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다 살아난 일본에서의 첫 당직
날이 밝았음은 확인할 수 없었으나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는 법이다. 본격적으로 두 번째 혼자 도쿄 여행이 시작됐다. 대충 씻고 100엔 짜리 마사지 의자에 지친 몸을 맡겼다. 그래도 체크아웃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일을 하다가 첫 숙소인 시부야로 향하는 리무진에 올랐다. 나를 고생시켰지만 너무나 예뻐서 화를 낼 수도 없게 만들었던 그 집이었다.
그렇게 힘들었던 시간들이 무색하도록 하차 후 10분도 되지 않아 숙소에 도착했다. 내 집에 돌아온 듯 그립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착한 주인은 체크인 시간도 당겨 주었다. 그러나 지난 번에 비해 청결 수준이 살짝 개판이어서 아쉬웠다. 캐리어를 열고 침대에 누워 잠깐 쉬다가 빨래 돌리기에 도전했다. 한 번도 세탁기를 조작해 본 적이 없어서 주변인들에게 자문을 구했지만 이렇다할 답이 나오지 않아 그냥 감으로 돌렸다.
빨래가 도는 동안 잠을 청했다. 그러나 세탁기 소리가 정말 어마어마해서 자는 둥 마는 둥 했다. 이러다 터지는 것이 아닌가 싶어 두려워졌다. 특히 막판에는 정말 심각하게 소리가 커져서 결국 2분을 남기고 세탁 코스를 종료했다. 탈수까지 된 빨래를 꺼낸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끼던 니트였는데 이 지경이 돼 있었다. 코스를 코튼으로 맞추고 돌리면 대충 울도 빨리겠거니 해서 같이 넣었거늘 이 지경이 돼 있었다. 황급히 줄어든 울 복원 방법을 검색했다. 미지근한 물에 린스를 풀고 줄어든 옷을 넣은 후 늘려 보라고 해서 시도했다. 늘어는 나는데 나의 완력이 버텨주질 못했다. 일본에서의 구애 멘트는 라면 먹으러 갈래가 아니라 우리 집에 빨래 늘리러 갈래로 정한 순간이었다.
어쩔 도리가 없으니 일단 밥을 먹으러 나왔다. 11월에 먹으려다 먹지 못한 규탄을 아점 메뉴로 결정했다. 다소 식사 시간을 비껴난 때였음에도 가게는 만석에 가까웠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뭔진 모르겠지만 맛있어 보이는 그림을 짚었다. 소 혀는 질긴 쇠고기의 맛이 났다. 같이 나온 마는 맛있었지만 식감이 너무 흐물거려서 한 번 찍어 먹고 다시는 젓가락을 들이대지 않았다.
그리고 추억의 시부야 키사텐으로 향했다. 슬슬 일하는 티를 내야 했기 때문이다. 1인석에 컴퓨터를 놓고 일부로 LTE 무제한으로 구입해 둔 유심과 테더링을 해서 적당히 미션을 클리어했다. 그러나 저녁 당직은 동영상을 돌려야 하는 터라 한 번 시도를 해 봤다. 진심으로 이 때 시도하지 않았으면 일본에서 해고 통지를 받을 뻔했다.
테더링 가지고는 동영상 재생이 턱도 없었던 것이다. 차로 따지면 언덕을 올라갈 힘아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빨리 알아서 다행이다 싶었지만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저작권 문제 탓에 일본 IP로는 동영상 스트리밍이 불가능했다. 눈 앞이 노래졌다.
지난 여행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사람이 극한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든 생존 방법을 찾아낸다. 그 급박함 속에서도 IP 우회가 번뜩 떠올랐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려 해도 당직은 최소 두 시까지 해야 하는데 인터넷 환경이 구린 것은 물론이고 24시간 하는 카페도 일본에는 없다. 최후의 보루로 검색만 해 두었던 넷카페를 떠올렸다.
사람 사는 곳 다 똑같다고 금요일 밤인 당시 바로 넷카페에 간다 한들 자리가 날지 의문이었다. 시부야에 자리가 없으면 신오오쿠보 PC방까지 가야 하는데 그 동네는 다소 위험했고 새벽 택시를 필히 타야했다. 일단 아직 시간이 남아 있으니 황급히 자리를 접고 넷카페로 향했다. 다행히 자리는 있었다. 점원상의 끈질긴 권유로 멤버십 카드까지 만들고 자리에 앉으니 조금 마음이 놓였다. 이곳이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보던 온갖 루저들의 성지 넷카페란 곳이구나, 하면서 몸을 떨었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본 넷카페면 키보드 언어가 뭐겠는가. 당연히 니홍고였다. 순간 당황했지만 자판 위치는 손에 익었으니 언어만 빨리 바꿨다. IP 우회도 뭔가 엄격해 보이는 일본에서는 막아 놓지 않았을까 걱정이 됐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무사히 영상히 송출되는 것을 보고 눈물을 쏟을 뻔했다. 동영상 캡처 및 사진 붙이는 프로그램도 설치해야 했다. 일본 컴퓨터라고 일본어로 깔리는 바람에 헷갈려서 혼났지만 모든 준비를 완료하고야 말았다. 인간 승리란 것이 이런 것일까 싶었다. 한숨을 돌리고는 회사 메신저와 카카오톡 PC버전까지 괜히 깔아 봤다. 그렇게 죽다 살아난 당직을 정말 완벽하게 마쳤다.
새벽 두 시 경 넷카페를 나오니 혼술을 안 하고는 못 배기겠는 심정이 됐다. 그러나 이미 만만한 가게들은 문을 닫을 태세였다. 몇 번을 까이고 나니 시부야에 섭섭해졌다. 그러다가 집에 가는 길에 있는 바 겸 이태리 레스토랑이 3시까지 하는 것을 발견하고 들어갔다. 한 그룹이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자기들끼리 신이 났고 바 주인도 심드렁해서 혼자 하이볼에 하몽을 곁들여서 먹고 나왔다. 뭔가 어른의 퇴근 같기도 했지만 너무나 쓸쓸했다. 사실 이때까지는 혼술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때였다. 우연히 술을 마시다 만난 누군가와 친구가 될 수도 있겠다는 것은 나의 계산에 없던, 그런 시간이었다. 그래서 서운함과 쓸쓸함과 외로움이 가득한 귀가길이었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여느 때처럼 입욕제를 푼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고 잠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