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Ephesus) 고대 문명의 발자취를 찾아서-에베소 고대 도시 유적지 Efes Antik Kenti, Ephesus Ancient City [5]
에베소 고대 도시 유적지 Efes Antik Kenti, Ephesus Ancient City [5]
인류가 정착생활을 한 것은 기원전 7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필자가 지난 여정 중 잠시 들렸던, 콘야(Koyna) 인근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원시 도시 정착지 유적인 차탈회윅(Çatalhöyük)의 기원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그러하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생을 기원전 5000년으로 보았을 때 이미 그 이전부터 인류는 정착생활을 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유적이다. 유랑 채집 생활에서 농경 정착생활로의 전환에 어떤 동기가 있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도시는 정착생활을 하는 고대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삶의 터전이었던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고대 인류는 도구의 발명과 함께 공동체를 형성하여 사는 것이 유랑 생활을 할 때 보다 훨씬 더 안전하고 잘 살 수 있는, 생존과 번영을 도모할 수 있는 길임을 경험을 통하여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점차 정착지의 규모가 확대되고 공동체가 더욱 번영할 수 있는 사회체계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고대 도시의 출현은 인류가 정착 생활을 하면서 예견된 필연적인 결과물이었고, 이 결과물은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셈이다.
Population 5,000 - 7,000. Large numbers of buildings clustered together. The inhabitants lived in mudbrick houses. No footpaths or streets between the dwellings. Most were accessed by holes in the ceiling and doors on the side of the houses, with doors reached by ladders and stai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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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도시 에베소는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이 거주했던 도시이다. 헬레니즘, 로마, 동로마, 공국 및 오스만 시대에 이르기까지 소아시아의 중요한 항구였고 무역과 상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도시였다. 오늘날 남아있는 석조 건축물의 흔적, 주거지 및 상업지역, 공공지역 등 유적의 규모가 당시 에베소의 번영을 잘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과거 수 천년 전, 이곳에 살았던 에베소 사람들이 오갔을 거리를 따라 걸으며 당시 활기찬 도시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지금은 비록 허물어져 돌무더기들만 남아 있지만, 남아있는 도시의 흔적 만으로도 엄청난 규모의 대도시였음을 짐작하기에 충분한 에베소 유적지 골목길을 따라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계속 이어간다.
스콜라스티카 목욕탕 Scholstica Baths와 공중 화장실 The latrine
하두리아누스 신전을 지나면 당시 고급 주택가였던 테라스 하우스(Hillside House, 8번)와 정교한 모자이크로 장식(The Mosaic – Paved Sidewalk, 12번)된 거리, 그리고 길 건너편 골목길을 따라 공중목욕탕(Scholstica Baths, 11번)과 화장실(The Latrine, Public toilets, 9번) 등 위생시설이 들어선 공중위생시설구역(약도의 9~13번)이 이어진다. 비교적 형태가 제대로 남아있는 스콜라스티카 목욕탕 입구(Entrance Scholastica Baths, 13번)를 통하여 수천 년 전 공중목욕탕 유적지로 들어간다.
1세기경에 P. 퀸틸리우스 발렌스 바리우스(P. Quintilius Valens Varius)가 지었던, 일명 바리우스 목욕탕(Varius Baths)은 외침과 지진 등으로 허물어지고 4세기경 스콜라스티카(Scholastica)라는 여성의 자금 지원으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입구에 동상에 세워져 있는데, 머리는 현재까지도 발견되지 않았다. 당시로선 나름 첨단 시설이었던 스콜라스티카 목욕탕은 에베소 사람들의 사교와 토론, 가십거리와 사담, 소소한 정보들이 오가는, 오늘날의 목욕탕과 크게 다르지 않은 소통의 장소였을 것이다. 당시 고위층의 주택엔 목욕탕 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대다수의 평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공중시설로 추정되는데, 약 천명의 이용객을 수용할 수 있는, 에베소에서 가장 큰, 로마의 목욕 문화를 상징하는 목욕탕이었다. 또한, 부대시설로 도서관과 오락실, 그리고 방문객이 며칠 동안 머물 수 있는 개인실과 탈의실 아포디테리움(Apodyterium), 냉탕(Frigidarium), 온탕인 칼다리움(Caldarium)도 갖추어져 있었다 하니 규모 또한 상당했던 목욕탕이었음을 알 수 있다.
1세기경 바리우스 목욕탕과 함께 지어진 공중 화장실(The Latrine, Public toilets, 9번)은 목욕탕과 함께 대다수의 에베소 사람들이 이용했던 당시로선 첨단 위생시설로 물을 이용한 수세식 공중위생 시설이다. 당시에 이미 물을 이용하여 수세식 화장실을 고안하였으니 실로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이 위생 시설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칸막이가 없었던 것이라 생각하는 독자분들이 많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치명적인 약점은 칸막이가 없다는 사실이 아니고 목욕탕에서 쓰고 버려지는 뜨거운 물에 있었다. 뜨거운 물은 기생충 번식에 좋은 조건이 되었고 농촌으로 흘러가 거름으로 사용되며 기생충 감염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위생적인 시설에서 오히려 비위생적인 기생충의 감염이 당시 에베소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했을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다.
