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Ephesus) 고대 문명의 발자취를 찾아서-에베소 고대 도시 유적지 Efes Antik Kenti, Ephesus Ancient City [6]
에베소 고대 도시 유적지 Efes Antik Kenti, Ephesus Ancient City [6]
늘 느끼는 것이지만 머무는 것보다 떠나는 것이 어려운 법이다. 떠나는 것이 어려워 머무르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부지불식간에 ‘나’는 세월에 묻히고 내가 아닌 낯선 내가 그저 편안하게 느껴지고 차츰차츰 익숙해진다. 그렇게 돌같이 단단한 무심한 시간이 속절없이 지나다 어느 날 문득 낯선 나를 보게 된다. 그리곤 ‘세월에 묻혀 버린 나는, 진짜 나는 어디 갔을까?’라는 적당한 답이 없을 것 같은 애매하고 모호한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 사람들의 인생살이라 하여도 큰 무리는 아니지 싶다.
에베소에 살았던 고대인들 또한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당시 부유한 계층이 살았던 고급 주택가인 테라스 하우스(Hillside House, 8번)를 탐방하면 서다.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어떤 고민을 하며 살았을까? 당시로선 엄청난 고급 주택가이니 부유한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고, 부유한 사람들이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먹고사는 문제에 매달리지 않고 살았으니 그나마 행복할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은 갖추어진 셈인데, 과연 그것 만으로 행복하다 느끼며 만족한 삶을 살았을까? 이러한 질문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거 같다는, 이곳에 살았던 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문제를 안고 살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테라스 하우스를 둘러본다.
테라스 하우스 주택가 주변의 도로는 다른 곳과 달리 고급 주택가답게 모자이크 거리(The Mosaic – Paved Sidewalk, 12번)가 조성되어 있다. 테라스 하우스는 하드리아누스 신전 맞은편 언덕 경사면에 조성되었는데, 보존을 위하여 지붕을 덮어씌워 놓았다. 따라서 밖에서는 전혀 볼 수가 없으며, 에베소 유적지 관내이지만 별도의 관람료를 내야 입장이 가능한 유적지이다.
대부분 2층으로 지어진 주택은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로 벽과 바닥이 장식되었으며 1층은 거실과 식당, 2층은 침실로 설계되었다. 벽 내부와 바닥에 점토관이 매립되어 온수를 사용한 난방 시스템과 목욕탕이 갖추어져 있는 당시 에베소 최고급 주택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창문은 없지만 열린 홀을 통하여 어느 집이건 골고루 빛을 받을 수 있는 경사면을 따라 지어진 주택은 자연채광만으로도 조명을 해결할 수 있어 보인다.
1960년에 발굴이 시작된 테라스 하우스는 매년 지속적으로 발굴과 복원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현재까지 동부와 서부의 주택단지가 발굴되었다. 기원전 6~4세기엔 묘지로 사용되었던 이곳은 기원전 200년경 돌담을 쌓아 묘지와 구분하고 고급 주택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한다. 주택 내부에 그려진 벽화는 주로 검투사와 동물을 소재로 하였고, 일상생활의 생필품과 상품의 목록과 가격을 기록한 흥미로운 낙서도 보인다.
테라스 하우스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를 원하는 분들은 https://turkisharchaeonews.net/object/terrace-houses-ephesus 페이지를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
테라스 하우스 관람을 마지막으로 고대 도시 에베소 유적지 관람을 마무리한다. 에베소 야외 박물관은 에베소 박물관과 구별하기 위하여 붙인 명칭인 것 같다. 왜냐하면 사실상 유적을 발굴한 19세기 독일, 오스트리아, 영국 등 유럽의 고고학자들은 자국의 자금 지원과 오스만 제국과의 협정에 따라 유적 발굴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에베소 유적지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 중 옮길 수 있는 것은 거의 모두 자국의 박물관(독일은 페르가몬 박물관, 영국은 대영박물관, 오스트리아 빈의 에베소 박물관 등)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곳에 남아있는 것은 가져갈 수 없는 유물과 흔적들만 남아있는 셈이다. 라오디게아(Laodikeia) 고대 도시,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유적지 등 오늘날 튀르키예 전역에 산재되어 있는 대부분의 유적지 실태가 거의 모두 비슷한 상황인 것 같다. 인류 문명사의 중요한 유산 대부분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지만, 이 땅에서 발굴된 진품 유물들은 여전히 유럽의 여러 박물관에 흩어져 전시되어 있는 셈이다.
