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혈입니다.

by 파드샤

"아, 저 혼혈이에요."


가끔 잊을만하면 하게 되는 말이다. 마치 대수로운 사실이 아니듯이, 혈액형이나 MBTI보다도 사소한 사실인 것처럼 말하곤 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내가 혼혈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고 한다. 이렇게만 보면 내가 혼혈이라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에게는' 중요해보이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이것은 내가 인생이라는 시합에서 사용하는 페인트(feint) 동작이다. 나는 언제나 내가 혼혈이라는 사실을 뼛속까지 인식하고 있다.

나는 89년에 한국인 아버지와 대만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이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성장기를 보냈기 때문에 내가 사실을 밝히지만 않는다면 아무도 내가 혼혈이라는 사실을 눈치 챌 수가 없다. 나는 한국에서 자란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문화와 환경 속에서 동일한 교육을 받으며 자란 100%의 한국인이다. 내가 혼혈이라는 사실은 나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100% 미만인 대신, 그 자리에 다른 정체성이 들어서는 것이 아니다. 즉, 나는 한국인 50% 대만인 50%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혼혈인으로서 나의 정체성은 '한국인'이라는 나의 바탕에 덧붙여진 '+a'의 무언가이다. 나는 다른 어떤 한국인보다도 덜한 한국인이 아니다. 문화적으로나 언어적으로나 나는 한국인으로서 남들보다 부족한 것이 1%도 없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혼혈이라는 사실이 흔치 않은 특징임은 분명하다. 2024년인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는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90년대와는 달리 '단일 민족 정체성'이 많이 흐려졌다. 미디어에는 국제 결혼 커플, 예쁜 혼혈인 아이돌, 그리고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귀화한 한국인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중에 한국-대만 혼혈은 쉽게 찾아 볼 수가 없다. 이는 사실 전세계 혼혈인 중에서도 한국-대만 혼혈이 굉장히 드문 조합이기 때문이다. 내가 살면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 같은 인종적 조합을 가진 사람을 이전에는 본 적이 없다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 '혼혈'이라고 한다면 떠올리기 쉬운 몇 가지 이미지가 있다. 첫 번째는 5,60년대 주한미군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에 대한 이미지이다. 인종적으로 구분하기 쉬운 백인 혹은 흑인 혼혈인들은 당시 국가적 수치라고 여겨져 고된 차별을 겪고 주변인으로 살아가거나, 해외로 입양되어 보내졌다. 두 번째는 2000년대 후로 결혼중매업체를 통해 한국 남성과 동남아 국가 여성 간의 결합으로 인해 태어난 혼혈인이다. 이들은 대부분 사회적 취약층으로 분류가 되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다문화 가정'이라는 표현으로 통합정책을 펼치고자 시도를 하였으나, 거꾸로 '다문화 가정'이라는 표현 자체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니게 되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어쩌면 유일하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혼혈인인데, 한 쪽 부모가 서양 선진국의 국적을 지닌 백인 혼혈의 경우이다. 이들의 이국적인 외모와 수려한 외국어(주로 영어 혹은 유럽언어) 능력은 한국사람들의 동경을 일으키기 때문에, 걸그룹 뉴진스의 다니엘이나 전소미와 같은 연예인들이 인기를 얻으며 활동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문제는 내가 위에서 말한 혼혈인에 대한 어떤 카테고리에도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딘가 소속감을 느끼는 것은 한 개인의 정체성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나는 인종적으로도 구분이 가지 않는 동북아시아인 간의 혼혈인데다 특별한 시대적 상황의 산물도 아니기 때문에 어느 쪽에도 공감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나는 '화교'라고 불리는 한국 거주 대만인들과 가장 비슷해보이기도 하는데, 한 쪽 부모만 대만인이라는 사실은 한 개인의 정체성에 있어서 굉장히 큰 차이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같지가 않다. 또한, 화교 정체성은 커뮤니티로 인한 소속감이 매우 중요한데, 화교 커뮤니티에 한 번도 소속된 적이 없기 때문에 동질감을 형성할 수도 없었다. 한국에서도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존재인 나는 대만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나는 주 거주지가 대만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에, 대만에서의 난 '혼혈인'보다는 '외국인'에 가까운 존재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혼란함을 느끼며 나는 나 나름대로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포지셔닝(positioning) 할 지 선택했다. 그것은 내가 혼혈인이라는 사실은 인정하되, 마치 한국인인 나라는 사람 위에 얹혀진 사소한 특징인 것처럼 다루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 태도는 내가 한국 사회를 사는 데에 있어서 꽤나 효과적인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심드렁한 태도로 어쩌다가 필요에 의해 "저 혼혈이에요."라고 던지면, 상대방 또한 "그렇군요." 정도로 답한다. 어린 시절에는 관심을 갖고 질문을 던지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다들 무관심하게 듣고 잊어버리곤 했다. 언뜻 보기엔 굉장히 태연해 보이는 나이지만, 사실은 난 매번 내가 혼혈임을 밝힐 때마다 속으로는 바짝 긴장을 하고 있다.

겉으로 봐서는 그저 평범한 한국인 중 한 명에 불과하지만, 난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결코 잊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나는 그저 남들과 다르게 보이는 것이 싫어서 '다르지 않음'을 필사적으로 연기해왔을 뿐이다. 사실 나는 내가 혼혈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부터 내가 시작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오랫동안 씹다가 단맛이 빠진 껌처럼 내 입 속에 머물던 말들이다. 나는 89년에 한국인 아버지와 대만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이다. 그리고 앞으로 할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35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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