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 고대도시 유적지 [3]

에베소(Ephesus)고대 문명의 발자취를 찾아서

by 조영환


에베소 고대도시 유적지 Efes Antik Kenti, Ephesus Ancient City [3]



쿠레테스 거리 Curetes Street(16번)를 따라 걸으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언덕에 흩어져 있는, 기나긴 세월의 두께를 느낄 수 있는 석축과 열주들은 당시 도시의 모습을 후세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힘겹게 버티고 있는 듯 비친다. 고대 도시의 비밀과 같은 코드가 담겨 있는 유적지를 돌아보는 일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설렘이 가득한 경이로운 경험이다. 인류 문명이 만든 도시는 수천 년 전 에베소와 같은 모습에서 진화를 거듭하여 오늘날 현대문명의 도시로 바뀌었다. 앞으로 수천 년 후의 도시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ephesus-visit-map-turkey2_출처_Culturaltravelguide.com (1).jpg
20230104_150609.jpg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 Asclepius rod


길가에 비석처럼 세워진 돌에 새겨진 문양이 왠지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의술(치료)의 신 아클레오피스의 상징으로 뱀 한 마리가 휘감고 올라가는 지팡이가 새겨진 부조이다.


20230104_150717.jpg
Asklepios_-_Epidauros.jpg
1634px-Temple_of_Apollo,_Didyma_-_Adyton, 아폴로 신전에 있는 아디톤

Deed - Attribution-ShareAlike 3.0 Unported - Creative Commons



고대의 여러 유적에 자주 등장하는 뱀, 뱀은 치료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아클레오피스의 뱀은 고대 문명의 유적에, 특히 신전에는 어김없이 나오는 뱀인데, 기원전 300년경부터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은 치료를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고 전해진다. 정화 의식 후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신전의 제한된 구역으로 가장 거룩한 성소로 알려진 아바톤 또는 아디톤(abaton or adyton)에서 밤을 보내고 사제에 의하여 치료 과정이 진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팡이에 새겨진 뱀의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되는데, 허물을 벗고 재생되는 것이 회춘을 상징하기도 하였고, 뱀으로부터 추출한 독성은 약성이 있어 때때로 치료에 처방되어 사용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치료의 신 아스클레피아 숭배 과정에서 결합된 것으로 보이는 뱀은 오늘날에도 병원이나 앰블런스의 상징으로 흔히 볼 수 있는데, 이와 비슷한 두 마리의 뱀이 감고 올라가는 카드세우스는 기원전 4000년~3500년경 수메르인들의 초목과 지하세계의 신으로 숭배된 닝기시다 Ningishzida와 함께 메소포타미아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농경 정착생활을 하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식물과 농업을 관장하는, 치료와는 다소 거리가 먼 신으로 알려져 있다.


SE-9f10114e-7966-4e1e-ae87-e135fb4dccc2.png 세계보건기구(WHO),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File:Flag of WHO.svg - Wikimedia Commons


SE-a4477996-4338-45a0-a22e-0ecd02756ed8.png 응급의료 서비스 '생명의 별'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File:Star of life2.svg - Wikimedia Commons


1055px-Ningishzida,_with_snakes_emanating_from_his_shoulders,_on_a_relief_of.jpg 어깨에서 뱀이 뿜어져 나오는 닝기시다/Deed - Attribution-ShareAlike 4.0 International - Creative Commons


그런데, 두 마리의 뱀이 감고 올라가는, 이 닝기시다의 상징이 오늘날 전 세계 의료분야에서 많이 사용되는데, 이는 미 육군 의료지원단의 장교 제복에 닝기시다의 카두세우스를 채택하면서 비롯된 잘못된 보편적 사용으로 보인다.



멤니우스 기념비 Memnius Monument


멤니우스 Memnius는 에베소의 저명한 시민 Memmius는 카이우스의 아들이자 로마의 독재자 술라(sula)의 손자인데, 이 기념비(Memnius Monument, 18번)는 아우구스투스의 황제 통치 시기인 1 세기에 멤니우스에 의하여 건축된다.


SE-d34fc172-ac01-4f03-93c0-4d6e2911fff2.jpg
SE-dafb5249-9a01-46fe-9880-2c679dab7722.jpg


멤니우스 기념비를 살펴보면 넓은 단 위에 세워진 기념비에 일부 떨어져 나간 부조 Relief of a male를 볼 수 있는데, 멤니우스와 그의 가족인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기단부의 마감석은 몇 조각으로 갈라지고 일부는 떨어져 나가 주변에 흩어져 있으며, 기념비의 일부인 사각기둥 역시 깨지고 갈라진 채 일부만 가까스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20230104_150543.jpg
SE-4f9bdb4c-63eb-4f0b-a5f8-26a8d5e3fd0f.jpg
SE-33fa7bec-9252-4dec-ac7e-5dd87611964d.jpg
SE-2e346d7e-8831-4c3e-a02f-96e0da672f65.jpg
20230104_150751.jpg
SE-d2f7114f-1748-4d8d-8dce-5e0c0a338792.jpg




로마의 장군이자 정치가였으며 독재자로 알려진 술라(Lucius Cornelius Sulla Felix)는 대규모 내전을 진압하고 무력으로 권력을 장악한 인물로 유구르틴 전쟁 (기원전 107-106년), 킴브리아 전쟁 (기원전 104-101년), 킬리키아 총독 (기원전 96-93년) 등 기원전 89년의 군사적 성공으로 정치적인 입지를 다지며 집정관에 선출된다.


