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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효진 Feb 08. 2017

나의 도쿄

あたしの東京

2016년 11월부터 2017년 1월까지 3번 도쿄에 갔다. 남들은 3박4일이면 족하다는 여행지에 각각 5박6일, 11박11일, 7박8일씩을 머물렀다. 처음에는 이 여행기를 재밌어하던 대부분의 주변인들도 이제는 “또 일본 가냐?”라고 할 만큼 이 도시에 푹 빠져 있다. 앞으로도 틈만 나면 도쿄에 갈 생각이다. 초딩 이하의 일본어 실력으로도 운 좋게 친구들을 여러 명 만날 수 있었고, 그들로부터 전혀 위화감이 없다거나 여기서 살아도 될 것 같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일본인이 인정한 ‘니혼타쿠’가 됐다.


일본으로 떠나는 공항에서부터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에 눈물이 나곤 하지만 나는 늘 그곳에서 6개월 이상 살 수 없을 듯하다고 말한다. 도쿄는 분명 내게 이상적인 도시지만, 대한민국의 수도권에서 태어나 30년간 살아온 내게 도쿄란 오랜 시간 여행 이외의 본격적 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는 아직 여겨지지 않는다. 도쿄에 며칠이고 묵을 때는 내가 한국에 있는 건지, 외국에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편안함을 느끼지만, 막상 돌아와서 곰곰히 그날들을 톺아볼때면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오래된 표현을 실감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


먼저 도쿄의 매력을 꼽자면 단번에 모두 쏟아내지 못할 만큼 많다. 도쿄는 세월의 때 자체가 멋인 도시다. 이곳에서는 난개발이나 급개발이라는 말을 떠올릴 수 없다. 도로 경관만 봐도 그렇다. 잔뜩 이끼가 낀 벽과 보도블럭은 ‘낡음’이라는 단어 안에 ‘차분함’이 감춰져 있음을 일깨워 주고, 사시사철 도시 곳곳을 메우고 있는 짙은 녹음이 마음을 가라앉혀 준다. 끝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서울의 풍경은 6개월을 채 버티지 못하고 바뀌곤 하는데, 도쿄는 10년 전에 보았던 곳의 잔상이 여전히 남아 있다. 도쿄에서 눈에 담았던 모든 것들은 그곳을 지키기 위해, 오랫동안 그 상태로 남아 있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인상이 강하다. 단적인 예로 이 메트로폴리스에는 아직도 낡은 철길이 있으며, 도심에서 조금만 눈을 돌려도 작고 오래된 가게들이 즐비하다. 학교 앞 촌스러운 모양의 파르페를 팔던 찻집이 세련된 카페 체인으로 바뀌었을 때의 절망감을 느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도쿄를 좋아할 수밖에 없을 터다.


서울이 도쿄의 1/3 크기라고는 하지만, 어느 곳에 가도 똑같은 풍경을 봐야 할 만큼 작은 도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서울의 개발 방식은 끝 간 데 없이 획일화되고 있다. 도쿄의 경우 이곳을 23구로 한정짓더라도 어디든 동네별로 고유의 분위기가 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하나의 도시 안에 혼재돼 있는 광경은 같은 모습이어도 볼 때마다 다른 감상을 남긴다. 역시 외국인 입장이라 조금은 긴장하게 되기도 하지만, 예정 따윈 없이 멋대로 돌아다녀도 즐거운 곳이 도쿄다.


기본적으로 인건비가 높은 편이라서인지는 몰라도, 도쿄에서 본 사람들의 직업정신이 몹시 투철하다고 느껴졌다. 특히 서비스직의 경우가 그랬다. (공항은 제외한다...) 손님을 대하는 태도는 물론이고 일을 하는 모습으로부터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이 분명히 전해졌다. 때문에 신뢰감 또한 생긴다. 일본에도 아직 직업에 귀천을 나누는 문화가 남아 있을 것이고, 놀랄만큼 친절한 사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든 그 분야에 있어서는 두 말 할 것 없는 프로라는 느낌이었다. 또 세세한 부분까지 매뉴얼이 갖춰져 있어서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책임의 분배가 확실하다는 점도 선진국다웠다. 서비스 제공자도 이용자도 섬세하게 짜여진 매뉴얼대로만 따라가면 된다.


