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시간을 넘어, 에베소에서의 여정을 시작하며
고대의 발자취를 따라, 나는 에베소의 유적지로 향했다.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고대 세계의 빛나는 도시, 화려한 건축물들과 시장, 광장, 그리고 이곳을 누볐던 사람들의 발자국과 역사적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도착한 에베소는 그 상상 속의 도시와는 다른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몇 천 년의 세월을 살아낸 돌과 모래, 그리고 무너져 내린 건축물의 잔해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었다. 언뜻 고요해 보였지만, 발을 내딛는 순간 바람 속에 녹아든 빛과 그림자의 이야기가 속삭이듯 들려오는 듯했다.
햇살이 비치는 고대의 거리에는 시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마치 손에 닿을 듯한 거리에 시간의 층들이 얇게 쌓여 있는 것 같았다. 에베소는 단순한 유적지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었다. 돌 하나, 길 모퉁이 하나에도 수많은 인연과 사연들이 얽혀 있는 듯했다. 나는 그곳을 단순히 관찰자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걷는 사람으로서 마주하고 있었다. 먼 옛날 이곳을 걸었던 사람들, 그들의 삶과 희망, 좌절이 이 길 위에 새겨져 있었고, 나는 그 흔적 위를 그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시간을 공유하고 있는 기분으로 탐방을 이어갔다.
에베소의 거리는 비록 과거의 웅장함을 상실했지만, 그 상실조차도 이 도시가 품은 이야기의 일부였다. 지금은 텅 빈 도서관 앞에서, 무너져버린 신전 기둥들 사이에서, 한때 여기를 가득 채웠을 삶의 이야기들을 상상해 보는 귀한 시간이 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과거 그들은 어떤 꿈을 꾸며 이 길을 걸었을까? 이 신전 앞에 모여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떠들썩한 웃음소리와 아이들의 소란, 상인들의 외침이 떠올려지는 듯했다. 문득 이곳의 침묵 속에는 그들의 희망과 절망, 그리고 각자의 삶이 담긴 무언의 언어들이 빼곡히 깃들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라진 건축물들과 깨지고 갈라지고 닳아버린 돌길이 주는 감정은 이전엔 갖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인간의 삶이 얼마나 덧없고,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것인가를 알려주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그 속에서 우리는 잊히지 않을 흔적을 남기려 한다는 본능을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무수한 세월의 흔적을 겹겹이 뒤집어쓴 이 오래된 돌들에 스며든 시간은 단순히 과거로만 머물지 않았다. 마치 현시대의 우리에게도 무언가 얘기하고자 말을 걸어오듯, 그 속에는 여전히 살아있는 기운이 있었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남기려는, 기억되려는 욕망을 품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며 결국 모든 것이 사라질 운명에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는 여정이었다.
에베소의 돌길을 천천히 걷다 보니, 현대 사회의 빠른 속도와 소음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었다. 익숙한 일상 속에서는 느끼기 어려웠던 고요함이 이곳에서는 시간의 기억 일부로 존재하고 있었다. 나를 둘러싼 것은 오랜 세월을 견뎌낸 돌과 흙, 그리고 풍화되어 모래로 돌아간 옛 흔적들이었다. 과거의 영광과 그 후의 상실, 그리고 그 속에 새겨진 흥망성쇠와 무언의 이야기들이 나에게 말없이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 인간이 얼마나 작고 덧없는 존재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 주었다. 그러나 그 작고 덧없는 순간들 속에서 우리가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서로에게 남길 수 있는 흔적을 남기며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깊은 위로가 되기도 했다.
고대의 흔적을 탐방하는 것은 단순한 문화적 체험을 넘어서, 시간과 기억 속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여정으로 다가왔다. 에베소는 단순히 과거를 감상하는 유적이 아니었다. 그곳은 한때 자신들의 시대를 이끌어갔던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이자,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들의 흔적이 깊은 의미를 남겨주는 장소였다. 이곳의 돌길은 그들로부터 나에게, 그리고 나로부터 미래의 누군가에게 이어질 삶의 조각을 연결해 주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나는 나 자신도 에베소의 한 부분이 되기를 바라며 그곳을 천천히 걸었다. 이 길을 걸었던 수많은 이들의 발자국이 세월 속에 사라졌어도, 그들이 남긴 이야기는 여전히 이 도시의 바람과 돌길 위에 남아 있었다.
에베소에서의 여정을 시작하며 나는 기대했다. 이것이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나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고대의 웅장한 신전과 장대한 광장, 그 속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일상들이 한때 존재했음을 떠올리며 나는 나 또한 이곳에 작은 흔적을 남기며 바람이 되고자 했다. 오래된 돌과 길 위에 내 발자국을 새기며, 나는 시간의 일부가 되었고 이내 바람이 될 수 있었다. 언젠가 내 존재도 시간 속에 사라지겠지만,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며 에베소에서의 여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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