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Ephesus) 고대 문명의 발자취를 찾아서에베소(Ephesus) 고대 문명의 발자취를 찾아서
잠시 머물렀던 쉬린제 마을을 떠난다. 쉬린제에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약 20여 분 정도 이동하여 셀주크 Selçuk에 당도한 시간은 오후 1시 50분 경이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파묵칼레 인근 카라하이트(Karahayit) 골로새 호텔을 떠나 쉬린제 마을을 관광하고 오후 2시가 다 되어서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셀주크 Selçuk
필자가 오늘 밟은 아나톨리아 반도의 서쪽 끝 에게해 연안의 도시인 셀주크는 고대 그리스 지배하에 아기오스 테올로고스, 14세기에는 아이딘 베이릭(Beylik of Aydin, 베이가 통치하는 아나톨리아의 작은 공국(또는 소왕국), Bey는 족장에 대한 투르크어 칭호))의 수부도시 아야슬룩(Ayasoluk)이었다. 아이딘 베일린은 아니디니드 왕조로도 알려져 있는데, 럼 술탄국(Rum Sultanlığı, 투르코-페르시아 수니파 이슬람 국가)이 쇠퇴한 후 오구즈 투르크(Oğuz Türkleri)가 세운 국경 공국이다. 이후 1390년 오스만 제국의 속국으로 편입되었다 1402년 잠시, 티무르(Tamerlane, 투르코-몽골의 정복자로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이란, 중앙아시아와 그 주변에 티무르 제국을 건설한 티무르 왕조의 초대 통치자)에 정복되고 1425년에 다시 오스만 제국의 수중으로 떨어진 후 아야슬룩 Ayasoluk으로 불리었던 역사적인 도시는 완전히 버려지게 된다. 이후 오스만 제국 말기인 1914년엔 12세기에 처음으로 이 지역에 진출한 셀주크 투르크인에 착안하여 지명을 아야슬룩에서 셀주크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도시이다.
이즈미르 주 셀주크, 약 35,000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걸어서 다닐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소도시이다. 이곳엔 에베소 고고학 박물관, 고대 에베소인들이 풍요와 생명의 여신으로 숭배한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받쳐진, 세계 7대 불가사의 아르테미스 신전 터가 있다. 서남쪽 방향 인근엔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 의해 기원전 9세기에 건립된 식민도시 에베소 고대 도시 유적지(Efes Antik Kenti, Ephesus Ancient City)인 에베소 야외 박물관, 성 요한 대성당, 성모 마리아가 예수 사후에 머물렀던 성모 마리아의 집(Meryem Ana Evi) 등 많은 유적지가 남아있는 도시로 관광객들이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도시이다.
아나톨리아 반도 서쪽 에게해 연안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문명과 세력이 빈번하게 충돌하는 지역이었다. 일찍이 B.C 3560년경 ~ B.C1170년경 지중해 동부 에게해 주변 지역에서 번영한 크레타 문명과 B.C 1,600년경 ~ B.C 1,200년경 그리스 북쪽의 아카이아인에 의해 발전한 미케네문명, 마케도니아, 페르시아와 로마의 침략, 비잔티움 제국, 베네치아, 셀주크튀르크, 오스만 제국의 영역으로,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그리스와 튀르키예의 전쟁과 오늘날 양국 간의 에게해 분쟁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세력의 충돌과 분쟁이 이어지는 지역이다.
