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고 여린 모래주름, 그리움
바닷가에 서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늘 끝없이 밀려오는 물결과 그 뒤에 남겨진 모래주름이다. 물결이 지나가며 만들어낸 그 작은 흔적들은 바람에 흩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물결에 지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래주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을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나는 그 모래주름을 볼 때마다 그리움을 떠올린다. 그리움도 마치 그것처럼 여리고 여려, 쉽게 지워질 것 같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오래 남아 흔적을 남긴다.
그리움은 언제나 조용히 찾아온다. 불쑥 찾아와 마음의 결을 따라 스며들고, 그것이 만든 자국은 시간을 따라 점점 깊어지기도 한다. 사랑하는 이와의 추억, 짧았던 인연, 돌아오지 않을 순간들. 그 모든 것이 그리움의 모양을 만들고, 그 모양은 저마다 다르지만 모두가 아름답다.
하지만 그리움은 가끔 마음을 무겁게 하기도 한다. "그리움은 쌓아두면 안 된다"는 말처럼, 쌓아두면 마음의 짐이 되고, 풀어내면 또다시 그립게 만드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참으로 묘한 감정이다. 그리움이 너무 커지면 마치 무거운 짐처럼 우리를 짓누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움을 억지로 밀어내거나 지워버릴 수 있을까? 오히려 그리움을 외면하려 할수록 그 감정은 더 또렷이 드러난다. 그리움은 억누를 것이 아니라 품어야 할 감정이다. 물결이 모래를 쓰다듬으며 아름다운 결을 남기듯, 그리움도 우리의 마음속에 따뜻한 흔적을 남길 때가 있기에 기꺼이 품어 안아야 하는 감정, 그리움이다.
나는 모래주름을 따라 손끝으로 느껴보는 순간이 참 좋다. 그것은 사라져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순간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의미를 지닌다. 그리움 또한 마찬가지다. 그 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감정을 곱씹다 보면 결국에는 사랑으로, 감사함으로, 때로는 용서로 승화된다. 그 모래주름 같은 그리움이야말로 사랑의 진정한 증표가 아닐까 싶다.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겼음을 의미하니까. 사랑의 감정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가장 인간다운 감정이니까. 사랑은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고 연결하게 만들며, 그 안에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도 하니까. 비록 그리움이 때로는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감정을 느끼고 간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더욱 인간다워지는 것이 아닐까? 사랑과 그리움은 서로의 존재를 더욱 빛나게 하는 동반자와 같다. 그리움은 사랑의 그림자이자, 사랑은 그리움의 빛이다. 둘은 함께 존재할 때 그 감정의 깊이가 더해지는 것이 아닐까?
그리움이 마음을 여리게 한다고 해서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리움을 통해 우리는 더 인간다워지고,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물결이 만들어 놓은 모래주름처럼, 그리움이 만들어 놓은 자국은 우리를 더 넓고 부드러운 존재로 이끈다. 그리움만큼 인간다워지는 감정이 또 있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그리움을 사랑한다. 그것이 내 안에 새긴 모든 순간을, 내가 지나온 모든 사랑을 기억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물결이 다시 밀려와 모래주름을 덮어도, 그 흔적이 있었던 곳에 여전히 그 이야기가 남아 있듯이, 그리움은 늘 내 마음속에 머물고, 늘 나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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