기원전 87년 에베소는 흑해 연안을 지배하는 폰토스 군대 Pontic armies의 점령하에 있었다. 당시 폰토스 제국(Pontic Empire)의 미트리다테스(Mithridates)는 로마 제국의 세금 부과가 너무 가혹하고, ‘아시아는 아시아를 위한 것 Asia was for the Asiatic’이라는 주장과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켜 약 80,000명에 달하는 로마인을 무참히 학살하고 3년간 에베소를 강제 점령한다. 이때 술라는 미트리다테스를 정벌하고 에베소를 탈환하게 된다.

Q._Pompeius_Rufus,_denarius,_54_BC,_RRC_434-1_(Sulla_only).jpg 기원전 54년 술라가 새겨진 데나리온 주화/Deed - Attribution-ShareAlike 2.5 Generic - Creative Commons

술라의 손자 멤니우스는 이 군사적 승리를 기념하고 에베소의 해방을 축하하기 위하여 사방 4면에 솔라를 비롯한 가족의 부조를 새겨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를 세운 것이다. 오랜 세월 전쟁과 지진의 피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 상태로 보존이 잘 된 멤니우스 기념비는 퍼즐조각처럼 갈라진 채 아슬아슬하게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전령의 신 헤르메스와 그의 지팡이 카드세우스 Hermes Caduceus



20230104_150837.jpg
SE-607804dd-aec5-49bb-bc75-a405dc5aa79b.jpg


그런데, 뱀이 감겨 있는 지팡이를 들고 있는 또 다른 조각상이 보인다. 이 조각상은 제우스의 아들 헤르메스와 양 한 마리가 같이 조각되어 있는데, 가축의 번식을 주관하는 부와 행운의 신 헤르메스이다. 당시 고대인들의 주요 생업은 유목 또는 농경이었다. 가축은 당시 사람들의 가장 소중한 재산이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다. 그러한 당시 경제활동의 주류를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가축의 신 헤르메스인데, 평소 날개 달린 모자와 신발을 신고 두 마리의 뱀이 감겨 있는 지팡이를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헤르메스 신은 가축의 번식뿐만 아니라, 바닥에 깔린 돌을 치우고 정비하여 길을 만드는 신으로도 알려져 있다. 여행자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용하는 길을 만들고 정비하는 신이었으니 사람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신이었지 싶다. 또한, 상인들에게도 부를 가져다주는 거래와 교역을 매개하는 역할을 하였던 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도둑의 신으로도 수식되는 신이다. 신화에 오르페우스의 아내인 에우리디케를 다시 저승으로 안내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래서 죽은 자를 지하세계로 인도하는 신으로도 알려져 있는 참으로 다재다능한, 요즘 말로 쉽게 표현하자면 멀티플레이어 같은 신이라 할 수 있는 헤르메스이다.



20230104_151031.jpg
20230104_151002.jpg
20230104_151023.jpg
20230104_151000.jpg
20230104_151005.jpg
SE-7698781e-d4f4-40d6-9149-d0075262b7a6.jpg



폴리오의 분수 The Fountain of Pollio


폴리오 분수 The Fountain of Pollio(23번)는 스테이트 아고라 남쪽, 오데온(Odeion) 건너편에 있는 분수대이다. 단순한 분수대가 아니고 에베소 곳곳에 물을 공급하는 수로를 건설한 C. Sextilius Pollio를 기리기 위해 97 년에 지어진 건축물이다. 방정한 돌을 쌓아 만든 분수대인데, 아치형 장식과 여러 조각상들은 분수대가 완공된 후에 추가적으로 만들어진 장식이다. 현재의 아치는 돌 색깔이 확연히 차이 나는 것으로 보아 부분적으로 복원된 것으로 보인다.