셀주크 제국 (Büyük Selçuklu İmparatorluğu, Seljuk Empire)
이슬람 세계에서 셀주크 제국의 등장은 중앙아시아를 지배하는 세력의 판도 변화에서 시작된다. 새로운 세력의 등장은 기존 세력의 몰락을 의미한다. 중앙아시아는 819년 트란스옥시아나와 이란의 후라산 지역에 세워진 수니파 이슬람 왕조인 사만왕조 (Saman dynasty)가 지배하였으나, 사만왕조의 튀르크계 노예 병사들이 아프카니스탄을 중심으로 독립하며 가즈나 왕조를 세우고 아프카니스탄 동쪽에서 튀르크계 카라한 왕조가 발흥하며 각축하더니 결국 999년 사만왕조를 멸망시킨다. 이러한 난세에 카라한 왕조 인근에서 유목을 하며 양쪽 왕국을 오가며 용병으로 활동하며 힘을 키우던 셀주크 세력을 추방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셀주크 일족의 지도자인 셀주크의 손자, 투으룰(Tughril)과 차으르(Chaghri) 형제가 가즈나 왕국의 요충지인 후라산으로 진출하자 1040년 후라산 지역을 탈환하기 위하여 가즈나 왕조의 원정군이 단다나칸에서 충돌(Dandanakan Savaşı, Battle of Dandanakan)하지만 후라산 지역이 셀주크 가문의 영토로 확정되는 결과를 빚는다. 이 전투를 계기로 셀주크 왕조는 더욱 강성해지며 전성기인 11~12세기엔 현재의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가자흐스탄 남서부를 아우르는 트란스옥시아나(Transoxiana), 텐산산맥(Tianshan)과 알라이(Alai) 산맥에 위치한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 동부 분지인 페르가나(Ferghana), 세미레치예(Semirechiye) 시리아(Syria) 동부지역, 아나톨리아(Anatolia), 메카, 메디나, 제다 등 사우디아라비아 서부의 대부분을 포함하는 지역인 헤자즈(Hajaz)까지 서아시아의 상당 부분을 지배하는 강자로 역사의 전면에 셀주크 제국의 이름을 올려놓게 된다. 이후 또 하나의 큰 전투는 역사의 물결을 바꾸어 놓는데, 1071년 8월 26일 동로마 제국과 알프 아르슬란이 이끄는 셀주크 제국이 테마 아르메니아콘의 만지케르트 근교에서 충돌하는 전투이다. 이 전투로 동로마 제국의 황제 로마노스 4세 디오예니스는 포로로 잡히고 아나톨리아에서 투르크 부족에 대한 동로마 제국의 통제력을 완벽하게 상실하게 된다. 이 전투 이후 짧은 2년 동안 엄청난 수의 투르크 부족의 군인과 정착자들이 아나톨리아 반도로 밀어닥치며 비잔티움 제국의 영역을 산산조각 내며 많은 영토를 점령하게 된다. 튀르크계 셀주크 왕조는 이후 튀르키계 유목민의 정복지 분할 관습에 따라 동서로 나뉘며 시리아 셀주크, 키르만 셀주크, 이라크 셀주크, 룸 셀주크 등으로 영토를 분할 통치하며 14세기 초까지 이어진다.
1092년 말리크샤 1세(Malik Shah I.)가 사망했을 때 대 셀주크 제국의 전성기를 보여주는 지도. 셀주크 제국의 수도는 이스파한 (페르시아 /이란), 오른쪽 상단의 밝은 색상은 투르크 칸 국 카라-카니드 칸 국(Karakhanids)인데, "1089년에 말리크 샤 1세가 점령한 카라카니드의 영토 부하라와 사라칸드 지역, 만지케르트 전투(1071)와 단다나칸 전투(1040)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 현재 국가의 국경은 회색으로 표시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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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 고대 도시 유적지 (Efes Antik Kenti, Ephesus Ancient City) 야외 박물관
셀주크 제국 이후 오스만 제국, 오늘날 튀르키예의 땅인 셀주크를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가장 큰 목적은 에베소 야외 박물관, 에베소 고대 도시 유적을 둘러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 고대 도시를 방문하는 것은 과거 문명으로의 여행이고 다양한 문화가 교차되며 이어져온 역사적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꽤나 가슴 두근거리는 일인 것은 필자 또한 예외가 아니다.
에베소(에페스, 에페수스)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에서 로마제국의 도시가 되었다 다시 오스만 제국의 도시로 바뀐다. 기원전 100년경, 로마제국 초기에 에베소의 인구는 약 250,000명으로 지중해 연안 도시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항만과 무역, 동서양의 문물이 교류되는 요충지였다. 당시 로마, 알렉산드리아, 안디옥과 함께 로마제국의 4대 도시였던 에베소 고대 도시는 인근의 버가모(Bergama)와 함께 ‘에게해 두 개의 장미’라고 격찬을 받을 정도로 에게해 연안의 세계 최대 고대 도시 유적으로 동서양의 세력이 끊임없이 충돌한 지역이기도 하다.
종교적으로도 에베소는 초기 기독교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도시로 신약성경 ‘에베소서’ 기록이 있으며, 요한계시록의 수신지 소아시아 7 교회 중 하나로 요한복음은 서기 90년에서 100년 사이에 에베소에서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유적의 15% 정도만 발굴된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고대 도시 유적지이고 기독교 성지이기도 하다.
그런 에베소는 어떻게 무너졌을까? 물론 일찍이 263년 고트족의 침략도 있었고 동서양 세력의 잦은 충돌로 빚어진 전쟁도 겪는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가 에베소가 붕괴되는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다. 에베소는 고대 이래 항만의 기능이 도시 번영에 가장 큰 기반이었던 도시였다. 동서양의 문물이 항만을 통하여 교류되고 이에 따른 부의 축적이 도시발전의 원동력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즈미르 남쪽의 강, 쿠쉍멘데레스 (Küçükmenderes) 강에서 서서히 토사가 밀려와 쌓이면서 항구로서의 기능이 상실되며 서서히 쇠퇴하다 지진도 겪고 전염병도 발생하며 인구감소가 초래되고, 결국 15세기에 에베소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며 도시가 완전히 버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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