문화재 발굴엔 막대한 자금과 전문 인력이 투입되는 것이 사실이다. 과거 오스만 제국은 대부분 기독교 문화재인 유적지 발굴에 매우 소극적이었던 것 같고 한편으론 방치 수준으로 관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으로 미루어 짐작된다. 국가적 관심과 역량이 제대로 투입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전문 인력과 자금도 모두 따라주지 않았을 것 같다는 추론이 가능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튀르키예 여행을 하는 내내, 굳이 비유한다면 다소간 비극적인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참으로 안타깝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아르테미스 여신 사진과 함께 ‘셀주크 에베소 박물관에서 꼭 봐야 할 곳 Must to see at Selcuk Ephesus Museum’이란 문구가 쓰인 Harbor Street 길가에 세워진 튀르키예 문화관광부(T.C. Kültür ve Turizm Bakanlığı, Ministry of Culture and Tourism) 입간판이 왠지 공허하게 느껴지고 그다지 실속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필자의 부족함을 어느 정도 메워 줄 수 있을 것 같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는 독자께서는 튀르키예 문화관광부 홈페이지 www.ktb.gov.tr를 참고하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에베소 고대 도시 유적지 주출입구를 통하여 비로소 수천 년의 시간 여행에서 빠져나온다.
에베소 고대 도시 유적지를 끝으로 사실상 오늘 일정은 모두 마친 셈이다. 버스에 몸을 싣고 숙소로 가는 일정만 남아 있다. 버스는 늘 그랬듯이 오늘도 필자를 태우고 예약된 숙소로 데려다줄 것이다. 한편으론 자가운전을 하며 이 땅 구석구석 돌아보고 싶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생각뿐이다. 이 넓은 땅에서 자가운전을 하며 여행하는 일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닐 것 같다. 그 생각은 일정이 거듭되며 더욱 선명해진다. 그런 생각을 하는 가운데, 버스는 이즈미르(Izmir), 마니사(Manisa)를 거쳐 휴게소(Oksijen Akhisar)에 잠시 쉬어 간다. 시간은 오후 6시 20분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버스로 두 시간을 달려 아나톨리아 반도 북서부 마르마라(Marmara) 해변의 낙농업 중심 도시, 과거 1341~1922년 오스만 제국의 첫 번째 산작(Sancağı, sanjaks은 후에 지방을 뜻하는 il로 바뀜.) 중 하나로 로잔 조약 체결 후 해체된 카라시 산작(Karası Sancağı)의 수도였던 해변 도시 발리케시르(Balikesir) 주의 반디르마(Bandirma) 시에 당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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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오늘 묵을 호텔은 반디르마 시청 (Bandirma Belediyesi) 바로 옆에 위치한 Grand Asya Hotel이다. 호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니 시간은 이미 8시 50분을 넘어가고 있다. 소화도 시킬 겸 호텔 주변을 걸으며 잠시 시내 구경을 하기로 한다. 반디르마 시는 2021년 기준 인구 161,894명의 소도시다. 밤거리를 걷는 사람도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도 그다지 눈에 많이 띄지 않는 한적한 도시이다. 해가 진 후 도심을 밝히는 은은한 붉은 조명은 야간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여행은 어디에 가느냐 보다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이지 싶다. 지구를 한 바퀴 돈다 한들 어디에 갔다 왔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지 싶다. 어디보다는 무엇을 어떻게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여행의 질은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밤거리를 걷다 보면 이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조금은 엿볼 수 있다. 야식을 파는 상점과 일부 구멍가게 정도만 문을 열고 장사를 하고 있는데, 그 마저도 불을 켜 두었지만 마감을 한 가게들이 많다. 그렇다고 꽤 늦은 시간도 아닌, 8시 40분인데, 맥주 서너 캔을 사려했지만 마감을 했다며 팔지 않는 튀르키예 상점이다. 24시간 편의점이 항시 열려 있는 우리와는 상당히 다른 생소한 문화이다. 공식적으로 술을 먹지 않는 이슬람 국가여서 인지 이렇다 할 밤 문화는 없어 보인다. 몇 군데 가게를 더 들려 가까스로 맥주 다섯 캔을 손에 들고 호텔로 돌아온다. 거리엔 간간이 몇몇 행인들과 차량이 지나갈 뿐 그저 조용한 마을이다. 은은한 붉은 조명만이 거리에 쏟아져 내리는 반디르마의 밤이 그렇게 깊어 가고 낯선 곳을 여행하는 여행자의 마음으로 따스한 반디르마의 붉은빛이 촘촘히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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