이처럼 자연과의 조화를 최우선으로 둔 설계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고, 오늘날 구엘 공원을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가우디의 작업은 단순한 건축을 넘어, 자연을 존중하고 이를 예술로 승화시킨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트렌카디스(Trencadis) 기법은 깨진 대리석이나 유리 조각으로 모자이크를 만드는 독특한 방식으로, 가우디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한다. 까사 바트요(Casa Batlló)의 외벽, 구엘 저택, 그리고 까사 밀라(Casa Milà) 옥상의 굴뚝에서도 이 기법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구엘 공원에서는 트렌카디스 기법이 더욱 다채롭고 독창적으로 활용되며, 그 예술적 정점을 보여준다.


계단 중간의 도마뱀 분수, 다주실(Sala Hipóstila)의 천장 장식, 벽, 그리고 구불구불 이어진 벤치에 이르기까지, 공원 곳곳은 깨진 타일 조각으로 구성된 화려한 색채와 부드러운 곡선의 조화로 가득하다. 이 모든 공간은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보는 이를 매료시킨다.


특히, 이러한 작업은 가우디와 그의 협력자 주셉 마리아 주졸(Josep Maria Jujol)의 협력으로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이 빚어낸 트렌카디스의 향연은 단순한 건축 기술을 넘어선 예술적 깊이를 더하며, 구엘 공원을 더욱 특별한 장소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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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전망대에 올라 벤치에 앉아본다. 허리를 기대니, 몸에 딱 맞아 편안하다.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다채로운 색채와 곡선이 흐르는 이 벤치는 인체공학적 디자인까지 갖춘 구엘 공원의 또 다른 놀라움이다. 깨진 타일 조각으로 만들어진 의자가 이렇게 편안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한참을 앉아 바르셀로나 시내를 내려다본다. 화려한 색채와 조형미로 가득했던 구엘 공원의 모습이 머릿속에 어지럽게 맴돌던 것도 잠시, 점차 모든 생각이 사라지며 마음이 고요해진다.


구엘 공원을 둘러본 여정을 마치며, 필자는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통해 창조된 이 공간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넘어, 가우디의 독창적인 상상력과 자연에 대한 깊은 존경을 엿볼 수 있는 장소였다. 그가 설계한 이 공원이 전하는 메시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자연을 존중하고, 그 속에서 영감을 얻으며, 그와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엘 공원은 그가 세운 건축물 중 하나로, 자연을 무시하지 않고, 자연과 함께 존재하는 방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이 여정을 통해 가우디의 작품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자연과 인간의 만남, 그리고 그 만남에서 얻은 영감의 결정체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자연을 향하고 있었고, 자연에서 영감을 얻었기에 그 결과물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한마디로 충분하다고 느끼며, 더 이상의 형언은 삼가기로 한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한 편의 작품을 감상한 느낌이다. 천천히 구엘 공원을 걸어 내려온다. 마음이 뿌듯하다.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가우디를 만날 수 있는 것은 그 어느 것과도 견줄 수 없는 또 다른 행복이지 싶다.



아디오스 스페인!


바르셀로나 공항으로 가는 아침, 비가 살짝 뿌리고 있다.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서서히 걷히고, 도로변 공장에서 뿜어내는 하얀 연기가 너울거리며 하늘로 흩어진다. 호롱 불처럼 가물거리는 가로등 불빛들이 바르셀로나를 떠나고 있는 낯선 여행객을 환송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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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45분, 한적한 외곽 언덕에 자리한 바르셀로나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호텔을 나선다.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는 도심으로 들어가는 차량들 속에 섞여 있다. 이내 서서히 밀리기 시작한다. 어느 대도시에나 있는 교통체증이다. 바르셀로나의 하늘 위에 낮게 드리워져 있는 구름 사이로, 지중해에서 밀어 올린 태양이 떠오른다. 도로에 낮게 깔린 어둠은 서서히 물러가고, 산자락에 쏟아져 내리는 태양빛처럼 바르셀로나는 또 다른 희망의 아침을 맞이한다. 차창으로 밀려 들어온 햇살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너무나도 잘하는 버스기사 엔리케 아저씨의 반들반들한 머리 위로 부서져 내린다. 전향적인 스페인 사람의 모습을 한 엔리케 아저씨의 머리는 더욱 반짝인다. 우리의 비행 경유지인 이스탄불에 폭설이 내렸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아침부터 공항은 오가는 여행객들로 북적거린다.

@thebcstory

#스페인여행 #가우디 #바르셀로나 #구엘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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