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하네 히사르 Tophane Hisarı와 울루 자미(Bursa Ulu Camii, 그랜드 모스크)
톱하네 히사르 Tophane Hisarı
히사르 Hisarı는 영어의 Citadel과 같은 의미의 튀르키예어로 성채, 요새를 뜻하는 말이다. 오스만 가지(Osman Gazi) 영묘와 톱하네 공원을 둘러보고 공원을 빠져나오자 과거 오스만 시대의 주택을 볼 수 있는 구시가지로 이어진다. 부르사에서 가장 오래된 톱하네 히사르 옛 성채 안의 오스만 전통가옥 마을이다. 길모퉁이에 황토색 회벽과 목재로 지어진, 딱 봐도 2~3백 년은 넘었지 싶은 과거 오스만 시대의 건물에 에크자네(eczane, 약국), 마켓, 이색적인 기념품을 판매하는 DAĞLI KESTANE ŞEKERİ, 선물가게(Hatirasi, Hediyelik) 등 고만고만한 세케리(ŞEKERİ, 상점)들이 올망졸망 간판을 내걸고 성업 중이다.
경사진 언덕길을 따라 내려간다. 톱하네 히사르가 도로를 따라 이어진다. 옛 성벽에 덧붙여 지은 건축물과 요철(凹凸) 모양의 성루에 금세라도 무장한 경비병들이 장창을 들고 나타날 것만 같은 옛 성곽, 톱하네 히사르이다. 이미 견뎌온 세월이 적지 않을 것 같은 성곽을 따라 도로가 만들어지고 차량들이 오간다. 오늘 날씨는 톱하네 히사르를 보기엔 아주 적절한 날씨이지 싶다. 오랜만에 구름이 낀 하늘과 시야를 살짝 흐려 놓은 엷은 안갯속에 푸른 신호등이 켜지고 길가에 늘어선 현대 문명의 상징과도 같은 자동차와 적어도 수백 또는 수천 년 이상 이곳에서 부르사를 지켜온 옛 성곽이 묘하게 오버랩된다. 이곳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이색적인 풍경이지 싶다.
톱하네 히사르는 언제부터 이곳, 부르사에 있었을까?
기원전 202년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Philip 5.) 5세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도시 키오스(Chios, 지금의 부르사) 땅을 로마의 속주였던 고대왕국 비티니아 Bithynia의 왕 프루시아스 1세 (Prusias I)에게 양여한다. 키오스는 당시 소아시아 북서부 마르마라 해와 보스포루스 해협 및 흑해에 인접에 있던 고대 그리스인들의 도시로 전략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요충지라 할 수 있는 도시였다. 일찍이 비단 생산과 가공산업이 발달하였으며 해상 무역의 거점으로 오늘날 튀르키예에서도 매우 중요한 산업도시이다. 키오스를 양여받은 프루시아스 1세는 도시 명칭을 프루사(고대 그리스어: Προῦσα)로 바꾸고 키오스를 재건하게 된다. 이후 비티니아 왕국의 지배가 끝나는 기원전 74년 로마에 유증 되었고, 비잔티움 제국 영토였던 부르사를 오스만 제국이 점령한 것이 1326년의 일이다. 그저 가까운 과거인 오스만 시대로만 제한하여 보더라도, 옛 성곽 안으로 역사적인 오스만 시대의 주택이 밀집되어 있는 구시가지와 오스만 제국의 창시자인 오스만 가지 (Osman Gazi)와 그의 아들 오르한 가지 (Orhan Gazi)의 영묘, 울루 자미(Bursa Ulu Camii, 그랜드 모스크)와 그랜드 바자르 Ulu Çarşı가 있는 이곳, 톱하네 히사르는 족히 수백, 수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오스만 제국의 가장 중요한 도시, 부르사를 오랜 세월 지켜온 유산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부르사 여행은 오랜 세월의 흔적이 촘촘히 달라붙어 있는 옛 성벽을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된다. 이네들은 켜켜이 쌓인 역사적인 흔적들을 고스란히 유지한 성벽을 그대로 두고 최소한의 부분적인 훼손만으로 계단도 만들고 집을 지어 여전히 그곳에서 선조들의 오랜 역사와 함께 살아간다. 과거의 성곽 건축물과 현대의 건축물이 병존하는 것은 사실상 매우 불편할 수 있음에도 그렇게 선조들이 남겨 놓은 역사적인 유산들과 함께 더불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옛 성곽과 함께 이곳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에겐 어떠한 의미와 남모르는 어떠한 사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상적인 것이기에 크게 괘념치 않을 것 같기도 하지만, 적어도 낯선 곳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에겐 역사유산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세심하고 고집스러운 자부심과 조금은 낭만적인 감성을 엿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톱하네 언덕으로 떠오르는 태양은 여전히 구름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눈부신 햇무리 사이로 빠져나온 햇살이 살포시 옛 성곽으로 내려앉는다. 꽤나 낭만적이고 고혹적인 풍경이 옛 성곽, 톱하네 히사르로 인하여 연출된 셈이다. 만약 이 언덕에서 성곽을 걷어 낸다면, 아마도 이러한 풍경은 볼 수 없지 싶다. 왠지 모르게 저들처럼 저 성벽 옆으로 집을 짓고 살면 행복지수가 엄청 높아질 것 같다는, 그저 막연하지만 낭만적인 생각을 하며 언덕을 내려온다.
