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 고대도시 유적지 Efes Antik Kenti, Ephesus Ancient City [4]
이른 아침 파묵칼레를 출발하여 쉬린제 마을을 거쳐 에베소 고대 도시 유적지를 둘러보고 있는 중이다. 날씨는 기막히게 좋다. 이곳의 하늘은 늘 이런 지 여행 내내 미세 먼지는 물론 구름 한 점 없는, 가히 매혹적이라 할 수 있는 눈부시게 파란 하늘은 이곳 에베소에서도 여전하다. 언덕에서 가끔 불어오는 기분 좋은 옅은 바람이 코끝을 간질이는, 적당하게 따사롭고 적당히 눈부신 오후의 햇살을 즐길 수 있는, 어쩌면 하루 중 가장 아름다운 세상을 느끼며 만져보는 시간일 수 있는 오후 3시가 넘어가고 있다.
근 3년의 시간을 저당 잡히듯 코로나 팬데믹으로 꼼짝 못 하고 발이 묶인 후 격리 의무가 풀리자마자, 크로스백을 메고 ‘무조건 가자! 혼자라도 가자!’라며, 근거 없는 당위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며, 그렇게 낯선 땅으로 떠나온 튀르키예 여행이다. 은연중 돌부리를 걷어차고 발을 잡고 동동 구르는 것처럼 어느 날 갑작스럽게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은 너무나도 태연하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3년의 세월 속에 그렇게 일상을 묻어버리고 나서야 무서리 맞은 홍시 마냥 노곤노곤해진 셈이다.
그렇게 무작정 떠나 이스탄불에서 시작한 여행은 앙카라를 거쳐 아나톨리아 반도 중부를 지나 남부 해안 안탈리아와 중서부 에게해 해안인 이곳, 셀주크의 에베소 유적지에 이르기까지 꽤나 다채로운 얼굴과 때론 경이로운 풍경으로 그리고 아득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어마어마한 인류 문명의 시원을 담고 있는 흔적들로 낯선 여행자를 꽤나 흥분의 팬데믹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 땅에 얽힌 저간의 사정들을 부지런히 보고 듣고 배우며, 그리고 튀르키예 사람들이 즐기는 맛난 현지 음식들을 두루 즐기며 꽤 먼 거리를 이동한 셈이다. 땅덩어리가 큰 나라를 여행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역시 쉽지 않은 튀르키예 여행이다. 우리나라 국토 면적의 약 8배인 7,853만 5천㏊의 튀르키예, 보스포루스 해협 좌안의 땅 이스탄불을 뺀 나머지 97%의 국토가 아시아 지역인, 월드컵 축구도 유럽리그로 출전하며 유럽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튀르키예, 지중해, 에게해, 흑해 그리고 아시아와 유럽 대륙이 맞닿은 지점으로 문명과 세력의 충돌이 빈번했던 튀르키예의 땅 아나톨리아 반도를 여행하며 절실히 느끼는 사실은 머뭇거리지 말고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다녀야 하겠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에베소 유적지를 대략 3~4할가량 본 것 같다. 보글보글 거리는 촘촘한 거품 사이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 한 잔이 생각나는 딱 그런 시간이다. ‘아자아자! 힘내서 열심히 보자!’라고 마음속으로 구호를 외치며 한 잔의 커피를 대신한다.
하드리온 분수 Hydreion fountain
Hydreion은 서기 200년경 Memmius 기념비 북쪽 면에 추가로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 또 하나의 분수이다. 물은 어떤 문명에서나 필수적인 요소였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물이다. 로마 문명이나 그 이전의 여러 문명들,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도시는 물을 끼고 발달하였다. 과거 스페인을 여행할 때 보았던, 이사벨 여왕이 이끄는 레꽁기스타(국토회복운동)로 인하여 이베리아반도 최남단까지 쫓겨난 이슬람 세력이 마지막으로 숨었던, 깊은 산속에 지어진 알람브라궁전도 그렇고 에베소 고대 도시도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물은 도시의 번영과 직결되는 필수적인 것으로 에베소에는 조금 전에 보았던 폴리오 분수와 이곳 말고도 몇 군데 더 저수조가 설치되어 있다.
안내판 설명에 따르면, 하드리온 분수는 T. Flavius Meander에 의하여 지어진 것으로 4개의 코린트식 기둥으로 지지되고 측면에 조각상으로 장식한 예술성까지 추구한 분수이다. 로마식 주택단지였던 테라스 하우스 거리와 쿠레테스 거리 교차지점 작은 광장을 이루는 곳에 설치된 분수로 멤니우스 기념비 바로 옆에 붙어 지어진 분수이다. 당시 도시가 완전한 모습이었을 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분수 옆에 머무르며 쉬었던 에베소의 숨통 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멤니우스 기념비 사진에서 코린트 식 기둥이 세워져 있는 부분이 하드리온 분수이다.
