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Ephesus) 고대 문명의 발차취를 찾아서
에베소 고대도시 유적지 Efes Antik Kenti, Ephesus Ancient City [2]
필자는 위 Ephesus Today 안내도 28번 바리우스 목욕탕(Baths of Varius) 쪽 출입구인 마그네시아 문(Magnesian Gate)을 통하여 입장한다. 기원전 3세기의 개선문으로 에베소의 동쪽 입구 역할을 하였으며,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의 통치 하에서 ‘명예의 문’으로 개칭되었던 문으로 외부 침략자를 방어하는 첫 번째 방어선이었다. 이곳에서 주출입구로 내려가는 16번 쿠레테스 거리 (Curetes Street)는 약간의 내리막 경사로 이어지며 헤라클레스 문(Hercules Gate)을 통과하여 14번 하두리아누스 신전(Hadrian’s Temple), Scholastica Basth, 8번의 언덕 경사면에 지은 테라스 하우스(Terrace Houses, hillside House), 4번의 셀수스 도서관 (Library of Celsus), 2번의 원형극장(Theater)을 보고 1번 Harbor Street를 지나 주출입구로 나갈 예정이다.
바리우스 목욕탕 Baths of Varius
출입구를 지나 유적지로 들어서자 나지막한 동산 언덕에 둥그렇게 석축을 쌓아 만든 세 개의 아치형 문으로 보이는 바리우스 목욕탕(28번) 유적이 보인다. 이곳에 있는 4개의 목욕탕 중 하나인데, 온탕 tepidarium과 냉탕 frigidarium, 그리고 열탕 caldarium이 겸비된 전형적인 로마식 목욕탕으로, 도시 입구에 지어진 것으로 보아 과거 이 도시를 방문하던 여행자들이 주로 이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공중목욕탕이다. 아마도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먼 길을 온 이곳을 찾았던 사람들이 이 목욕탕을 보고 꽤나 반가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목욕탕 유적지 앞에 세워진 안내판을 천천히 읽어 보며 발굴당시의 사진도 살펴본다. 간략한 설명이지만 유적지 전체의 약도에 목욕탕 위치도 표시되어 있고 평면도도 게시되어 있어 이해에 상당히 도움이 된다.
도시가 버려지고 허물어지기 이전의 모습을 상상하며 유적들을 살펴본다. 산자락 끝에 묻혀 있는 석축이 모두 드러나지 않은 채 목욕탕을 지탱하였을 이오니아식 기둥이 남아있다. 현재 눈에 보이는 기둥만 보더라도 상당히 큰 규모의 목욕탕임을 알 수 있다. 헬레니즘 시대에 처음 지어졌고 로마시대에 많은 부분이 확장되어 지어진 목욕탕은 아직 발굴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라 한다. 목욕탕 유적지 뒤 나지막한 동산 위를 올려다보니 나무 사이사이로 많은 돌이 흩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저곳도 아마 아직 발굴전인 미발굴유적지의 일부인 모양이다. 마치 나지막한 동산을 살짝 덮고 있는 듯 드리워진 파란 하늘이 아직 발굴되지 않은 유적지를 살포시 감싸 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튀르키예 관광지 어디에서나 많이 볼 수 있는 견공이 어김없이 관광객들이 오가는 길 위에 길게 누워있다. 그리고 아기를 앞으로 앉은 부부가 안내판의 설명을 읽고 서 있다. 어디선가 나타난 누렁이와 흰둥이들이 유적지를 거처 삼아 지내는지 산 위에서 순식간에 꽤 여러 마리의 견공이 나타나 으르렁거리며 영역다툼에 열을 올리는 광경이 벌어지는데도, 늘 있어왔던 일상적인 일이라는 듯, 수천 년의 세월이 바람결에 느껴지는 유적지 앞으로 청색 유니폼을 입은 관리인이 스마트 폰을 보며 무심히 지나간다.
스테이트 아고라 State Agora
시야를 반대로 돌려 스테이트 아고라(Stage* Agora, 27번)엔 점토로 구워 만든 붉은 관과 쪼개지고 갈라진 기둥, 벽체를 이루었을 많은 돌이 채석장의 돌처럼 쌓여 있다. 아마도 흩어진 돌과 쪼개지고 갈라진 기둥들은 과거 아고라 건축물의 일부였을 것이고, 점토관은 이곳에 물을 공급하는 수로에 사용되었던 상수관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필자 주
Ephesus Today 안내도 27번의 Stage Agora는 State Agora를 잘못 적은 것으로 보인다. 에베소 유적엔 두 개의 아고라가 있는데, 또 다른 하나는 안내도 3번의 Commercial Agorark 그것이다. Dl 두 개의 아고라(광장)는 목적이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27번의 아고라는 3번의 아고라에 비에 지형적으로 높은 곳에 있다. 3번의 아고라는 정치적이 목적의 광장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3번의 아고라는 상업적 목적으로 지어진 아고라로 추정된다. 그리고 필자가 현장에서 촬영한 유네스코문화유산 설명을 위한 안내도 3번엔 튀르키예어로 Devlet Agorasi 영어로 State Agora로 병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Ephesus Today 안내도의 Stage Agora는 단순 오기임이 확실하다.
