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믿지만 솔직히 불안도 하다.
오늘은 평범한 하루였다.
오전엔 집안 정리를 했다.
미뤄두었던 서류들과 행정 처리, 은행 업무까지
조금씩 정리하며
한 켠이 복잡하게 엉켜 있던 마음도
서랍 하나 정돈하듯 차분히 풀어갔다.
점심엔 가족과 커피숍에 갔다.
진한 커피 향기 속에
소소하지만 진심 어린 말들이 오갔다.
무심한 듯 다정한 그 순간들.
내가 아직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서 보호받고 있다는
조용한 위안이 밀려왔다.
저녁엔 익숙한 골프장에 갔다.
하루를 정리하는 듯한 그 몇 번의 스윙.
하지만 오늘따라,
한 타 한 타에 감정이 묻어났다.
한 타엔 초조함이,
두 번째 타엔 조급함이,
세 번째 타엔 ‘이대로 괜찮을까’라는 속마음이 실렸다.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지금, 나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있는가?
아니면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있는가?”
'더 잘 해내고 싶다'는 말이
과연 전진을 위한 에너지인지,
아니면 나를 짓누르는 또 다른 의무인지?
경계가 흐릿하다.
그리고 그 흐릿함 속에서
마음은 여전히 울그락불그락 출렁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는
무너지지 않는 무언가가 하나 있다.
“나는 아직 나를 믿는다.”
그 믿음은 크지도, 뜨겁지도 않지만
꾸준하고 단단하다.
마치 아무도 보지 않는 바다 밑의 조용한 해류처럼,
나를 천천히 앞으로 밀어주는 감정.
그래서 나는 안다.
조금 일찍 퇴직했지만,
그것이 실패의 신호가 아니라
새로운 길로 들어선 방향 전환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아직 모를 수 있다.
심지어 나 자신도 가끔은 헷갈린다.
하지만 확신하듯 조용히 중얼거려본다.
“지금 이 길이,
언젠가 내가 가장 잘한 선택이 되리라.”
나는 오늘도
흔들리며 나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평정은 완벽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혼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순간에 깃든다는 걸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