하드리온 유적지에 세운 안내판 설명을 인용한다.
The Foutain installation occupied a small area in the region of the intersection of the Curetes Street and the so-called Terrace House Street. An elongated rectangular basin is preserved as well as a water basin, located high up, and flanked by statues in a semi-circular niche. The building inscription names T. Flavius Meaouler as founder and dates the fountain to the Severan period* (ca 200 A.D.). Reused building elements, however indicate that there was an earlier monument in this location, dating to the early Imperial period. In late antiquity, statues of tetrarch were erected in front of the Hydreion.
*Severan 왕조는 193년에서 235년 사이에 로마 제국을 통치한 고대 로마 제국의 왕조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Septimius Severus ) 황제 (r. 193-211)와 그의 아내 줄리아 돔나(Julia Domna)에 의해 세워져 셉테미안 Septimian 왕조라 불리기도 한다.
The Severan Tondo shows Septimius Severus, his wife Julia Domna, their younger son Caracalla (lower right of picture) and the obliterated image of his murdered co-heir, Geta. Staatliche Museen zu Berlin.
도미티아누스 신전 Temple of Domitian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81년 9월 14일 ~ 96년 9월 18일까지 재임한 로마 황제로 전임 티투스 Titus 황제의 동생으로 티투스 황제가 전염병으로 갑작스레 죽으며 즉위한다. "무자비하지만 유능한 독재자 a ruthless but efficient autocrat”라고 묘사되는 도미티아누스는 로마 주화를 재평가하는 등 경제개혁을 추진하고 제국의 국경을 강화하는 정책을 편다. 또한 훼손된 로마 도시를 복원하기 위하여 대대적인 건축공사를 일으키고 자신을 인구 조사 및 공중도덕을 규제, 감독하며 정부 재정을 관리 및 감독하는 책임을 맡은 고대 로마의 영구 검열관으로 지명하기도 한다. 로마의 검열관(Roman censor)은 고대 로마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치안 판사 두 명으로 구성된 제도로, 기원전 575-535년경 인구조사 권한을 가진 집정관과 호민관 제도에서 출발하였다. 평민 출신 호민관이 인구조사 권한을 갖는 것을 막기 위해 설립되었으며, 검열관들은 인구조사와 관련된 여러 권한을 독점하였다. 어떤 치안판사도 그의 결정에 반대할 수 없었고, 그를 계승한 다른 검열관만이 그 결정을 취소할 수 있었던 사실상 독재가 가능한 절대적인 권력이었다. 도미티아누스의 이러한 권위주의적인 통치는 재임 기간 내내 원로원과 잦은 마찰을 빚으면서, 후에 로마 원로원은 도미티아누스를 폭군으로 규정하기에 이르고, 마침내 96년 9월 18일 황제를 보좌하던 궁정 관리들에 의하여 암살되며 생을 마치게 되는 로마 11대 황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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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 폴리오 분수 오른쪽으로 보이는 건축물이 도미티아누스 신전(19번)의 모습이다. 당시 꽤 규모가 있었던 찬란한 석조 건축물이었던 신전은 흙으로 덮인 아치형 벽체와 기둥, 그리고 주변에 조금 남아있는 석조물들이 전부이다. 수천 년의 세월을 견뎌내느라 찬란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바람결을 따라 오가는 고양이들 만이 머무는 끝도 없는 적막감만 남은 셈이다.
도미티아누스 신전은 로마 황제에게 헌정된 사원으로,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에베소인들이 황제의 기념물을 짓는 것을 허용한 최초의 황제였다. 발굴 당시 이 건축물은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위한 기념물로 추정하였으나, 고대 에베소 유적에 대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전염병으로 사망한, 도미티아누스의 형이었으며 전임 황제였던 티투스 황제 (Titus, 79년 6월 24일 ~ 81년 9월 13일)를 기리기 위해 에베소 인들이 세운 건축물로 밝혀졌다.
