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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환 Nov 05. 2024

오스만 시대의 전통시장 울루 차르시

오스만 시대의 전통시장 부르사 울루 차르시 Ulu Çarşı



울루 자미를 나오면 바로 부르사의 그랜드 바자르 Ulu Çarşı(Kapalı Çarşı, Grand bazzar)로 이어진다. 이곳에 있는 코자 한 Koza Han은 오스만 시대부터 영업을 해온 유서 깊은 실크 시장이다. 차세(Çarşı), 바자르(Bazaar), 한(Han)’은 전통적인 튀르키예 시장을 뜻하는 말이다. 이 세 가지 단어 중 한(Han)은 실크 무역을 위하여 오가는 실크로드 대상들이 쉴 수 있는 숙소의 기능(캐러밴세라이 Kervansaray)을 갖추고 있는 시장의 개념이다.


The Shah-Abbasi caravansarai in Karaj, Iran


 File:Caravansaray Shah-Abbasi Karaj Panorama.jpg - Wikimedia Commons

The entrance portal of the Sultan Han (13th century) near Aksaray, Turkey

File:Sultanhani Karawanserei.JPG - Wikimedia Commons



필자는 이미 며칠 전 콘야 인근의 오브룩 한(Obruğu Han)에서 보았던 과거 실크로드 대상들의 숙소, 셀주크 캐러밴세라이에 대하여 짤막하게 언급한 바 있다. Saray는 대궐, 궁궐, 청사 등을 뜻하는 말인데, 노새나 말, 당나귀, 낙타를 이용하여 무역 운송을 맡았던 상단의 무리를 이르는 'Kervan'과 합성되어 먼 길을 떠나는 실크로드 대상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여관을 이르는 말로 사용되었는데, 대개 무역로 상에 지어진 여관을 이르는 말이다. 튀르키예어 ‘한 Han’은 캐러밴세라이 보다 좀 더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된 말로, 시골과 도시의 성 밖 무역로를 따라 건설된 캐러밴세라이를 포함한 성 안팎의 모든 여행자 또는 순례자, 상인들이 쉬어 가는 여관, 객사(客舍)와 시장을 포함한 상업시설을 뜻하는 말이다. Koza는 누에고치, Han은 시장의 의미로 Koza Han은 실크 시장을 이르는 말이다. 참고로 saray는 Bu ev bir saray(이 집은 대궐이야), âdliye sarayı(법원), beyaz Saray(백악관) 등과 같이 왕궁부터 일반 청사, 여관까지 포괄적으로 쓰이는 튀르키예 말이다.  



시장을 의미하는 또 다른 튀르키예어, ‘바자르 Bazaar는 지붕이 덮인 시장을 의미하는 말로 적게는 수 십 개에서 많게는 수 천 개의 작은 노점이나 상점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따라 형성된 지붕이 덮인 시장으로 대개 도시의 중심에 형성된 중앙 시장을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바자회라는 말은 페르시아어 بازار Bazaar에서 유래한 말인데, 당시엔 마을 안에 열리는 공공 시장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리고 ‘베데스덴 Bedesten’은 오스만 제국의 도시에서만 볼 수 있는, 조금은 특징적이고 진화한 시장이라 볼 수 있는데, 초기엔 작물을 보관하고 판매하는 시장에서 귀금속과 보석 등을 판매하는 시장으로 발전한다. 다른 시장에 비해 문을 걸어 잠글 수 있는 보안성이 확보된 시장을 베데스덴이라 한다. 대개 제국의 경제적인 중심지 역할을 하는 도시에 만들어졌는데, 오스만 제국의 첫 번째 주요 도시였던 이곳 부르사 구시가지 그랜드 바자르에 베데스덴이 있다.