바리우스의 목욕탕과 마찬가지로 State Agora는 수 차례에 걸쳐 개조되었는데, 첫 번째 아고라는 기원전 6세기에 헬레니즘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발굴 과정에서 현재 아고라 아래 약 2m 아래에 묻힌 채 발견되었다고 한다. 기존의 아고라가 묻히고 그 위에 현재의 아고라를 지은 셈이다. 현재의 구조는 기원전 3세기 로마 시대에 정방형 사원과 함께 지어졌으나, 황제 아우구스투스 Augustus 통지기간에 사원이 철거되었다 이후 카라칼라 Caracalla 통치 기간(서기 211-217년)에 재건되었고, 테오두시우스 Theodusius 황제 때(between 379-395 A.D.)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이루어진다.
당시 이 스테이트 아고라는 에베소 정부의 토론을 위한 공공의 장소와 만남의 장소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측면은 강렬한 태양이나 비를 피할 수 있는 건축구조인 Stoas와 접해 있었으며, 모퉁이에 있는 저수지는 폴리오 수로(23번)에 의해 공급된 것으로 보인다. 아고라의 중심에는 이집트 여신 이시스에게 바쳐진 사원(Isis Temple, 26번)이 있었는데, 이 사원은 중요한 사안이 투표로 결정되는 곳으로도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아나톨리아 반도엔 분홍색 화강암이 나오는 채석장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 이시스 신전엔 분홍색 화강암 기둥이 남아있다 하니 당시 이집트와 에베소 사이의 문물교류 등이 활발했던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아고라 주변에서 기원전 6-7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수많은 무덤과 고대 테라코타 석관과 수면 아래 약 3m 근처에서 Panayir 산을 둘러싼 도로도 발견되는데, 아고라 주변의 북동쪽 지역이 당시에 에베소의 묘지로 사용되었음을 증명하는 발굴이었으며 이때 발굴된 석관 무덤 중 하나는 현재 에베소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한다. (출처 : https://www.ephesusturkey.com/ephesus-highlights/state-agora/)
오데온 Odeon (Bouleuterion)
Odeon 또는 Odeum은 고대 그리스어 ᾨδεῖον, 오데이온 Ōideion에서 비롯된 말이다. ‘노래하는 장소’를 뜻하는 건축물 오데온은 로마의 일반적인 원형극장보다는 작은 규모의 공연장으로 주로 공연이나 회의를 위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오디오 Audio는 바로 그리스어 오데이온에서 비롯된 말이다.
오데온 안내판*에 적혀 있는 블레루테리온 Bouleterion은(25번) 그리스어 βουλευτήριον로 의회 의사당을 뜻한다. 상원 회의와 공연 등에 사용된 홀 또는 극장으로 보이는 유적이다. 원형극장 같은 형태의 카베아(Cavea, 그리스와 로마 극장과 원형 극장의 좌석)가 있고 앞으로 깨진 기둥이 줄지어 이어진다. 그리고 쪼개지고 갈라진 기둥의 조각들이 열주(列柱, colonnade) 앞 공터(26번 이시스 신전 앞)에 흩어져 있다. 관람 편의와 유적지 보호를 위해 설치한 나무 데크를 따라 걸으며 당시의 규모를 가늠해 본다. 안내도와 남아있는 열주의 형태로 보아 극장의 전면 무대(Orchestra, 그리스어 ὀρχήστρα, place of action for the actors, 합창단이나 배우들이 연기하는 고대 그리스 극장의 무대 앞)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08년 흙 속에 묻혀 있던 발굴 당시의 사진과 2009년 발굴 후 사진을 살펴보니 더욱 확연히 오데온의 형태를 알아볼 수 있다.