헤라클레스의 문 Hercules Gate
경사진 쿠레테스 거리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거리 중간에 부조가 새겨진 두 개의 기둥을 볼 수 있다. 헤라클레스의 부조가 새겨진 기둥, 헤라클레스 문(17번)이다. 기둥에 새겨진 부조는 2세기경에 조각된 것으로 밝혀졌는데, 헤라클레스 문은 한참 후인 4세기경에 만들어졌다 하니, 이 기둥은 다른 건축물에 사용되었던 헤라클레스 조각을 이곳으로 옮겨와 문을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두 기둥 옆에 다른 돌도 세워져 있고 계단을 설치하였는데, 누가 봐도 문이지만, 누가 봐도 길을 막은 것이다. 말을 타고 가더라도 말에서 내리지 않고는 통과할 수 없어 보인다. 당시로선 상당히 넓은 도로나 다름없는 거리 중간에 이런 문을 설치한 이유가 무엇일까? 오늘날 인도나 산책로에 차량 진입을 막기 위하여 설치한 볼라드의 기능과 같아 보이는데, 쿠레테스 거리를 보행자를 위한 길로 만들기 위하여 설치한 고대 에베소 식 볼라드인 셈이다.
헤라클레스 문을 기준으로 도시와 거리는 아래위로 구분된다. 필자가 지금까지 둘러본, 오데온 Odeon, 프리타네온 Prytaneion 등 통치와 행정, 종교를 위한 건축물이 지어진 고지대의 공공 지구와 이 문을 통과하여 켈수스 도서관, 원형극장 그리고 상업시설, 테라스 하우스 고급 주택단지와 일반 서민들의 주거지, 항구까지 이어지는 저지대 상업 주택 지구로 명확하게 구분되는 셈이다.
항구 거리(harbor Street, 1번) 쪽 주 출입구에서 올라오며 관람하는 관광객들과 필자와 같이 반대쪽 출입구인 마그네시아 문(Magnesian Gate)에서 관람을 시작한 관광객들이 양 방향에서 통과하느라 잠시 혼잡해지는 광경을 보며, 이 문은 의도적인지 아닌지 분명치 않지만, 많은 인파 속에서 불온한 자를 색출하려는 통제의 목적으로 지어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헤라클레스 문을 통과한다.
트라야누스 분수 Trajan’s Fountain
헤라클레스 문을 통과하자 폭이 넓어진 거리 양옆으로 코린트식 기둥과 조각상들이 도열하듯 줄지어 이어진다. 유적지를 찾아온 관광객들로 붐비는 거리는 오늘날 대도시의 거리처럼 관광객들로 메워져 복잡한 거리가 된다. 기둥 사이사이에 세워진 깨지고 목 부분이 떨어져 나간 조각상 하나만 그나마 어느 정도 형체를 유지하고 있다. 나머지 조각상들은 흔적조차 없고 조각상을 받치고 있었던 받침대로 보이는 잘 다듬어진 돌과 기둥 사이사이로 흩어진 돌무더기들 만이 묵묵히 과거 에베소의 영광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이곳에 있던 조각상들은 훼손과 도난 등을 방지하고 영구 보존을 위하여, 또는 이곳을 발굴했던 오스트리아 고고학 연구소(ÖAI)에 의하여 에베소 박물관이나 오스트리아 빈의 에베소 박물관으로 옮겨졌을 것이다. 트라야누스 분수(15번) 앞에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고 거리의 관광객들은 저마다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흔적만 남아있는 에베소 고대 유적지를 사진에 담느라 여념이 없다.
트라야누스 분수는 서기 2세기경에 트라야누스 황제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분수대이다. 비교적 다른 유적보다 당시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당시 에베소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분수대였다고 한다. 수영장도 함께 지어졌는데, 지금은 남아있는 코린트식 기둥 몇 개가 당시의 수영장을 짐작게 한다. 가장 큰 수영장의 한가운데 있었던 트라야누스 황제의 동상이 놓인 기둥에서 물이 흘러나와 수영장을 채우고 물속에서 여유를 즐기는 당시 에베소 사람들을 상상해 본다. 수천 년 전에 이러한 문화가 있었다고 생각하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니라 할 수 없다. 트라야누스 황제의 동상은 현재 무릎 아래의 발목 하나와 둥근돌만 남아있으며 나머지 조각상은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세계가 황제의 발 앞에 놓여 있다.”라고 쓰인 비문이 조각상 받침대에 아직까지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런데, 솔직히 둥근돌을 많은 자료에서 지구라 설명하는데, 필자는 확신이 서질 않는 부분이다. 분수가 지어진 2세기경, 당시 조각가가 세계(지구)를 상징하는 것으로 둥근돌을 황제의 발 앞에 조각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트라야누스 분수(Nymphaeum Traiani)는 1957년 쿠레테스 거리(Curetes strest)를 발굴하는 과정에 발견되어 1962년 건축가 H. Pellionis가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분수를 헌납한다는 그리스어로 새겨진 헌정비와 비문이 수천 년의 세월을 잘 견뎌내고 있으며, 발굴 과정에 발견된 아프로디테의 Aphrodite 동상, 디오니소스 Dionysos 누드와 옷을 입은 신 중 하나 one of the god clothed, 도시의 창시자인 안드로클로스 Androklos를 상징하는 젊은 사냥꾼 young hunter symbolizing, 그리고 네르바 황제와 그의 가족의 동상 Emperor Nerva and his family과 사티로스 Satyr 동상은 에베소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유적지 안내판 영문 설명을 그대로 인용한다.