Exterior view of the Bedesten of Edirne, Turkey, built by Sultan Mehmed I between 1413 and 1421 CE 


Creative Commons — Attribution-ShareAlike 4.0 International — CC BY-SA 4.0




Ulu Çarşı 또는 부르사 Kapalı Çarşı(Grand bazaar)는 여러 종류의 시장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오스만 제국 시대부터 형성된 시장이다. 미려한 지붕과 대리석을 깔아 놓은 베데스덴 형태의 시장부터 지붕이 없는 농수산물 시장까지 다양한 형태의 시장이 부르사 Kapalı Çarşı, 그랜드 바자르이다. 귀금속과 보석뿐만 아니라 Bakırcılar Çarşı(구리 세공 수공예품 시장), Yorgancılar Çarşı(섬세한 둥근 천장과 자연채광을 채택한 아름다운 건축물에서 판매하는 침구와 실크, 잡화 시장) Havlucular Çarşı(수건, 퀼트 등 여성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생활용품 시장), Sipahi Çarşı(1420년경 무라트 2세 때 지어진 시장으로 1958년 화재 때 유일하게 소실되지 않고 당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가구 시장), Tuz Pazarı Çarşı(Tuz는 소금, Pazarı 장터 개념의 마켓, 즉 솔트 마켓으로 소금과 신선한 야채, 과일 및 치즈 제조업체들이 성업 중인 시장), Bat Pazarı(화재로 많은 부분이 소실된 중고품과 보세품 시장), Uzun Çarşı(기성복 의류 및 잡화시장) 등이 밀집되어 있는 부르사 전통시장이다.



베데스덴, 귀금속 시장부터 농산물 시장인 Tuz Pazarı까지 골목골목을 누비며 재래시장 구경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를 지경이다. 어느 나라를 가든 재래시장 구경은 꽤나 재미있는 일정 중 하나이다. 부르사 그랜드 바자르는 규모가 상당히 큰 시장으로 정말 다양한 제품으로 가득한 시장이다. 조금 과장하여 표현한다면, 바늘부터 비행기까지 다 있을 것 같은 시장이다. 매우 아름다운 문양으로 디자인되어 있는 베데스덴의 천정에 이끌려 부지불식간에 고개를 뒤로 젖히고 올려다보게 된다. 시장 곳곳에 어김없이 붉은 튀르키예 국기가 걸려 있다. 장소 불문, 국기를 이렇게 많이 게양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초승달과 별이 그려진 붉은 월성기는 오늘도 낯선 여행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필자가 시장을 찾은 시간은 오전 10시 30분경, 시장 구경치곤 좀 일찍 나온 감이 없지 않은 이른 시간임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시장통을 오간다. 일찍 문을 연 상인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뭔가를 이야기하는 모습, 다른 이슬람 사회와 달리 일찍이 히잡 등 이슬람 여성 복장에서 해방된, 실크 수건으로 머리를 감싼 튀르키예 여성들, 쇼핑백을 들고 베데스덴을 오가는 사람, 캐리어를 끌고 가는 여행자, 상품 박스를 운반하는 상인, 청소차를 밀고 가는 근로자, 환전소에서 외화를 바꾸는 사람들까지 실로 다양한 얼굴의 사람들이 이른 시간 시장을 찾았다. 아마도 사람들이 시장을 찾기 시작하는 오후가 되면 엄청난 인파로 북새통이 될 것 같다. 반짝반짝 빛나는 쇼윈도에 진열된 금 은 보석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얽혀 있을 법한 수백 년 역사를 이어온 시장, 그렇게 부르사 Kapalı Çarşı(Grand bazaar)를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에 빠져든다.



의류 시장 Uzun Çarşı를 벗어나자 농산물과 견과류, 과일 등을 판매하는 투즈 파자리(Tuz Pazarı Çarşısı)로 이어진다. 솔트 마켓, 투즈 파자리는 참으로 군것질거리가 많은 시장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침샘이 엄청 자극을 받는 먹거리 천국이다. 상인들이 견과류를 건네며 시식을 권한다. 맛도 있고 재미도 있는 시장이다. 각종 야채와 신선한 과일과 견과류, 풍성한 먹거리가 가득한 시장은 베데스덴이나 의류 시장에 비하여 일찍 신선한 농산물을 사러 나온 사람들로 붐빈다. 시장은 이런 곳이다. 한 가지 상품이나 독점적인 상점보다 이렇게 여러 종류의 상품이 한 곳에 모여 있어야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장사가 잘 되는 법이다.