과거엔 지붕이 있었고 무대 좌우로 계단이 있었지만 지금 남아있는 모습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세로줄 문양이 새겨진 기둥은 이오니아식으로 보인다. 돌을 가공하고 두 줄 이상의 석축을 쌓아 판석을 얹어 무대(stage building, Skene, 고대 그리스극장의 무대 뒤의 구조물, 아마도 초기엔 나무로 만든 가벼운 임시 구조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후에 로마시대엔 석조로 만들어진 영구 구조물로 발전한다.)를 만든 것을 알 수 있는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렇게 본다면 오데온은 크게 세 개의 구역, 청중들의 좌석인 카베아(Cavea)와 무대인 오케스트라(Orchestra), 그리고 무대를 만드는 구조물인 스케네(Skene)로 나뉘는 셈이다. 아무튼, 비교적 오데온의 윤곽이 많이 남아있는 그런 흔적을 따라 오데온 안으로 들어가 본다. 청중석이었던 반원형 아래쪽의 좌석들은 비교적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잠시 그곳에 앉아 이곳에 앉았을 로마인들의 숨결을 느껴 보기로 한다. 안내판 단면도에 따르면 무대 좌우로 계단이 있고 2층 구조로 지어진 오데온이다. 아마도 중앙에는 소리가 잘 울리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대략 가운데 지점으로 짐작되는 곳에서 서서 친구 이름을 불러본다. 친구들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대답하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서 노래를 부르면 소리가 잘 울리고 사방 청중석에서도 잘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안내판의 영문 설명
The Bouleuterion housed the meetings of the council (boule) as well as musical performances & contests. The originally roofed semi-circular auditorium is bonded to a stage wall. The building was erected around A.D. 100. In A.D. 150, Publius Vedius Antoninus sponsored a new stage building which displayed a portrait gallery of the Imperial family & letters of Emperor Antoninus Pius (A.D. 138-161)
Bouleuterion은 협의회(boule, 고대 그리스의 도시에서 βουλή은 도시의 일상 업무를 수행하도록 임명된 500 명 정도의 시민 평의회를 의미함.) 회의와 음악 공연 및 경연 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원래 지붕이 있는 반원형 강당은 무대 벽에 붙어 있습니다. 건물은 서기 100년경에 세워졌습니다. 서기 150 년, 푸블리우스 베디우스 안토니누스 (Publius Vedius Antoninus)는 황실의 초상화와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 (A.D. 138-161)의 편지를 전시한 새로운 무대 건물을 후원하였다.
친구들이 앉아 있는 원형의 청중석을 자세히 살펴보면 상단과 하단이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하단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고 상단은 하단에 보이는 마감돌들이 떨어져 나간 것을 볼 수 있다. 경사진 언덕 사면에 상단과 같이 크고 작은 돌과 진흙으로 차곡차곡 쌓아 상호 결속강도를 높이고 그 위에 하단에 보이는 가공된 돌을 계단식으로 붙여 마감하였음을 알 수 있다. 수천 년을 견딘 건축물의 내부 구조의 비밀은 크고 작은 돌을 진흙을 메워가며 성벽처럼 가지런히 쌓아 결속력을 높이는 축성, 또는 조적기술이 바탕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프리타네온 Prytaneion
오데온 바로 옆에는 기둥과 기둥 사이를 가로질러 놓인 보가 몇 개 비교적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공동체인 도시의 관리를 위한 에베소 시청이라 볼 수 있는 프리타네온이 있다. 오늘날 시청이나 도청 옆에 의회가 있듯이 오데온 옆에 공공청사 프리타네온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의 프리타네(prytaneis, seat of government)는 정부청사 자리로 도시의 중심에 있었다고 한다. 프리타네엔 일반적으로 도시 또는 마을 중심지역에 공동체의 결속을 위한 신성한 불을 보관하는 프리타네온(Πρυτανεῖον)이 있었는데, 이곳에는 불의 여신이자 마을 공동체의 상징인 ‘헤스티아의 거룩한 불 holy fire of Hestia’이 있었고 족장이나 왕은 프리타네온을 중심으로 거주지를 건설하고 도시를 통치하였다고 한다.
한때 고대 그리스의 도시였던 에베소도 고대 그리스의 도시구조를 따랐을 것이고 더욱이 고대의 항구로 이어지며 온갖 동서양의 문물이 교류되었을 에베소의 프리타네온 위치는 매우 중요한 도시설계의 요소였음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런데, 지금 필자가 보고 있는 에베소 유적지의 프리타네온, 오데온, 아고라 등은 안내도상 유적지의 중심지로 보이진 않는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유적이 더 있다는 이야기일까? 그렇다. 에베소 유적은 30% 정도만 발굴되었고 아직 70%는 땅 속에 묻힌 채 발굴 중이라 한다.