울루 자미(Bursa Ulu Camii, 그랜드 모스크)
1481px-Battle_of_Nicopolis / The Battle of Nicopolis, as depicted by Turkish miniaturist Nakkaş Osman in the Hünername, 1584–88 /File:Battle of Nicopolis.jpg - Wikimedia Commons
바예지드 1세(Bayezid I)는 1389~1402 오스만 제국을 통치한 술탄이다. 울루 자미는 바예지드 1세가 1396년 9월 25일 헝가리,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왈라키아(루마니아), 프랑스, 부르고뉴 공국(Burgundian), 독일, 베네치아 해군 지원을 받은 용병으로 구성된 연합 십자군을 대파하고 니코폴리스의 다뉴브 요새를 포위하며 거둔 ‘니코폴리스 전투(Battle of Nicopolis)’의 위대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396년 건축가 알리 네카르가 건축을 시작하여 1399년에 완공한 부르사에서 가장 큰 규모의 그랜드 모스크이다. 셀주크튀르크에서 진화한 섬세한 오스만 초기 건축의 양식을 볼 수 있는 건축물로 오스만 최초의 다중 돔형 지붕으로 지어진 모스크이다. 이후 1402년 앙카라 전투(Battle of Ankara)의 패배로 티무르(Tamerlane, 투르코-몽골의 정복자로,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이란, 중앙아시아와 그 주변에 티무르 제국을 건설한 티무르 왕조의 초대 통치자)에 의하여 불태워졌으며, 1412년엔 (카라마니드 Qaramanid)의 베이 메흐메드가 부르사를 포위했을 때 또 한 번 불태워진다. 이후 1885년 지진으로 모스크의 지붕이 무너져 내리는 등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이후 1889년 대대적인 수리로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는 그랜드 모스크이다.
울루 자미는 오스만 시대부터 영업을 시작한 역사적인 시장 부르사 그랜드 바자르(Ulu Çarşı)와 함께 구시가지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시장 보러 나온 사람들과 승용차들이 오가는 시장통 골목을 끼고 우뚝 선 모스크의 적갈색 외벽과 아치형 창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받아 더욱 붉게 느껴지는 미나렛이 파란 하늘을 뚫고 올라갈 것만 같다. 주변의 상가 건물과는 너무나도 확연히 차이가 나는 건축물이다. 이슬람권 국가를 여행하다 보면 늘 느끼는 것인데, 모스크를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고 주변엔 대부분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드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점은 튀르키예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울루 자미 또한, 그랜드 바자르(Ulu Çarşı)와 함께 부르사 구시가지 한가운데 세워진 모스크이다. 이러한 특징은 종교가 곧 생활인, 인구의 90% 이상이 하나의 종교를 믿는 이슬람 국가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 같다.