예전에 필자가 살고 있는 고장에서 있었던 일인데, 번화한 명동 상가 통로 한가운데 노점상들이 가스불을 켜가며 늦은 밤까지 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늘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하던 명동 상가였다. 필자를 포함한 7~80년대의 청춘 남녀들은 이 거리를 중심으로 데이트를 하던, 그런 추억의 거리이기도 한 명동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노점상들이 사라졌다. 점포주들의 불만도 있었고 불법 노점상 단속을 하였던 것 같다. 불법이었지만 늘 있던 노점상들이 어느 날 사라지자 거리는 깨끗해진 것 같은데, 뭔가 텅 빈 것 같이 허전한, 명동 거리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곳에서 장사를 할 수 없게 된 노점상들의 생계도 문제겠지만, 더 큰 문제는 불야성을 이루던 노점상들이 없어지자 그전만큼 사람들이 명동을 찾지 않게 된 점이다. 발 디딜 틈 없었던 번화가 중심의 시장이 활기를 잃은 것이다. 물론, 도심의 확대와 상권의 분산이라는 도시화에 따른 구도심 상권의 붕괴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명동은 늘 사람들이 몰렸던 도심 상권이었다. 그런데,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점차 줄어드니 상인들도 울상이고, 시장을 찾는 사람들도 이색적인 구경거리가 없으니 구경 재미가 없어진 셈이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고 난 후인 요즘, 명동 거리에 노점상이 다시 등장하였다. 제한적으로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한 모양이다. 물론 명동 거리는 전보다 훨씬 못하긴 하지만, 그나마 전처럼 활기차 보이는 거리가 되었다. 그나마 요즘은 가끔 가족들과 명동을 나가게 된다. 시장은 말 그대로 市場, 도심의 마당 같은 곳 이어야 한다. 뭐든 사람들의 구매욕을 불러일으키고 팔 수 있으면서 구경거리도 된다면, 이왕이면 다홍치마(同價紅裳)라고 뭐든 펼쳐 놓을 수 있어야 하는 곳이다. 예전엔 상설시장, 또는 5일이나 7일에 한 번씩 서는 시골장에 가면 놀이패와 서커스까지 있었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우리나라 재래시장이 붕괴되면서 시장이 갖고 있던 고유문화도 함께 붕괴된 셈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재래시장 붕괴는 아쉬움이 상당히 큰 부분이다.



부르사 그랜드 바자르를 둘러보면서 울루 자미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부르사 재래시장 상권을 보았다. 그저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전통시장이 아니라 현지인들의 실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고 왕성한 거래가 이루어지며 문물이 유통되고 오랜 세월 지속된 고유문화가 함께 유지되고 있는, 살아있는 시장으로서 기능이 조금도 훼손되지 않은 그런 시장이었다. 이스탄불에서도 그렇고 튀르키예 땅의 역사적인 대도시에는 항상 구시가지가 옛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었고, 그곳엔 늘 모스크가 있었으며, 크고 작은 시장이 함께 있었고, 오늘을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이 함께 있었다. 물건을 파는 상인도, 물건을 사는 사람들도 모두가 풍요롭고 행복해 보인다. 모스크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튀르키예 사람들에겐 더없이 좋은 시장 시스템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대형 쇼핑몰과 인터넷 쇼핑 등에 자리를 내어 준 우리와는 상당히 다른, 조금은 부러운 현실이 틀림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부르사 그랜드 바자르, Ulu Çarşı(Kapalı Çarşı, Grand bazzar)를 나온다.




도로변 상가를 따라 시민회관 근처에 이르자 우뚝 솟은 미네랏이 또 보인다. 오르한 가지 모스크(Orhan Gazi Mosque)이다. 울루 자미를 기점으로 시장을 크게 한 바퀴 돈 셈이다. 모스크 광장 분수대 앞에서 잠시 쉬며 숨 고르기를 한 후, 오스만 시대의 건축물이 밀집되어 있는 오스만 가지 역사지구 거리를 구경하고 Efezade Café & Restaurant으로 이동한다. 볼 것 많은 시장 구경을 하다 보니 이미 도낏자루는 썩었고, 서서히 시장기가 느껴진다. 그야말로 구경 한 번 잘한 셈이다.

@Thebct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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