기록에 따르면, 에베소로 공급된 물은 42km 떨어진 Kencherios(해안도시 Kuşadası), 15km 떨어진 Marnas의 Çamlık마을의 하천, 20km 떨어진 Cayster 강에서 끌어왔다고 한다. 구운 점토 수로관으로 먼 곳의 수원지에서 끌어온 물은 에베소의 분수로 들어와 다시 도시 내 상수관을 통하여 에베소 각 처에 무료로 공급되었다 한다. 당시 수도를 건설하고 좋은 수질의 물을 끌어오는 기술은 매우 유용한 첨단 기술이었으며, 목욕문화가 발달한 로마 도시에서 없어서 안될 필수의 기술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수로를 통하여 물을 공급하는 로마의 수도교는 도시에 물을 공급하는 핵심 시설로, 3세기 무렵 로마엔 11개의 수도교가 건설되었다고 한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곳곳에서 로마의 수도교를 볼 수 있는데, 필자는 안탈리아 칼레이치 구시가지를 여행하면서 로마 시대의 수도교 밑으로 도로를 건설하여 차량이 통행하는 모습을 목격하였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대부분의 수도교는 유물 보호를 위하여 내부에 현대식 수도관을 설치하여 사용하는데, 일부 수도교는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하니 튼튼하기로 치면 단연 으뜸인 로마시대의 대표적인 문명이라 할 수 있겠다. 더욱이 수도교 건설과 관련된, 1세기의 비트루비우스(Vitruvius)의 건축론이나 프론티누스(Frontinus)의 수도론은 로마의 수도교 기술을 뒷받침하는 이론적인 기술 서적이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세고비아 수도교의 다리와 콘스탄티노플의 수도교는 로마의 수도교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남아있다.

Pollio Fountain은 고대 에베소 도심의 호화로움과 막대한 부를 지탱하는 중요한 경제적 자원이었고 로마문명의 상징이었을 것으로 짐작이 되는데, 폴리오 분수대 맞은편에 지어진 도미티아누스 신전(19번)과 함께 에베소를 상징하는, 당시 외부의 사람들이 에베소를 방문했을 때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주요 건축물이었을 것이다.


Pont_du_Gard_Oct_2007.jpg 현재 남부 프랑스에 있는 퐁뒤가르 다목적 아치교. 로마시대에 쓰였으며 위에는 수도교로 사용되었고, 아래는 사람들이 다녔다.

Deed - Attribution-ShareAlike 2.0 Generic - Creative Commons



그런데 역설적인 가설에 이어 로마는 상수도 때문에 망했다는 한국인 프랑스 유학생의 학술연구가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상수도관에 쓰였던 납, 그릇에 쓰였던 납 등이 로마제국의 지도층을 병들게 하여 성격 이상자도 많아지고 병들며 망했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외에도 여러 학설들이 주장되고 있다. 관련 조선일보 기사와 동아 사이언스 기사를 첨부한다.




니케 여신 Nike Godness



20230104_150745.jpg
20230104_151220.jpg
금화 의 콘스탄티누스 2세와 뒷면에 새겨진 빅토리아 여신/Deed - Attribution-ShareAlike 3.0 Unported - Creative Commons


그리스 신화에서 니케 Nike 여신은 예술, 음악, 육상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승리의 여신으로 숭배되었다. 고대 사회의 열강 제국들은 영토확장이 곧 국부와 직결되는 시대였다. 모든 부의 원천이 토지에서 시작되었기에 전쟁을 거듭함으로 영토 확장이 이루어졌고 국가가 성장한다고 믿었으며 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생각하였다. 니케는 고대 사회의 가장 중요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정복의 여신으로 숭배되었다. 당시 최강의 제국이었던 로마에서 니케는 어떻게 여겨졌을까? 우리는 오늘날에도 스포츠 경기를 응원할 때 빅토리를 외친다.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하였던 당시 로마에 없어서는 안 되는 신이 니케 여신이었을 것이다. 로마는 니케를 빅토리아(Victoria)로 부르며 승리를 상징하는 여신으로 숭배하였으며 로마 제국의 심장과도 같은 로마 공회의 수호신으로도 숭배하였다. 당시 로마의 금화에 황제와 함께 새겨졌으며 에베소 시민들의 숭배를 받았던 니케 여신이다.


니케는 대개 날개 달린 승리의 여신으로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있는 것이 특징적인 묘사이지만, 전쟁의 신 아테네와 관련하여 묘사될 땐 날개 없는 승리의 여신으로도 묘사된다. 스포츠용품업체 나이키와 미 육군의 나이키 미사일은 니케 여신의 이름을 빌어온 것이다. 니케 여신의 옷자락에서 나이키 로고가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오늘날 스포츠 용품 업체 나이키는 승승장구하는 셈이지 싶다. (계속)

@thebcstory

#튀르키예 #여행 #여행에세이 #세계여행 #에베소 #고대도시 #니케 #나이키 #헤르메스 #폴리오분수 # 아스클레피오스의지팡이 #그리스로마신화 #로마문명 #수도교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에베소고대도시유적지 #에베소야외막물관 #멤니우스기념비








keyword
이전 05화에베소 고대도시 유적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