외국인들이 일본인에 대해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혼네’와 ‘다테마에’다. 대개 나쁜 의미로 쓰이는 설명이지만, 이에 대해 나는 10%도 동의하지 않는다. 일단 어느 나라의 사람이든 사회생활을 할 때 본심을 전부 드러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일본인만 특히 겉과 속이 다른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혼네’와 ‘다테마에’가 존재하기 때문에 일본인이 친절한 것이라면 차라리 그 편이 낫다 싶기도 하다.


동양문화권 치고는 확실히 개인주의가 강한 편이라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은 부분도 많이 목격된다. 우선 내가 본 곳을 기준으로 삼자면 동네 사람끼리의 사이가 무척 좋다. 십수년을 한 곳에서 살아도 옆집에 무관심한 한국보다 동네 분위기가 화목해 보였다. 맨 처음 시모키타자와의 에어비앤비에 묵었을 적이었는데,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과 우연히 마주치게 됐을 때 “곰방와”라는 인사를 받고 이상하리만치 기분이 좋아졌던 기억이다.


시민의식과 문화 수준이 높다는 점 역시 나로 하여금 도쿄에 좋은 감정을 갖게 했다. 공중도덕은 길거리의 깨끗함이나 보행자를 우선하는 도로 풍경만 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운전자는 정지선과 신호를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잘 지킨다. 미술 전시나 음악회 같은 예술 쪽과 건축물은 놀라울 지경이다. 제대로 금액을 지불하고 즐기는 문화 역시 부럽다. 취향의 폭이 엄청나게 넓고, 모두가 깊게 파고드는 취미 하나 쯤은 갖고 있다. 술집에서 잠깐 마주친 사람과도, 한국에서는 동호회 정도를 들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음악 이야기나 영화 기자를 하면서도 좀처럼 화제가 되지 않던 감독 이야기를 심도있게 나눌 수 있다. 그래서 도쿄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이곳에서 갑자기 사귄 친구들과 음악이나 영화 이야기를 할 때였다.


이 밖에도 도쿄는 내게 아름다운 기억들을 많이 선사했지만, 여전히 어려운 부분도 남아있다. 그야말로 일장일단이다. 일단 실생활 쪽을 따져 보자면 대중교통의 경우 한국이 훨씬 편하고 빠르다. 반대로 말하면 한국은 안전함을 버린 대신 빠름을 택했다는 의미기도 하지만... 또 도쿄의 확실한 매뉴얼은 상당히 딱딱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융통성이 부족하다고나 할까... 민간 서비스는 물론이고 공무와 관련된 생활에서 상당히 곤란을 겪을 것 같았다. 예외 상황들은 전부 통제되기 때문에 이제서야 일상이 점점 매뉴얼화되어가고 있는 중인 지금의 한국 사람들에게는 엄격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분명 있을 터다. 실생활과 직결되는 점이라 더욱 어렵게 다가온다.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웠던 것이 인간관계다. 이는 내 개인적인 성격과 외국인이라는 신분과도 연결되는 사항이다. 겪으면 겪을수록, 한국의 ‘친구’와 일본의 ‘친구’는 의미가 다른 것으로 보였다. 일본 사람들을 대할 때는 무엇이 실례가 되는지를 항상 생각하면서 행동해야 했다. 한국에서는 실례의 범위가 다소 좁은 편이지만 일본은 훨씬 넓다. 사생활을 침해당한다고 여겨지는 범위 역시 그래 보였다.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평소보다 얌전히 행동하는 것이 퍽 쉽지가 않았다.