아무튼, 유적지 뒤편 언덕에 보존을 위해 지붕으로 덮개를 씌운 유적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발굴 중인 것으로 보인다. 프리타네온의 기초(基礎)도 경사진 언덕면의 부지에 크고 작은 돌과 진흙을 섞어 쌓아 수평을 맞추고 그 위에 건축물을 세운 것을 뚜렷이 볼 수 있다. 사람들이 통행하는 거리 또한 사방 30㎝~60㎝가량 되는 돌을 깔아 빗물에 도로가 유실되지 않게 만들었다. 수천 년 전 이 길을 통하여 오고 갔을 수많은 사람들을 상상해 본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메우는 거리이지만 과거엔 이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나귀에 짐을 싣고 에베소를 찾은 실크로드 상인들부터 찬란하고 화려했던 도시를 찾아온 이방인들까지 여러 계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오갔을 거리였을 것이다.
프라타네온의 구조는 안내판의 설명에 기록되어있는 ‘Rhodian Peristyle’ and Prytaneum에 관한 설명을 그대로 인용한다.
The courtyard (33 × 28 m), lying to the west of the Bouleuterion & enclosed on all three sides corresponds to the type of the 'Rhodian Peristyle' with its elevated columnar architecture at the east. An altar or two smaller temples were located on a raised podium to the west side. The sacred quarter, probably built in the Augustan period (27 B.C. - A.D. 14), was dedicated to the deified Caesar & Goddess Roma or Artemis & Emperor Augustus.
Bouleuterion의 서쪽에 놓여 있고 3면이 모두 둘러싸여 있는 안뜰 (33 × 28m)은 동쪽으로 높은기둥이 배치되는 'Rhodian Peristyle' 유형의 건축물이다. 제단 또는 두 개의 작은 사원으로 보이는 이 건축물은 서쪽에 높은 연단이 있다. 아마도 아우구스투스 시대(기원전 27년 - 서기 14년)에 지어진 신성한 이 건축물은 살아있는 신으로 신격화된 시저와 로마 여신 또는 아르테미스와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 헌정되었다.
The Prytaneum, erected in the same period, was entered via a courtyard (26 × 22 m) surrounded by columns; this building was the office of the city's leading government dignitary. Its main room was used for public banquets for honoured individuals. The ashlar foundation in the centre of the room was either used as a sacred altar for Goddess Hestia, or a place for food preparation. In the area of the Prytaneum the four famous roman copies of the statue of Artemis Ephesia were erected.
To the west, a richly decorated banquet-hall or residential house (14 × 11 m) seems to have been functionally related to the Prytaneum.
같은 시기에 세워진 Prytaneum은 기둥으로 둘러싸인 안뜰 (26m × 22m)을 통해 들어간다. 이 건물은 도시의 주요 정부 고위 관료의 사무실이었다. 메인 룸은 영예로운 개인을 위한 공개적인 연회에 사용되었다. 방 중앙에 있는 ashlar 기초는 헤스티아 여신을 위한 신성한 제단이나 음식 준비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Prytaneum 지역에는 Artemis Ephesia 동상의 로마 복제품 4 개가 세워졌으며, 서쪽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연회장이나 주거용 주택(14m × 11m)이 프리타네움과 기능적으로 관련이 있었던 것 같다.
쿠레테스 거리 Curetes Street
이제 우리는 프리타네온을 나와 과거 에베소 고대도시의 중앙 도로였던 쿠레테스 거리(16번)를 걷는다. 약간 경사진 길을 따라 내려가며 고대도시 유적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것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오던 길을 되돌아본다. 아직 쓰러지지 않고 남아있는 석주 숲을 지나는 듯한 거리이다. 반듯하고 매끈하게 다듬어진 돌이 깔린 도로이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손상되지 않은 도로를 따라 걷는, 직접 걸어보지 않으면 뭐라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는 것은 이 길을 걷고 있는 관광객들의 공통적인 느낌일 것이다. 과거 에베소를 오가던 많은 사람들이 모두 이 길을 통과하였을 것이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중앙로요, 영어로 말하면 메인 스트리트 정도 될 것 같은 주요 도로를 따라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계속 이어가는 셈이니 에베소의 중앙 도로 쿠레테스 거리는 과거로의 여행을 할 수 있는 에베소 타임머신과도 같다는 생각을 하며 거리를 걷는다. (계속)
@thebcstory
#튀르키예 #여행 #여행에세이 #세계여행 #에베소 #인류문명 #문명 #문명사 #세계사 #메소포타미아 #수메르문명 #고고학 #아고라 #로마시대 #기독교성지 #에베소고대도시 #쿠레테스거리 #오데온 #바리우스목욕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