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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빛으로 물든 센소지

도쿄의 밤, 그 시작

by 조영환

[설국의 기억, 열도를 걷다]

붉은빛으로 물든 센소지


도쿄의 밤이 깊어갈수록 센소지는 더욱 짙은 붉은빛에 물들어갔다. 니텐몬(二天門) 앞에 서자, 수백 년의 세월을 품은 이곳이 어째서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알 것 같았다. 니텐몬은 불교의 수호신, 다문천왕과 증장천왕이 지키는 문으로, 17세기 에도 시대에 세워진 후 여러 차례 복원되며 지금까지 도쿄의 역사를 함께해 왔다. 문을 지나자 붉은 등롱이 걸린 카미나리몬(雷門)이 눈앞에 나타났다. ‘천둥의 문’이라는 뜻을 가진 이 문은 센소지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거대한 초대형 등롱이 매달려 있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등롱 아래를 지나면 길게 이어진 나카미세 거리(仲見世通り)가 따뜻한 불빛을 밝히며 여행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나카미세 거리는 아사쿠사의 필수 관광 코스로, 카미나리몬에서 센소지 본당까지 약 250미터에 걸쳐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이곳에서는 일본 전통 기념품과 유카타, 부채, 도자기 같은 수공예품을 만날 수 있으며, 곳곳에서 닌교야키, 모나카, 센베이 같은 전통 과자가 풍기는 향기가 길거리를 가득 채운다. 오래된 가게들의 주인들은 정성껏 과자를 굽고, 가게 앞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환한 미소를 건넸다. 그 풍경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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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소지는 도쿄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람들의 기도와 발걸음을 담아왔다. 그 기원은 7세기 아스카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전설에 따르면, 628년 스미다강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히노쿠마노 하마나리 (檜前浜成)와 다케나리 (竹成) 형제가 작은 황금불상을 건져 올렸다. 이는 관세음보살상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지역 장원이었던 하지노 나카토모(土師中知)와 마을 사람들이 불상을 모시기 위해 사찰을 세웠고, 그곳이 센소지의 시작이었다. 당시 건져 올린 황금불상이 센소지의 본존불인 성관음상 (聖観音像)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후 에도 막부 시대에 이르러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가문이 센소지를 보호하며 사찰은 더욱 번성했고, 오늘날까지 도쿄를 대표하는 불교 사찰로 자리 잡게 되었다.


늦은 오후, 붉게 물든 서쪽 하늘을 배경으로 아사쿠사의 센소지 경내를 걷고 있었다. 고요하게 펼쳐진 붉은 풍경 속에서, 가미나리몬의 거대한 대문이 나를 맞이했다. 문 안쪽에 자리한 풍신(風神, 후진)과 뇌신(雷神, 라이진) 조각상은 원래 후라이진몬(風雷神門)이라 불렸으나, 오늘날 ‘가미나리몬’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센소지의 정문인 이 문은 악귀와 액운을 막고 사찰을 보호하는 상징적 역할을 한다. 문 안에 배치된 풍신과 뇌신은 각각 바람과 천둥의 신으로, 센소지를 화재, 홍수, 풍우 등 재난으로부터 지키는 자비로운 존재로 여겨진다. 이 문은 단순한 입구가 아니라, 사찰을 수호하고 신성함을 상징하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우리나라 주요 사찰에 설치된 천왕문과 문 안에 설치된 사천왕상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는 문이다.


문에 설치된 등롱은 높이 3.9m, 무게 700kg에 달하며, 아래쪽에는 정교한 용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 문양은 에도 시대부터 이어져 온 디자인으로, 1865년 화재로 소실된 후 1960년에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되었지만, 그 역사적 의미는 여전히 깊고 무겁다. 고요한 문 아래 걸린 제등에는 ‘마쓰시타 전기 산업 기증’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제등을 바라보며, 가미나리몬은 단순한 입구가 아닌,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내가 나카미세 거리를 지나, 첫 번째로 만나는 문은 호조몬(宝蔵門)이다. 이 문은 팔작지붕을 가진 2층 건물로,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과거에는 2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전쟁의 흔적을 뒤로하고 1964년에 복원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이 좌우에 자리하고 있어 '니오몬'(仁王門)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나, 이제는 호조몬이라 불린다. 이곳에서 나는 액막이를 위한 짚단이 걸려 있는 것을 보며, 그 속에서 전통과 신앙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꼈다.