서울을 포함한 한국은 나이로 서열을 결정하지만 도쿄에서 친구를 사귈 때 나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도쿄의 경우 한국 사람들이 대개 생각하는 ‘친구’의 범위까지 가까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나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일본인과 일본인의 관계 맺기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인지 나는 친구가 됐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나를 그저 외국인 여행객으로 생각하는지 진짜 친구로 생각하는지가 몹시 궁금했다. 한국에서는 분위기 파악과 사람 심리 읽는 것으로는 자타공인으로 모두의 상담을 도맡아 하던 나지만 일본인의 마음은 좀처럼 읽을 수가 없었다. 예를 들어 한국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 내가 츳코미를 넣는 입장이라면 일본에서는 어디까지가 농담인지를 파악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한국에서는 깊은 고민이나 사생활 이야기도 아무렇지 않게 꺼내놓지만, 일본은 새빨간 타인의 문제에는 그닥 끼어들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이 부분은 일본어 실력이 좀 나아진 후에도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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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年11月から2017年1月まで東京に3回行った。 人たちは3泊4日で十分だという旅行地にそれぞれ5泊6日、11泊11日、7泊8日ずつをと泊まった。 最初には私の旅行記を不思議に思っていた周りの人たちも"また、東京?"と言うほど、この都市にはまっている。 これからも時間があるたびに、東京に行くつもりだ。 小学生以下の日本語の実力だったが、運が良くて友達がたくさんできて、彼らから全く違和感がないとか、ここで生活をしてもいいようだといわれたこともある。


どころで私はまだ日本で6ヵ月以上居住することはるかわかんないと言う。 東京は確かに私に理想的な都市だが、大韓民国の首都圏で生まれ、30年以上住んだ私に東京は旅行以外の本格的な生活をすることができる場所!はっきり言うのはまだできない。 いくつかの理由があるが... なんか自信がない。 考えたより厳しくなると思う。  東京に数日も泊まった時には韓国にいる時とたいした差を感じないけど、帰ってきてじっくりその日を思い出してみたら'近くて遠い国'という古い表現を実感するようになるのだ。 (東京の特派員のような仕事ができるなら私がそこで居住できるかできないのかを確実に分かるはずのに)


まず、東京の魅力を言えば、一言で要約できないほどいろいろある。 東京は、歳月の跡自体が素敵な都市だ。 そこでは、乱開発のような言葉を思いつかない。 道路の景観だけを見ても、そうだ。 苔がいっぱいに生えた壁と歩道のブロックは'古い'という単語の中に'安定'が隠されていることを改めて実感させ、四季折々都市のあちこちを埋める濃い緑が心を落ち着かせてくれる。 新しさだけを追求するソウルの風景は6ヵ月を持たなくて変わったのに、東京は10年前に見たところの残像が依然として残っている。 東京で見たすべてはそこを守るために作られたようだ。 端的な例として、このメトロポリスにはまだ古い鉄道がおり、都心で少しだけ目を向けても、小さくて古い店が並ぶ。


ソウルの大きさが、東京の1/3だと言うが、どこに行っても同じ風景を見なければならないほどの小さな都市だとは思わない。 しかし、ソウルの開発のやり方は限りなく画一化されている。 大学生時代、学校前の野暮な形のパフェを売っていた喫茶店が最新式のカフェチェーンに変わった時の失望感を感じたことがある人なら、東京を好きになるしかないはずだ。 東京を23区に限定しても、どこでも特有の雰囲気がある。アナログとデジタルが東京という一つの都市の中に混在されている。 やはり外国人だから少しは緊張するようになる時もあるが、勝手に歩き回っても楽しい所が東京だ。


