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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 회고록 Feb 28. 2024

625 전쟁 ⑨

할아버지 회고록 30

이 글은 저의 할아버지가 1931년 일본에서 태어나시어 한국으로 귀국 후 약 70년간 겪어오신 삶이 담긴 회고록을 바탕으로 작성된 글로 실제 이야기입니다.


625 전쟁 ⑨



 나는 의무대에 가서 간단한 치료를 받고 통신대로 돌아왔다. CP통신대는 교환병 1명과 가설병 1명 그리고 기재계 한 명뿐이다. 나까지 해서 네 명이 된 것이다. CP통신대는 큰 임무는 없고 CP와 OP 간의 전화교환과 전화선 수리 그리고 통신장비 수리해서 전방으로 보내는 것이다. 나는 부상한 상처만 치료되면 다시 OP로 갈 것이다. 며칠만 치료받으면 완치될 것 같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천막밖에 나가봤더니 전차부대가 전차를 몰고 와 강변에 포진했다. 그리고 잠시 후 북쪽 적진을 향해 전차포를 쏘고 있다. 기점사격을 하는 것 같다. 이 강변은 미군포대가 포진하고 있다가 철수한 곳이다. 왜 철수했는지는 우리는 모른다. 상황이 불리해서 후방으로 철수했는지 모른다. 그날밤만은 CP에서 편히 좀 쉬겠구나 싶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빨리 잘 수는 없다. 전방에는 또 전투가 시작되는 것 같다. 포탄소리와 기관포소리에 예광탄의 불빛이 반짝이며 조명탄의 불빛이 야음을 밝힌다. 오늘밤도 심상치 않구나 싶었다. 강변의 전차포가 사격을 개시하는데 요란하다. 그런데 갑자기 고지에서 낯선 총소리가 들린다. 바로 이것이 따발총 소리다.


 그 소리와 함께 징소리와 피리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중공군의 역습이다. OP와의 전화가 두절됐다. 밖에 나가보니 전차가 적병에 포위됐다. 달이 구름에 가려 시야가 흐려있다. 철모가 아닌 모자를 쓰고 따발총을 든 중공군임에 분명했다. 우리는 침착했다. 예비무전기를 꺼내서 안테나를 뽑고 스윗치를 틀었다. 대대에서 연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애타게 부르는 음성은 부대대장이다. 그러나 연대에서는 응답이 없다. 계속 부르는데 병력지원과 탄약보충을 호소하고 있다. 응답이 없으니 안타깝다. 그렇다고 내가 응답할 수가 없었다. 내가 책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아군의 박격포와 기관포 북으로 향해 쏘는 것이 아니라 남으로 향해 쏘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적에게 빼앗긴 것이다. 우리는 상황이 절박함을 알았다. 우리는 즉시 무전기와 중요한 장비를 챙겼다. 그리고 후방으로 철수하기 시작했다. 강(북한강)이 남으로 흐르기에 우리도 강변 따라 내려갔다. 한참 내려갔는데 천막이 여러 곳에 쳐있고 병력의 움직임을 알 수 있었다. 가설병 강중사(이등중사)가 연대 CP(후방지휘소)라고 일러줬다. 나는 전방에서만 근무했기 때문에 모른다. 어두컴컴한데 갑자기 우리에게 권총을 들이대고 누구냐 어느 부대 누구이며 어디로 가느냐! 3대대 통신병인데 상황이 불리해서 철수하는 것이라고 했다. 알고 보니 부연대장인데 연대 CP를 지휘하고 있었다. 전원 강변에 배치하란다. 제2방 어선을 구축하는 것이다. 나는 무전병이라 교신을 하기 위해 무전기에서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제외됐고 나머지는 강변에 배치됐다.


 나는 적당한 곳에 무전기를 내려놓고 안테나를 뽑아 스윗치를 틀었다. 전방에서 아까와 같이 계속 병력지원과 탄약보급을 요청하고 있다. 그렇다고 부연대장에게 보고할 수는 없다. 부연대장도 이미 상황을 알고 있을 터인데 내가 구태여 보고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책임회피가 아니다. 나의 책임 외의 사항이다. 전방상황에 대해서 다시 언급하자면 중공군 병력이 많은 것도 아니고 소수병력으로서 아군을 교란시킨 것이다. 이 고지와 저 고지에서 두세 명이 숨어올라가 따발총을 난사하며 피리와 꽹과리를 치는 것이다 교대적으로. 아군은 엄청난 적군에 포위된 줄 알고 그들의 심리전에 굴복하고 만다. 이번에도 그렇게 해서 그들에게 당한 것이다. 그 전투에서 우리 부대대장으로 있다가 1 대대장으로 간 분이 전사했다. 다음날 날이 새니 23 연대 병력이 강을 건너 후퇴해오고 있었다. 비가 많이 왔고 강이 구부러져 흘러 급류가 되어 익사한 병사도 많았다. 그 상황에서도 우리 통신대원들은 희생된 자는 없었고 다만 가설병 배병옥이 부상했을 뿐이다. 그 전투에서 연대장 박 O 대령은 겁을 먹고 지프차를 타고 도망해 버렸다. 연대장이 도망했으니 전투에 패할 수밖에 없었다. 북진 압록강 진격 최선봉 맹호 23 연대도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우리 부대는 후퇴 아닌 철수를 계속되었다. 11사단 병력이 들어오고 있다. 우리와 교대하는 것이다. 나는 무전기를 가지고 있었기에 차량에 타고 갈 수 있었다. 나는 도보행군은 정말 못하겠다. 연대 전병력이 도보로 철수했지만 다행스럽다. 길은 좁고 병력은 길을 메웠고 행군속도는 도보병력이나 차량이나 매한가지다. 느릿느릿 철수해서 화천 사방거리까지 철수해 내려왔다. 우리 연대는 도로에서 떨어진 구릉에 임시 주둔하게 됐다. 개인천막(판초우의)을 치고 야영이 시작됐다. 재정비기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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