붉은 노을이 본당을 감싸고, 부드러운 조명이 그 위를 어루만졌다. 조명이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은은하게 퍼지며, 사찰의 실루엣이 점점 또렷해졌다. 우리나라의 사찰과는 또 다른 정취가 있었다.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본존이 모셔진(本尊が奉納されている場所) 안쪽을 바라보며, 천장에 그려진 용도와 천인도의 그림을 눈에 담는다. 그 그림 속에서 마치 신령한 존재들이 살아 숨 쉬는 듯하다. 본존인 성관음상이 모셔진 곳에는 신성한 기운이 흐른다. 그곳의 분위기는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롭고 고요하다. 비불(秘仏)이 된 본존상은 여태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다지만, 마에다치 관음상은 12월 13일에 열리는 개문법회 때 잠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기회를 한 번쯤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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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을 지나자, 어둠 속에서도 우뚝 선 오층탑이 나를 맞이했다. 오래된 기도와 바람이 깃든 듯한 그곳에서,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원래 삼층탑으로 세워졌던 이 탑은 여러 차례 불타고, 소실된 후 1973년 복원되었다. 지금의 탑은 철근 콘크리트로 세운 현대적인 건물이지만, 그 높이와 기품은 여전히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그 옆에 자리한 나무들은 나를 잠시 쉬어가도록 초대하는 듯하다. 이 탑의 기단 안에는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사리가 봉안되어 있다는 사실이 더욱 신비롭게 다가온다. 나는 그저 고요히 이 풍경을 감상하며,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곳의 깊은 역사와 신앙에 몸을 맡긴다.


센소지의 길을 따라 걷는 동안, 나는 이곳이 관광지 이상의 의미를 지닌 공간임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모든 건축물과 상징이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를 이루고 있으며, 그 속에서 나는 잠시나마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그 역사 속으로 빠져들었다.


본당 앞에서, 참배객들은 향을 피우며 소원을 빌고 있었다. 향로 앞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사람들은 조용히 두 손을 모았다. 그들 중 일부는 향로 주위에 모여 손을 뻗어 연기를 쬐고 있었다. 이 연기가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건강을 가져다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도 그들처럼 손을 모으며 이 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한쪽에서는 미쿠지(おみくじ)를 뽑으며 점괘를 확인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좋은 운세를 뽑으면 기뻐하며 주머니에 넣고, 나쁜 운세가 나오면 사찰 한쪽에 매달아 두고 떠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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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왕(龍王)의 동상 앞에서도 많은 이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이 동상은 메이지 시대의 유명한 조각가 다카무라 코운(高村光雲)의 작품으로, 바다와 물을 다스리는 용왕이 위엄 있는 모습으로 서 있다. 용왕의 기단은 연꽃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어 더욱 신성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곳에서 기도를 올리면 재물이 불어나고 물의 기운이 깃든다는 믿음이 있어, 특히 장사꾼들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센소지를 찾은 현지인들에겐 이곳이 그저 다녀가는 관광지가 아니었다. 한 할머니는 가족과 함께 와서 정성껏 참배를 드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기도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라고 말하며 손녀의 손을 꼭 잡았다. 젊은 연인들은 소원을 속삭이며 서로의 손을 맞잡았고, 샐러리맨 차림의 남성은 한참 동안 향로 앞에서 눈을 감고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그들에게 센소지는 단순한 사찰이 아닌, 삶의 쉼표이자 기댈 곳 같은 의지가 되는 존재였다.


