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계절, 다시 걷는 스페인
스페인의 여정은 길고도 깊었다. 마드릿에서 시작된 발걸음은 마요르 광장을 시작으로 천년고도 톨레도와 살라망카, 그리고 포르투갈을 거쳐 모로코로 이어졌다. 그 사이에 들렀던 세비야와 코르도바, 발렌시아, 마지막으로 바르셀로나까지, 나는 그 어느 곳에서도 놓칠 수 없는 소중한 순간들을 마주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풍경, 그리고 스페인 문화와 건축물은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스페인을 더욱 넓고 깊게 만들었다.
마드릿의 분주한 거리에서 시작된 여정은 톨레도의 고요한 골목을 거쳐, 알람브라 궁전의 고요한 미소처럼 흘러갔다. 그라나다에서는 이슬람과 기독교의 만남을, 포르투갈 로까곶에서는 대서양의 풍경을 마음껏 품었다. 모로코의 메디나 페스에서는 수없이 많은 골목길이 이어진 것처럼 낯선 문화 속에서 잊고 있던 복잡다단한 나의 내면을 마주할 수 있었다.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온 후, 세비야의 따뜻한 햇살과 코르도바의 고즈넉한 거리, 대서양과 지중해가 만나는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코스타 델 솔(Costa del Sol)과 안달루시아의 정열, 숨어있는 안달루시아의 보석 론다, 찌루찌루의 파랑새도 알고 안데르센도 아는 동화 속 그림 같은 마을 미하스(Mijas)… 나는 스페인이 선사하는 다채로운 감정을 다시 한번 음미할 수 있었다.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세비야의 거리에서는 그늘을 찾아 들어간 작은 광장에서 흩날리는 플라멩코의 선율이 여전히 내 마음속에 잔향을 남겼다. 그리고 코르도바에서 걸었던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마치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듯, 나를 오랜 과거로 인도했다. 그곳에서 마주한 고요한 정원과 아치형 다리, 그리고 고대의 숨결을 간직한 건축물들은 지금도 나의 기억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코스타 델 솔의 해변에서는 그 따뜻한 바람과 고요한 파도가 나를 감싸 안았다. 강렬한 태양은 햇살을 바다 위에 금빛으로 흩어놓고, 그 반짝임 속에서 나는 시간이 멈춘 듯한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다. 파도 소리가 속삭이듯 들리며, 바람은 얼굴을 스치는 듯 부드럽고 상쾌했다. 이곳의 자연은 나를 완전히 감동시키며, 일상의 번다함을 잊게 했다. 대서양과 지중해가 만나는 지점에서, 바다의 끝없이 펼쳐진 푸른 물결을 바라보며, 나는 자연이 주는 평화로움을 깊이 느꼈다.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마을들, 그곳에서는 사람들의 삶이 바다와 함께 호흡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런 가운데 미하스는 마치 동화 속에서 막 걸어 나온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얀 집들이 언덕 위에 세워져 있는 그 마을은 마치 한 편의 그림처럼 아름다웠고, 그곳의 공기마저도 따뜻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스페인, 그곳에서 마주한 풍경들은 단순한 여행지 이상의 의미를 내게 주었다. 그곳의 일상은 너무나도 특별하고, 그 안에 담긴 역사와 문화는 나를 또 다른 세상으로 이끌었다. 그 모든 것들이 결코 잊히지 않을 순간들이 되어, 나의 여정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음을 깨닫게 했다. 안달루시아의 정열을 몸소 느꼈던 여행은 마지막으로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가우디의 건축 세계를 보며, 여행의 마침표를 찍으면서도 그 자체로 끝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 스페인은 끝없이 돌아보게 만드는 매력을 품고 있다.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아름다움과 전통, 그리고 혁신의 흔적들이 여전히 나를 이끌고 있다. 세비야의 플라멩코가 울려 퍼지던 거리의 온기, 코르도바의 좁고 굽이진 골목에서 만난 고요한 아침, 바르셀로나의 가우디가 남긴 비현실적인 꿈같은 건축물들은 나를 다시 그곳으로 불러들이는 초대장처럼 느껴진다. 매 순간,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었다. 평소에 늘 꿈꿔왔던 스페인, 그곳은 나에게 단순히 여행지 이상의 의미가 되어버렸다. 내게 스페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고, 그 이야기는 끝없이 펼쳐질 것이다.
그 여정 속에서 스페인은 내게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매번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나는 스페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하나로 엮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역사적인 건축물들은 단순히 세운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스페인의 정신과 삶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다. 바르셀로나의 고요한 아침, 세비야의 따뜻한 저녁, 톨레도의 고풍스러운 거리에서 나는 자신도 모르게 그 시간을 살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여행은 끝나지만, 그곳에서의 기억은 언제나 나와 함께할 것이다. 스페인에서 배운 삶의 여유와, 그곳에서 마주한 수많은 사람들과 풍경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살아있다. 그곳에서 마주한 감동과 그들의 일상 속에서 느낀 편안함은 내게 어떤 다른 여행지와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의미로 남아 있다.
스페인이라는 나라에서의 경험은 단순한 추억으로 남지 않았다. 그것은 나를 더욱 풍요롭고 깊게 만든 여정이었으며, 언제나 내 삶의 한 부분으로 남아, 또 다른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음을 느꼈던 아름다운 여정이었다.
2016년, 그해 스페인을 다녀온 후, 나는 내년 11월이 매우 특별한 해가 될 것임을 안다. 대장암 수술을 받은 지 꼭 10년이 되는 해이다. 아내와 나는 성치 않은 몸으로 그 해 스페인을 여행했고, 2019년, 아내를 먼저 떠나보냈다. 그 여정을 되새기며 '여행의 계절, 다시 걷는 스페인'을 마무리하는 지금, 나는 또 다른 스페인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아내와의 마지막 여행이었던 그 여정이 끝나지 않았음을, 그리고 다시 한번 스페인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낀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글을 마친다.
@thebc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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