동아사이언스 (www.dongascience.com) 2016년 01월 10일 자 게재 ‘위생의 제국’ 고대 로마, 알고 보면 ‘기생충 천국’ 제하의 기사에 따르면, 피어스 미쉘 영국 케임브리지대 고고학과 교수팀은 유물과 유적, 인간의 변(便) 화석을 분석해 이 같은 사실을 밝혀내고 연구 결과를 저널 ‘기생충학(parasitology)’ 7일 자에 발표했다.
켈수스 도서관 Library of Celsus
필자가 본 에베소 유적 중 가장 경이로운 건축물을 꼽으라면 단연 켈수스 도서관을 꼽을 수 있다. 로마제국의 위대한 유산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도서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시 로마제국의 번영과 고대 도시 에베소의 도시 규모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유적이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리아와 버가모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도서관인 에베소 켈수스 도서관은 약 12,000~15,000권의 두루마리 도서를 소장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켈수스 도서관은 에베소 총독이었던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아퀼라 폴레마에아누스(Tiberius Julius Aquila Polemaeanus)가 로마 제국의 그리스 출신 군 사령관이자 정치인, 원로원 의원이었던 아버지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켈수스 폴레마이아누스(Tiberius Julius Celsus Polemaeanus)를 기리기 위하여 건축한다. 도서관의 건축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25,000 데나리온(로마시대의 기본 화폐인 은화로 1 데나리온은 당시 일반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음.)의 유산을 남긴다는 기록이 비문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퀼라 사후 하두리아누스 황제(117년~138년) 통치 기간에 완공된 것으로 추정한다. 대리석으로 지어진 건축물 내부는 약 180㎡의 면적으로 지하에는 셀 수 그의 석관이 안치되어 있다. 아퀼라의 아버지인 셀 수 쓰는 그리스 출신의 성공한 군인으로 로마의 집정관, 로마의 원로원 의원으로 선출된 최초의 그리스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서기 262년 고트족의 침입으로 화재가 발생하여 소실되고 후에 11세기 지진으로 외관 또한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폐허나 다름없었던 상태로 남아있던 도서관은 이후 1970~1978년 독일 고고학자 폴커 미하엘 스트로카(Volker Michael Strocka) 주도로 외관이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쾌락의 집(The so-called house of Pleasure)
켈수스 도서관 앞, 마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거리인 Marble Street(6번) 건너편엔 ‘쾌락의 집(The so-called house of Pleasure) – 매춘업소 brothel’이라고 알려진 에베소의 환락가로 Marble Street 바닥 대리석에 새겨진 광고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광고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닥에 새겨진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방향을 나타내는 왼발과 왕관을 쓴 여인, 하트 모양과 돈지갑이 새겨져 있는데, 이 정도로 큰 발의 성인과 돈을 소지한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의 광고로 보인다.
인근에 에베소 상업 지구(Commercial Agora, 3번)가 있었으며, 켈수스 도서관 바로 옆에 세워진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의 문(Gate of Mazeus and Mithridates, 5번) 비문에 따르면,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라고 불리는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와 마르쿠스 아그리파(Octavian Augustus and Marcus Agrippa)란 두 자유민에 의해 세워진 문으로 상업 지구로 이어지는 남쪽 출입구이다.
https://turkisharchaeonews.net/object/gate-mazaeus-and-mithridates-ephesus
에베소 원형극장 (Theater)
에베소 유적지 중 단연 가장 웅장한 건축물이다. 기원전 3세기 하버 스트리트(Harbor Street, 1번) 맞은편 파나이르(Panayir , Pion) 언덕의 경사면에 지어진 전형적인 헬레니즘 극장의 구조로 건설되었으며 로마 콜로세움의 절반 크기인 25,000석의 규모의 극장이다. 대극장의 발굴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250년경, 리시마코스(Lysimachos)의 통치 기간에 처음 건설된 후 로마 시대에 확장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유적이다.
사도행전 19장 21절부터 이하의 신약성경 기록은 당시 에베소의 대극장에서 일어난 소동을 기록한 것인데, 은으로 아르테미스 여신의 모형을 만들어 파는 은세공인 데메트리우스(Demetrius, 데메트리오)가 일으킨 소동이다. 소동의 직접적인 원인은 예루살렘에서 추방되어 이곳 에베소에서 전도를 하던 사도 바울 설교는 당시 아르테미스 여신을 숭배하던 에베소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계기가 된다. 자연히 아르테미스 여신의 모형이 잘 팔리지 않고 자신의 생업이 위협받게 되자 자신이 만든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판매하는 상인들을 선동하여 대극장에서 설교 중인 사도 바울을 대적케 하는 소동이 벌어진다. 당시 성경에 기록된 Theater가 에베소의 원형극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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