모스크 내부 흰색 벽 곳곳엔 금박을 입힌 아랍어 서예 작품으로 장식되어 있다. 아랍어를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보면 작품에 담긴 의미를 알 수 있겠지만, 아랍어를 전혀 모르는 까막눈인 필자의 눈에 들어온 서예 작품은 그저 뜻을 알 수 없는 아름다운 글씨, 캘리그래피 Calligraphy였다. 캘리그래피는 아름다움을 뜻하는 그리스어 '칼로스'와 글쓰기를 의미하는 '그라페'의 합성어 καλλιγραφία (kalligraphía)에서 유래된 말이다. 아름다운 서체를 고안해 글씨를 쓰는 ‘멋 글씨 예술’, 즉 서예를 이르는 말이니, 뜻은 알 수 없어도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알라신과 쿠란의 구절 등을 사경하듯 쓴 것이 아닐까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이슬람 특유의 식물을 모티브로 한 디자인으로 치장된 돌출된 기둥과 모서리, 돔 천장을 이루는 둥근 아치의 곡선이 어우러지며 미려함을 더해준다. 돔 천장 아래 예배 전 세정을 위한 우두의식(al-wuḍūʼ)에 사용되는 분수 샤디르반(Şadirbhan)에서 맑은 물이 솟아오른다. 이제껏 다른 모스크에서는 볼 수 없었던, 대개 모스크 밖에 설치하는 것과는 달리 특별한 것이다.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는 모스크 내부, 그저 단순하게 이슬람 교인들이 예배를 드리는 성전으로, 또는 낯선 여행자들이 그저 단순히 관광테마로 들려가는 곳으로 본다면 엄청난 착오 아닐까?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이 정도 되면, 문외한인 필자의 식견으로 함부로 평가할 일은 더더욱 아니지만, 그 어느 것보다 뛰어난 예술품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울루 자미를 보고 나오면서 필자는 몇 가지 어휘를 기억에 담는다. 이슬람 사원, 아랍어 서예로 치장된 내부, 여러 개의 다중 돔으로 지어진 최초의 모스크, 이슬람 모스크 건축물의 진수 등이다. 필자는 튀르키예 여행 중 이스탄불의 블루 모스크부터 여러 지역에서 여러 번 모스크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이슬람교는 어떠한 종교일까?라는 궁금증이 더해졌다. 어떤 종교이길래 한 국가의 인구 90% 이상이 이슬람 교인일까? 튀르키예도 공식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이다. 하지만 국민 중 90% 이상의 사람들이 이슬람교인이다. 지구상에 이렇게 집단적((?), 이 표현이 적절한지 확실한 판단이 서지 않지만, 달리 표현할 적절한 단어가 마땅치 않다. 혹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은 널리 양해 바람.)인 종교가 또 있을까? 기독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에서도 90% 이상의 사람이, 집단적으로 기독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나라가 있을까? 불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 또한 그럴까? 여행 후 이 명제에 대하여 공부를 좀 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울루 자미를 나온다.
부족하지만 이슬람교에 관한 미미하고 짤막한 일반적인 지식을 잠시 언급하면, 이슬람교는 기독교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 약 20억 명의 인구가 믿고 있는 종교이다. 모로코, 알제리아, 이집트 등 아프리카 대륙의 절반인 북부지역,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시리아 등 서아시아, 아나톨리아 반도의 튀르키예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말레이시아, 몰디브 등 동남아시아 지역의 약 50여 개국 사람들이 믿는 종교이다.
이 사람들이 사용하는 경전인 쿠란(아랍어: القرآن)은 전통적으로 모두 아랍어로 기록되어 있다. 아랍어 원문을 그대로 담은 판본만 정본으로 인정하고, 예배 또한 아랍어를 사용하는 것만 예배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아랍어 이외의 언어로 번역된 텍스트는 '신의 말씀'인 쿠란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기독교와는 사뭇 다른 원칙인 셈이다. 이 원칙은 쿠란의 원문 왜곡을 막았으나, 이 때문에 아랍어를 모르는 무슬림 상당수는, 특히 중앙아시아나 동남아시아의 다른 언어권 무슬림들은 원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주입식 암송으로 이슬람 신앙을 받아들이고 믿을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을 것 같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고, 이 또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필자의 소견이다. 양면성이 있는 모호한 소견이라 비판을 받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 타 종교에도 그러한 예는 얼마든지 있으니 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티베트 불교에서는 글자를 몰라 경전을 읽지 못하여도 마니차(摩尼車: Prayer Wheel)를 돌리면 경전을 한 번 읽은 것으로 간주한다. 이 경우, 비록 경전을 읽지 못한다 손치더라도 신앙은 사람들 마음에 자리 잡는 신실하고 굳건한 믿음의 영역이라는, 대부분 종교의 공통적인 원리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어가 다르고 문맹일지라도 얼마든지 신앙을 가질 수 있다는 보편적인 종교의 원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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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슬람교의 쿠란을 기록하는 공식 언어인 아랍어는 UN에서 지정한 세계 6대 공용어 중 하나일 정도로 많은 이슬람권 국가와 사람들이 쓰는 언어이고 오늘날 세계 20억 명의 인구가 아랍어를 원문으로 하는 쿠란을 암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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