基本的に人件費が高いからかもしれないが、東京で見た人たちの職業精神も偉そうに思われた。 特にサービス職の場合がそうだった。 客に対する態度から自負心と責任感が伝わった。 だから客の立場では厚い信頼感が生じるのも当然だ。 日本にもまだ職業に貴賤を交わす文化が残っているか分からず、驚くほど親切な人だけ会ったわけではなかった。 しかし、何の仕事をする人でもその分野ではプロの感じだった。 細かい部分までマニュアルが整備されていて事故が発生しても責任の分配が確実なのも、先進国だった。


日本人を語る際に欠くことのできないのが'本音'と'建前'だ。 ほとんど悪い意味で使われる説明だが、これに対して、私は10%も同意しない。 まず、世界どこにある国の人も社会生活をする時本心を全部目立つ場合は非常に珍しい。 日本人だけが特に表と裏が違うのではないということだ。 さらに、'本音'と'建前'が存在して日本人が親切なら、いっそそのほうがいいと思う。


東洋文化圏にしては確かに個人主義が強い方のようだが、意外とそうでない部分も多く発見されている。 私が見たところを基準にすると、町の人々がとても親しい。 十数年を同じ街で暮らしても隣に無関心な韓国より雰囲気が和やかに見えた。 もちろん、東京の方も隣人なんか気を使わないところがあるはずと、ソウルもそうじゃなくところがあるだろうが。


市民意識と文化の水準が高いのは'東京人'の素敵な部分であった。 公衆道徳は道のきれいさや歩行者を優先する道路の風景だけを見ても容易に確認することができる。 美術品の展示会や音楽会などの芸術の方は、驚くばかりだ。 好みの範囲もとても広い。 韓国では同好会に加入しなければ、できない音楽の話を、酒を飲んでいる途中偶然に出会った人とも深く取り交わすことができる。 東京で一番幸せだった瞬間はそこで付き合った友人たちと音楽や映画の話をした時だった。


この他にも東京は私に美しい記憶をたくさんくれたが、まだ難しい部分も残っている。 それこそ一長一短である。 一応大衆交通の場合は韓国がはるかに楽で速い。 逆に言えば韓国は安全さを捨てた代わりに、速さを選んだという意味もあるが... そして東京の確実なマニュアルが私にはたまに少しは、堅苦しく感じる時がある。 融通がきけないというか... 例外の状況は全部統制されるから、今の韓国人にはかなり厳格に感じられることがあると思う。実生活と直結する部分だから私にはもっと厳しいようになった。


最も簡単ながらも難しかったのが人間関係だ。 これは私自分の性格と外国人の立場にもつながることだ。 日本人と会う時は何が失礼かを分かっていないからいつも慎重になった。 韓国では失礼の範囲がやや狭い方だが、東京ははるかに広い。 私生活を侵害されると思われる範囲もそのように見えた。 韓国の人々と会話する時は私が突っ込みを入れる方なら、東京では、どこまでが冗談で許されるかを把握するのも難しかった。迷惑をかけないために、普段よりおとなしく行動するのがけっこう大変であった。


ソウルを含めて韓国は、年齢で序列を決定するのが基本だが、東京では友達になることに年は重要ではなかった。 しかし、東京の場合、韓国で'友達'と思われる境界まで近づくためにどのようにすべきかが全く分からなかった。 例えば、私が大好な友達が私の事をただの外国の旅行客だと思うか、本当の友達だと思うのか知りたかった。  私は彼らをすごく好きだからいいんだけど、私も知らないうちにそちらに失礼をして嫌われるか心配されたこともある。


韓国では空気と人の心理を読むのでは自信があり、みんなの相談を引き受けたが、日本人の心はなかなか読めなかった。韓国では、もっと深い悩やプライベートの話が簡単だったが日本ではそうでないようだった。もちろん私の友達の中には驚くほど私に気を使ってくれる方もいたが、その他の方はほとんど赤の他人の問題にあまり関わりたくない感じだった。そんな話をするのも、聞くのもお互いに失礼だと思っているようだった。これは日本語の実力がもっとよくなっても難しそう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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