The fountain building was donated by Tiberius Claudius Aristion and his wife between A.D. 102 and 114 in honour of Artemis of Ephesos and Emperor Trajan (A.D. 98-117). The original height of the building reconstructed as an architecture! trial is 9.5 m. A two-storey façade surrounded the fountain on three sides, while the statue base of Trajan, with a globe under his feet, stood over the water outlet in the middle.
Ephesus, Fountain of Trajan - Livius
하드리아누스 신전 The Temple of Hadrian
트라야누스 분수를 지나 거리를 내려오니 사람들이 꽤나 많이 몰려 있는 유적지 앞에 다다른다. 하두리아누스 황제에게 헌정된 하두리아누스 사원(14번)이다. 에베소 유적지 중 비교적 잘 보존된 형태를 볼 수 있는,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인상적인 건축물이다. 서기 2세기 초에 P. 퀸틸리우스가 아테네에서 에베소를 방문한 하드리아누스를 축하하기 위해 건설한 기념비적인 건축물로 아르테미스 여신과 에베소 사람들에게 헌정되기도 하였으니, 어쩌면 신전이나 사원이라 하기보단 기념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건축물이다.
대지진으로 무너진 사원을 4세기경 테오도시우스 Theodosius가 그의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재건하였는데, 사원의 전면 부분은 에베소 건축물 중 가장 우아한 곡선 아치로 만들어졌고 아치를 지지하는 4개의 코린트식 기둥과 아치의 엔타블러처(Entablature)* 중앙에는 도시의 부와 번영, 운명을 다스리는 수호신인 티케(Tyche)* 여신의 부조가 새겨져 있다. 도시의 성벽과 탑을 묘사한 왕관을 머리에 쓰고 있는 티케 여신의 흉상 부조가 새겨진 아치 뒤로 보이는 반원형 엔타블러처엔 아칸서스 잎 장식과 함께 메두사 Medusa의 부조가 새겨져 있는데, 이 문은 신전 내부 지하실로 들어가는 문이다. 사원 앞에 있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막시미아누스, 콘스탄티우스 1세, 갈레리우스의 구리 조각상 진품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입구 양쪽에는 도시의 역사를 묘사한 프리즈 (Frieze)*가 있는데, 하나는 안드로클로스가 멧돼지를 쏘는 모습을, 다른 하나는 의식 행렬을 하는 디오니소스를, 세 번째는 아마존을 묘사한 것이라 한다. 그리고 네 번째 프리즈는 아폴로 신과 아테나 여신, 안드로클레스, 그의 아내 헤라클레스, 테오도시우스 가족 구성원을 묘사한 조각이 새겨져 있다. 이 프리즈 조각들은 현재 에베소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필자주)
* 엔타블러처 Entablature: 고대 그리스 로마 건축에서 기둥에 의하여 떠받쳐지는 부분을 총칭하는 용어이다. 기둥 상단이나 아치형 장식에 사용되는 고전 건축의 중요한 요소로 코니스(처마 장식, Cornice-the projecting member below the pediment), 프리즈 Frieze, 아키트레이브 architrave 세 부분으로 나뉜다.
https://en.wikipedia.org/wiki/Cornice
https://en.wikipedia.org/wiki/Architrave
* 고전 그리스 신화에서 티케는 일반적으로 타이탄 테티스와 오세아누스 또는 제우스의 딸로,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여신임.
* Frieze: 엔타블러처의 넓은 중앙 부분. https://en.wikipedia.org/wiki/Frieze
사원의 주요 부분은 ‘나오 Nao’라고 불렀던 작은 돌과 큰 입구 문으로 구성된 작은방으로, 이 문의 들보들은 진주와 달걀 모양으로 우아하게 장식되었다. 사원의 유적은 1956년 오스트리아 고고학 연구소(ÖAI)에서 발굴되었는데, 2012년 오스트리아 고고학 연구소는 J. M. 카플란 기금의 지원을 받아 조각상과 프리즈 진품은 에베소 박물관*으로 옮기고 복제품으로 대체하였으며, 건물의 정확한 외관을 보다 완전하게 복원하기 위하여 부분적으로 현대의 자재를 사용하여 2014년 광범위한 보존 작업을 완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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