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에베소 고대도시 유적지에서 찾은 나의 흔적
시간은 우리 삶에 끊임없이 흔적을 남기지만, 그 흔적이 항상 형태를 갖추고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매일 기억을 새롭게 쌓아가지만, 과거의 기억은 강물처럼 흘러가면서 사라지기 마련이다. 에베소의 거리에 섰을 때, 나는 수천 년의 시간과 기억이 현재의 나에게까지 닿는 느낌을 받으며 이 흐름 속에서 나 자신의 위치를 베이지안 사고의 틀로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과거의 시간은 나에게 사전 확률로 존재하고, 유적지라는 증거를 마주하는 순간 나의 이해와 감정이 더 깊어졌다. 수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흔적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도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에베소 유적지의 거리, 수천 년 전 고대 에베소인들이 생활했던 이곳을 걷다 보면, 과거와 현재가 모호해지는 듯했다. 에베소 유적지에서 느끼는 과거의 기운은 단지 오래된 돌과 폐허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고대인들이 남긴 이곳의 흔적을 밟으며, 나는 마치 그 시간 속에 타임슬립 한 듯했다.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느껴지는 촉감을 통해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나의 몸으로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사전 확률처럼 머릿속에 자리하던 고대의 삶에 대한 모호한 이해가 이 장소의 구체적인 촉감을 통해 사후 확률로 변화하며 더 뚜렷한 모습으로 다가왔다고 할 수 있겠다. 에베소 거리 위를 걸으면서, 지금은 사람이 살지 못하는 폐허가 된 도시의 닳고 닳은 길이지만, 그 길 위로 한때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이 새겨졌을 것이며, 그 순간들은 지금의 나에게도 그대로 이어진다고 상상해 보았다. 그 옛사람들의 삶과 그들 주변을 둘러싼 도시의 환경을 상상하며, 과거와 현재가 만나 새로운 공간을 창조해 내는 듯한 묘한 감정에 빠져드는 것은 에베소 유적지에 들어서고 나서 채 수 분이 걸리지 않았다. 과거 그들의 삶의 모습들이 나에게로 이어지는 기억의 일부가 되는 느낌이었다. 이 느낌은 베이지안 사고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감정과 거듭되는 생각을 덧입혀가며 재구성되었다.
사람들은 흔히 여행지에서 새로운 문화와 장소를 발견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에베소에서는 ‘발견’의 의미보단 수많은 사람들의 남겨놓은 기억과 증거들이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차곡차곡 쌓여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듯 그 사람들의 거대한 삶의 이야기를 만나는 느낌이었다. 이 기억과 증거들은 사라진 시간의 잔재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의 나에게 의미 있는 확률로 남아 있다. 그곳에서 나는 단지 과거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그들과 함께 서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에베소의 폐허는 수많은 기억의 층을 품고 있지만, 그것들은 그저 잊힌 흔적이 아니라, 마치 현재까지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실제로 나에게 다가왔고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 같았다. 나의 시야는 그들의 기억과 증거를 마주할 때마다 과거의 사건들을 재해석하게 되었고, 그 순간들이 나 자신에게 새로이 정의되었다. 고대의 신전이 무너지고 사라진 것은 분명 그 효용성이 사라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폐허가 된 그 빈 공간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고대 도시를 바라보면서 나는 이 도시가 단순히 물리적 구조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과거 옛사람들의 꿈과 희망, 그리고 욕망과 염원, 갈등과 분쟁의 흔적과 시간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건물과 길은 무너지고 자연재해나 전쟁으로 도시는 파괴되었지만, 그 안에는 촘촘히 남아 있는 기억들은 여전히 잊히지 않는 기억들로 나의 경험으로 전이되어 새로운 의미로 태어나고 있었다. 이것은 마치 지속적으로 되풀이되는 반복적인 패턴 같은 우리들의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간은 누구나 우리는 언젠가 흙으로 돌아가겠지만, 우리의 기억과 경험은 다음 세대의 사전 확률로 마음속에 남아 그들에게 또 다른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우리는 시간 속에 ‘흔적’으로 남아 누군가에게 새로운 의미를 주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품고 에베소 고대도시 유적지를 여정을 마치며 일종의 경외감을 느꼈다.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유적들처럼, 나의 여정도 언젠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을 수 있을까 하는 바람이 생겼다. 그것이 단순히 고대 유적을 탐방한 경험이 아닌,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면에 숨죽이고 있던 스스로의 감정과 인간으로서 겪는 번민을 풀어내며 새로운 삶의 의지를 다시 충전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내 삶의 또 다른 층위를 이루는 흔적으로 남아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리라 믿는다. 덧없다 생각했던 모든 순간이 결국 내 삶의 한 페이지로 이어지고 있음을 느끼며, 내 존재를 시간 속에 새기는 여정이었다.
에베소를 떠나는 길에 잔잔한 평온함이 스며들었다. 에베소는 그저 옛 흔적을 탐험하는 장소가 아니었다. 그곳은 내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의 자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었다. 수천 년을 지나온 유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본모습을 대부분 상실했지만, 고립과 상실의 섬같이 버려졌던 도시는 여전히 그 안에 삶의 흔적과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마치 잊힌 기억의 파편들이 한데 모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듯, 에베소는 지금도 묵묵히 시간 속에 남아 살아가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주고 있었다. 그러한 울림은 나에게 나 자신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작지만 소중한 기억과 흔적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에베소에서의 여정을 마치며 느낀 점은 단 하나다. 우리가 만들어낸 순간들이 사라지더라도, 그 순간들이 우리의 일부로 남아 있고, 또 누군가에게 전해진다면, 우리는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기억 속에 영속적으로 이어지며 살아남는다는 사실이다. 마치 가슴속 깊이 남아 숨 쉬는, 잊지 못할 사람을 기억하듯이, 나의 에베소 여정도 그 자체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얽혀 있는 소중한 기억의 한 조각으로 남게 되었다. 이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시간과 기억 속에 내 존재를 새기며, 나 또한 영원히 이어질 이야기의 일부가 되었음을 느끼게 해주는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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