센소지를 걸으며 지나온 시간을 천천히 떠올렸다. 수백 년의 역사가 깃든 이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소원을 빌며 삶을 이어왔을 것이다. 붉은빛이 더욱 깊어지는 밤, 사찰을 감싸는 조용한 공기가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졌다. 도쿄의 빛나는 도심 속에서 오랜 시간 흔들리지 않고 자리를 지켜온 센소지. 이곳에서의 순간은 마치 시간을 초월한 듯한 평온함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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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밤, 그 시작

도쿄의 저녁 공기는 차가웠지만, 붉은빛에 물든 센소지의 풍경은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사찰을 가득 메운 등불의 은은한 빛과 경건한 분위기는 새해를 맞아 이곳을 찾은 많은 참배객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듯했다.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손을 모아 기도를 드리는 이들의 모습에서 일본 전통문화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나카미세 거리를 따라 걷자, 길가에 늘어선 가게들이 반짝이는 불빛 아래에서 활기찬 모습으로 나를 반겼다. 좁은 골목길마다 풍기는 갓 구운 닌교야키의 달콤한 향, 바삭하게 구워진 센베이의 고소한 냄새가 공기를 가득 채웠다. 기모노를 차려입은 가게 주인들이 다정한 미소로 손님을 맞이하며, 손수 만든 부채와 전통 도자기를 보여주었다. 손으로 빚어진 작은 찻잔을 손에 들고 천천히 살펴보며,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이 거리를 더욱 깊이 느끼고 싶었다.


나카미세 거리를 걷다 보면, 그 길이 일반적인 상점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곳의 기원은 1685년, 즉 조쿄 2년에 시작된다. 본당으로 향하는 큰길에 상점들이 자리를 잡으며, 사측은 인근 주민들에게 경내 청소를 맡기고 그 대가로 개업을 허락했다. 그렇게 형성된 상점가는 시간이 흐르며 그 자체로 오랜 역사를 쌓았다. 에도 시대 중기, 경내 서쪽의 오쿠야마라는 구역에서는 길거리 공연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사찰은 서민들의 오락장(娯楽場, ごらくじょう, 고라쿠조 또는 遊技場, ゆうぎじょう, 유기조)이자 문화의 중심지로 변모했다. 1843년, 에도 삼대 가부키 극장이 아사쿠사 세이텐초로 이전하며, 이곳의 분위기는 더욱 활기를 띠었다. 오늘날, 나카미세 거리의 한 걸음 한 걸음은 그 수백 년의 시간을 품고, 과거의 모습들이 여전히 그 길 위에 살아 숨 쉬고 있다.


붉은 등롱이 길게 늘어선 길을 따라 걷다 보니, 하루 동안의 여정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닛코의 설경 속에서 시작된 하루는 이렇게 도쿄의 밤으로 이어졌다. 눈 덮인 고요한 풍경에서 도시의 화려한 불빛 속으로 넘어오는 이 흐름은 묘한 설렘을 안겨주었다. 처음 마주한 도쿄는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의 리듬 속에서도, 오랜 시간을 간직한 공간들이 균형을 이루며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각이 여행자로서의 나를 더욱 깊이 빠져들게 만들었다.


센소지의 본당 앞에서 마지막으로 한숨 돌리며, 가만히 그 풍경을 눈에 담았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향로 주변에는 소원을 비는 사람들로 붐볐고, 그들의 작은 목소리들이 밤공기 속에서 잔잔하게 흩어졌다. 거대한 붉은 등롱이 조용히 흔들리며, 마치 이곳이 오랜 세월을 지나온 증거처럼 든든히 자리 잡고 있었다.


센소지의 밤은 깊어지고, 붉은 등롱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오랜 세월을 지나온 이곳에서, 나는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여행자의 길은 계속되지만, 이곳의 불빛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붉은 등롱이 밤을 밝히고, 향의 연기가 하늘로 스며들었다. 나는 조용히 마지막 발걸음을 떼었다. 이곳의 불빛은 내 기억 속에서도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내일은 또 어떤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도쿄의 빛나는 야경 속에서 나는 새로운 여행을 꿈꾸며 천천히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그렇게, 센소지의 밤을 마지막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thebc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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