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3

혼술의 끝을 봤다

by 나효진

두 시간을 겨우 자고 일어나 항공권 리턴 연장을 알아봤지만 거절당했다. 돈을 더 내도 안 된다고 했다. 아침부터 울고 싶은 기분이 됐다. 나의 마음과는 정 반대로 날씨는 정말 너무 좋았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공기가 따뜻했다. 걷기 딱 좋은 날이었다. 또 체크아웃을 미뤄 놓고 나카메구로로 훌쩍 섰다.


메구로 강변을 걷다가 밥냄새 나는 가게로 홀린 듯 들어갔다. 날씨도 좋겠다 테라스에 앉았는데 정말 느껴본 적 없는 형태와 크기의 행복감이 밀려왔다. 고개를 돌리면 메구로 강이 보이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일본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가라아게 반찬은 좀 비렸지만 모든 것이 상쇄됐다. 든든하게 먹고 차마 나카메구로를 떠나기가 힘들어 걷는데 ‘최고의 이혼’에서 오노 마치코가 일하던 세탁소가 보였다. 마지막 숙소인 신주쿠로 가기가 싫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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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체크아웃을 하려는데 가기 싫어서 눈물이 나려고 하는 것을 꾹 참고 시부야 역으로 향했다. 이제 구글맵 안 봐도 되는데... 그런 감상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 것은 캐리어가 너무 무거워졌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생존의 위기를 느끼면 머리가 굴러가는 모양인지 육교 에스컬레이터 위치를 찾아가며 오르락내리락에 성공했다.


금세 가부키쵸에 입성했다. 마지막 숙소는 호텔이다. 다음날 저녁 비행기를 타려면 체크아웃 후 짐을 맡길 곳이 필요한 탓이다. 호텔의 최고 장점은 무지하게 눈에 띈다는 것이다. 헤매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입실 완료했다. 그런데 웬걸... 숙소 중 제일 좁았다. 그나마 전선뷰가 아닌 것과 담배를 방 안에서 피울 수 있는 것을 위안으로 삼고 아래층에 있는 토호시네마에서 영화를 예매했다. 반드시 보겠다고 생각했던 야미킹우시지마쿤 파이널. 포인트 카드도 만들어볼까 했지만 재류카드가 없는 관계로 실패했다. 표를 받아들고 나와서 하라주쿠로 걸었다.


일본에서도 도진 걷기병 때문에 지친 나의 다리가 요요기 쯤에서 제발 쉬어달라고 빌기 시작했다. 그래서 잠깐 앉아있을 카페를 둘러보는데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곳이 정말 예뻤다. 하와이안 콘셉트인데 도저히 셔터를 누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주인상에게 허락을 받고 마구 찍었다. 한 30분 정도를 쉬고 나오는데 주인으로부터 음료수 선물도 받았다. 마음이 뜨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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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신궁 지름길을 통해 다케시타도리에 도착했다. 맙소사... 평일 오후라고는 믿기지 않는 인파에 떠내려갔다. 황급히 다케시타도리를 지나 하라주쿠 스트릿으로 진입해 미친듯이 쇼핑했다. 이쯤 되니 느껴지는 것은 빈티지 쇼핑을 하려면 하라주쿠가 낫겠다는 사실이었다. 늘 그렇듯 쇼핑백을 양손에 들고 나니 오모테산도까지 가 볼까? 하는 정신나간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의 몸뚱이가 극적으로 말려준 덕에 전철을 타고 신주쿠로 돌아왔다.


영화 시간은 8시. 저녁을 먹으려고 한 시간 비워 놓고 돌아왔는데 힘이 들어서 그럴 체력 따위는 사라졌다. 호텔에서 준 입욕제를 넣고 잠깐 목욕을 하는데 잠들 뻔했다. 그러다가 영화 시간에 늦을 지경까지 이르러 머리도 안 말리고 극장에 들어갔는데 한국보다 광고가 길었다. 극장 자체는 엄청 작은 느낌이었지만 화면 사이즈와 비율, 좌석 배치가 마음에 들었다. 일본도 마스킹은 해 주지 않았다. 기대했던 야미킹우시지마쿤 파이널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영화가 끝나고 밤 11시 쯤 숙소로 올라와 도쿄 여행의 마지막 밤을 어떻게 보낼 지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나 귀국 후까지 술냄새를 풍기는 밤이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먼저 또 걷고 싶어서 목적지를 진구마에가이엔으로 설정했다. 진심으로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호젓한 게 아니라 어디 끌려가도 모를 일이었지만 꾸역꾸역 걸었다. 새벽 산보를 두 시간 정도 하는데 발과 다리는 이미 맛이 가 버렸다. 신주쿠로 다시 돌아왔다.


계속 굶은 관계로 24시간 영업하는 이소마루 수산으로 들어갔다. 숙소 앞 말고 다른 지점을 우연히 발견해서 착석 후 육회참치덮밥과 하이볼을 시킨 후 다리를 절면서 화장실에 갔는데... 일본 녀석들 깔끔한 줄 알았더만 세면대에다가 누군가가... (생략) 모른 척 하려고 하다가 주인에게 말해 줬다. 나 아니라고 손사레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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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볼을 홀짝홀짝 마시면서 밥을 먹고 나온 시간이 벌써 2시 40분. 숙소에 가려는데 헌팅을 당했다. 멘트 보고 기겁했다. “어! 오랜만이다!” 한국인이라니까 오히려 더 반색을 하면서 숙소까지 따라왔다. 숙소 앞에 앉아서 번호를 교환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도망치듯 올라갔다. 지나가는 남성들과 악수 파티 허그 파티를 하는 곳이다 가부키쵸란 곳...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서 다섯 시까지 한다고 걸어 놓은 바로 이동했다. 내 생각과 달리 아주 작고 위험해 보였지만... 좋게 말하면 굉장히 오붓했다. 사장은 손님이 없어서 자고 있었다. 마티니를 시키고 TV보면서 사장과 대화를 하는데 당초 30분만 있다 나오기로 한 것이 날 새도록 이야기를 하게 됐다. 대화가 무르익으니 사장이 추근대기 시작했다. 자신이 큐브를 아주 잘 맞추는데 성공하면 나한테 키스를 해 달라고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맞췄지만 해 주지 않았다. 저질 농담을 주고 받다가 사장이 데킬라 두 잔을 연거푸 공짜로 선물하고 담배도 한 갑을 통째로 줬다. 안됐지만 저는 당신과 자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생각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다섯시 반쯤 돼서야 가게를 나왔다. 아주 끌어 안고 놔주질 않아서 한 대 칠 뻔했다. 동구 밖까지 마중나와준 건 고마웠다. 아무튼 마티니 한 잔 값+자리값만 내고 잘 놀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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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력이 숙소 올라가자마자 끊어졌다. 해가 뜨고 있는 와중에 양치랑 세수는 하고 벌거벗은 채 잠에 들었다. 과연 조식을 먹을 수 있을 것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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